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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Jul 11. 2024

DAY23. 상대를 고려하지 않는 마음은 반송당한다.

6월 18일 화 : 봉화산 봄소풍, 국가정원산책, 노래방까지





오전_봄소풍


봉화산



우리 방에 드디어 퐁퐁이 생겼다. 내가 파랑새창고에서 조금 훔쳐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수세미와 퐁퐁, 설거지 세트가 갖춰졌다. 이 소식을 들은 308호 언니들은 조식을 먹자마자 우리 방으로 몰려왔다아직 씻지 못한 룸메친구가 당황해하는 눈치여서 난 수세미와 퐁퐁, 설거지 거리를 들고 언니들 방으로 갔다혜진언니와 환희언니는 내게 설거지를 맞기려 했으나 착한 지원언니가 막아주었다. 



그렇게 한 차례 소동이 끝나고, 봄소풍을 위해 봉화산길을 올랐다. 스테이두루 사장님이 우릴 위해 바느질로 수선해 주신 감귤모자 다섯 개를 나누어 쓰고, 노란색 단체 티를 입고 나니 정말 초등학생 때로 돌아간 거 같았다. 실제로 봉화산을 올라가는 길에 유치원 애기들을 만났는데 그 친구들이 입고 있는 옷보다 더 애기옷 같았다. 그래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입겠나 싶었다. 인솔자님께선 봉화산 둘레길을 가기로 한 날엔 기온이 매우 높았던 터라 상황을 보고 정상을 찍지 않고 내려올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분명 정상까지도 편도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거라 들었었는데 막상 올라가고 보니 두 시간 넘게 걸렸다. 알고 보니, 바로 정상으로 직진했다면 한 시간이면 충분히 오르는 게 맞았다고 한다. 인솔자님이 우리에게 둘레길도 소개하고 싶고, 정상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둘러 둘러 오다가 시간이 길게 걸렸던 거다. 인솔자님은 봉화산 둘레길이 정말 좋은 길이며 어디 선정된 길이라고 계속 말씀하셨지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이미 나는 이전에 너무 많은 산행을 했고, 점점 더워지는 날씨 탓에 매우 지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봉화산 둘레길은 말이 둘레길이지 생각보다 가파르고 험했기에 발 딛는 것에 더욱 집중해야 했었다. 올라가는 길 중간중간에 진오빠에게 일본여행을 같이 가자고 설득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진오빠는 여행으로만 일본에 가고 싶지 않아 했다. 일본을 가게 되면 꼭 자전거로 일본을 한 바퀴 돌 거라고 말했다. 그리고 11월에 가면 여행하기 딱 좋을 텐데, 왜 장마철일 때 일본을 가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그 질문엔 딱히 대답을 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여행을 미루게 된다면 흐지부지될 거 같아 두려웠던 게 내 진심이었다. 날씨가 안 좋을 걸 알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미루다가 없어졌던 일들이 너무 많았고, 그게 다 미련이 되어 남아있었으니까.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정상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그동안 많은 산행을 했지만, 정상에 오르자마자 내려갈 걱정이 들었던 건 이곳이 처음이었던 거 같다. 아마 불퉁한 내 마음의 지분이 컸던 거 같다. 그 상황을 좋게 받아들일 수도 있었겠지만 달리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럴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인솔자님이 봉화산의 여러 모습을 우리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은 느껴지지만, 나는 그걸 달갑게 받을 상황이 아니었던 거 같다. 아무리 좋은 의도와 마음이라도 상대에 대한 고려가 없다면 제대로 전달될 수 없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만약 좋은 마음과 의도로 진오빠를 일본으로 끌고 간다면 그건 반송될 수밖에 없는 마음이 분명했다. 상대의 상황에 대한 고려와 배려가 전혀 담겨있지 않으니 말이다. 이럴 땐 깨끗하게 물러서는 게 상대를 더 위하는 일이었다. 





