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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Jul 11. 2024

DAY10. 내가 주는 마음엔 가격표가 없다.

6월 5일 수 :  캠핑장에서 라면파티, 룸메와 쇼핑하기, 선물 전달식




오전_캠핑 마무리


보성강에서 수영하는 누군가의 머리



한 4시간 정도 잔 거 같은데 벌써 아침이 밝았다. 중간에 두 번 정도 깼는데 그때마다 환희언니도 같이 깨서 나한테 말을 걸었던 게 기억난다. 하지만 환희언니는 내가 한 번씩 깰 때마다 창문을 하나씩 열고 다시 잤다고 했다. 그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잠에 너무 취해 있었나 보다. 그렇게 비몽사몽 한 아침이 지나고, 남은 벌칙자 2명도 마저 보성강 입수식을 거행했다. 오리발, 물안경, 바디슈트 등 장비들로 무장한 민언니와 철오빠가 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럴 필요 없던 진오빠도 자진해서 들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동천에서 종종 보인다는 수달 같았다. 수영을 마친 세 사람은 온몸이 빨개져선 닭살이 돋아 있었다. 아직 물놀이 하긴 이른 날씨였다. 그러고 나서 신라면 10 봉지를 끓여 먹었다. 룸메는 가져간 김가루와 참기름, 그리고 남은 찬 밥과 내가 가져간 비닐장갑으로 주먹밥도 하나 만들어서 모두의 칭찬을 받았다. 언니오빠들이 남은 찬 밥 두 개까지 라면에 넣어 말아먹고 나니 남은 음식이 거의 없었다. 딱 알맞게 산 거 같아 뿌듯했다. 나는 어제 새벽까지 빈츠 10개를 비롯해서 다른 과자들을 먹은 터라 아침은 먹지 않았다. 먹으려면 먹을 수 있었겠지만 그만 좀 먹으라는 내 위의 외침을 무시하기엔 난 너무 여렸다. 나는 취하면 초콜릿과자를 먹는 안 좋은 버릇이 있는데 이참에 한 번 끊어볼 생각이다. 라면까지 맛있게 먹고, 뒷정리를 열심히 한 후 차를 타고 다시 우리의 숙소로 돌아왔다. 안락하고, 언제나 우릴 반겨주는 따스운 사장님이 계신 곳으로. 이렇게 여행 중에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서 일박을 하고 온 건 이번이 처음인데 한 번이면 충분한 거 같았다. 나는 나와 룸메친구가 지내는 306호가 너무 좋다. 떠나서 자고 싶지 않다. 너무 산뜻하고 안락하다. 





오후_산책&쇼핑


나는 어디 갔다 오면 바로 씻는 편이고, 룸메는 귀찮아하다가 씻는 편이라 대체로 내가 먼저 씻어왔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전날 머리를 감지 않은 룸메가 먼저 씻었다. 나는 씻으면서 오늘 쉬다가 오후 무렵에 룸메와 '유익한 상점'을 한 번 들리고 저녁까지 먹고 들어올까 생각했는데 씻고 나오니 갑자기 룸메가 'samo coffee'에서 커피를 사 오겠다며 내게 커피를 먹을 거냐 물었다. 그래서 나는 내 계획을 말하며 같이 가자고 말했고, 룸메는 오케이 했다. 나오고 나서야 우리가 캠핑 갔다가 씻기만 하고선 바로 다시 나왔음을 깨달았다. 걸으면서 나와 룸메는 우린 왜 쉬질 못할까,라는 얘길 했지만 개선 의지는 둘 다 없었다. 그리고 이때 룸메친구에게 나 없이 자니까 좋았냐고 물었는데 룸메가 좋았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나 보고도 좋았냐고 묻길래 나도 좋았다고 대답했다. 





노플라스틱 카페



먼저 우리가 간 곳은 '노플라스틱 카페'라는 곳이었다. 여기는 커피값이 2500원으로 매우 저렴했고, 심지어 텀블러를 가져가면 1000원을 할인해 주었다. 게다가 텀블러 씻는 곳도 있었다. 사실 이걸 노린 것도 없잖아 있었다. 우리 방엔 수세미는 있어도 퐁퐁은 없어서 물로 텀블러를 씻어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오랜만에 거품을 내어 텀블러를 씻으면서 상쾌함과 개운함을 느꼈다. 가격도 저렴하고, 공간도 널찍하고, 심지어 티가 맛있어서 다음에도 또 갈 생각이다. 



그러고 나서 'samo coffee'까지 갔는데 하필 수요일 휴무라 허탕을 치고 나오고, 그래도 원래 목적은 커피였기도 하고 화장실도 급하니 근처에 '브루웍스'라는 카페에 들어가서 화장실부터 쓰고 나와 메뉴판을 보다 아메리카노 가격에 놀라 도망쳐 나오고, 그러다 보니 시간이 오후 5시가 넘어서 결국 커피를 마시지 못했다. 커피 마시려 나왔는데 정작 커피는 못 마신 상황이 너무 어이없어서 웃겼다. 나는 모르겠다. 룸메친구랑 다녀서 이렇게 어이없이 웃긴 일이 생기는 건지, 아니면 그저 그런 일도 룸메친구랑 함께 여서 웃긴 일이 되는 건지.





