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로미티 둘째 날.
아침부터 서둘러 라가주오이 산장을 올랐다가 짧게 트레킹을 한 후 다시 내려와서 Passo Giau에 잠깐 들렀다.
파쏘(Passo)는 영어로 Pass. 길이란 의미다.
말 그대로 그냥 지나가는 길에 잠깐 차를 멈추고 감상하는 곳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트레치메나 라가주오이처럼 작은 배낭을 들춰 메고 가야 하는 곳이 아니라 그냥 길에서 돌로미티의 기암괴석들을 눈으로 즐기면 된다.
파쏘 지우(Giau)에는 작은 산장이 있어 트레킹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줄 작은 가게가 있다.
나도 여기서 간단히 요깃거리를 먹었다.
배고픔은 무엇이든 맛나게 만드는 신통방통한 재주를 지녔나 보다.
무엇을 먹었는지 기록에 남기지는 않았지만 그냥 맛이 있었던 기억이 있다.
저 멀리 돌로미티 산군이 보인다. 이름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돌로미티의 돌이 마치 한국어인양 돌들이 사진 한 장에 담을 수 없을 만큼 길에 둘러 있다.
말 그대로 병풍이다.
파쏘 지우 산장 가게에 주차하고는 무언가를 먹기 전에 사람들을 따라 바위산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 올랐다.
멀리 있는 바위 산으로 무언가에 홀려 빨려 들어가는 느낌.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보면 얼음성 같은 곳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느낌이기도 하다.
그 길을 저 멀리 바위산에서 비로소 멈춘다.
누군가가 버섯 모양으로 나무를 깎고 빨간 버섯머리를 만들어 뒀다.
여기가 스머프 마을 어딘가이고 파파스머프, 똘똘이 스머프, 스머페트가 막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다.
그 길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걷는다. 돌로미티가 주는 매력은 걸어 다니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로미티를 느끼고 감상하라는 자연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파쏘 정도라 건 지 얼마 되지 않아 바위산에 다다랐다.
바위에 난 무늬로부터 돌산이 얼마나 오랜 세월에 걸쳐 만들어졌고 그 바위세(?)가 얼마나 험준한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바위산 근처에 가면 돌덩이들이 주변에 널려있다.
마치 아이슬란드 요쿨 살론에 가면 빙하가 호수와 만나 빙하 덩어리들이 수면에 떠다니는 모습이 여기 돌로미티 바위산과 땅이 만나는 곳에서 재현되는 것 같다.
그 바위산 한 곳에 올라 멀리 내다본다.
호연지기가 저절로 길러질 듯한 풍경이다. 그 자연의 대단함에 다시금 놀란다. 이것이 자연이다.
파쏘 지우의 바위산.
걸어서 접근할 수 있는 아주 가까운 산
그 산을 내려오며 무언가 아쉬운 듯, 그래도 좀 더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 그리고 한 번 더 카메라에 내 눈에 내 마음에 담고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만큼 감흥과 여운을 주는 곳이리라.
점심으로 허기를 채운 다음 배부른 후의 여유로움으로 주변을 조금 걸어본다.
파노라마 모드여야 다 담을 수 있는 돌산 파노라마.
멋지다란 표현 밖에. 이럴 땐 풍부한 표현으로 이 모습을 설명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래 세 컷이 각각 왼쪽, 가운데, 오른쪽 돌산들을 보여준다.
왜 파노라마 모드로 찍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사진을 다시 보니 파노라마 사진 대신 동영상을 그렇게 찍었었나 보다.
그 병풍 아래에 클래식 폭스바겐 미니 버스를 누군가가 갖다 놓았다.
그 풍경과 너무 잘 어울려 사진을 남겼다.
누군가가 광고 같은 것을 찍으려고 소품처럼 둔 것인가 싶다. 그러나 나의 카메라 실력과 장비의 한계로 광고 사진 같은 사진은 절대 아님을 나도 안다.
가을 하늘과 갈색 톤의 풀들이 만들어 내는 전형적인 가을의 풍경.
충분히 익어 고개 숙인 벼들로 가득 찬 황금 들판과 비슷한 느낌이다. 무언가 꽉 차고 풍요로운 느낌도 있다.
파쏘 지우를 떠나 서쪽 돌로미티로 넘어가기 위해 다시 코르티나 담페초 방향으로 내려오다가 하늘과 바위가 너무 아름답고 또 뒤로하기 아쉬워 차를 잠깐 멈추고 또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그렇게 아주 짧디 짧은 여행 포인트 하나가 또 나의 구글 맵에 기록되면서 그 사진들로 난 지금 그때를 추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