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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Jul 11. 2024

DAY11. 행복을 택했더니 외로움이 딸려왔다.

6월 6일 목 : 현충일, 광란의 막걸리바 현장





오전_휴식


내 점심밥이 된 킵해놓은 조식과 캠핑장에서 먹다 남은 군고구마



오늘은 공휴일이라 단체 식사와 활동이 없는 날이었다. 어제 허술하게 먹은 탓인지, 잠을 잘 못 잔 탓인지, 오늘 아침부터 힘이 없었다. 어젯밤부터 시작된 감기기운도 오늘 아침 더 심해져 있었다. 나는 오늘 하루를 이렇게 보내기는 싫어서 룸메가 준 약을 먹고 조금 누워 있었다. 몸은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지만 그렇게 가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일단, 뭐라도 하는 게 차라리 나을 거 같았다. 



우리 둘 다 잘 먹는 편이다. 그래서 우린 도시락통을 들고 다니면서 남은 음식들을 싸 오곤 했다. 그러다 보니  냉장고에 먹어야 할 음식이 한가득이라 중간에 한 번씩 냉장고털이를 해야 했다. 나는 입맛도 없고, 할 일도 많아서 냉장고에 꽁쳐놓은 음식으로 점심을 때웠다. 룸메는 꼬박꼬박 밥을 챙겨 먹는 친구라 그릭요거트집을 한 번 가보고, 그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할 일을 하다 오겠다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인솔자님이 전화를 걸어 돌발 미션으로 룸메이트를 바꿔도 괜찮겠냐고 물으셨다. 안 괜찮다고 하기에도 뭐 하니 그냥 상관없다고 말씀드렸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대답의 선택지는 그거밖에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뭐 나와 룸메는 싱숭생숭한 마음으로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오후_막걸리바


한량가 (막걸리바)



오후에는 인솔자님과 대표님 포함, 총 8명이 '오천동 한량가'라는 막걸리바에 모이기로 했다. 숙소에 있는 사람들은 다 모인 것이었다. 현충일인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아무 일정도 없었기 때문에 숙소에 없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원언니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고, 다혜언니도 남편과 하동에 놀러 갔고, 민언니는 새로운 인연을 찾겠다며 부산에 놀러 갔다. 나와 룸메친구는 모이는 시간을 잘못 알아서 조금 일찍 나갔는데 길을 조금 헤맨 탓에 거의 딱 맞게 도착했다. 자전거로 15분 남짓한 거리를 자전거로 30분, 그리고 내려서 15분 정도 걸어서 도착했으니 말이다. 어이없었지만 매번 늦은 우리가 이번엔 맨 처음으로 도착해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으니, 이 기분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원래라면 이 자리에서 방 바꾸는 것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으나 포기했다. 그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을 때, 인솔자님이 대화의 온점을 찍으려는 확고한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모두 다 모인 자리도 아니니 그냥 맛있는 밥과 시원한 술,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만 나누었다. 나는 가끔 살기 위해 음식을 먹을 때가 있다. 이날이 그런 날이었다. 필사적으로 고기와 음식을 먹었다. 몸이 너무 안 좋아서 입맛은 없었지만 그래서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걸리바의 음식은 훌륭했고, 우리가 선택한 막걸리들도 다 맛있었다. 그러나 순천으로 여행 간 사람들보단 순천사람들이 가기 좋은 곳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순천으로 여행 가면, 그 지역 특유의 분위기를 더 느끼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이 날 정말 다양한 막걸리를 맛볼 수 있어 좋았다. 세철오빠가 고른 독립군 막걸리는 도수가 너무 세서 먹지 못해 아쉬웠다. 하지만 내가 그냥 고른 청포도 막걸리는 의외로 인기가 많아서 뿌듯했다. 한참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자전거로 광양인지 어딘지를 다녀온 세진오빠도 도착했다. 오자마자 자신이 없을 때만 재밌는 일이 생긴다며 투정을 조금 부렸다. (투정을 안 부렸을 수도 있다. 확실한 기억은 아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솔자님이 또 나보고 세진오빠와 세철오빠 쪽으로 자리를 이동하라고 재촉해서 그렇게 했다. 순천에서 짜증 났던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였다. 



2시간은 우리의 즐거움을 모두 담기엔 부족했다. 그래서 우린 2차를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소화도 시키고, 추억도 남길 겸 스티커 사진도 찍었다. 이날 충동적으로 사진을 찍은 건 정말 잘한 일 같았다. 여기 없는 다혜언니와 민언니, 지원언니의 빈자리가 아쉬웠을 정도로. 우리의 2차는 할맥이었다. 말로만 듣던 곳을 와본 건 처음이라 신기했다. 여기 안주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고구마구이랑 먹태구이, 롱치즈돈가스를 시켜 먹었는데 소문대로 정말 맛있었다. 특히, 먹태구이가 인기가 좋았다. 인솔자님과 농구를 하고 분수대도 뛰고 온 세철오빠는 젖었던 옷이 식으면서 체온이 내려간 터라 매우 추워하며 따듯한 물을 연속으로 마셨다. 보고만 있기에 좀 그래서 내 겉옷을 벗어줬다. 그리고 먹태도 좋아하길래 먹태를 집어다가 그쪽으로 놔뒀다. 꼭 내 두 번째 마니또라서 잘해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마니또 역할을 잘하고 있는 거 같아 내심 뿌듯했다. 



