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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Jul 11. 2024

DAY17. 307호 언니들은 부자언니들이었다.

6월 12 수 : 팔영산 트레킹, 고흥 서핑, 장천마포구이와 불야성소주방





오전_팔영산 트레킹


팔영산



어쩌다 보니 고흥을 가는 새로운 일정이 생겼다. 심지어 희망자만 받던 팔영산 트레킹도 어쩌다 보니 모두 다 참여하는 일정이 되었다. 그래서 이날 다 같이 11시 반에 로비에 모여 사이좋게 출발했다. 인솔자님은 나중에 따로 고흥 해수욕장으로 바로 오기로 했어서 대표님 포함 10명이 이동해야 했다. 그래서 대표님 차와 철오빠 차에 나누어 탔다. 나는 룸메친구와 민언니, 다혜언니와 함께 철오빠 차에 타게 되었다. 그래서 룸메친구한테 말로만 전해 들었던 귀여운 고양이 핸들커버와 목베개를 실물로 볼 수 있었다. 대표님의 차는 국도로, 우리 차는 고속도로를 타고 갔다. 그래서 우린 속도를 맞추기 위해 '우주휴게소'에 들렸는데 내가 기대한 최신식 휴게소가 아니라 정말 오래된 듯한 휴게소였다. 그래도 화장실은 깨끗했다. 다혜언니는 우리에게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사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날 하루동안 다혜언니를 부자언니라고 불렀다. 그렇게 사이좋게 아이스크림 하나씩 먹고 있을 때 제비집과 제비를 발견했다. 왠지 오늘 하루도 끝내줄 거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철오빠는 운전을 잘하는 거 같다. 고개만 대면 잠이 든다. 그렇게 살짝 잠에 들었던 거 같다.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우리가 대표님 차보다 좀 더 늦게 가고 있었다. 우린 분명 고속도로를 타고, 대표님 차는 국도를 탔다고 들었는데.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추월당한 거지?



팔영산의 죽대봉까지는 거리가 고작 0.9km였다. 하지만 경사가 심해서 다들 헉헉 댔다. 다들 조식을 든든하게 먹었음에도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힘들었다. 그래도 여자가 칼을 뽑았으면 수박이라도 썰어야지, 하는 마음 하나로 산을 올라갔다. 다혜언니는 정말 포기하고 싶어 보였다. 표정에서 그 마음이 정말 투명하게 보여서 귀여웠다. 모두 정상에 올라가기도 전에 땀이 말 그대로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머리에 맺힌 땀방울을 환희언니한테 튀겼더니 언니가 진저리 쳤다. 그렇게 힘들게 죽대봉으로 올라가서 아래를 바라보니 너무 아름다웠다. 확실히 보람은 있었다. 다들 올라갈 때와 달리 내려올 땐 수월하게 내려왔다. 하지만 나와 룸메는 물놀이할 거만 생각해서 크록스를 신고 간 터라 내려올 때도 힘들었다. 룸메끼리 닮는다더니, 이런 거까지 닮을 줄이야.





오후_남열해수욕장


고흥 남열해돋이해수욕장



원래 점심으로 먹기로 했던 치킨집이 비성수기라 문을 닫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황급히 근처 식당을 찾아봤으나 두 군데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다 영업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 치킨집이 1시간만 기다리면 3마리만 후딱 튀겨줄 수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들었고, 근처 마트에서 요깃거리를 사서 먹으며 그 1시간을 버텨보기로 결정했다. 근처 마트에 가서 젤리 두 박스, 오예스 한 박스, 육개장 한 박스를 샀다. 먼저 차 안에서 젤리와 오예스로 황급히 굶주린 배를 채우고, 해수욕장 도착하자마자 컵라면에 물부터 부었다. 다들 행복해하며 라면을 한참 먹다 보니 또 치킨이 도착했다. 안타깝게도, 서핑강습을 신청한 룸메친구와 진오빠는 치킨을 먹지 못하고 서핑을 배우러 갔다. 룸메친구는 닭다리 한 조각을 한 입 베어 물고선 선생님을 따라갔다. 치킨은 비록 한 마리 당 3만 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지만 예상보다 맛있어서 다들 그 가격을 용서했다. (우리가 바다에서 노는 사이 길고양이가 남은 치킨을 훔쳐먹어서 서핑을 배운 두 사람은 치킨을 거의 먹지 못했다.) 대표님께서는 근처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인솔자님에게 치킨을 전달해 주기 위해 가셨다. 그때 인솔자님에게 그래도 인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너무 신난 나머지 금세 까먹어버렸다. 



