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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실전테스트 훈련 6

공식 대중 연설(나의 변화, 그리고 미래로의 다짐)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의 나는 오직 성격 변화에만 주목했다. 변하지 않으면 놀림을 당하거나 약육강식의 희생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훈련은 내가 30, 40대가 되었을 때, 효과가 두세 배 이상 나타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랬기에 오직 변화를 위해서 아침에 눈뜨고 밤에 잠을 자고, 학교를 가고, 일상생활이라는 것을 했다.


  ‘손톱이 빠져도, 발톱이 떨어져도, 목청이 찢어져도 그 고통을 이겨 내야만 산다. 끊임없는 노력과 적극적 사고방식으로 자신을 무장하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꼭 승리해야 한다.’라는 화술학원 선배의 편지 내용을 잊지 않고 항상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노력하자. 그리고 도전하자! 훗날 후회가 없도록 지금 이 순간 목숨을 바쳐 훈련하고 나를 강하게 다듬자. 뒤돌아서면 나는 죽는다. 피하지 말자. 부딪치자. 반드시 강해질 그날이 올 것이다.’

나는 은행원이 되는 게 장래희망이었다. 하지만 성격 변화에 주목하느라 성적을 관리하지 못해 은행에는 취업이 불가능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생각이 달라졌다. 지금 내가 주목하고 열심히 하고 있는 일! 그 일을 내 직업으로 만들자! 나처럼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달해 주는 ‘심리코칭컨설턴트 전문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자 반 친구들은 취업 준비를 위해 관련 자격증이나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바빴다. 나 역시 미래의 꿈을 위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상필이가 나에게 다가와 공지 게시판에 붙은 공고를 봤냐고 물었다. 바로 웅변대회에 관한 내용이었다. 


  “남호야, 너의 이 경험은 분명히 훗날 네 인생에서 아주 큰 힘이 되어줄 거야.”

전교회장 선거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웅변대회에서 키워보라며, 너의 자신감과 대중 스피치 훈련 경험이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용기를 북돋아 줬다.     

  그길로 나는 웅변대회 출전을 결심하고 신청서를 제출했다. 그 순간부터는 주제인 '자연보호 선포'에 대한 원고 작성에 몰두했다. 도서관에 가서 모든 관련 도서를 대출해 참고 자료로 활용하며, 정성들여 한 자 한 자를 썼다. 그러나 부족함이 느껴져 도움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학년 때의 국어 선생님을 찾아가 원고 교정을 부탁했다. 사흘 뒤,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원고를 다시 수정하여 재교정을 부탁했다. 처음에는 귀찮은 듯한 표정이었지만, 선생님이 나의 노력에 감동받아 한 번 더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틀 뒤에 받은 원고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래서 뻔뻔함을 내세우고 마지막 교정을 부탁했다.


  기다리는 동안 참을 수 없어,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을 찾아가 동일한 원고를 제출하며 교정을 부탁했다. 결과적으로, 3학년 때 국어 선생님에게 3번, 2학년 때 국어 선생님에게 3번, 총 6번의 원고 교정을 받았다. 그리고 웅변대회 총괄 담당자인 법률 선생님에게 마지막으로 검토를 부탁하여, 최종적으로 7번의 교정을 받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의 끈기와 노력이 결실을 맺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 후에는 원고를 암기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당시 웅변에 대한 지식과 기본기가 전혀 없었다. 사실 현재도 웅변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가끔 어떤 사람이 “웅변과 스피치가 같은 거 아닌가요?”라고 묻기도 하는데, 사실 그것은 다르다. 요즘에는 웅변식 스피치보다는 자연스러운 대화식 스피치를 더 선호한다.


  어느 날 쉬는 시간, 웅변대회에 대한 여러 가지 안내를 듣기 위해 교무실을 찾아갔다. 그때 3학년 때 국어 선생님과 맞닥뜨리게 됐다. 선생님은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2학년 때의 국어 선생님에게도 원고 검토를 부탁드렸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나는 잘하고 싶은 마음에 욕심을 냈다면서 죄송하다고 진심을 담아 사과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께서는 이내 화난 표정을 풀고는 열심히 해보라면서 응원해 주셨다.

나는 매일 새벽 4~5시에 기상한 후 집 앞에 있는 학교와 산에 가서 작성한 원고를 암기했다. 당시에는 웅변식 어조를 몰라 강연식 어조(대화체)로 훈련했다. 훗날 대중 강연가가 되어 강사 시장에 입문할 때, 기업체와 각종 단체에서는 강연식 어조, 즉 대화체 어조를 선호해서 나는 많은 도움을 받았다.


