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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Jul 11. 2024

DAY14. 세상은 우리가 행복해지길 바라고 있다.

6월 9일 일 : 순천으로 놀러 온 친구와 순천 나들이





오전_ 점심식사 & 중앙동 카페 


 금빈회관(돼지떡갈비정식)



혜준이와 나는 고등학교 친구다. 야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내게 대뜸 다가와 "떡볶이 먹으러 갈래?"라고 묻던 혜준이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난다. 혜준이도, 나도, 낯을 가리는 편인데 그날 처음 말을 섞고, 같이 밥을 먹었다. 혜준이가 데려가 준 떡볶이집은 정말 맛있었다. 이름은 '유명한 떡볶이'인데 난 이날 처음 들었다. 그 이후론 하루종일 붙어 다녔다. 아침부터 저녁, 밤늦게까지. 20살이 되는 그 순간, 처음 술을 마시던 그날에도 내 옆엔 혜준이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의 추억엔 온통 윤혜준이었다. 그러다 혜준이가 시험을 준비하고, 나도 나름의 사정이 생기면서 연락이 중간에 길게 끊겼다. 그러다 이번 월요일에 갑작스러운 통화에서 나는 혜준이의 몰랐던 가정사와 힘든 사정,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어떤 상태인지, 어느 정도의 우울을 겪었는지, 그리고 지금 준비하던 시험에 떨어졌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내가 겪었던 힘듦과 꼭 닮아있어서 나는 혜준이를 순천으로 초대했다. 나는 여기서 지금 너무 행복하고, 매일 매 순간 조금씩 치유되고 있다고, 그러니 너도 와서 나와 함께 여기 있자고. 약 일주일 후인 6월 9일, 우린 드디어 만났다. 4년 만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혜준이는 너무 생경했다. 앞머리가 사라져서 그런 건진 몰라도 예전의 분위기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색함은 없었다. 얘는 예전부터 그랬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리 친해도 한 달 만에 만나면 다시 좀 어색해지는데 혜준이는 아니었다. 얼마나 오랜만에 통화를 하던, 만나는 거던 상관없이 항상 편안했다. 사실 혜준이가 오기 전까지도 어색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왜 그런 걱정을 했는지 모르겠다. 혜준이도 짧아진 내 머리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그러고 보니, 외적으로 우리 둘 다 많이 바뀌긴 한 거 같았다. 나는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는데 혜준이는 내게 손편지랑 목걸이, 엽서, 바디밤을 선물로 줬다. 참, 너답다, 싶었다. 혜준이는 원래 그런 친구였다. 내게 별 다른 이유 없이 그저 생각났다는 이유로 선물을 주곤 했다. 정말 선물을 선물로서 주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이었다. 외적으론 많이 변했지만 이런 건 예전이랑 똑같아서, 나는 그게 너무 고마웠다.



나는 혜준이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던 거 같다. 이곳에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최대의 행복과 최고의 추억을 가지길 바랐다. 그런 마음으로 순천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인솔자님에게 추천받은 맛집, 금빈회관으로 혜준이를 데려갔다. 그곳에서 룸메와 룸메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들만의 시간을 지켜주기 위해서 나는 필사적으로 모르는 척을 했다. 나름의 배려였다. 그러면서 내 친구에게 내 뒤에 룸메친구가 밥을 먹고 있으니 슬쩍 보라고 언질을 줬다. 그리고 룸메친구가 진짜 부지런하다고 칭찬도 했다. 오늘 아침 8시가 되기도 전에 남자친구 마중 나가러 순천역에 갔다고. 그러자 혜준이는 12시에 여기 도착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아침에 도착하려면 대체 몇 시에 나와야 하는 거냐면서 커플이 둘 다 부지런하다며 맞칭찬을 했다. 그 시간에 문 연 가게가 없어서 벤치에 앉아있었대,라고도 말해줬다. 혜준이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런 시답잖은 얘기를 하며 먹은 떡갈비는 맛있었다. 나는 혜준이에게 여기서 대식가로 소문났다고 말하자, 혜준이는 그 말을 믿지 못하고선 먹부심을 부렸다. 결과는 나의 승이었다. 난 순천에 와서 위 성장을 거쳤으니까. 혜준이는 정말 잘 먹는 내 모습을 보고 낯설어했다. 하여튼 간, 그렇게 맛있게 먹고 있을 때 룸메친구가 수줍게 다가와 인사를 하고선 나갔다. 혜준이는 룸메친구가 너무 성숙해 보여서 놀랬다고, 그리고 자신과 어디가 닮았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MZ스런 프사각도가 닮았다고 답했다. 그리고 둘 다 키도 비슷했다. 이건 말해주지 않았지만, 사실 룸메친구랑 혜준이는 내가 느끼는 편안함이 제일 많이 닮았다. 