정자에서 먹은 만두와 김밥



내려가는 길에 어느 정자 하나를 발견해서 자리를 깔고 앉았다. 진철오빠들과 민언니가 가방에 나누어 짊어지고 온 김밥과 만두를 꺼내어 먹었다. 항상 먹기 전엔 다들 덥고 힘들어서 입맛 없다고 하면서 막상 먹으면 잘 먹는다. 여기 있는 음식들을 남기지 않고 모두 다 잘 먹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나선 인솔자님이 전부터 말하던 삼행시 짓기 대회를 개최했다. 둘레길, 봉화산, 리추얼 중 하나를 선택해서 삼행시를 짓는 거였는데 모두 다 곧잘 했다. 감동, 재미, 웃음이 있는 대회였다. 1등은 막걸리를, 2등은 오이를, 3등은 토마토를 상으로 받았다. 참고로 1등은 환희언니, 2등은 다혜언니, 3등은 룸메친구였다. 막걸리와 토마토는 모두 다 맛있게 먹었는데 오이는 인기가 없어서 아무도 먹으려 들지 않았다. 결국, 이 오이는 다혜언니 가방에 있다가 스테이두루 사장님 손에 넘어가 다다음날 우리 조식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배를 채우고 내려오는 길엔 빠르게 걷는 팀과 조금 천천히 걷는 팀, 이렇게 두 개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우리가 있는 천천히 걷는 팀은 길을 중간에 잘못 들어서 조금 돌아가게 되었는데 그 덕에 꽃사슴 가족을 볼 수 있었다. 역시 모든 게 안 좋은 일은 있을 수 없는 거 같다. 험난하고 불만도 있었던 봄소풍이었지만 돌아보면 모든 게 안 좋았다고 절대 말할 순 없다. 아마 조금 더 나은 컨디션이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모든 불만을 일축하고 더 즐길 수 있었을 거 같다. 그때 당시의 상황과 내 상황의 궁합이 맞지 않아서 더 그랬던 거 같다. 이런 날도 있는 거지. 





오후_국가정원


순천만 국가정원



무려 4시간이 넘는 산행길에도 수영팸(지원언니, 혜진언니, 진철오빠들, 민언니)은 지치지도 않는지 도착하자마자 수영장으로 떠났다. 그래서 컨디션이 좋지 않은 다혜언니와 수영을 할 줄 모르는 나와 룸메, 환희 언니, 이렇게만 숙소에 남았다. 신기하게도 정말 죽을 것만 같이 피곤했었는데 숙소에 돌아오니 다시 엔도르핀이 마구 샘솟았다. 우리 숙소는 정말 홈 스위트 홈이었다. 당충전을 따로 하지 않아도, 에너지 음료를 마시지 않아도 우리 숙소만 들어오면 당이 오르고 에너지가 차올랐다. 아마 내 룸메친구는 공감을 할 거다. 그렇게 돌아와서 샤워까지 마치고 나니 정말 몸이 개운하고 가뿐해졌다. 원래 해가 조금 질 무렵에 가서 선선히 돌아볼 계획이었는데 환희언니가 4시 반 정도에 나가면 같이 갈 의향 있다고 하길래 바로 준비하고선 숙소를 나섰다. 우리도 숙소 밖으로 나서면서 방금까지 다 죽어가던 사람들 맞나, 하며 어이없어했다. 그러면서 맨날 잘만 나간다. 



우린 버스보단 온누리자전거를 애용했다. 도보로는 너무 멀고, 그렇다고 버스를 기다리자니 그 배차시간 맞추는 것도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아직 한창인 햇살을 뚫고선 자전거를 타고 국가정원으로 향했다. 나는 두 번째 방문이었지만 환희언니와 룸메는 첫 번째 방문이었다. 도착해선 세계 각국의 콘셉트로 만들어진 국가정원의 동쪽을 먼저 둘러보았다. 다혜언니가 추천해 준 프랑스 콘셉트 정원에 있는 카페에서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그곳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정말 좋은 장소에 외국인 관광객분들이 우산을 두고 저 뒤쪽 의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드시고 계셨다. 나는 "익스큐즈미 이 것 좀 치워도 될까요?"라고 정중히 묻고선 우산을 치우자 룸메와 환희언니는 어이없어했다. 나는 나름 세계공용어로 실례합니다라고 말하고선 어느 나라 분인지 모르겠으니까 그냥 한국말로 우산 좀 치우겠다고 말한 거였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어이없어할 만도 한 거 같았다. 그런 해프닝도 지나가고 나서 정원을 둘러보는데 오후 6시 무렵 가까이가 되니 보기 딱 좋은 날씨가 되었다. 날파리가 너무 많아 고생이긴 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둘러보면서 봉화산이 아니라 이곳을 함께 왔어도 참 좋았을 거 같다는 말을 했다. 그 여유롭고 한적한 분위기야 말로 우리가 느낀 순천의 이미지와 닮았기 때문이다. 