유익한 상점



다음 우리 행선지는 '유익한 상점'이었다. 이곳에서 쇼핑을 하다가 너무 다혜언니스러운 머리끈과 혜진언니스러운 머리끈을 발견했다. 우린 안 살 수가 없었다.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않길, 마음에 들길 바라면서 하나씩 구입했다. 보답을 바라지 않는 정말 주고 싶은 마음에서 산 선물이었다. 다른 언니 오빠들의 선물도 하나씩 사주고 싶어서 이마트랑 다이소를 둘러보았는데 딱 이거다 하는 게 없어 사지 못했다. 다음에 딱 이거다 싶은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해주고 싶은 마음은 있으니까. 나와 룸메친구는 이마트에서 티백과 과자를 구입했다. 주전부리를 좋아하지 않는 룸메친구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갑자기 프링글스 큰 거 한 통을 골라 담았다. 그리고 다이소에서는 내 두 번째 마니또에게 줄 선물과 우리가 함께 쓸 비눗방울을 샀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정작 사려던 커피는 안 사고, 이상한 것만 잔뜩 샀다. 아무래도, 이런게 쇼핑의 묘미인 거 같다. 





환희언니가 준 메로나



유익한 상점을 갔다 와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메로나를 선물로 받았다. 환희언니가 내기에서 져서 (정확히 말하면 무승부지만) 나에게 메로나를 사주겠다 했는데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몰라도 메로나를 정말 사 온 것이다. 나와 룸메는 저녁을 먹으러 가다가 줄 게 있다는 환희언니의 전화를 받고서 숙소 앞 횡단보도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언니가 메로나 두 개를 대롱대롱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보통 아이스크림은 녹으니까 받을 사람이 지금 숙소에 있는지 없는지부터 확인하고 주지 않나? 숙소 냉장고에 냉동고도 없는데 무슨 생각으로 사 온 건지 아직도 의문이다. 환희언니는 역시 재밌는 사람이다. 그래서 노잼인 사람을 싫어하나 보다. 막무가내로 건네받은 메로나를 맛있게 먹고 우린 밥을 먹으러 갔다. 메로나를 애피타이저로 먹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메로나는 맛있었다. 메로나는 죄가 없다. 





장터맛집 생선구이 정식 (13000)



우린 또 길을 엄청 헤맸다. 겨우 8분 거리에 있는 가게인데. 그래서 그런 지 몰라도 더 맛있게 먹었던 거 같다. 생선은 서대, 고등어, 갈치 이렇게 나왔는데 맛은 평범했다. 평범에서 맛있다 사이에 있는 게 아니라 평범에서 별로 사이에 있는 맛이었다. 근데 반찬이 기깔났다. 미역국은 약간 찜질방 미역국 맛과 비슷했고, 김치도 맛있었고, 깻잎도 맛있었고, 숙주와 도토리묵도 맛있었는데 특히 저 버섯조림과 가지무침이 맛있었다. 여긴 그냥 백반집을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라고 룸메와 나오면서 이야기했다. 처음 먹어본 서대는 내 스타일은 아니어서 아쉬웠다. 순천엔 서대회도 유명하던데 다음엔 그렇게 한 번 먹어볼 생각이다. 밥으로 배를 채우면 끝맛이 깔끔하고, 든든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건 빵이나 과자, 가공식품, 배달음식으론 느끼지 못하는 만족감이다. 



드디어 숙소로 돌아온 우리 두 사람은 빠르게 씻고 나서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을 주기 위해 언니들의 방을 두드렸다. 그런데 숙소의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언니들이 나오지 않았다. 우리 한달살이팀의 여자들은 맨 꼭대기 층에 있는 세 방을 모두 쓰고 있었는데 지금 숙소에 있는 게 우리 두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섭섭해졌다고 해야 하나, 허전해졌다고 해야 하나, 여하튼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와 룸메는 혜진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빨리 숙소로 오라고 재촉했다. 그러면서도 가장 숙소에 안 붙어있는 우리가 이런 말을 해도 되나 어이없어했다. 그래도 허전한 마음을 어찌할 수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혜진언니와 환희언니가 숙소로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냉큼 달려가 어디 갔다 오냐고 물었더니 러닝하고 온 거라고 말해주었다. 언니들이 씻는 동안 언제 선물을 전해줄지 고민하다가 그냥 바로 주기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룸메친구가 옷 빌려준 것과 메로나 준 건 환희언니인데 환희언니한텐 줄 게 없냐고 물었다. 나는 줄 게 없었다. 그래서 룸메친구가 산 프링글스 한 통을 합의하에 인수받아 환희언니에게 선물로 줬다. 그리고 혜진언니에게도 머리끈을 선물로 줬다. 그리고 다혜언니에게도 머리끈을 전해줬다. 고작 3000원짜리지만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언니들의 모습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혹여 부담스러워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쩌나 고민했는데 정말 다행이었다. 우리의 마음이 잘 전달된 거 같았다. 돌려받지 않아도 되는 마음이었다. 낯설었던 때가 불과 얼마 전이었는데, 이젠 무언갈 주고 싶은 사람들이 되었다. 함께 한 달을 지내게 될 사람들이 언니들이라서,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서, 그게 내심 고마웠었나 보다. 아마 룸메친구도 비슷한 마음이었을 거 같다. 특히, 다혜언니에게 준 머리끈은 모두가 다혜언니스럽다며 인정해 주었다. 역시 나와 룸메친구의 눈은 정확했다. 환희언니는 왜 자신만 먹을 거냐며 물건으로 달라고 했다. 언니가 좋아하는 체커보드가 없었다고 말해줬다. 마지막으로, 내 두 번째 마니또 방 문 앞에 선물을 놔두었다. 그렇게 모든 선물들은 다 제 주인을 찾아갔다. 그리고 이때 내일 같이 막걸리바를 가자는 초대를 받았다. 조금 고민하다가 승낙했다. 오늘도 피곤하지만 행복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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