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물 Jul 11. 2024

DAY12. 시대는 사람을 놔두고 떠난다.

6월 7일 금 : 병입과 동태머리 전 폭탄 돌리기





오전_러닝&자전거


조례호수공원 가는 길



어제 새벽, 술 마시고 집에 빨리 도착하고 싶어서 세철오빠와 함께 숙소까지 뛰어 왔다. 그런데 그게 너무 감질나게 좋아서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동천 러닝을 뛰었다. 어제 돼지고기를 먹은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신기하게도 돼지고기 300g을 먹으면 그다음 날 아침부터 호랑이 기운이 샘솟는다. 여하튼 그런 이유로 힘이 조금 남기도 했고, 곧 놀러 올 친구를 데려갈 곳을 사전답사해야 하기도 해서 러닝이 끝나고 자전거도 탔다. 자전거를 탈 루트를 정하고 나서 숙소로 돌아오니 어느덧 조식 먹을 시간이었다. 나를 기다려 준 룸메에겐 미안하지만 어제 술을 먹은 탓에 운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음식이 들어가지 않아 먹지 않았다. 휴식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내 위를 차마 외면할 순 없었다. 나는 내 장기들의 말소리도 잘 들어주는 사람이다. 이렇게 정신없는 아침이 지나갔다.





오후_병입&자전거


밍기스와 홉스



오후엔 다 같이 '정락회관'에서 영양솥밥과 육회비빔밥을 먹었다. 나는 룸메친구와 나누어 먹기 위해 전략적으로 육회비빔밥을 선택했다. 그런 나와 지원언니를 제외하곤 모두 영양솥밥을 택했다. 처음 먹어보는 육회비빔밥은 예상대로 별로였다. 나는 원래 비빔밥을 좋아하지 않으니 육회비빔밥이 맘에 들리 없었다, 새로운 도전을 해봤다는 거에 의의를 가지고선 룸메친구의 영양솥밥을 더 많이 먹었다. 영양솥밥이 더 내 취향일 거라는 예상이 적중했다. 그렇게 도전적인 식사를 마치고, 첫 주차에 만들어서 숙성시켜 놓은 맥주들을 병에 담기 위해 '드림브루'로 갔다. 40병의 맥주병을 소독하고, 병 안에 설탕을 담고, 맥주를 따르고, 탄산을 빼고, 뚜껑을 닫고, 설거지를 하는 지루한 작업이었지만 7명이 나눠하니 금방 끝났다. 뿌듯한 마음을 한가득 안고선 각자 할 일을 하기 위해 헤어졌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글을 쓰면서 저녁밥 먹을 때를 기다렸다. 오늘은 아랫장 장 서는 날이어서 룸메가 아침 일찍부터 맛있는 음식을 한가득 사 왔기 때문이다. 나는 아랫장을 갔다가 먼지 알레르기인지 뭔지 팔에 뭐가 올라와서 같이 가지 못했다. 물론, 그 근처까지 가서 룸메친구를 기다렸다가 짐을 같이 나눠 들고 올 수도 있었지만 아침부터 너무 돌아다닌 탓에 피곤해서 그냥 숙소에 있었다. 



저녁 먹기 전에 순천 로컬 베이커리 맛집이라는 '조훈모 베이커리 죽도봉점'에서 배빵과 슈크림빵을 사 오기 위해 또다시 온누리 자전거를 대여했다. 동천을 따라가는 길에 어떤 아저씨가 나를 보고, "꼬마가 자전거를 타고 가네..."라고 말씀하셨다. 26살에 꼬마라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라서 내심 웃겼다. 빵을 사고 오는 길엔 조금 걷고 싶어서 아랫장 근처 반납소에 자전거를 반납하고, 아랫장을 지나쳐 걸어갔다. 얼마 안 가 어떤 할머니께서 지나가시며 "아유 이쁘다. 허리도 가늘고"라고 말씀하셨다. 나 허리 안 가는데. 여하튼, 이어폰을 안 끼고 걸으니 이런 말들도 듣는구나,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앉아계시던 할머니께서 "배꼽 좀 가리고 다녀!"라고 앙칼지게 말씀하셨다.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기분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바지를 살짝 올리며 걷다가 자전거 바구니에 빵을 놔두고 온 걸 깨닫고 황급히 되돌아갔다. 다행히 빵 봉투는 있었으나 그 아랫장길을 다시 지나칠 용기가 없어 그냥 자전거를 다시 대여해서 숙소로 향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하루에 연속으로 일어나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앙칼진 잔소리마저도. 예전이라면 내 몸을 훑고선 한 마디씩 얹는 그 말들이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거북하고 짜증 나기만 했을 텐데 이젠 그렇지 않다. 나는 시대가 얼마나 사람을 쉽게 놔두고 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중예절이니 예의범절이니 그런 것도 시대에 따라 얼마나 쉽게 바뀌는 지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관념은, 어쩌면 그분들이 자라나던 시절엔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분들 시절엔 이게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교류 방법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면 괜찮지 않을 게 없다. 자라온 환경이 다른 사람들은 생활의 습관, 예의범절, 말투마저 다르기 마련이다. 마치 아시아인이 밥을 먹을 때 젓가락을 쓰고, 서양인은 주로 포크를 쓰는 것처럼. 우린 같은 나라에 나고 자랐지만 다른 시간대, 즉 상당히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왔다. 그러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그 말들을 무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와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이 그랬으면 그건 무례한 거다) 다만 구태여 잔소리 듣고 싶은 마음도 없어서 그냥 숙소로 돌아올 땐 자전거를 탔을 뿐. 



