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1일 화 : 리추얼공유회에서 존재소개하고, 긍정카드 뽑기
어제 새벽 3시가 넘어서 잠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러닝을 뛰러 동천으로 나갔다. 예전처럼 운동 강박 때문에 간 게 아니었다. 무거워진 몸을 가볍게 하고 싶어서, 그리고 러닝이 주는 에너지를 느끼고 싶어서 뛴 거였다. 불과 일 주 전만 해도 아침 7시에 뛰어도 충분히 선선했었는데 비가 오고 나서 날이 확실히 더워지는 바람에 새벽에 뛰어도 더웠다. 시간대마다 동천이 보여주는 풍경도 다르고, 동천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연령대도 달라지는데 그걸 확인하며 뛰는 것도 재밌었다. 이른 아침 동천엔 부지런한 어르신들이 걷거나 운동기구에서 운동을 하고 계셨다. 저번 날 동천의 밤엔, 나처럼 러닝을 하는 젊은 사람들이 왕왕 보였었는데 말이다. 난 이런 게 신기한 거 같다. 아침과 저녁의 풍경이 다르고, 이때 보이는 사람들이 다르고, 활동하는 동물들도 다르고, 그래서 들리는 소리까지도 다른 게. 시답잖은 것도 신기해하는 건 내 특성 중 하나인 거 같다.
달리다 보니 조금 어둑했던 날이 완전히 환해졌다. 그렇게 오천그린광장을 지나쳤는 데, 아침부터 잔디밭에 물을 주는 분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걸 보면 순천은 정말 관리가 잘 되고 있는 거 같다. 거리에 쓰레기가 없는 건 둘째 치고, 순천만과 국가정원같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도 바닥에 쓰레기가 보이지 않았다. 거리에 있는 공중화장실들도 대체로 깨끗했다. 아마 아침부터 이렇게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랬던 거 같다. 나는 6km를 달리면서 상쾌함과 개운함을 얻고, 피곤을 날려버렸다.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 죽을 것만 같아도 강박적으로 운동을 했던 예전의 나완 다르다. 조식을 먹다가 언니 오빠들은 원래 오늘 자전거를 타고 팔마체육관으로 가서 러닝을 뛰기로 했는데 진철오빠들이 운동 노쇼를 해서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결국 어제 새벽까지 있었던 사람들 중 나만 소정의 계획을 충실히 이행한 듯싶다. 역시 젊음은 무시 못하나 보다. 하긴, 막걸리가 뒤늦게 사람을 취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긴 하다. 그러니 막걸리를 잔뜩 마신 진철오빠들이 취해 필름이 끊긴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참고로 어제 철오빠는 취해서 환희언니한테 업히려고 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이런 건 기록으로 남겨놔야 한다.
점심은 나와 룸메가 따로 먹었다. 나는 그동안 눈독 들이던 영분식의 오므라이스를 사 먹었는데 분식집 치고 간이 세지 않아 나름 맛있게 먹었다. 여기는 확실히 어딜 가도 맛있다. 특히, 여기 사장님이 되게 걸걸하신 편인데 항상 에너지 넘치셔서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이 근처에 있는 순고후문호떡의 호떡은 기대 이하의 맛이었다. 그래서 반이나 남겼다. 룸메친구는 이날 달성식당에 가서 혼자 점심을 먹었다. 룸메친구는 한 끼도 대충 때우지 않는다. 그 점은 조금 닮고 싶다. 그래도 룸메친구덕분에 내 식습관이 많이 좋아졌다. 끼니를 거르기 일수고, 군것질을 손에 달고 살던 내가, 이 정도로 끼니를 잘 챙겨 먹게 된 건 다 룸메친구덕분이다. 역시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중요한 거 같다. 그렇게 늦은 점심을 마치고, 오후 4시에 시작되는 리추얼 공유회를 위해 숙소를 나섰다. 먼저 들어간 파랑새창고엔 언니 몇 명이 이미 와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이 날은 도시재생팀분들과 과장님도 오시기로 한 날이라 모두 단체복과 명찰을 착용해야 했다. 그리고 ppt와 함께 3분 동안의 짧은 스피치도 준비해야 했다. 대표님은 간단하게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지만 모두 긴장되는 눈치였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이곳 순천에서 각자의 리추얼을 하는 거고, 순천이 우릴 이곳으로 초대한 목적은 순천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즐거워도 이걸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은 우리 한달살이팀의 진행상황을 보고해야 하는 날이었다. 한 사람씩 나가서 자신의 리추얼을 말하는 걸 보면서 각자 어떤 생각과 관심사를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다혜 언니는 확실한 휴식을, 민언니는 새로운 경험을, 진오빠는 또 다른 배움을 원하고 있는 거 같았다. 나머지 사람들은 안타깝게도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무래도, 이걸 그날 적은 게 아니라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적고 있는 거라서. 그래도 모두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으니 서운해 말았으면 좋겠다.