나는 마지막으로 바다수영을 했던 게 14년 전이라 매우 신나 있었다. 물을 좋아하지만 이렇게 물을 만날 기회가 많이 없어서 더 신났다. 간간이 들리는 파도 소리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서 소화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그래서 물에 세 번째로 뛰어들었다. 처음에 몸을 담글 때는 젖는 게 두려웠으나 머리까지 푹 젖고 나니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 얕은 곳에 앉아 파도풀을 즐기기도 하고, 몸에 힘을 빼고 파도대로 둥둥 떠다니기도 하고, 개헤엄도 도전도 해보고, 잠수도 해보고, 물을 무서워하는 환희언니의 팔을 잡고 끌고 다녀보기도 하고, 철오빠의 장난에 물도 먹어보고, 물속에서 한 바퀴 돌아보기도 했다. 바다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본 거 같다. 여한 없이 즐겼다. 





인어왕



그러다 가위바위보하고 한 명을 묻어버리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땅을 열심히 파고 있었는데 자고 있던 철오빠가 수영복을 입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다들 오빠가 근처에 오면 붙잡아서 그 파묻은 자리 속에 묻어버릴 생각으로 손에 삽이 달린 듯 열심히 팠다. 하지만 역시 러너는 러너, 절대 잡히지 않았다. 나는 달리기 귀찮아서 앉아 있다가 추워서 따듯한 모래 위에 아무 생각 없이 누워버렸다. 정신 차려 보니 언니 오빠들에게 양손과 발이 잡혀 아까까지 열심히 파낸 구덩이로 넣어지고 있었다. 내 몸 위로 모래가 덮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모두의 예술혼을 불태운 결과, 나는 왕가슴과 뚜렷한 복근을 가지고 삼지창을 든 인어왕이 되어 있었다. 언니들은 예술작품이라며 뿌듯해했다. 그렇게 인어왕이 된 나는 살아있는 포토존이 되었다. 언니들이 날 두고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인증샷을 찍었다. 정말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 





재즈(개)



결국, 나는 추위를 참지 못하고 먼저 돌아와 샤워를 했다. 그러고선 혜진언니가 설치한 해먹에 누워 노래를 들었다. 그렇게 삼사십 분 정도 눈을 감고 있다 다시 떴을 때 다들 순차적으로 샤워를 하며 숙소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사장님의 친구로 보이시는 분이 큰 개와 함께 오셨다. '재즈'는 몸집과 달리 굉장히 온순하고 말을 잘 알아듣는 개였다. 처음 봤을 때 무서워서 피했는데 눈을 보니 순한 게 느껴졌다. 그래서 주인분께 만져도 되냐고 허락을 구하고선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생각보다 단단하고 거친 느낌이었다. 그러다 '재즈'가 굴러다니는 자신의 장난감을 물고 오더니 던져달라고 나를 쳐다보았다. 한 번 그렇게 던져주니 계속 가져왔고, 난 몇 번 하다 지쳐서 다른 언니들에게 토스했다. 지원언니는 그 토스를 거절했다. 역시 단호할 땐 단호한 언니다. 멋지다. 그래도 토스할 사람이 아직 7명이나 남아있어서 상관없었다. 재즈는 지치지도 않는지 사람을 바꿔가며 계속 공놀이를 요구했다. 환희언니는 그런 재즈를 열심히 놀아주다 결국 넘어져 다쳤다. 저런. 