맥주를 마시면서 서로 이야기를 했는데 캠핑장 때의 대화보다 더 좋았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보단 각자가 선택한 삶의 방식과 앞으로 선택할 길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대표님은 곧 직접 개조한 캠핑카를 타고 세계여행을 갈 계획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지만 주변에 뭉쳐 있는 게 아니라 흩어져 있어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라고도 말하셨다. 모두 이렇게 사는 본인을 부러워하면서도 직접 할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그 말을 듣고선 그간 봐온 대표님의 모습을 되짚어보았다. 그러면서 대표님은 본인의 선택과 삶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한 분이시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소수가 되는 외로움을 견딜 용기가 있는 분이시구나,라고 느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계속 곱씹어 생각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교집합이 보였다. 자신만의 행복을 찾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삶의 기로에 놓여 있고, 그 기로의 선택에서 어쩌면 보편적이지 않은 삶의 방식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 선택을 하기 위해선, 집을 사지 않아도, 가정을 꾸리지 않아도, 고정적인 직장을 가지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인 것 같다. 보편적인 길이 아니라도 행복할 수 있는 길이 존재한다는 걸 아는 게 첫걸음인 거 같다. 아무래도 그런 삶은 소수이니까 행복을 위해 기꺼이 소수의 외로움을 견딜 용기도 필요할 거고. 무엇보다 끊임없이 자신을 한심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스스로를 지키는 단단한 마음이 필요할 거다. 



사람마다 성격과 취향이 다르기에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도 조금씩 다르기 마련이다. 누군가는 번듯한 직장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생활을 좋아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공무원의 절차적 일처리가 몸에 맞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항상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으며 사는 걸 즐길 수도 있다. 그러니 또 다른 누군가는 즉흥적이고 자유롭게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사는 걸 좋아할 수도 있는 거다. 그건 저마다 밥을 먹는 방식이 다른 것처럼 세상을 운용하는 방식이 다른 것일 뿐, 맞고 틀린 문제가 아닌 거 같다. 이 세상에 하찮은 인생은 없고, 무시받아야 할 결정들도 없다. 누군가의 삶을 한심하게 보는 사람이야 말로, 인생의 모든 선택들을 모두 맞고 틀림의 문제로 치환시켜 버리는 이들이야말로, 정말 제대로 자신이 삶을 사랑하고 있는 게 맞는지 되돌아봐야 하는 건 아닐까?



나는 이곳에 모인 이들에게서 용기를 얻었다. 소수의 삶을 선택하더라도 내 삶을 잘 운용해 나갈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얻었고, 나는 다른 이들의 시선에서 나 자신의 믿음을 지켜낼 것이란 확신도 얻었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앞날을 좌지우지할 선택의 기로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건 다수가 내게 준 무언의 압력 때문이 아니라 나 스스로의 마음에 의한 것일 거다. 그리고 그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난 그로 인한 모든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고, 내 삶을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할 것이다. 나는 아마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내 행복을 위해 기꺼이 소수의 삶을 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오늘 하루도 많은 생각들과 함께 끝이 날... 뻔했다. 끝이 났어야 했다. 아쉬움을 살짝 남기고 헤어졌어야 했는데. 우린 숙소가 아니라 인근 노래방으로 갔다. 



내가 건네준 옷을 입고 노래방으로 걸어가는 세철오빠의 뒷모습



정말 노래방에 들어가자마자 '나 왜 여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잊고 있던 하루의 피로가 몰려왔다. 숙소로 가고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불러야만 했다. 모두 비슷한 생각이었던 거 같다. 흔들리는 동공으로, 서로 노래 부르길 권유하며 마이크를 건네는 모습에서 느껴졌다. 폭탄 돌리기 게임인 줄 알았다. 첫 번째 순서는 역시나 지원언니였다. 총대를 잘 메는 언니다. 두 번째 순서는 방심하고 있던 내가 되었다. 얼결에 장기하와 얼굴들의 'ㅋ'을 열창했다. 부를 수 있는 곡이 이것 말곤 딱히 없었다. 그 이후론 열심히 놀려고 노력하며 남은 한 시간을 채웠던 거 같다. 이렇게 조금 벅찬 한 시간마저 다 가고 난 후, 그제야 숙소로 걸어갔다. 새벽 1시가 넘은 시간, 텅 빈 길 위에 우리만 있었다. 마치 우리가 도로를 전세 낸 거 같았다. 그때의 새벽 공기, 그 차가운 기운이 아직도 내 볼에 남아있는 거 같다. 그 길을 걸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여한 없이, 원 없이 놀아보는 것도 나름 괜찮은 거 같다고. 그때 마침 혜진언니가 대학생 때로 돌아간 거 같다고 말했다. 나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아무 걱정 없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게 즐거워 자리를 뜨지 못했던, 그저 놀 생각뿐이었던 철없던 내 스무 살의 어느 날이 오늘의 모습과 닮았었다고. 그렇게 수많은 생각과 감정이 스쳐 지나갔던 오늘 하루도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새벽 3시 30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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