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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타임머신 치유 1  

반창회 모임(소통과 용서)

   “기호 1번! 기호 1번! 기호 1번!”

   “기호 2번! 기호 2번! 기호 2번!”

   “기호 3번! 기호 3번! 기호 3번!”

회장 선거 일주일 전, 후보들은 한 표라도 더 받기 위해,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 각 교실부터 학교 구석까지 돌아다니며 자신의 이름과 기호를 외쳤다. 대통령 후보처럼 행동하며 그들의 사기와 열정은 대단했다.

드디어 선거 당일, 후보들은 공약을 내세우며 열심히 연설했다.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했다. 나를 지켜보던 친구 상필이가 말했다.


  “남호야, 네가 회장 선거에 출마했으면 인기가 대단했을 텐데. 쟤네들 연설하는 태도 좀 봐라. 혼잣말하는 것도 아니고. 볼수록 답답하네. 전교생이 네 스피치를 지켜봤어야 했는데… 정말 아쉽다.”

나는 그동안 성적 관리를 못한 것이 아쉽고 씁쓸했다. 나도 연단에 서서 마음껏 내 이름을 외치며 연설하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깝고 스스로에게 화도 났다. 상필이는 어두워지는 내 표정을 알아채고는 기죽지 말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내가 분명히 말하는데, 넌 대한민국 최고의 스피커가 될 거야. 내가 증명해. 이남호! 기죽지 마!”     

이 일을 계기로 우리는 더욱 가까워졌으며, 주말마다 서로의 집을 오가며 우리의 성격 변화에 대해, 그로 인해 영향을 받을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밤새우며 토론하고 설계했다. 상필이는 항상 나에게 새로운 자극을 선사하여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했다.


  어느 날, 상필이가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가서 반창회를 추진해 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당당하게 변화된 네 모습을 보여주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과연, 존재감 없던 내가 추진하는 동창회에 아이들이 나와줄까 궁금하기도 하고, 아무도 안 올까 봐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용기 내어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을 찾아갔고, 용건을 전달하였다. 나는 지금도 선생님과 30년간 연락을 하고 있다. 매년 스승의 날이 되면 선생님께 꼭 전화를 한다. 당신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다. 선생님은 나란 아이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실까? 선생님께 한 번쯤은 묻고 싶다.


  당시 선생님은 나를 매우 반겨주셨다. 친구들에게도 일일이 찾아가서 직접 만든 초청장을 전달했다. 친구들은 나의 변한 모습을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병관이라는 친구는 왜 이제야 연락을 했냐며 나를 나무라기까지 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초등학교 6학년 반창회를 추진하여 선생님과 동기들을 초청하는 데 성공했다.     


  소심증과 사회불안증은 초등학교 6학년 때가 시발점이었다. 그래서 반창회의 주요 목적은 나의 변화를 알리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면 마음의 부담과 한을 해소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시 아이들은 이남호가 반창회를 열었다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고, 나의 대한 많은 이야기가 돌았다. 꽤 불편한 마음이었지만, 내가 곧 능력을 보여줄 테니 기다려라 하는 마음으로 반창회를 끝까지 진행했다.


  “오늘 성인호 선생님을 모시고 반창회를 갖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참석해 주신 많은 친구들께 고맙습니다. 특히 성인호 선생님, 바쁘신 와중에도 6학년 1반을 빛내주시려고 참석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자! 성인호 선생님께 감사의 박수를 보내주세요!”


  짝! 짝! 짝! 내 발언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래서 더욱 용기를 내어 다음 발언을 이어 나갈 수 있었다. 선생님께, 그리고 아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과거의 이남호는 죽었습니다. 다시 말해, 과거의 이남호는 죽고, 새롭게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소심한 성격을 극복하기 위해 정말 혹독한 훈련과 노력을 했습니다. 아마, 알고 있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초등학교 때는 정말로 소심했어요. 말도 못하고, 눈치만 봤죠. 하지만 오늘 여러분 앞에서 반창회 대표로 행사를 개최한 것은 제가 변화했다는 증거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한 명씩 소감을 발표하겠습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얼굴 가득 환한 웃음을 지으며 큰 박수를 쳤다. 그러자 너무도 신기하게 가슴 한쪽에 꽉 막혀 있던 한(恨) 덩어리가 쑥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내 괴로움의 근본적인 원인은 초년 시절의 열등감이었던 것이다. 소통과 용서를 했더니, 마음의 한(恨)이 자연스레 치유되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병관이, 다섯 번째가 병용이, 여섯 번째가 담임선생님, 일곱 번째가 나의 모습 (1993, 당시 고2)

   

  이 깨달음을 토대로 고등학교 생활에 적용해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해답은 ‘소통’이었다. 나의 노력과 본심, 느낀 감정과 상태를 알리는 것이었다. 나는 손뼉을 치며 유레카를 외쳤다. 이토록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을 나는 그동안 깨닫지 못하고 고통받아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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