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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알 수 없는 이별 1

지양이가 먼저 지난 중학생 때 서면에서 훈련했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1990년, 2학년 1학기 때 최지양 이라는 친구가 호주에서 전학을 왔다. 영어 발음이 얼마나 좋은지 처음으로 현지인을 만난 느낌이었다. 산동네에서 자란 나는 신기하고 영어로 자기소개하는 모습이 멋져서 그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갔다. 그는 내가 자란 감천문화마을에서 자란 아이하곤 너무 달랐다. 무언가 세련되고 똑똑하고 딴 세계에서 온 것처럼 듬듬했다. 그리고 나랑 성향이 비슷해서 금방 말도 통하고 공통점도 많았다.     


어느 날 나는 그에게 성격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도 자신의 성격이 너무 소심하고 소극적이라서 마음에 안 든다고 말했다.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은 상대와 주파수가 맞으면 본능적으로 같은 기운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거의 끼리끼리 만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우린 서로 너무 잘 맞았기에 하루아침에 오랫동안 만난 친구처럼 금방 친해졌다.      


어느 날 나는 지양이에게 부산의 시내 중심가인 서면 지하상가 분수대에서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대중스피치 훈련를 하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보고 싶다고 말했다. 우리는 한 시간 반가량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서 서면 분수대에 도착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사람들이 앞에서 큰 소리로 말했다.



2024년 현재 서면 지하상가 분수대

      

“부산 시민 여러분!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삼성중학교 2학년 이남호입니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저는 성격이 소심하고 말도 못 하고 발표불안증이 심해서 말을 하면 얼굴이 벌겋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렇게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에게 힘을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지양이는 너무 놀라서 구석 어딘가에서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일대일 대화 훈련을 위해 대학생 어른들에게 다가가서 나의 성격 단점에 대해 먼저 말을 꺼냈다. 지양이는 너무 놀라 왜 이런 훈련을 왜 하냐고? 미쳤냐며 말렸지만 나는 이렇게 해야 성격이 바뀌고 운명이 바뀐다고 말했다. 그렇게 우린 밤늦게까지 서면에서 놀다가 감천문화마을로 되돌아갔다.      


어느 날 나는 지양이에게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면서 그를 학교 밑 오락실에 데리고 갔다.그리고 나는 테니스 줄 한 가닥을 가지고 와서 이것만 있으면 오락을 실컷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행위는 당시 1990년대 고등학교 형들이 많이 했다. 나는 지양이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한 번도 성공한 경험 없는 오락기 동전 입구에 테니스 줄을 넣다 뺐다 했다. 이것을 오락기 튕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에게 사장님이 오는지 망을 보라고 했다.      


나는 열심히 테스니 줄로 코인 입구에 넣고 넣다 뺐다 반복했다. 그런데 아무리 해도 코인이 올라가지 않았다. 나는 땀을 흘리며 열심히 하고 있는데 옆에서 어느 지능 낮은 노숙자 아저씨가 우리를 보며 말했다. 


“왜 잘 안되니?” 하는 것이다. 나는 순간 그가 노숙자가 아니라 오락실 사장이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의 생김새는 노숙자처럼 허름한 옷을 입었고 약간 모자른 사람처럼 눈동자가 풀렸다. 하지만 그의 말투는 매우 정상적이었다. 그는 대뜸 나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갑자기 나의 뺨을 때렸다. 그리고 친구 지양이도 똑같이 뺨을 맞고 우린 무릎을 꿇고 겁에 질려 그에게 손바닥이 닿도록 빌었다. 사장은 우리의 신상을 메모하고 내일 학교에 전화를 건다고 말했다. 당시 나의 어머니는 신발공장에 있었고 아버지는 집에서 병환으로 있었다. 지양이는 부유한 가정집 외동아들이다.      


우린 환경이 너무 달랐다. 그리고 사장은 30분 후 다시는 이런 행동을 하지 말라면서 보내주었다. 그 뒤로 다음날 학교에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사장은 너무나 흔한 일이기에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뒤로 지양이가 점점 말수가 적어지면서 나를 대하는 태도가 냉랭했다. 그러다가 점점 말도 안하고 나중에는 “엄마가 너랑 놀지 말래” 라는 말을 하면서 이별을 했다.     


지난 2020년 6월경 30년이 지난 어느 날, 중학교 모교 교장 선생님이 되신 수학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서울에서 최지양이가 독일대사관 직원이 되어 중학교 방문했다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말하길 지양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지양이는 당시 독일에서 자라다가 한국에 왔고, 영어 발음이 너무 좋아서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 그리고 지양이에게 교장 선생님은 질문했다.      

“중학생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친구가 누구니?”

“이남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친구와 가장 친했던 거 같아요.”

“그래? 남호, 나랑 지금 연락하고 있어? 전화번호 알려줄까?”

“네, 일단 남호에게 전화를 먼저 해보실 수 있을까요? 너무 오랫 동안 연락을 안 해서요”

“그래 내가 전화해 볼게”     


교장선생님은 바로 전화를 했다.

“남호야. 선생님이다.”

“네 교장 선생님!”

“너 혹시 최 지양이라고 아니?”

“네 알죠. 중학생 때 독일에서 왔던 친구고 저랑 친했던 친구에요”

“그래? 야, 지금 내 옆에 최지양 있어. 오늘 부산에 출장 와서 학교에 찾아 왔어”     


우린 30년 만에 재회했다. 사실 나는 지양이를 만나기 전에 약간 고민을 했다. 당시 있었던 이야기를 할지 아니면 그대로 넘어가야 할지 혼자서 끙끙 앓았다. 지양이도 그러한 것을 알고있는지 기다리는 듯 했다. 그리고 나는 지양이 에게 당시 상황을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양이가 먼저 지난 중학생 때 서면에서 훈련했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그는 내가 몰랐던 기억까지 끄집어내면서 회상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갑자기 돌변한 행동에 대해서 이해한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보통 아이에 비해서 비정상적인 행동을 했기에 지양이의 어머니는 나와 만나는 것을 꺼려했던 것이다. 어떤 이유든간에 당시 상황을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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