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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물 Jul 11. 2024

DAY26-27.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이 아니다.

6월 21-22 금토 : 마지막 동천 러닝과 아쉬운 작별 인사 





6월 21일 금요일 기록 


리추얼북



이 날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래서 이전처럼 오전, 오후, 밤으로 나누어 기록할 수 없어서 이틀 간의 기록을 묶어서 올리려 한다. 사장님께서 체크아웃 시간 상관없이 편하게 있다가 나가면 된다고는 했지만 모두들 내일 오전 중으로, 늦어도 이른 오후 중으로 집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래서 오늘이 정말 마지막 날이었다. 아침부터 뭘 해도 신나지 않고 기분이 싱숭생숭 이상했다. 어젯밤엔 오늘 아침에 러닝을 뛸 거라 호언장담했으나 조식을 먹는 것조차 불가능할 정도로 피곤했다. 아침에 겨우 조식 조금 먹고선 다 같이 어제 치우다 남은 뒷정리를 하기 위해 테라스로 올라갔다. 나는 지원언니가 마지막 날이고, 어제 설거지를 다 했으니 오늘 치우는 건 하지 말고 숙소 가서 쉬라고 했으나 지원언니는 계속 뒷정리를 했다. 나는 말로도, 힘으로도 지원언니를 이길 수 없어서 단념했다. 



다 치우고 나선 뭐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조식을 잔뜩 먹은 진철오빠들은 무슨 역사관 해설사 분과 점심약속이 있다며 밖으로 나간 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나는 아마 점심을 먹었던가? 아니다. 환희언니와 아랫장에 가서 식혜를 사 오고, 칠게튀김을 사 오고, 오천동에 가서 꽈배기도 사 왔다. 오후엔 지원언니, 혜진언니, 다혜언니, 룸메친구, 대표님, 숙소 사장님까지 와인클래스를 듣기로 되어 있어서 나는 환희언니와 함께 '룩앳마이리틀홈'에 갔다. 여긴 전에 내가 간 중앙동 카페였는데 귀여운 강아지도 있고, 메뉴도 맛있고, 분위기도 좋아서 환희언니에게 엄청 추천했던 곳이었다. 환희언니는 자전거로 거침없이 달려갔다. 길을 한 번 보고 다 외워버리는 모습에 살짝 반했다. 그렇게 오붓한 둘 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돌아올 때가 되자 와인클래스를 열심히 듣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숙소로 올라와서 킵해놓은 조식을 먹고 있었는데 환희언니가 그 모습을 보더니 정말 잘 먹는다며 또 칭찬을 해줬다. 



그렇게 저녁식사 시간이 다가왔다. 원래라면 행복식당에 가서 다 같이 저녁을 먹기로 했으나 와인클래스를 하며 이것저것 많이 먹은 다섯 명의 사람들은 저녁식사를 거부했다. 내가 밥을 먹고 돌아오면 지원언니가 떠나고 없을 거라기에 지원언니에게 편지를 전해주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진철오빠들과 인솔자님, 나, 환희언니, 민언니, 혜진언니, 이렇게만 가서 조촐한 식사를 마쳤다. 평소보다 조용한 식사였다. 나는 진철오빠들과 같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었는데 오빠들이 점심으로 피자와 파스타를 먹었다고 이야기해 줬다. 진오빠가 피자 세 조각 먹은 거 까지 알게 되었다. 새벽까지 술과 안주를 먹고 조식도 든든히 먹고선 바로 점심에 양식을 먹으려 하니 잘 안 들어가더라는 말도 해줬다. 그래서 수영까지 갔다 왔다고 했다. 민언니랑 진철오빠들이랑 말없이 수영만 하고 왔다고 했다. 밥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코인노래방을 가려다가 떠나고 있는 지원언니를 발견했다. 그래서 마지막 배웅을 해줄 수 있었다.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룸메친구와 마지막 코인노래방을 즐겼다. 오늘은 2000원어치나 불렀다. 





