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3일 목 : 식수식, 웃장국밥, 못 말리는 말리부 파티
오전에는 향나무를 같이 심기 위해 반보기 공원에서 모이기로 했다. 인솔자님은 우리의 잦은 지각에 기분이 언짢으신 듯했다. 우리의 한 달 살기 팀을 기념하는 나무를 심는다는 건 좋았으나 날이 너무 더워서 다들 밖에 나온 지 10분도 안 돼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반보기 공원 한쪽에 향나무를 심기 위해 모두 세 번씩 삽으로 흙을 퍼냈다. 나는 정말 노력했지만 딱히 도움이 되진 못했다. 내가 도움이 될 거란 기대를 한 사람이 없어서 상관없었다. 그래도 유경험자인 분들이 계셔서 흙에 있던 돌들도 걷어내고 딱 알맞은 깊이로 구덩이를 파낼 수 있었다. 역시 사람은 혼자보단 여럿일 때가 훨씬 더 수월한 거 같다. 나 혼자 했으면 한 시간은 걸렸을 거다. 그전에 인솔자님이 각자 고민거리를 써와서 나무에 함께 묻으면 좋을 거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써온 사람은 인솔자님뿐이었다. 그래서 조금 서운하신 듯했다. 다시 향나무를 묻고 나선 다들 발로 한 번씩 흙을 덮었다. 총 11명의 손과 발이 모이니 나무 하나 심는 데에 채 10분 남짓 걸렸던 거 같다. 날이 더운 탓에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지쳐버렸다. 그래서 빠르게 식순을 마치고 나서 점심을 먹기 위해 차를 타고 웃장 국밥골목으로 이동했다.
순천 웃장 국밥거리는 정말 유명한 곳 중 하나다. 이 국밥거리를 배경으로 kbs가 다큐를 찍었을 정도다. 여기 국밥집들의 특징은 국밥 2인분 이상 주문하면 수육을 서비스로 내준다는 것, 그리고 국물이 맑고 잡내가 안 난다는 점이다. 돼지 귀 밑 머리의 비계를 제거해서 잡내가 안나는 거라고 다큐에서 말해줬다. 그 다큐 영상 링크를 단톡방에 공유했는데 진오빠만 빨리 보기로 스킵하면서 봤다고 했다. 고마웠다. 역시 내 소녀팬이다. 우리가 간 제일식당은 인솔자님이 가장 좋아하는 식당 중 하나였다. 여기 특징은 콩나물을 넣어 깔끔하고 시원한 국물이라고 했다. 확실히 국밥을 처음 먹어본 나조차 잡내 하나 없이 깔끔한 맛이라는 걸 단 번에 알정도로 군더더기 없는 맛이었다. 다들 그 더운 날씨에도 맛있어하며 국밥을 다 먹었다. 먹기 전엔 더워서 입맛이 없다, 아침을 많이 먹어 배가 안 부르다, 더운데 더운 음식 먹고 싶지 않다고 투덜거렸으면서.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다 맛있게 먹긴 했지만 언니들은 조금 아쉬워했다. 이미 자전거를 타고 순천만을 갔던 날에 먹어본 식당이기 때문이었다. 인솔자님께 제일식당을 다섯 명이나 먹어 봤으니 제일식당 말고 향촌식당으로 가자고 제안을 드렸으나 거절당했다고 했다. 제일보다 향촌이 조금 더 진한 국물이라던데, 나도 여기 국밥을 너무 맛있게 먹은 터라 향촌식당의 맛도 궁금해졌다. 다음엔 같이 향촌식당을 가보고 싶었다. 다음에, 날이 쌀쌀해졌을 때에, 다시 한번 우리가 순천에 모이는 그날에.
밥을 다 먹고 난 후, 대표님 차와 인솔자님 차로 나누어서 되돌아왔다. 대표님 차를 탄 룸메친구와 다혜언니는 중앙동에서 내려 근처 카페에 갔고, 나는 인솔자님 차를 타고 일단 숙소로 되돌아왔다. 나는 오늘 브루웍스를 갈 거니 세진오빠한테 브루웍스에 오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뒀다. 세진오빠는 틈만 나면 브루웍스에 가는, 브루웍스 지박령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빠가 그 말을 지킬 거란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내 말엔 아무 강제력이 없다. 나도 알고 있다. 나는 숙소에서 양치만 하고선 버스를 타고 브루웍스로 갔다. 오늘은 집중해서 좀 오래 글을 쓸 예정이었기 때문에 작은 카페보단 대형카페가 나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때마침 옷도 브루웍스 분위기로 입기도 했고. 확실히 브루웍스는 분위기가 좋고 카페 크기도 컸지만 콘센트가 부족하고, 너무 어둡고, 비싸고, 덥다는 단점이 있었다. 아마 다시 갈 일은 없을 거 같다고 앉자마자 느꼈다. 그래도 나름 열심히 할 일을 하고 있다 보니 환희언니가 브루웍스로 오겠다며 전화를 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 환희언니가 도착했다. 환희언니는 곧 진오빠도 올 거라고 말하고선 해야 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한참 지나서 진오빠가 왔다.
