두 번쯤은 다시 붙잡는 편이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그렇게 하루를 꼬박 걸렸는데도 나는 여전히 발리, canggu의 어딘가쯤을 달리고 있었다. 창 밖으로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넉넉할 줄 알았던 저녁 약속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일찍 결정을 내렸다면 좋았을 걸, 꽉 막힌 도로 위에서 30분가량을 서 있다가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운전사에게 여기서 내리겠노라 말했다. 지금이라도 오토바이를 잡아 타고 간다면 약속 시간은 맞출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배낭을 고쳐 매고 ‘그랩’으로 오토바이를 불렀다. 자동차 사이를 비집고 달릴 수 있는 오토바이이지만 그마저도 기다려야 할 정도로 발리의 교통체증은 대단했다. 내 마음도 모르고 해는 평소보다 더 빨리 지고 있었고 마침내 도착한 오토바이를 타고 나는 친구들이 지내고 있는 숙소로 향했다. 친구에게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이제 출발한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오토바이 뒤쪽에 앉으니 저 멀리 붉게 타오르는 노을이 보인다. 도착하면 함께 노을을 보자고 했던 약속. 내가 서둘렀던 이유가 이렇게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숙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보이는 익숙한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한 달 만에 보는 얼굴이지만 뭔가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 애틋함이 있는 것은 장소가 주는 특별함이었을까. 그래서인지 여행을 하며 만난 친구들과 느끼는 오묘한 감정이 있다. 극도의 행복을 공유하는 느낌이랄까? 보통의 일상에서 이러한 경험을 나누는 일은 드물지만, 상상해 보라. 여행지에서는 매일이 도파민의 연속이 아닌가. 도파민으로 연결된 인연.
물론 그 속에 여러 가지 사연도 있어 오랜 여행 후에는 그 인연이 깎이고 깎여 단단한 기둥만이 남게 된다. 그렇게 나의 기반이 되어주는 친구들이 생기면, 그 기둥 위로 새롭게 돋아나는 가지들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다. 작은 새싹 인연들이 가늘게 나뭇가지가 되어 단단한 기둥이 될 준비를 하거나 가끔은 자연스레 떨어지기도 한다. 미련이 많은 나로서는 인연들을 쿨하게 보내주는 편이 못 된다. 한 번쯤, 아니 두 번쯤은 다시 붙잡는 편이다. 후회가 남지 않도록.
아무튼 그렇게 발리에 드. 디. 어 도착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지도상의 지명이 아니라 내 마음속의 지명, 친구가 있는 발리가 발리다(?) 친구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에 하루종일 찌든 몸을 따뜻하게 씻고 나오니 친구가 맥주 한 병을 건넸다. 그동안 나에게 쌓인 이야기들을 덜어냈고, 그 빈자리를 친구의 이야기로 꾹꾹 채워 담았다. 전에도 말했듯, 친구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이런 친구를 가져본 게 언제였던지 기억나지 않는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 또한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연인의 사이가 아니라 친구라는 것에 감사했다. 아니, 가족이라는 단어가 이제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빠르지 않게 천천히 쌓아가는 인연이 좋다. 시간과 감정이 켜켜이 쌓여 한 가지 단어로 설명될 수 없는 인연들이 좋다. 서로의 부족함도 친구라는 이름으로 덮어줄 수 있는 사이라서 고맙다. 이 이후로도 우리는 몇 번을 더 만났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나의 그루터기가 되어준 친구. 나는 낯선 나뭇가지들을 옮겨 다니던 떠돌이 청설모에서 이제 언제라도 쉬어갈 수 있는 그루터기가 생긴 입양 청설모가 된 기분이다. 다람쥐가 아니라 왜 청설모냐고? 나에게 다람쥐는 곱게 자랐을 것 같은 어감이라면 청설모는 야생 그 자체로 유유자적하며 떠돌아다니는 느낌이므로
오늘 발리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지만, 정작 도착한 날의 이야기도 마무리하지 못했다. 다음에 이어서 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