룸메친구의 본격적인 첫 러닝



잠시 쉬다가 오후 9시에 로비에 모였다. 마지막으로 러닝을 뛰기 위해서였다. 결국, 진오빠는 몸이 안 좋아 러닝에 불참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제오늘 많이 무리한 듯싶었다. 마침 혜진언니도 떠나려던 차여서 조금 기다렸다가 혜진언니까지 배웅해 주고 러닝을 하러 갔다. 원래는 차를 타고 팔마운동장에 가서 트랙을 뛰는 거였는데 시간 상의 문제로 동천 러닝으로 간소화되었다. 나는 오히려 좋았다. 밤에 뛰는 걸 좋아하는데 순천에 와선 밤에 뛰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밤마다 사람들이 모여서 재밌는 걸 하니까 거길 빠질 순 없고, 러닝은 뛰고 싶으니까 아침에 러닝을 했던 거다. 하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나의 욕심 때문에 그동안 밤러닝을 못했던 거였다. 하지만 마지막 날 이렇게 밤에 러닝을 뛰게 되었으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특히 나는 순천한달살기 공식 러너인 철오빠와 함께 뛰어본 적 없었는데,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같이 뛸 수 있게 되어 좋았다. 철오빠가 비공식적으로 운영하는 운동 프로그램에 참석하게 되어 영광이었다. 



항상 혼자 뛰다가 같이 뛰니 기분이 색달랐다. 특히 다 같이 동적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이 너무 웃겼다. 물론, 같이 뛰니 더 힘든 부분도 있었다. 나는 노래를 들으면서 정신줄을 반쯤 놓고 뛰는 편인데 같이 뛰어야 하니 정신줄을 다 잡고 뛰어야 해서 숨찬 게 잘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는 혼자 뛸 때 내가 원할 때마다 중간중간 걸었는데 같이 뛰니 멈춤 없이 계속 뛰어야 해서 힘든 면도 있었다. 다리를 돌아오기 전까지는 룸메친구와 천천히 달리다가 돌고 나선 내 마음대로 뛰었다. 룸메 친구도 다 큰 성인이니까 돌아오는 길 정돈 알겠지. 그렇게 한참 달리다 보니 앞서 갔던 환희언니와 대표님을 마주쳤다. 나는 원래 빠르게 달리며 러닝을 마친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랬는데 철오빠가 뒤를 돌아 나를 보고선 더 빨리 뛰어갔다. 조금 얄미웠다.  다들 룸메친구를 기다릴 때, 나는 먼저 숙소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화장실은 하나고, 씻을 사람은 둘 이니까. 먼저 가서 씻고 있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이건 매정한 게 아니라 똑똑한 거다. 룸메친구도 어엿한 성인이다. 



그렇게 러닝을 끝내고, 야식 주문까지 마친 후 테라스에 모였다. 그런데 맞은편 주민 분이 조용히 하라고 하시길래 자리를 옮겨서 파랑새창고로 갔다. 민언니는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해서, 그리고 다혜언니는 원래 일찍 자는 사람이라 얼마 안 있다가 숙소로 다시 갔다. 그렇게 대표님과 진철오빠들, 환희언니, 나, 룸메친구만 남았다. 두 명 떠났다고 이렇게 허전하다니. 이 날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는데 자세한 이야기들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리가 어쩌다 일본여행을 같이 가게 되었는지, 왜 진오빠는 같이 가지 않는지, 이런 이야기를 했던 거 같다. 그러다가 다음에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고, 그리고 대표님도 p라서 아직 세계여행의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고 말한 것까지 기억한다. 그러다 세계여행 중인 대표님이 있는 곳으로 우리가 놀러 가도 재밌을 거 같다는 그런 이야기를 했던 거 같다. 그리고 그렇게 아쉬운 저녁이 마무리되었던 거 같다.  





6월 22일 토요일 기록


떠나는 다혜언니


조식을 먹고 나서 가장 먼저 떠난 건 나의 첫 마니또이자, 나에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줬던 다혜언니였다. 언니는 우리가 천사라고 부를 정도로 정말 선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언니도 스스로 선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천사라는 그 말이 언니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정말 부담이 되었다고 하니 미안했다. 하지만 언니. 천사 중엔 그래도 조금 나쁜 애도 있을 거야. 천사들도 각자 성격이란 게 있을 텐데 어떻게 하나같이 다 착하기만 하겠어. 그래도 한 달 동안 아무리 봐도 언니는 첫인상 그대로 정말 곱고 다정한 사람이었던 거 같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정말 잘 어울렸다. 나와 룸메가 고른 머리끈도 잘 써주어서 너무 뿌듯했다. 그리고 나와 룸메친구 둘 다 장성한 성인인데도 막냉이들이라 부르면서 귀여워해줘서 고마웠다. 이후 남편분과 같이 가는 몽골여행도 건강하고 재밌게 즐기다 왔으면 좋겠다. 그러고 나서 파주에도 초대해 주었으면...





