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9일 수 : 삼림욕장, 선셋요가, 그리고 나눌터
앞 서 먼저 휴양림을 갔던 다른 사람들이 너무 좋았다며 추천을 하길래 그곳에 못 간 나와 룸메, 혜진언니, 지원언니, 이렇게 넷이서 렌터카를 타고 갔다 오기로 했다. 숲 해설가님과 함께 숲길을 걸으면서 느꼈던 건데 난 누군가의 설명을 듣는 걸 좋아하지 않는 거 같다. 우선, 해설가님도 놀랄 정도로 날파리가 많았고, 날이 그때보다 더 무더워진 탓도 있는 거 같았다. 무엇보다 숲에 있는 걸 느끼라면서 솔방울을 새총으로 날리라는 체험이 포함되어 있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생각 없이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도 있는데, 내가 날린 솔방울에 지나가던 무당벌레 머리라도 맞으면? 갑자기 이런 쓸데없이 진지한 고민이 생겨서 제대로 솔방울을 날릴 수 없었다.
천천히 걸으면서 숲에서 지내고 있는 생물들을 관찰하고 나서 다시 내려왔다. 그러고선 선생님이 준비해 주신 다과와 차를 음미했다. 제철에 나는 음식들로만 만든 다과였다. 크래커 위에 요구르트와 오디, 그리고 더덕 같은 뿌리를 하나 얹은 간소하지만 계절이 담뿍 담겨있었다. 요새 난, 제철에 나는 식재료를 챙겨 먹는 게 좋아졌다. 계절을 만끽하는 가장 간단하면서 확실한 방법인 거 같다. 희귀한 재료로 여러 공정이나 절차를 거친 음식보단 제철에 난 재료로 심플하게 완성된 음식들이 더 좋다. 자연과 나 사이 놓인 것들을 최소한으로 두는 삶의 방식이 좋아졌다. 아마 숲 해설가님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 같다. 하여튼 간, 나는 누군가의 해설을 듣기보단 그냥 내가 보고 듣고 직접 알게 되는 편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이 날 해설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뻥튀기도 주셨다. 차 안에서 언니들이랑 나누어 먹었다. 나는 한 개가 아니라 반절만 달라고 지원언니에게 부탁했으나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언니는 "아니, 다 먹어. 다 먹을 수 있어"라고 말했다. 난 정말 다 먹을 수 있었다.
차 렌트 시간이 조금 남아서 그동안 가보고 싶어 했던 조례동의 빵집을 들리기로 했다. 이곳은 무려 스테이 두루 사장님의 추천을 받은 곳이었다. 확실히 조례동은 신도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동네였다. 너무 오랜만에 이런 세련된 빵집을 들어간 우리 모두는 눈이 돌아갔다. 빵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우리 룸메친구도 빵을 무려 세 개나 골랐다. 빵집을 들어서니 자연스레 빵을 좋아한다던 다혜언니가 떠올랐다. 지원언니도 나와 마찬가지였는지 숙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서 사갈 빵이 없는지 물었다. 역시 지원언니는 참 섬세한 사람이다. 나는 고심 끝에 밤 치즈 치아바타를 골랐는데 생각보다 너무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룸메 친구가 고른 퀸아망과 초코식빵도 먹어봤는데 둘 다 너무 맛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후기도 들어보니 다들 맛있었다는 걸로 보아 정말 빵 맛집이 맞았나 보다.
이 날은 각자 일정이 있어서 점심을 각자 먹기로 했다. 숙소 앞 달성식당에 돈을 걸어놓고, 대충 점심시간대에 맞춰서 일인 만원 정도의 메뉴를 먹는 거로 합의를 보았다. 원래는 중식집에 가기로 한 거였으나 우리 사정을 고려해 대표님이 일정을 변경해 주셨다. 정말 감사하다. 나는 계속 먹고 싶어 했던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우린 도착하자마자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달성식당으로 가서 점심식사를 했다. 순두부백반은 특이하게도 된장 베이스의 구수한 맛이었다. 결코 맛있다고 할 맛은 아니었으나 밑반찬과 뚝배기가 올라간 커다란 은쟁반을 들고 나르던 주인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니 별로라는 말이 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김치찌개를 고른 언니들은 간이 세서 밥을 한 공기 다 먹게 되었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음식이 간간한 편인 거 같았다.
점심 먹은 이후로 계속 내일 있을 발표를 위해 ppt작업을 했다. 그러다 선셋요가를 하기 위해 대표님의 캠핑카를 타고 국가정원으로 갔다. 워케이션 센터에서 열리는 요가 크래스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철오빠는 대전 갔고, 진오빠는 친구 만나고 있고, 민언니는 드라이브 떠났고, 다혜언니는 절에 갔다가 숙소에서 쉬고 있었다. 그래서 요가 클래스는 나와 룸메친구, 혜진언니, 지원언니, 환희언니, 대표님, 이렇게 여섯 명만 듣게 되었다. 말하고 나니 306호와 308호 사는 사람들만 다 모였다. 원래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이날은 우리 말고 단체가 또 있어서 의도치 않게 붐비는 날이었다고 했다. 아쉽게도 요가하는 사진은 없지만 약 3-40분간 요가를 하며 굳은 몸을 풀었다. 날파리가 너무 많아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함께 야외에서 햇살을 받으며 요가를 하니 기분이 색달랐다. 물론, 중간에 언제 끝나지,라는 생각도 들긴 했다. 전체적으로 무료라기엔 너무 좋은 클래스였던 거 같다. 순천엔 정말 좋은 활동들이 찾아보면 많다. 그러니 우리가 순천을 좋아할 수밖에. 순천은 정말 시간을 들여서 찬찬히 들여볼수록 더 좋은 곳인 거 같다. 이렇게 요가를 끝마치고 어제 못 다 본 국가정원을 마저 돌아보았다. 약 한 시간 동안 그렇게 돌아다니다 보니 아 기다리고 고 기다리던 '나눌터'에 갈 시간이 다 되었다.
