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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간 텐트 밖은 유럽 4. 돌로미티 라가주오이

by 비엔나 보물찾기


돌로미티에서 라가주오이는 낯선 이름일 수 있다. 동쪽 돌로미티의 깎아지른 절벽의 반복이려니 싶지만 그래도 또 그 나름대로 트래킹객에게는 또 하나의 멋을 안겨주는 곳이다.



비엔나에 있으면서 트래킹에 살짝 눈을 떴다. 비엔나에서의 기억으로 무엇을 들고 돌아올까 고민하던 끝에 그 대자연을 거닐어 보는 기억. 그 기억이야 말로 역사가 깃든 도시를 돌아보고 하는 것 이상으로 평생을 곱씹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회사에 등산 동아리에 가입해서 비엔나 인근 야트막한 산길을 걸었던 것이 처음.

내가 아무리 초보긴 하지만 너무 느릿느릿 걸어가는 단체 동아리회원들의 걸음에 답답해서 한번 가고는 그 후로 혼자 다녔다.


혼자 다닐 곳을 처음 찾다 보니 발견한 것이 비엔나 숲길(Wiener Wanderweg) 14개.

안내문에는 코스당 약 3~4시간 걸린다고는 하나, 나 혼자 걷기엔 2~3시간 정도면 하나씩 완주.

그렇게 완주하고는 받은 금배지와 은배지가 지금도 집 장식장 한편을 장식하고 있다.


그리고는 어디를 가든 걸어 다니는 버릇이 생겼고, 특히나 트래킹길이 인근에 있으면 망설임 없이 그 코스를 내 여행 코스에 넣곤 했다.


그러다가 돌로미티를 만났다. 10월 중순. 막 여름 트레킹 시즌을 접고 겨울 스키시즌으로 넘어가려는 그 시기에 간 돌로미티는 최근 텐트 밖은 유럽 편에서 보는 풍광과 많이 멀어져 있지만, 그래도 돌로미티는 트레킹의 천국이라 할만하다.



첫째 날 트레치메, 브라이에스 호수를 섭렵하고 숙소에 들어간 쉬었다.

비엔나에서 새벽부터 7시간 반을 운전해서 갔던 터라 두 개 일정만 해도 첫날 일정으로는 충분했다.

산 속이고 일찍 해가 지는 10월 중순이라 꼬불꼬불 밤길을 헤쳐 숙소로 갔다.


다음 날 아침.

호텔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마친 후 둘째 날 일정을 시작한다.

둘째 날 일정은 라가주오이-파소 포르도이-파소 가르데나-산타 막달레나.

운전만 족히 5시간은 넘게 해야 하는 강행군이지만 그래도 즐겁다. 특히 산타 막달레나에서의 여흥은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둘째 날 첫 일정. 라가주오이로 간다.


가는 길에 너무 멋진 풍경이라 차를 잠시 세웠다. 아마 위치상으로는 트레치메인 것으로 기억한다. 트레치메가 아니면 어떠랴. 그 자체로 차를 세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그 어느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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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한 시간 여를 달려 라가주오이에 도착.

여기를 가려면 파소 팔자레고(Passo Falzarego)로 가면 된다. 이탈리아어로 Passo는 영어로 pass, 길이란 뜻이다.


오늘의 라가주오이 일정은 케이블카를 타고 라가주오이 산장으로 올라가서 라가주오이 피콜로라는 정상까지 트레킹이다. 왕복 1시간 정도면 충분한 짧은 거리다.


여기서 어떤 사람들은 1차 세계대전에 사용되었던 터널 구간을 트레킹 한다고들 하나, 그 일정은 이번엔 패스. 3박 4일 일정에는 도저히 틈을 줄 수 없는 일정이었다.

화면 캡처 2025-01-12 175815.png *출처: Cicerone회사의 Day walk inthe Dolomites (네이버 티노님 블로그에서 재인용)


곤돌라(이탈리아어로는 Funivia, 독일어로는 SeilBahn이라고 적혀 있다.)를 타고 올라야 하는 돌산이다. 그 위세가 과연 위풍당당하다는 말이 어울릴까 싶다.