떠나는 세진오빠


그다음으로 간 건 진오빠였다. 오후 11시가 조금 넘어갈 즈음, 우리가 숙소에서 한창 짐 싸고 있을 때 진오빠가 이제 갈 거라며 우리 방으로 찾아왔다. 로비까지 안 나와도 된다고 했지만 그럴 순 없지. 생각해 보면 한참 어린 동생이 말 길다고 맨날 놀리는데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웃어넘겼던 것도 진오빠여서 가능했던 일인 듯싶다. 돌이켜보면 진오빠는 여러 상대 사이의 입장을 파악하고 조율하는 걸 잘했던 거 같다. 역시 통일부 퇴사자답다. 어느 날인지 모르겠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적이 있었다. 진오빠는 진짜 말을 진라면 순한 맛처럼 한다고. 단점이 있으면 장점도 있는 법. 말에 미사여구가 많아 길어지지만 그 덕에 말이 순해지고 오해의 소지가 사라지는 거 같다. 진짜 그만 놀려야겠다. 





떠나는 민언니


그다음으로 간 건 당황스럽게도 민 언니였다. 원래는 오늘 아침 일찍 친구 집에 간다며 떠날 예정이었는데 늦잠을 자서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보다 늦게 갈 예정이었는데 어쩌다 차가 생겨서 진오빠 다음 순으로 가게 되었다. 그래서 편지를 전해주지 못하고 보낼 수밖에 없었다. 민언니와 나 사이 교집합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현저히 적었던 탓에 뭔가 제대로 말을 해보지 못해 아쉬웠다. 민언니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여러 고민들도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게 느껴졌다. 내가 캠핑장에서 짓궂은 장난에 부담스러워하고 있을 때, 나한테 부담스럽냐며 걱정해 준 것도 민언니였다. 그 외에, 알음알음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들어봐도 실제로 민언니는 그런 사람인 듯싶었다. 그런데 내가 본 민언니는 둥그런 수염을 그리고 호탕하게 웃는 모습, 멍 때리며 조식을 먹는 모습, 힘 자랑 하는 모습, 노래 부르는 모습, 빨간색 이야기를 하는 모습밖에 못 봐서 아쉬웠다. 하여튼 간에, 이런저런 일로 바쁘게 사는 민언니 파이팅. 





아직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세철오빠


환희언니는 철오빠의 차를 타고 중간까지 이동하기로 해서 나와 룸메, 철오빠와 환희언니. 이렇게만 숙소에 남아있었다. 우린 우리가 마지막으로 갈 줄 알았는데 철오빠가 당근마켓으로 신발장까지 팔고 가느라 우리 먼저 떠나게 되었다. 환희언니는 어이없어하면서 빨리 출발하기 위해 철오빠가 짐을 싸는 걸 돕고 있었다. 정말 끝까지 재밌는 언니 오빠들이다. 그러다 문득 여기 있는 사람들과 같이 며칠 후에 같이 일본 여행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든든하지만 손은 가볍게 오는 환희언니와 덜 든든하지만 필요한 물건들을 바리바리 싸 오는 철오빠와 함께 여행을 가면 길에서 굶어 죽을 일은 없을 듯했다. 사실 나는 불평을 할 입장이 아니었다. 단연코 여행에서 가장 쓸모없는 건 나일게 분명했다. 내가 아는 일본어는 하이, 쓰미마셍, 아리가또, 이라세이마솅, 아노뿐이다. 