룩앳마이리틀홈 (사과유자티, 탠저린포지티브티), 순천 한옥글방



낮엔 날이 더워 돌아다니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우린 중앙동으로 향했다. 우선, 카페를 갔다가 해가 좀 질 무렵에 거리를 돌아다니는 게 내가 준비한 코스였다. 내가 급히 찾아본 '룩앳마이리틀홈'으로 갔다. 카페는 생각보다 더 분위기가 좋았다. 내가 시킨 사과유자티와 혜준이가 시킨 탠저린포지티브티 모두 맛있었고, 이벤트로 받은 버터쿠키마저 맛있었다. 카페의 분위기도 좋았고, 온도도 시원했고, 거기에 있는 강아지도 귀여웠다. 그 장소에서 우린 4년의 공백을 거의 메웠다. 혜준이는 그 시간 동안 고시원 생활을 했고, 스토킹을 당했고, 자립을 했다. 나는 그동안 침대에 누워만 있는 시간을 지나 내 길을 찾고, 건강이 안 좋아지고 , 다시 회복하고, 그러다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다. 이야기가 끝나자 우리의 정수리를 내리쬐던 해가 우리의 시선 언저리까지 내려왔을 무렵이 되었다.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나가서 거리를 구경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와 걷다가 귀여운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했다. 순천은 정말 신기한 게 사람들만큼이나 고양이들도 느긋하다. 대게 도시의 고양이들은 사람이 다가오면 도망가거나 피하기 마련인 데 이곳 고양이들은 '넌 네 갈 길 가라, 난 내 갈 길 간다'  마인드다. 아마 이곳에선 사람들이 고양이를 헤치지 않는 모양이다. 그래서 고양이들이 제 몸을 지키기 위해 먼저 도망갈 일이 없나 보다. 동네에 사는 동물들을 보면 그 동네의 사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추측할 수 있게 된다. 



중앙동 옥리단길은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걷기만 해도 좋은 길이다. 어딜 가든 눈이 즐거우니까. 그래서 이곳저곳 궁금증을 유발하는 길들의 방향으로 발을 뻗다가 '순천한옥글방'이라는 곳을 발견했다. 이곳은 문화의 거리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 개방된 공간으로, 전통놀이를 할 수도 있고 그저 쉴 수도 있고 책을 읽다 갈 수도 있는 공간이었다. 한 칸의 공간에서 아버지와 아이들이 전통놀이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정말 다정한 가족 같았다. 바닥에는 아이들이 했음이 분명한 낙서들이 가득했고, 우린 그 작은 화가들의 작품을 훼손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밖으로 나왔다. 흔들의자를 타고 있는 아이의 즐거운 웃음소리도 좋았다. 그래서 우리도 흔들의자에 앉아 파릇한 풍경을 보았다. 그리고선 다시 걸음을 서둘렀다. 그러다 우연히 황금로 패션가를 지나게 되었고, 거기서 내게 꼭 맞는 모자를 발견했다. 요구르트 아주머니 같은 모자랑 탐험가 같은 모자 중에 고민하다가 요구르트 아주머니 모자를 골랐다. 혜준이가 요정 같다면서 호들갑 떨었기 때문이다. 모자보다 그 요정 같다는 표현이 더 맘에 들었다. 그래서 무려 22000원의 거금을 주고 모자를 구입했다. 남성 전문 옷가게였지만 뭐, 모자는 공용이니까. 그 카운터 앞에 '옷차림은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지만 실패는 보장해 준다'라는 문구가 있었다. 혜준이가 그 문구를 소리 내서 읽길래 내가 뭐래,라고 한 마디 했다. 다행히 사장님은 못 들으셨나 보다. 그 문구를 읽는 사람은 우리가 처음이라며 매우 좋아하셨던 걸 보면. 이런 작고 사소한 해프닝이 모두 어떻게 이렇게 재밌을까? 진짜 별 거 아닌데. 날 웃게 하는 건 언제나 사소한 일들이다. 