맨 오른쪽 바위 어두운 곳은 미국 러시모어 산에 조각된 미국 대통령 같은, 자연이 조각해 둔 사람 얼굴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곤돌라는 타는 곳은 해발 2,108미터. 저 산 위 라가주오이 정상 케이블카 정거장은 2,752미터. 그 산을 케이블카로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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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주오이 곤돌라 정거장 주변 풍경이다. 굳이 정상에 오르지 않아도 어떤 풍경일지 짐작이 된다. 그 사이에 조그만 교회인지 건물이 주변과 참 잘 어우러진다. 자연과 함께 그 일부가 되는 느낌. 사람이 아니라 건물까지도 그리 배려(?)한 그 의지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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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가는 곤돌라 줄이 보인다. 저 높은 곳까지 곤돌라를 설치할 생각을 처음 했던 기술자들에게 경의가 표해지는 순간이다.

유럽에서 융프라우나 티롤 지역 어디를 가더라도 저 높은 산과 연결하는 곤돌라를 만들 생각을 하고 그것을 현실에 옮긴 사람들. 수백 년에 걸쳐 성당을 짓고 그 안에 장식물들을 조각한 사람들의 장인 정신이 그런 것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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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돌라를 기다리다 아래 정류장에 있는 전체 라가주오이 전경과 등산로들이다.

언젠가는 여름 맑은 날에 다시 와서 트레킹을 하겠다고 다짐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탈리아에 살지 않는 이상 짧은 시간 여행 와서 저 트레킹글을 다시 걸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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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미티 전경을 보여주는 지형도도 있다. 그림으로 표현되긴 했지만 그 실제 모습을 절대 다 담을 수 없으리라. 전체 돌로미티 지형을 익히는 데는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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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곤돌라를 타고 올라서 라가주오이 산장에 오른다. 영업은 하지 않지만 선명한 이탈리아 국기가 휘날린다. 라가주오이 산장은 일출과 석양을 보기에 정말 좋은 곳이라는 데, 짧은 여행객으로서는 산장에서 잘 생각 자체를 못했었다. 두 번째 오면 그럴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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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주오이 산장 주변 풍경이다. 겨울 초입의 느낌은 있지만 그래도 돌산이라 애초에 푸릇푸릇한 기운은 없으니 비슷한 느낌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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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맑은 날은 이런 모습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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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캡처 2025-01-12 174800.png *출처: 네이버 서하님 블로
IMG_4270.jpg *출처: 네이버 통후추님 블로그


산장의 남쪽 전망이다. 갈색톤이지만 멀리 산군의 위용이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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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엔 이런 느낌이다. 비교해 볼만하다. 훨씬 더 푸룻푸룻한 느낌이 있으면서도 웅장하다는 느낌이 함께 든다.

화면 캡처 2025-01-12 192315.png
화면 캡처 2025-01-12 192331.png * 출처: 네이버 티노님 블로그

또 다른 느낌의 여름 사진들이다. 이 사진만 보면 라가주오이 마저도 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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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또 다른 바위산 풍경이다. 아마 북서쪽 정도로 기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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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네이버 통후추님 블로그


그렇게 난 라가주오이 피콜로에 있는 십자가까지 주변을 보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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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가주오이 피콜로에 있는 예수님 십자가다.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경험칙상 높은 산봉우리 제일 높은 곳에는 항상 십자가나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가 있었다.

거기가 가장 높은 정상 중에 정상임을 알려주는 표식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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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길을 돌려 돌아오면서 그 풍경들을 연신 카메라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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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아래 하트(?) 모양의 작은 호수도 보인다. 전체는 삼각형이어도 그 안에 흰 부분은 분명 하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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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산장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주 강렬한 인상을 받고 돌아왔다.

휘날리는 이탈리아 국기에서 바람의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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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장 안이었던가 전시관이 있는데 그 안에 전시된 멋진 사진들을 내가 다시 찍어두었다.

그 자체로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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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전시관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액자처럼 담아본다. 그렇게 나의 라가주오이 여행은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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