국가정원의 서쪽



동쪽을 대충 둘러보고 우린 서쪽으로 넘어왔다. 그 중간다리도 너무 잘 되어 있어서 우린 계속 순천이 이렇게 좋은 곳이 많은데 홍보를 못하는 것 같다며 말했다. 정말 다들 그 말을 한다. 순천은 정말 좋은 공간들이 많은데 홍보가 제대로 안된 거 같다고. 그렇게 넘어간 서쪽 정원은 동쪽과 달리 그냥 숲이었다. 동쪽이 조금 더 화려하고 정갈하게 가꾸어진, 콘셉트가 있는 테마 정원 같았다면 서쪽은 하나의 거대한 정원길 같았다. 동쪽보다 사람이 더 없어서였는지 이 맘 때즈음 날이 더 선선해져서였는지 우리 모두 서쪽 정원을 더 맘에 들어했다. 그래서 중간중간 놓인 벤치 중 하나에 자리 잡고 누워서 말없이 있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정적이었다. 그런 간만의 정적이 반가웠다. 돌이켜 생각해 볼수록, 이날 나는 정적이 필요했던 거 같다. 





저녁_강남숯불촌&노래방


강남숯불촌, 기억공장1945 전시



환희언니는 수영팸 사람들과 함께 풍미통닭에서 생맥을 마시러 갔고, 우린 다혜언니와 만나서 숙소 근처에 있는 '강남숯불촌'이라는 닭구이 전문점에 갔다. 서울에서 닭 특수부위 전문점은 가봤어도 이렇게 닭 통으로 나오는 곳은 처음이었다. 맛있을까,라는 고민은 하지도 않았다. 순천은 어느 곳이든 맛있으니까. 그런데 예외였던 건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정말로 친절했다는 점이다. 물이 떨어졌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새로운 물을 가져다주시지 않나, 젓가락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아무 말 없이 새로운 젓가락을 가져다주시지 않나. 여하튼 이렇게 친절한 곳은 처음이었다. 밑반찬도 너무 맛있어서 본 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호들갑을 떨면서 먹었더니 셋이서 한 마리 반을 겨우 먹었다. 원래 페이스라면 두 마리는 가뿐한데. 그렇게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돌아오는 길에 룸메가 가보고 싶다던 전시가 눈에 띄었다. 잘되었다 싶어 얼른 들어갔다. 김지원 작가님의 전시였다. 작품 배경은 모두 코스타리카라는 곳이었는데 이곳을 가게 된 경위가 특이했다. 어떤 곳에서 만난 어느 분이 그동안 가본 모든 곳 중 코스타리카가 너무 좋았다고 예찬하자 '대체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라는 궁금증에 대뜸 가게 된 거라고 했다. 그렇게 가게 된 코스타리카라니. 그런 낭만 같은 우연이 내게도 찾아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마음을 열어놓고 있으면 언젠간 찾아올 거라 생각한다. 



그렇게 전시까지 알차게 보고 나서 숙소로 빠르게 걸어갔다. 오후 10시에 일본 가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논의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비행기표를 끊는 게 오늘의 목표였다. 가는 길에 숙소 앞 코인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서 룸메와 언니를 먼저 보냈다. 그런데 슈퍼를 들러서 물과 간식을 사고 나니 시간이 너무 애매해서 코인 노래방을 포기하고 일단 숙소로 들어갔다. 그렇게 숙소로 와보니 오늘 10시에 모이기로 했던 사람들 포함, 다수의 사람들이 이미 코인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천천히 와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4-50분가량 타이머를 켜놓고 ppt작업을 하다 가기로 했다. 그렇게 열심히 ppt를 만들고 나서 가려고 준비를 하고 있을 때에 숙소에서 벌레가 나타났다. 원래 정말 깨끗한 숙소인데 요 며칠간 내리 하수도 공사를 한다고 맨홀을 다 까놓은 것과  근래 우리가 매번 창문과 문을 열고 다닌 게 화근이었다. 사장님께서 오셔서 멋지게 퇴치해 주시고 나가셨다. 그렇게 우린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서 노래방으로 갔다. 양치만 겨우 한터라 고기 냄새 풀풀 풍기는 채로 코인 노래방으로 들어갔다. 거기엔 이미 풍미통닭의 치킨향과 맥주향을 풀풀 풍기는 사람들이 저세상 텐션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텐션에 살짝 체했다. 참고로, 이 날 환희언니는 정식으로 레베카 공연을 했다. 