오후_라이딩&순천만습지&순천만국가정원


동천~순천만습지 자전거길



원래 이럴 계획은 아니었다. 오후엔 오천그린광장에서 돗자리를 펴놓고, 북크닉을 할 생각이었는데 가만히 누워 책을 읽기엔 날이 너무 더웠다. 그래서 해가 떨어질 때까지만 시간을 때울 생각으로 순천만까지 자전거를 타보기로 했다. 아쉽게도 그 가는 길목의 사진을 찍지 못했다. 하지만 정말로 중간중간 자전거를 멈추고 싶을 정도로 모든 풍경이 좋았다. 길이 끊겨서 중간에 도로를 건너기도 하고, 내리막과 구부러진 길을 가기도 하고, 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그러면서 두루미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기도 하고, 내 자전거 바구니에 넣어놨던 짐들이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 폭탄터럼 튀어나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는 혜준이는 내리막에서 살짝 넘어졌지만 다행히 엉덩이로 착지해서 다치진 않았다.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 순천만 습지에 도착하니 온 김에 습지까지 둘러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습지를 가려면 표를 끊고 들어가야 했고, 그 표는 국가정원과 세트로만 팔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모든 계획을 다 엎어버리고, 순천만을 돌고 순천만 국가정원까지 가보는 걸로 합의 봤다. 매표소 앞에서 장장 5분간의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2000원만 더 내면 양일권으로 이용할 수도 있었지만 우린 그 2000원을 아껴보겠다고 당일에 꾸역꾸역 모든 일정을 소화해 보기로 했다. 그때 매표소 직원분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순천만 습지



해가 땅에 붙는 시점에 도착한 터라, 순천만습지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바닥마다 가지각색의 꽃게들이 기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아직 가을이 아니라 익지 않은 억새숲의 푸릇한 잎들도 좋았다. 선선히 부는 바람에 억새잎들이 흔들리며 내는 소리와 풍경도 좋았다. 해가 저물어가는 그 시간대의 하늘 역시 좋았다. 이 시간대는 하늘의 색이 가장 다채로워지는 시간이라서 다양한 모습의 습지를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소리만 듣고 있는 것도 좋았다. 목적 없는 대화를 하며 걷는 것도 좋았다. 시간이 없어 뛰어야만 했던 것도, 천천히 걸었던 때에도 좋았다. 바람이 불어 내 모자가 날아갈 뻔한 걸 나조차도 믿지 못할 반사신경으로 붙잡은 것과, 그걸 목격한 혜준이와, 그러고서 서로 어이없어 웃었던 것도 좋았다. 모든 게 좋아서 눈물이 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때 혜준이도 눈물이 날 거 같다고 말했다. 난 혜준이가 이곳의 모든 풍경을 마음에 잔뜩 안고 갔으면 좋겠다고 소리 없이 빌었다. 





순천만 국가정원



우리가 순천만습지를 다 돌고 나왔을 땐 7시 30분 정도였다. 순천만 국가정원은 9시까지 꼭 나와야 했기에 택시를 타고 빠르게 이동했다. 그렇게 순천만 국가정원에 허겁지겁 들어갔을 때, 그때 느껴지던 평온함을 잊지 못할 거 같다. 언덕 등성이를 올라가는 사람들과, 길을 따라 여유롭게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들, 정원들이 드넓게 펼쳐있던 그 풍경을. 나는 국가정원에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 단지, 세트로 표를 팔기에 돈이 아까워서 가본 것뿐이었다. 그런 인공적인 랜드마크에서 감동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곳은 조금 달랐다. 나는 순천을 조금씩 더 알아갈 때마다 누군가 정말 순천을 애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꾸고 있음을 느낀다. 곳곳에서 그 애정 어린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곳을 만들 생각을 누가 했을까? 순천만 습지에서 국가정원까지 자연스레 연결되는 그 분위기에서 고심의 흔적이 느껴진다. 어떻게 하면 이 아름다운 순천에게 더 많은 눈길과 손길이 닿을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했던 그 시간들이 느껴진다. 여기선 예산이 허투루 쓰이지 않나 보다.  



우린 여유롭진 않았다. 우리 예상보 넓고 아름다운 정원을 허술하게 보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 들어간 순간부터 정원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싶었다. 욕심이 났다. 그래서 중간중간 뛰기도 하고, 부러 화장실을 참아보기도 하면서 정원을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식물원을 발견하고선 들어갔다. 원래 식물원도 좋아하진 않는데 어쩐지 그날은 그곳에 가봐야 할 거 같았다. 식물원에 들어간 순간은 또 다른 세계에 온 거 같았다. 물소리가 가장 먼저 귓가를 울렸다. 밤늦은 시간이라 우리밖에 없어서 마음껏 소리도 지르며 길을 따라 걸어갔다. 걸으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풍경을 보며 우린 계속 감탄했다. 우린 식물원을 전세 낸 듯 뛰어다니며 웃었다. 아이처럼 신났었다. 어떻게 이렇게 좋을까? 이렇게 정신없이 구경하다 보니 폐장 시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어쩔 줄 몰라하며 길을 찾고 있으니 지나가던 어떤 분이 우리에게 어딜 찾나고 물어보셨다. 우리가 나갈 길을 찾고 있다고 하니 자신이 여기 토박이라며 따라오라고 하시길래 쫄래쫄래 따라갔다. 그렇게 갑자기 우릴 찾아온 길 요정은 동문으로 나가는 출구로 가면서 알차게 정원이곳저곳을 소개해줌과 동시에 본인의 모험담과 조언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집까지 알려주셨다. 내가 첫 만남에 집까지 알려주셔도 괜찮으시냐고 물어보니 괜찮다며 쿨하게 집으로 가셨다. 우리도 쿨하게 자전거를 타기 위해 대여소로 갔다. 