밤_장천마포구이 & 불야성소주방 


장천마포구이 (주먹고기), 불야성소주방



숙소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져 있었다. 이때 일몰시간이 7시 45분 정도였으니 8시가 넘었던 거 같다. 우린 서둘러 '장천마포구이'로 향했다. 이곳은 장천동에 유명한 현지인 맛집 중 하나로 '주먹고기'가 대표메뉴였다. 룸메친구의 남자친구가 금빈회관 떡갈비보다 이곳 주먹고기를 더 맛있어했다는 말을 들어서 더 기대가 되었다. 맛은 기대만큼 맛있었다. 두 개의 테이블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모두 맛있다고 입을 모아 칭찬하며 고기를 먹었다. 우연히도 내가 앉은 테이블은 술을 잘 안 먹는 사람들이 앉았고, 다른 테이블은 술을 잘 먹는 사람들이 앉았다. 그래서 중간에 환희언니는 술을 먹기 위해 저쪽 테이블로 넘어가고, 다혜언니는 이쪽 테이블로 넘어왔다. 열심히 고기를 먹는데 저쪽 테이블의 미친 텐션이 느껴졌다. 그렇게 전투적인 식사를 마치고 그냥 파하기는 아쉬웠는지 그 시간에 2차를 갔다. 도보로 10-15분 정도 떨어진 '불야성 소주방'이라는 곳이었다. 여긴 현지인 사이 안주가 맛있는 술집으로 유명한 곳이었고, 추천도 많이 받았어서 술이 당기진 않았지만 나도 따라갔다. 나랑 룸메친구, 민언니, 그리고 환희언니. 이렇게 따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민언니가 잠깐 편의점을 들리겠다고 해서 따라갔다. 그랬더니 민언니가 숙취해소제를 사주었다. 다혜언니도 그렇고, 민언니도 그렇고. 307호 언니들은 부자언니들인가 보다. 역시, 좋은 언니들이다. 그렇게 편의점에서 우리끼리 숙취해소제를 마시고 불야성 소주방 쪽으로 가니 다른 사람들도 거기 도착해 있었다. 



뭔가 불순해 보이는 가게 이름과는 달리 들어가 보니 굉장히 건전한 술집이었다. 고기를 먹고 거의 바로 간 터라 안주는 '육회탕탕이'와 '양푼갈비찜'만 시켜 먹었다. 거기서 처음으로 아이 셔 소주를 마셔봤는데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시킨 안주는 모두 맛있었지만 기본세팅되는 안주들이 너무 짜서 밥이 없으면 못 먹을 정도였다. 이날 소금할당 치는 바닷물로 모두 채운 터라 그냥 육회탕탕이만 집어 먹었다. 육회를 제대로 먹어본 게 이날이 처음이라 뭐라 평가할 순 없지만 다른 언니들 말을 들어보니 맛있는 편이라고 했다. 그동안 봐온 육회와 달리 빨간 양념이 되어 있는 게 신기했다. 맵지 않아 다행이었다. 더 놀라운 건, 2차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놀고도 모두 아쉬웠는지 새벽 12시가 넘은 시간에 숙소 앞 코인노래방으로 갔다. 안타깝게도, 노래방 영업이 끝나서 다들 숙소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숙소 옥상 테라스에 모여 3차를 시작했다. 나는 정말이지 여기 사람들의 체력이 믿기질 않는다. 민언니 말론 여기 사람들 평균 연령이 30.8세인가 그렇다던데. 믿기지 않는다. 진짜 술이 보약인가? 나는 처음으로 파티에 자발적으로 불참했다. 개운하게 샤워하고 사장님이 새로 바꿔주신 뽀송한 이불을 덮고 꿀 같은 잠을 잤다. 다음 날 이야기를 들어보니 새벽 3시 정도에 파했다고 했다. 대단하다. 



나는 이 날 하루에 한 톨의 아쉬움도 남지 않았다. 아침부터 밤늦은 시간까지, 온 하루를 한 톨의 낭비도 없이 채웠다고 느꼈다. 빡빡한 일정으로 하루를 채웠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순간의 감각과 감상으로 채웠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이 날 하루를 되돌아보면서 다시 한번 행복해하고 있다.  나는 그날 아침, 눈을 뜬 순간부터 뽀송한 침대에 머리를 대고 누운 그 순간까지, 그 하루의 모든 순간을 최선을 다해 즐겼다. 그 안에 여한과 후회와 아쉬움이 들어갈 자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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