나눌터에 도착하니 웨이팅이 있었다. 그래서 대표님은 같이 드시질 못하고 먼저 떠나셨다. 하지만 그 덕에 버스 정류장을 잘못 내린 다혜언니가 시간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다혜언니는 여기 버스정류장 사이 거리가 너무 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언니는 오늘 따로 먹는다는 말을 전해줬다. 테이블링 대기를 걸고 나서 30분이 지난 끝에, 우리 여섯 명은 나눌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곳은 내가 순천에 오기 전부터 가고 싶어 했던 곳이자, 룸메가 가고 싶어서 네이버 지도에 저장을 한 곳이자, 순천에 사는 현지분들이 모두 추천했던 곳이자, 먼저 여기 와봤던 언니들이 또 오고 싶어 했던 곳이었다. 정말 기대하며 갔던 순천의 맛집이었다. 가격이 조금 세긴 했지만 모든 메뉴가 다 맛있었다. 표고탕수, 수육, 도토리 전, 도토리임자탕, 도토리묵무침, 도토리묵비빔밥, 도토리탕수 모두 다 좋았다. 식전에 나오는 샐러드와 메밀차, 식후에 나오는 수정과까지도 완벽했다. 그곳에 일하는 점원분들의 옷도 굉장히 전통적이어서 확실히 대접받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비싼 가격엔 그 복장비도 포함되어 있는 듯했다. 돌아오는 길은 마땅한 교통수단도 없고, 소화도 시킬 겸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그런데 온누리 자전거가 몇 대 남지 않아서 두 팀으로 나눠져서 네 명은 이쪽 대여소로, 두 명은 저쪽 대여소로 갔다. 다혜언니와 혜진언니가 조금 더 먼 대여소로 자진해서 가준 덕에 편히 올 수 있었다. 좋아할 수밖에 없는 언니들이다.
지원언니, 환희언니, 룸메친구, 나, 이렇게 네 명이서 주르륵 자전거를 탔다. 정말 자매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었다. 랜턴이 멀쩡한 한 대가 앞장서고, 랜턴이 고장 난 자전거 세 대가 그 뒤를 따랐다. 그 상황이 너무 웃기고 좋았다. 깜깜해진 동천 길을 달려왔던 그때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채 20분도 안 되는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형제자매가 없어서 항상 꿈만 꿔왔는데 그게 실현된 거 같았기 때문이다. 내 인생에 없을 거라며 단념했던 일이 갑작스레 실현되면 이런 기분이구나. 그나저나, 그동안 자전거를 얼마나 탄 건지, 룸메친구 자전거 실력이 월등히 늘어 있었다. 뿌듯했다. 그 실력 향상엔 내 지분이 컸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고 나서도 우리의 하루는 아직 저물지 않았다. 환희언니가 일본 여행에 대해 논의도 할 겸 파랑새 창고로 오라고 말하고선 파랑새창고로 홀연히 떠났기 때문이었다. 우리도 별 다른 수 없이 파랑새 창고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정말 피곤해서 거기까지 가고 싶지 않았으나 우린 아무 힘도 없었다. 우리 둘은 환희언니한테 동시에 달려들어도 분명 진다. 여하튼 그래서 파랑새창고로 가니 이미 철오빠와 민언니, 그리고 환희언니가 내일 있을 발표를 위해 ppt를 만들고 있었다. 얼마 안 있어서 진오빠도 에너지 드링크를 손에 쥐고선 파랑새창고로 들어왔다.
이때 사진을 안 찍은 게 후회가 된다. 과제 제출 하루 전 과방의 풍경과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환희언니는 카메라를 챙겨 와선 영상을 찍고 있었고, 철오빠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고, 진오빠는 에너지 음료를 마시면서 ppt를 만들고 있었다. 민언니만 별 다른 모션 없이 집중해서 ppt를 만들고 있었다. 인증샷, 수다, 술, 에너지 드링크, 이거 다 과방에서 과제할 때 보였던 것들이다. 그래서 웃겼다. 일본 여행 논의를 빠르게 끝마치고 나선 나와 룸메친구도 ppt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틈틈이 만들어 놓기도 했고, 너무 피곤했기도 해서 먼저 들어가 보겠다고 한 후 먼저 자리를 빠져나왔다. 이제야 이 날 하루가 끝이 났다.
마지막 주가 되니 밤이 더욱 길어졌다. 내 머릿속엔 리추얼보단 지금 있는 이 사람들과 더 많은 추억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리고 이건 아마 다들 마찬가지였던 거 같다. 아무리 낮의 시간이 고되고, 할 일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일단 밤이 되면 모이고 봤던 걸 보면. 돌이켜 생각해 보니, 각자의 시간을 주기 위해 단체활동을 줄인 대표님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우린 지겹도록 매일 붙어 있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