풍미통닭 (마늘치킨)



우리가 숙소에 돌아와서 혜준이가 체크인할 때 시간이 벌써 9시가 넘어 있었다. 우연찮게, 술을 들고 올라가는 언니들을 로비에서 마주쳐 버렸다. 혜준이는 꽤나 수줍어하면서 인사를 했고, 언니들은 정말 혜준이가 내 룸메친구를 닮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니들은 옥상에서 파티가 열릴 예정이라고 알려주고선 미련 없이 올라갔다. 나와 룸메친구가 없을 때 파티를 열다니. 배신감이 들었다. 우리 빼고 파티 열지 않기로 약속해 놓고선. 역시 사람은 믿을 게 못된다. 이때 나와 혜준이는 이 시간까지 노느라 저녁을 못 먹은 상태였다. 순천에 이 시간까지 하는 집이 많이 없어서 '풍미통닭'을 포장해 먹기로 했다. 치킨도 맛있지만, 건강하고 맛있는 백반을 먹이고 싶었기에 못내 아쉬웠다. 풍미통닭을 포장하러 가니 한달살이 하는 진철오빠들이 또 둘이서만 오붓하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대충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이리 와 보라며 나를 불렀다. 딱히 할 말도 없으면서 나를 부른 거 같았다. 뭐라도 주는 줄 알고 대뜸 갔던 거였는데 시간만 지체되고 말았다. 치킨이 식기 전에 빠르게 혜준이 방으로 가서 '풍미통닭'을 먹었다. 그런데 전에 먹었던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식기 전에 먹어서 그랬으려나? 집 가기 전에 한 번쯤 더 먹고 싶은 맛이었다. 통닭을 먹으면서 혜준이와 오늘 하루에 대해 이야기했다. 혜준이는 오늘 하루동안 너무 좋았다고 말해줬다. 나는 순천에서 내가 있으면서 느꼈던 감정, 평온, 치유의 일부를 전달해 준 거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직 부족한 게 많은 길잡이지만 그래도 혜준이가 만족해 줘서 다행이었다.



다시 이 하루를 돌아보았을 때, 모든 게 우릴 이곳으로 이끈 거 같았다. 그럴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순천이 우리를 끌어당긴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을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도달할 수 있도록. 순천으로, 습지로, 국가정원으로, 그렇게 끌어당긴 것이라고. 이 생각이 들었던 건, 우연이라는 말과 행운이라는 단어로도 담기 부족할 정도의 우연이고 행운이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내가 너의 이름을 언급한 것, 갑자기 네가 나에게 전화를 한 것, 그런 널 이곳에 초대한 것, 그렇게 기약 없는 약속만 한 채 4년 동안 만나지 않았던 우리가 이곳에서 만난 것. 서로가 없었던 시간 동안 각자의 힘듦을 견뎌야 했던 것, 그래서 평온과 안식이 필요했던 것. 그렇게 만나고 나서도 모든 타이밍들이 적절했다. 저녁 먹을 무렵이 돼도 꺼지지 않았던 배, 광장에 도착해서도 지지 않았던 해, 그래서 자전거를 더 타기로 결정한 우리. 그렇게 습지까지 가고, 거기서 표를 끊고, 국가정원까지 돌아보게 되었던 그 일련의 과정들, '어쩔 수 없네'라고 일축하고 순간순간 선택했던 결정들. 우리가 이곳에서 만나기까지의 과정과 만나고 나서의 과정이 믿기 힘들 정도의 우연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이 우리가 행복해지길 바라서 이곳으로 오게 만들었다고 믿으려 한다. 우연이 만들었다고 보는 것보다 그게 더 말이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난 우리의 만남과 이 하루를 우연이나 행운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일축시키고 싶지 않다. 이 하루의 감정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떤 단어를 쓰던 이날의 모든 감상을 담아내지 못하고 넘쳐흐를 게 분명하다. 그래서 이만 말을 줄이려 한다. 이날 같은 날들이 내게 또 있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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