숙소 앞 코인 노래방 



상황이 맞지 않았던 거 같다. 원래라면 그 분위기에 장단을 맞출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써야 할 글이라던가 만들어야 할 ppt라던가, 일본 여행 준비라던가, 할 일이 산재해 있는 상황이었기에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서 중간에 슬쩍 나와 조용히 노래 세 곡을 부르고 다시 들어갔다. 아마 나는 이 날 조금은 차분하고 정적인 무드가 필요했던 거 같다. 그냥 사람들에게 먼저 가겠다고 하고 나갔으면 됐을 텐데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던 거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조금 미련한 선택이었던 거 같다. 그렇게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나서 난 다시 노래방에 돌아와 혼자 세 곡을 더 불렀다. 



아무래도, 이 날은 계속 처지는 날이었던 거 같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나오는 길에 문득 울고 싶어졌다. 눈물이 나와서 울었다기 보단 울고 싶어서 울었다고 보는 게 더 정확했다. 뭐, 내 마음과 달리 진행되는 상황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도 있고, 이렇게 순천에서 있는 일상이 마무리되어가고 있어서 아쉬운 마음도 있고, 지금 보이는 풍경과도 작별해야 한다는 게 실감 나서였던 것도 있고, 그렇게 일상에 돌아가는 게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아서였기도 했고, 그런 복합적인 마음들이 한데 엉켜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시원하게 울어버리면 괜찮아질 거 같아서 새벽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혼자 편의점 옆 계단에 앉아 울었다. 그러다 약속한 시간이 되어 숙소 위 테라스로 올라갔다. 제대로 된 감정의 갈무리를 하지 못한 채 올라간 테라스에선 사람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는 나만의 시간을 더 보내다 오는 거였는데.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러면서 내 감정만 보고 있었는데. 내 표정이 너무 안 좋았는지 테라스에 있던 사람들이 걱정을 했다. 또 걱정을 받으니 되려 미안하기도 하고, 괜스레 더 눈물이 나서 울어버렸다. 아마 더 갈무리하고 들어갔으면 울진 않았을 텐데. 마지막 날도 아니고 이런 어정쩡한 날에 우는 걸 들키다니. 내가 우니까 환희언니도 울었다. 덕에 눈물이 멈췄다. 여하튼 그렇게 약간의 눈물을 흘리고 나서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이번 일본 여행은 나와 룸메친구, 환희언니, 철오빠만 가게 되었다. 우린 아무 생각 없이 가장 싼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오전 7시 30분 비행기였다. 룸메가 "아침에 차 있어?" 라며 상식적인 의문을 제기했지만 나는 눈물을 흘린 터라 꽤 몽롱한 상태였고, 환희언니와 철오빠는 술을 마신 상태였기 때문에 묵살당했다. 그렇게 이 날, 일본여행 가는 사람들끼리의 톡방도 만들어졌다. 그나저나 나는 진오빠가 일본여행 안 가겠다고 해서 미련 없이 놔줬는데 어느 순간 보니 이 톡방에 진오빠가 들어와 있었다. 아무래도 더 아쉬운 건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었나보다. 



이 날 내가 배운 건 아무리 좋은 마음과 의도, 상황과 분위기,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그걸 받아들이는 나의 상황에 따라 확연히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상대에게 내 좋은 마음과 의도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선 상대에 대한 배려가 동반돼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난 이 날의 모든 걸 그대로 전해받을 상태가 아니었던 거 같다. 이 날의 난, 조금 더 혼자가 되었어야 하는 날이었다. 돌이켜보니 그렇다. 





슬리퍼로 벌레 퇴치하는 진오빠(혹은 진언니)의 모습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하루가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숙소로 돌아오니 그때는 바야흐로 새벽 1시 정도. 우리 둘 다 씻고 나와서 팩을 붙이고 있었고, 진철오빠들은 민언니한테 피부 마사지를 받고 있었던 때였다. 이 날이 정말 무슨 날이었는지 새로운 벌레가 또다시 우리의 숙소에 등장했다. 우리가 해결보기엔 너무 커서 아래층에 있는 진오빠에게 연락을 취했다. 오빠는 꽤나 귀찮은 표정으로 와서 꽤나 무서워하면서 벌레를 잡아줬다. 아주 고마웠다. 그래서 숙소에 있던 초콜릿과자 두 개랑 팩 두 개를 챙겨주고, 그 김에 숙소 구경도  한 번 시켜준 후에 배웅해서 보냈다. 너무 고마워서 다음날에 커피도 사줬다. 맥시멈 3000원이라 했는데 정말 3000원짜리를 골라서 놀랐다. 그렇게 평소처럼 다사다난하고 시끌벅쩍했던 하루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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