이렇게 셋이 모이자 환희언니는 인솔자님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인솔자님은 우리와 대화나 교류를 많이 하고 싶어 하는 분이셨고, 그래서 톡방에도 공지 외 사담도 자주 올리던 분이셨는데 어제를 기점으로 거의 단절된 상태였다가 오늘 오후 갑자기 서운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톡을 보냈기 때문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대충 '그래도...'와 '그래서?'로 입장이 갈리는 게 보였다. 인솔자님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인솔자님의 의욕이 우리 팀 성향에 비해 과하기 때문에 생긴 이슈였다. 결국 서로가 서로의 다름을 조금 더 받아들여보자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던 거 같다. 이야기가 대강 일단락되고 나서, 다시 각자 할 일에 열중했다.
카페에서 돌아오고 나서, 환희언니와 나는 같이 자전거를 타고 조례호수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거기서 러닝 6km를 뛰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돌아올 계획이었다. 나는 길이 험하다고 먼저 언질을 줬으나 환희언니는 괜찮다며 자전거를 탔다. 조례호수공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환희언니는 올 때 자전거는 못 타겠다고 했다. 그 길이 매우 험난했기 때문이다. 그 길은 말이 자전거길이지, 신호도 많고, 길고, 사람들도 많고, 도로도 울퉁불퉁하다. 환희언니는 내게 왜 더 열심히 말리지 않았냐고 말했다. 억울했다. 그래도 나와 환희언니는 어찌어찌 조례호수공원에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그래서 뛰려는데 이번엔 길에 사람이 너무 많아 뛸 수가 없었다. 한 바퀴만 뛰고선 그 근처 포케집에서 저녁밥을 포장하고 숙소를 향해 뛰어갔다. 나는 언니한테 이게 바로 시티런 아니겠냐고 말했지만 언니는 그냥 배민 배달원 같다며 웃었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렇게 오는 중에 올리브영에 들려 여드름 패치도 샀다. 그러다 환희언니가 아킬레스건을 삐끗해서 중간부턴 빨리 걷기로 종목을 바꿨다. 그렇게 한참 걷다가 자전거를 다시 빌려 타려는 데 한 대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어차피 숙소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 아픈 환희언니에게 자전거를 양보하고 나는 숙소까지 뛰어갔다. 오랜만에 밤에 내 맘대로 뛰니 정말 말 그대로 날아갈 거 같았다. 하지만 날진 못했다. 아무래도, 사람이 날긴 힘드니까. 그렇게 달려서 숙소에 가니 내 룸메가 누워 있었다. 내가 환희언니와 옥상에서 밥을 먹고 오겠다고 하니 자기도 안 먹었다면서 같이 먹자고 말했다. 끼니를 꼬박꼬박 챙겨 먹는 친구인데 밥을 안 먹었다고 하니 걱정돼서 왜 안 먹었냐고 물어보니 그냥이라고 답했다. 안쓰러웠다. 그날따라 꼬질한 새끼 오리같이 누워있어서 더 마음이 쓰였다. 옥상에서 먹을 준비를 하고 있으니 룸메가 우리 마트에서 산 볶음밥과 자기가 집에서 챙겨 온 강된장양념을 야무지게 들고 왔다. 안쓰러웠다. 그래서 내 포케에 두 개 들어가 있던 계란말이 하나를 줬다. 원래 안 그런 애가 저러니까 적응이 안 된다.
팔마운동장에 운동을 간 사람들이 밤늦게까지 안 와서 환희언니가 그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들은 충격적인 말을 꺼냈다. 어제 새벽까지 먹은 술이 성에 안 차서 오늘 밤에 숙소로 와서 말리부를 까겠다는 내용이었다. 분명 어제 3차까지 한 걸로 기억하는데. 이젠 난 정말 모르겠다. 이 정도면 진짜 술이 보약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든다. 그들은 얼음컵과 말리부, 콜라, 파인애플주스, 오렌지주스, 오예스 피스타치오맛과 청양마요맛 팝콘, 페스츄리 오징어까지 들고 환하게 웃으며 옥상으로 올라왔다. 숙소에서 푹 쉬고 있던 민언니도 말리부 파티에 참석했다. 조금 갑작스러웠지만, 그렇게 모두 모이게 되었다. 옥상에서 모두 모인 건 오랜만이었다. 처음엔 기호에 따라 말리부에 콜라나 주스를 섞어 마시다가 나중엔 고량주로 넘어가서 마셨다. 이 날의 말리부 파티는 새벽 3시가 돼서야 막을 내렸다고 들었다. 나는 의자에서 계속 졸다가 결국 중도에 하차했다. 이젠 새벽 3시가 기본값이 되어가는 것 같다. 끝이 다가올수록 우리의 밤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무섭다. 어디까지 길어질까?
사람들이 모이면 탈이 날 수밖에 없다. 모두 각자의 인생과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기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성향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우리 9명은 모두 다름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는 거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안에서도 작은 이슈들이 생겼고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다. 그러니 우리와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인솔자님과 이슈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돌이켜보았을 때, 가끔 삐그덕 거렸어도 대체로 순조롭게 흘러간 거 같다. 우리 모두는, 솔로몬의 지혜 따윈 없었지만 좋은 시간을 어그러뜨리고 싶지 않은 마음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만 있다면 모두 안전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게 분명하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고, 술은 더 많았던 하루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