27장에서 사 온 음식들(새우김치만두, 찐빵, 육전, 떡갈비, 동태머리 전, 파전, 손두부), 캠핑장에서 먹다 남은 쌈채소, 햇반



나와 룸메친구는 숙소 로비에 음식들을 펼쳐놓았다. 숙소에서 먹기엔 음식이 너무 많았고, 또 숙소 부엌에 있는 전자레인지도 사용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모든 음식을 다 세팅하자 우리가 생각해 봐도 둘이 먹긴 너무 많아 보였다. 그래서 한 달 살기 톡방에 먹고 싶은 분은 로비로 와서 같이 먹자고 했으나 하필 그때 다들 자전거를 타고 순천만까지 갔다가 웃장에서 국밥을 먹고 있는 때여서 아무도 내려오지 않았다. 약간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인지는 몰라도 가끔 이렇게 숙소에 우리 둘만 남겨지면 괜히 허전한 마음이 든다. 어차피 곧 있으면 다시 시끌벅쩍해질 걸 알면서도 그런다. 나와 룸메친구는 한적한 공기 속에서 저녁을 먹었다. 육전과 파전, 떡갈비, 찐빵, 만두, 그리고 사장님이 챙겨주신 김치까지 너무 맛있었으나 동태머리 전은 우리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리고 손두부는 계속 시큼한 냄새가 나서 이상하다 생각하다가 아무래도 쉰 거 같아서 거의 다 버려 버렸다. 아깝지만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저 두부가 4000원 밖에 안 했다는 거에 위안 삼았다. 먹는 와중에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 보니 자전거를 타고 온 언니오빠들이었다. 속으로 엄청 반가웠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아직은 좀 수줍다. 





저녁_산책


반짝 거리는 간판이 마음에 들어 찍은 영상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서 소화시킬 겸 동네 산책을 나왔다. 오늘의 산책 콘셉트는 발 닿는 대로 돌아다니기였다. 원래는 귀찮아서 살짝만 돌다 가려했는데 이야기하며 가다 보니 숙소에 들어가기 싫어 계속 그 주위를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우리 한달살이팀의 공식 소울 메이트인 진철오빠들 (원래 세진, 세철 오빠이지만 둘이 묶어 부를 땐 중복되는 '세'를 생략하고선 진철오빠들이라 부르고 있다)을 우리 마트 앞에서 만났다. 그 두 사람은 주로 둘이 잘 다니고, 둘이 잘 먹고, 둘이 잘 마시는데 그 광경을 우리에게 딱 들킨 것이다. 추측건대, 206호 오빠들 방과 306호인 우리 방은 유독 룸메이트끼리 잘 맞는 거 같다. 내 생각은 그랬다. 여하튼 간, 진철오빠들이 순천 동동주를 사서 파랑새에서 먹을 거라며 우리 보고 오라고 하기에 우린 먹다 남은 동태머리 전을 전달해 줄 겸 파랑새로 향했다. 이런 걸 속된 말로 짬처리라곤 하지만 우린 정말 그 두 사람이 동태머리전이 입맛에 맞을 수도 있으니 가져간 거였다. 여하튼 그렇게 30분 정도 이야기하면서 동동주 두 잔 얻어먹고, 골머리 썩히던 동태머리전도 그쪽에 떠넘겨 버리고선 홀가분한 마음으로 숙소에 돌아왔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동태머리 전은 오빠들 입맛에도 맞지 않아 길고양이에게 던져 줬다고 한다. 길고양이 입맛엔 맞았을까? 숙소에 돌아오니 취기가 뒤늦게서야 올라왔다. 그래서 룸메친구한테 취한 거 같아,라고 말하니 룸메친구가 웃었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다. 



이전 11화 DAY11. 행복을 택했더니 외로움이 딸려왔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