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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실전 훈련 테스트4

고등학교 입학, 전산부 서클 가입(끈질긴 열정)

그날은 선배들이 후배들의 교실로 찾아와서 전산부 서클을 홍보하는 날이었다. 전산부 서클은, 학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아리 중 하나였다. 전산 학습을 통해 진로에 도움을 주고, 많은 선후배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사회성도 키울 수 있어 가입 경쟁률이 높기로 유명했다. 단, 가입 조건으로 컴퓨터 사용 능력이 필요했다.


선배들이 홍보하는 내내 반 아이들은 웅성거리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너도나도 가입하고 싶은 열기가 높아졌다. 그들은 전산부 서클이 주는 기회와 도전을 갈망했다. 반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본 나도 전산부 서클에 가입해야겠다고 결정했다. 많은 이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꼭 경험해 보고 싶었다.     

며칠 후, 전산부 서클의 면접 날짜가 다가왔다. 약 20여 명의 아이들이 전산실 복도에서 면접을 대기하고 있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전산실 문을 열고 씩씩하게 들어가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이남호라고 합니다!”


컴퓨터에 대해 전혀 모르니 나의 적극적이고 당당한 모습을 어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역시나 첫 질문은 컴퓨터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는 ‘DOS’라는 단어를 그날 처음 들어봤을 정도로 컴맹이었다. 하지만 주눅들지 않고 이 서클에 가입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자신 있게 말했다.


“뭐? DOS를 몰라? D.O.S!”

“저는 비록 DOS는 모르지만, 이 서클에 꼭 가입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공동체의 중요성을 깨닫고, 단체 생활을 잘 해내고 싶어서입니다!”

선배들은 일순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서로를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눈빛을 교환했다. 그러곤 오후에 합격 결과가 나오니 교실로 돌아가 있으라고 했다. 다시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나오는데, 뒤쪽에서 선배들의 대화가 들렸다.


“그놈 참 뺀질뺀질하게 생겼다. 마음가짐은 맘에 드네.”

선배들의 표정을 보지 못해서 어떤 의도로 말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나는 왜인지 ‘뺀질’이란 단어에서 합격임을 확신했다. 너무 기분이 좋고 설레었다.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과거 중학생 때의 모습으로 절대 돌아가지 않으리라!


그날 오후, 합격 명단이 공개되었고 나는 가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전산부 서클에 당당히 합격했다. 명단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고는 마음속으로 ‘부처님! 하나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끊임없이 외쳤다. 비록 나는 컴퓨터 초보였지만, 전산부 서클을 향한 열정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나의 열정이 끈질기니,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결과로 증명해 냈다.     

전산부 서클의 신입생 환영회가 열렸다. 졸업한 대선배들까지 초청하여 신입생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날이었다. 2학년 선배들은 우리에게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장기자랑을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신입생들은 턱까지 떨려오는 긴장감에 매우 자신 없어 했다.


“자! 전산부 12기! 누가 먼저 나와서 장기자랑을 해볼래? 기대가 크다.”

지난번 KBS 방송국에 견학 갔다가 바로 나서지 못해서 후회했던 날이 떠올랐다. 그러자 지금이 그때를 만회할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신 있게 손을 번쩍 들고 일어섰다.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여전히 떨리고 두려웠지만 이번 기회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래! 이남호! 네가 먼저 해봐라!”

1학년 동기들은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가 이내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바뀌었다. 이들은 예전의 나를 모른다. 내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성격으로 지내왔는지,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혹독한 훈련을 해왔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모든 이들에게 더욱 강렬한 첫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당당하고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또한 정말 그렇게 살고 싶었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대여! 이 아름다운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그대! 오직 하나뿐인 그대!”

“와아아아아-!!”

짝짝짝!! 짝짝짝짝!!

환호성과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동기들을 비롯하여 선배들은 내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무척 만족하는 듯했다. 이후로도 그들은 나에게 너무 멋있고 최고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날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이다. 그날 밤 나는 잠자리에 들어서도 귓가에 울리는 환호성과 찬사의 목소리에 여운이 남아 설렘으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와~ 멋지네. 대단하다. 전산부 분위기 메이커다!!”    


<전산부 서클 신입생 환영회 때 노래를 부르고 있는 나의 모습>



전산부 서클 가입은 내 인생에서 첫 번째 변화였고, 내가 변화하기 위해 애썼던 노력의 결실이었다.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하나씩 적극적으로 노력하면,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비록 전산에 대한 지식은 동기들보다 부족했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 이유는 신입생 환영회 때 동기들과 선배들이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지식을 공유하며 이해시키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이런 그들의 모습은 고등학교 시절 내내 내게 큰 감동을 주었다.    



<부산 경남상고 전산부 서클 12기 동기들과 함께 17세 때 나의 모습>


고등학교 생활과 전산부 서클 활동에 조금씩 익숙해지던 어느 날, 3학년 선배가 1학년들을 모아두고 말했다.


“이번 주 토요일에 Y여상과 미팅이 있는데 1학년 중 나가고 싶은 사람 있어?”

갑작스러운 질문에 모두들 얼떨떨한 표정만 지을 뿐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였다.

“아무도 없니? 이남호? 너 나가볼래? 신입생 환영회 때 잘 놀던데.”

“네? 저요?”

내 이름이 불려서 너무 깜짝 놀랐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머뭇거리던 차에 성원이, 봉길이, 경원이가 손을 들었다.


“그래. 손 든 너희와 남호는 이번 주 토요일 저녁 6시에 남포동 부산극장 뒤 소주, 호프 골목방 지하에 있는 ○○소주방으로 와라.”

나는 난생처음으로 계획에 없는 미팅이라는 걸 나가게 되었다. 미팅에서 여학생을 만난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나를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게 됐다는 점에서 매우 고마운 미팅이었다. 나는 나를 향한 기대감이 매우 컸다. 본능적으로 과거의 약점을 감추고 싶었다. 다시 태어난 지금의 나로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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