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아무 예약 없이 온 사람 여기 있습니다만
발리에서의 2주일이 지났다. 롬복에 있는 친구는 나에게 언제 오냐고 물었다. 내일, 아니 모레, 아니 주말에. 그렇게 예정했던 날보다 일주일이 지났다. 모두가 뿔뿔이 흩어지는 시간에 다다라서야 롬복으로 향하는 교통편을 예약했다. 롬복, 쿠타에서 발리, 창구까지 오는데 500루피아를 냈었다. 그리고 발리, 창구에서 롬복의 방살 항구까지 가는데 500루피아. 항구에서 롬복까지는 약 2시간가량의 차편은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새벽같이 픽업 차가 도착했고, 나는 친구들에게 바쁜 인사를 건네고 차에 올랐다. 아직 해가 뜨기 전, 픽업 차는 이곳저곳 숙소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태웠다. 그렇게 모두를 태우고 파당바이 항구에 도착했다. 잠시의 대기 후 패스트 보트에 올랐다. 롬복으로 가는 우리에게는 보트의 2층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가량을 달렸을까. 길리 섬 중에 가장 끝 쪽에 위치한 길리에어를 떠나자마자 한 선원이 올라와서 롬복으로 가는 사람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가 말을 꺼냈다.
“you know what?”
그는 항구에서 숙소로 향하는 교통편을 예약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 물었고, 나는 조심스레 손을 들어 보였다. 그는 한숨 섞인 미소를 지으며 도와주겠노라 말했다. 이유인즉슨, 항구에 내리면 호객꾼들이 이리저리 불러 세우며 교통편을 제공하는데, 그들이 거의 모두 마피아 소속이라는 것이다. 덤터기는 물론, 목적지에 다다르기도 전에 내려주는 일도 허다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가는 곳은 쿠타, 롬복 섬 중에서도 가장 아래쪽에 있는 곳이다. 그가 말한 보편적인 택시 가격은 400-450루피아. 이럴 거면 창구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는 건데. 역시나 롬복은 교통편이 쉽지 않다. 나와 목적지가 같은 사람이 있다면 좋았으련만, 쿠타에 가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아니, 롬복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가는 쿠타인데, 하필 오늘은 아무도 없다니.
방살 항구에 도착하자 나를 도와주겠다는 선원의 뒤에 바짝 붙어 그를 따라갔다. 그의 말대로 배에서 내리기도 전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드는 것이 보였다. 그는 저들 모두가 호객꾼이라는 듯 나에게 눈짓을 주었다. 다행이라고 말하긴 예상치 못한 금액이었지만, 그 덕분에 나는 400루피아에 택시를 잡아타고 쿠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중에 길리 섬을 오가며 알게 된 사실인데, 오후 3시 이전이라면 여러 오피스에서 제공하는 셔틀을 이용할 수 있다. 가격은 약 절반 정도.
동남아 여행을 하면서 가장 절실히 느끼는 것 중 하나는, 오토바이와 수영.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가지고 나올 두 가지. 아직 한국에 돌아가려면 멀었지만, 한국에 갈 이유가 생겨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