내 리추얼 세 가지는 아침 스트레칭 하기, 무소음 산책하기, 내 마음을 알게 되는 발견일기 쓰기였다. 전에 한 번 적었던 걸로 기억하지만, 다시 한번 말하고 싶다. 한 달 살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리추얼이니까 반복해서 말해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 내가 나일 수 있는지, 나의 주인이 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리추얼을 결정했고 해나가고 있다. 나는 건강이 매우 좋지 않을 때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상황이 있었다. 그땐 내 몸이 내가 하는 일의 조력자가 아니라 방해자라는 게 절실히 느껴져서 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건강이 좋아진 지금은 아니었다. 특히 스트레칭을 할 때엔 동작에 따라 이완되고 수축되는 근육이 여실히 느껴지고, 그럴 때마다 내가 내 몸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게, 정말로 내 삶의 조력자로서의 내 몸이 되어있다는 것, 그렇게 살아있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이때만큼 내 몸의 주인임을 다시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심한 음악 중독자였다. 아마 사는 게 심심해서였던 거 같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어폰을 끼고 걷다가 노래가 꺼지면 걷는 걸 멈출 정도였다. 그런데 여기 와서 이어폰을 끼지 않고 산책을 나가보니 그게 정말 좋았다. 내 숨소리와 발소리, 그리고 세상이 내는 모든 소음이 한데 섞이는 게 좋았다. 나는 언제나 내가 세상과 이질 되고 유리된 존재라고 느껴왔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난 세상과 맞물려 돌아간다. 그때 나는 세상에 존재로서 존재함을 깨닫는다. 그리고 난 그 동화됨에서 안정감을 얻는다. 모든 게 불확실한 내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으로 정한 리추얼은 내게 있어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루 중에 가장 기억이 남는 순간을 사진 찍고 거기에 대한 일기를 써보는 것. 나는 나를 모르겠어서 이걸 리추얼로 정했다. 마음에 따라 시선이 가는 거라고 하니까, 그런데 나는 내 마음을 모르겠으니까. 거꾸로 시선이 닿는 곳을 먼저 살펴보면 내 마음까지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나는 순천 이곳저곳을 돌아보고 시선에 담아보고 그러면서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오롯한 주체로서 의식적으로 보내는 하루하루를.
그다음으론 존재소개 시간을 가졌다. 그러면서 나는 날 '사시사철 훌쩍이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는데 혜진언니가 그 훌쩍임이 콧물이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그러자 환희언니가 그럼 그냥 비염 아니냐고 말했다. 나는 그렇다고 답했다. 근데 조금 애매하긴 했다. 살짝 비염끼가 있는 건 맞는데 이렇게 까지 훌쩍이는 건 그냥 내 콧구멍이 작은 데다 살이 많아서 그런 거기 때문이다. 의사 선생님이 정확히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강박증이 나아가고 있는 사람'이라고도 표현했는데 대표님이 무슨 강박이었냐고 물었다. 그래서 음식과 생활에서의 순서에 대한 강박이라고 답했다. 여기서 별 다른 노력 없이 그냥 자연스럽게 강박들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이렇게 내 존재소개를 적으며 말로 하다 보니 확실히 나에 대해 선명하게 알게 되는 면이 있었다. 내 안 좋은 습관들, 강박적인 행동들은 모두 옅어져 있었다. 없애고 싶어도 없앨 수 있을지 확신조차 할 수 없었던 것들이었는데 이렇게 별 다른 노력 없이 자연스레 사라질 수 있는 거였다니. 말하고 나서야 선명히 알게 되었다. 나는 확실히 이곳에서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있다.