  웅변식 어조는 특수 언어이다. 그러므로 말하는 것에 습관이 배이면 대화체로 개선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같이 소통을 중요시 여기는 21세기에는 웅변식 강연보다는 대화체 같은 강연을 더욱 선호하고 있다. 외국의 경우 스티브잡스나 버락 오바마, 또는 한국의 김창옥 강사, 김미경 강사 등등 모두 대화체 어조 강연을 사용하고 있다.


  나는 학교에서도 하루 종일 원고를 암기하는 데 시간을 보냈고, 친한 친구들에게 리허설 모니터링을 받았다. 주말에는 남포동 극장가나 용두산 공원에 가서, 이전에 길거리 스피치를 했던 경험을 토대로 ‘자연보호 선포’에 관한 내용으로 훈련했다.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부산의 유나 백화점 부근에서 장사를 하는 어른들이 나를 보며 말했다. 그동안 나에게 “야, 집에 가서 공부나 해라. 야, 이리 와서 어묵 먹고 가라. 학생 내가 할 말이 있는데….”이라고 말했던 사람들이, 자연보호 선포의 내용을 듣고는 “니 요즘 연극하나? 내용이 다른데? 야, 너 훈련 방식 바꾸었니?” 하며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모른 척하며 내 능력을 테스트하고자, 또는 한(恨)을 풀고자 훈련에 몰입했다.     


  드디어 대회 당일, 나는 사촌 형님이 빌려준 흰 구두와 흰 양복을 입고 지하철을 탔다. 내 친구들과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들 몇 명이 나를 따라 웅변대회장까지 함께했다. 나는 습관대로 지하철에서 훈련을 했다. 사람들은 어려 보이는데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흰 양복과 흰 구두를 신은 나의 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부산 시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남상고 3학년 이남호라고 합니다. 저는 오늘 부산시장기배 웅변대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웅변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죠. 하지만 노력과 변화를 통해 여러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극심한 소심증과 소극적인 태도를 변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성격은 정말로 변화하기 어려운 것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4년 동안의 힘든 훈련 덕분에 거의 50% 이상 변화한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나머지를 뿌리째로 뽑기 위해 이번 웅변대회에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기 계신 분 중에 제가 지하철에서 스피치 훈련을 한 모습을 보신 분이 있을까요? 제 얘기를 기억해 주시는 분이 계신가요? 오늘은 정말 특별한 날이에요. 대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인생에서 이렇게 큰 대회에 참가한 적은 처음이에요. 여러분, 제게 용기의 힘찬 박수를 보내주세요! 그러면 대회장에서 힘이 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와~ 멋지다. 최고예요.”

“꼭 입상하실 거예요! 힘내세요!”


  사람들은 나에게 환호의 박수를 쳐주었고, 친구들은 부끄러워서 다른 칸으로 넘어가 숨어 있었다.     

드디어 대회 현장인 부산 양정 청소년수련관에 도착해서 순서를 기다렸다. 결정의 순간, 나는 두 달간의 훈련으로 얻은 에너지를 뿜어내며 웅변했다. 연단에서 내려올 때 어느 한 심사위원이 나에게 어느 단체에서 왔냐고 물었다. 소속된 학원 없이 혼자서 학교 대표로 왔다고 하니, 연단을 잡는 실수만 빼면 완벽한 웅변이었다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뛸 듯히 기뻤다. 드디어 시상식 발표의 시간이 다가왔다.


  “다음은 장려상 3명입니다. 먼저, 부산 경남상업고등학교 3학년 이남호!”

나는 내 생애 그렇게 바라고 원했던 일을 드디어 성취할 수 있었다. 중학생부터 이 소심한 성격으로 매사에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었다. 하지만 조금씩 발전하는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진정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에 힘들어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웅변대회에 출전한 이후, 나는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 대단히 커졌다. 입상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나도 남들처럼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는 것에 크나큰 기쁨을 느꼈다. 또한 무슨 일이든 도전하면 반드시 하늘의 기회가 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음날, 등교하여 담임선생님께 웅변대회의 상장을 보여 드리자, 바로 전체 조례시간을 갖게 되었다. 교장선생님은 전교생 앞에서 내 이름을 부르고 상장을 전달해 주었다. 아이들은 나의 모습에 열광했다. 나는 연단으로 올라가 교장 선생님에게 상장을 받았다. 인사 후 뒤돌아서서 약 2000여 명의 학생들을 앞에 두고 다짐했다.


  ‘비록 지금은 내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지만… 나 이남호를 잘 기억하라. 20년 후에는 스피치, 리더십 전문 강사가 되어 반드시 이곳 모교

에 다시 와서 마이크를 잡고 멋진 강연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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