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산부 모임(용기와 용서의 고백)
1994년 2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전산부 서클 선배들, 동기들과의 부족한 추억으로 인해 한쪽 마음이 불편했다. 전산부에서는 여름마다 다 함께 여행을 다녔다. 동기들은 1학년과 2학년 때 두 번의 여행을 다녀왔지만, 나는 그 추억이 없다. 여름 방학 때는 항상 시내 중심지에서 스피치 훈련을 하거나 신문 배달로 인해 여행의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다. 그래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들과의 공동체 생활의 추억은 없지만, 청소년 시절의 열정, 자신감, 대중 강연 능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전산부 서클 활동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이자 재산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많은 아픔과 좌절에 부딪힐 때마다 독서를 통해 배운 자기 암시로 이를 극복했다. 탈퇴하고 싶은 마음도 그렇게 다잡을 수 있었다. 만약 자기 암시를 배우지 못했다면, 쉽게 무너지고 전산부 역시 이미 탈퇴했을 것이다. 그럼 내 고등학생 시절은 더욱 어두웠을 거다. 끝까지 인내하고 버텨낸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이런 나를 이해하고 받아준 전산부 서클 동기들과 선배들에게 감사드린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7살이던 어느 날, 내 생애 가장 중요한 순간이 왔다. 선배들과 동기들, 후배들이 한자리에 모인 아주 소중한 시간이었다. 소통의 부재로 많이 힘들어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며, 20대가 되어서는 그 누구와도 소통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쉽지 않았지만 용기 내고 노력했다. 그리고 오늘, 10대 때의 내 성격으로 인해 피해 아닌 피해를 본 이들에게 나의 본심을 전달하고 싶었다.
주변 사람들은 각자의 이야기에 몰두하고 있었다. 나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세 번째 잔을 비우고는 테이블을 탁! 치고 일어서며 크게 외쳤다.
“여러분! 저에게 주목해 주십시오!”
약 20여 명의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약간 긴장되기도 했지만 그동안의 훈련을 바탕으로 큰 목소리로 내 마음을 외쳤다.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제게 주목해 주십시오! 여러분께 꼭 할 말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된 일입니다! 결론부터 말하겠습니다! 고등학생 때 공동체 생활을 함께하지 못해서 선배님들과 동기들, 그리고 후배님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
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는 전산부를 무척 사랑하고 아낍니다!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전산부에 지원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저에겐 고질병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불안증’입니다! 이것은 정말 고치기 힘든 마음의 병입니다! 저는 이것을 고치기 위해서 중학생 2학년부터 노력해 왔습니다!”
순간, 사람들은 숨 쉬는 것조차 잊은 듯 주위가 아주 조용해졌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들은 오로지 나에게만 주목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전산부에 가입한 후엔 상태가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재발이 되었습니다! 그 시기가 창호가 떠났을 때입니다! 물론, 지금은 완치하여 삶에 대해서 큰 문제가 없지만, 당시의 제 모습에 대해 오해를 풀고 용서를 받기 위해 이렇게 외칩니다!”
나는 아랫배에 힘을 주고 더욱 큰 목소리로 외쳤다. 모든 이들에게 내 진심이 닿길 원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10년을 기다렸습니다! 많이 늦었지만, 진심으로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다 지난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저는 꼭 제 진심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전산부라는 공동체를 무시하고 개인적으로 행동했던 점을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사회불안증이라는 제 문제가 해결되면 반드시 오해를 풀고 사과하고 싶었는데, 그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선배님과 동기들, 그리고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합니다. 용서하십시오!”
사람들은 매우 놀란 듯했다. 하지만 곧 나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저마다 위로를 건넸다. 그동안 너무 고생했다고… 이제는 괜찮다고… 너의 끊임없는 노력을 칭찬하고 응원한다고…. 그들의 따뜻한 말과 안식은 마치 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듯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인정되고 이해받음으로써 마음의 짐이 덜어지고, 감정은 긍정적으로 넘쳐흘렀다. 진심은 언제나 말로 표현해야 하며, 그 표현은 사람들에게 꼭 통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