이렇게 존재 소개를 마친 후엔 긍정카드 중에서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드는 단어를 고르고, 그걸 꼽은 이유에 대해 서로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자연스러움'이라는 단어를 골랐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행하는 것'이라는 그 의미를 읽기도 전에 그냥 그 '자연스러움'이라는 단어 자체가 내 눈길을 끌었던 거 같다. 내가 두 번째로 꼽은 단어가 '여유로움'이었던 걸 보면 말이다. 아마 난 쉽게 긴장하고 경직되는 사람이라서 그랬던 거 같다.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현재와 반대되는 점을 지향하기 마련이기에. 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여유롭고 유연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렇게 되고 싶어 하고 있다. 앞으로 이 단어를 계속 떠올리면서 그 지향점을 향해 나아갈 생각이다. 그리고 지금도 차차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중인 거 같다.
내가 순천에 와서 이상한 말버릇이 생겼는데 그건 바로 '아무래도'이다. 이상하게도, 이전엔 쓴 적이 없는 말인데 순천에 오고 나선 습관처럼 쓰고 있다. 이건 아마 순천에서의 모든 일들이 '아무래도' 상관없이 다 좋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심 짐작해 본다. '아무래도'란 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조금 다르겠지만 나는 이 말 덕분에 여기서 생긴 여러 예상치 못한 상황들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 같다. 나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는 사람들도 그냥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거 같다. 불필요한 고민과 걱정을 '아무래도'란 네 글자에 다 담고서 털어버렸던 거 같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랬던 거 같다. 아니다, 확실히 그랬던 거 같다. 그렇게 예상보다 더 많은 것을 깨달은 우리들의 2주 차 리추얼 공유회가 끝났다.
아무래도 우리 한 번 식비가 10000원 내외로 책정되어 있다 보니 그 가게의 주력 메뉴가 아닌 다른 메뉴를 왕왕 먹을 때가 있다. 이날도 그런 날 중 하나로서 우린 갈비탕집에서 곰탕을 먹었다. 그런데 순천은 안 유명한 집이든 유명한 집이든, 주력메뉴든 아니든 다 맛있어서 상관없었다. 아무래도. 탕을 별로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맛있게 잘 먹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고기가 부족해서 배가 허하긴 했다. 이날 다혜언니의 스토리를 듣기 위해 언니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무슨 스토리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런데 내 맞은편에 환희언니가 있던 건 기억난다.
언니 오빠들은 저녁 9시에 모여 아침에 못 갔던 운동을 간다고 했다. 정말 난 모르겠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 이렇게 운동을 하면 건강해지긴 하는 걸까. 요즘은 룸메친구와 떨어져서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다. 언니들이 우리 둘이 항상 붙어 다닌다고 말한 게 신경 쓰이기도 했고, 다른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해보고 싶기도 했고, 뭐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었다. 룸메친구는 딱히 별생각 없는 거 같긴 했지만. 오늘 룸메는 혜진언니와 단둘이 산책길을 나섰고, 나는 혼자 자전거를 탔다. 아무래도 혜진언니는 룸메친구를 좋아하나 보다. 그래서 난 혜진언니가 룸메친구의 마니또라고 착각했었는데 그냥 룸메친구를 좋아하는 거였다. 맏언니와 막내친구 사이 통하는 게 있나 보다. 나는 혼자 자전거를 타며 사색을 즐겼다. 그런데 당최 이 길은 왜 익숙해지지 않는 건지 오늘마저도 길을 잃어서 예상보다 더 길게 자전거를 타고 말았다. 항상 이런 식이다. 길치인 나는, 길치인 내가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다. 익숙한 길도 헤매는데 새로운 길은 또 얼마나 더 헤매게 될까. 그래서 나는 불확실한 상황이 확정되어 눈앞에 있을 때, 그래서 새로운 길에 도입할 때에 극도의 두려움과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해버리나 보다. 아는 길도 헤매는 나인데, 모르는 길은 더 심할 걸 분명하니까. 예전엔 그런 두려움을 겪는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고, 심지어 밉기까지 했는데 이제는 받아들여 보려 한다. 어쨌든, 나는 몇 번이나 그 두려움을 견뎌왔고, 그렇게 새로운 길에 발을 들여왔으니 말이다. 그러니 나는 나의 부족함도 조금 더 좋아해 보려 한다. 아무래도, 아무래도 이것도 나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