한 달 동안 지내면서 철오빠는 나와 비슷한 면이 너무 많아 놀라웠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인생의 자세한 내막 말고 형태만을 볼 때에 철오빠가 내 인생과 가장 비슷할 거라고 이야기했을 정도였다. 물론, 철오빠는 조금 의아한 눈치였지만. 유당불내증이 있지만 라떼를 마시고, 술이 몸에 안 받지만 술을 거의 매일 마시고, 30km가 넘는 거리를 뛰고, 옷은 안 챙겨 왔지만 물안경과 조명과 신발은 챙겨 오는, 독특한 행동을 하는 철오빠 덕분에 한 달 동안 모두 많이 웃었던 거 같다. 그렇게 독특한 사람이라서, 철오빠가 '세상의 방해로부터 나를 지키는 힘'이라는 말에 꽂힌 게 이해가 되었다. 나도 그렇게 나만의 독특함을 잃지 않고 싶다. 내가 오빠의 나이를 지나 세상 하직할 때까지. 철오빠도 그랬으면 좋겠다. 





철오빠 때문에 못 떠나고 있는 환희언니


환희언니의 마지막 사진이 마땅한 게 없어서 이날 오전의 사진으로 대체해 본다. 언니는 정말 유쾌한 사람이라 언니가 있는 곳은 언제나 더 분위기가 밝아진다. 어떤 포인트에서 나를 귀엽다고 하는지는 알겠지만 그게 왜 귀여운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래도 한 달 동안 귀여워해줘서 고맙다. 매번 숙소에 카드키를 놓고 오는 것도, 카메라를 순천까지 가지고 와선 파랑새창고에서만 카메라를 찍는 것도, 연기를 하며 레베카를 부르는 것도, 잘 우는 것도, 감성적인 글을 쓰는 것도, 모두 첫인상과 의외인 면모들이라 알아갈수록 언니가 더 좋아진 거 같았다. 그리고 한 달 살기를 했던 모든 사람들 중 환희언니가 가장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멋지다. 한편으론, 환희언니와 같이 여행을 가고 싶지 않아 하는 남동생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아무래도 나는 동의할 수 없는 내 귀여움 덕에 목숨을 몇 번 건진 거 같은데 과연 남동생분은 귀여우실까? 그래서 목숨을 건질 수 있을까? 의문이다. 





우리 둘의 홈 스윗 홈, 306호


정든 숙소와도 마지막 작별인사를 했다. 정말 우리 둘만의 작은 기숙사처럼 아기자기 요모조모 꾸몄던 종이들을 하나하나 떼놓고, 모든 짐들을 다 싸고 나니 처음 이 숙소를 봤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때 306호가 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장 구석에 있는 것도 그랬고, 여러모로 별로였다. 그런데 지내다 보니 우리 방만큼 좋은 곳이 없었다. 가장 구석에 있어 창고에서 물건을 꺼내오기도 쉬웠고, 창문도 두 개나 있어서 환기도 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좀 더 넓어 보였다. 우리 둘의 짐이 한 달 살기를 했던 참가자 중 가장 적은 편에 속한 덕분이었던 것도 있겠지만. 그리고 둘 다 깔끔한 편이고, 둘 다 차 같은 것도 좋아하고, 다른 취향들이 잘 맞아서 공용물품들을 쇼핑한 것도 좋았다. 그래서 정말 한 달 동안 우리 집이 되었다. 우린 바깥활동을 마치고 올 때마다 '정말 홈 스위트 홈이다' '집이다' 같은 말들을 자주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쾌적한 온도, 기온, 습도, 조명, 모든 게 다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우리 방에 놀러 온 다혜언니도 우리 방이 쾌적하다며 정말 좋아했다. 다음에 스테이두루에 온다면 나는 꼭 다시 이 방에 다시 묵고 싶다. 그때엔 누구와 함께일까, 그리고 나는 어떤 모습일까? 





내가 찍어준 룸메친구


마지막 헤어짐은 귀여운 룸메친구가 장식했다. 이틀밤만 자면 다시 볼 얼굴이지만 그래도 이별은 이별이라 퍽 아쉬웠다. 처음 룸메친구를 볼 때엔 저런 MZ친구와 못 친해지겠는데,라고 생각했는데 제일 먼저 친해져 버렸다. 심지어 꽤나 쿵짝이 잘 맞아서 한 달 동안 정말 많이 편해졌다. 둘이 챙겨 온 건 똑같은 이유로 챙겨 와서 두 개가 되고, 둘이 안 챙겨 온 건 똑같은 이유로 안 챙겨 와서 제로가 되었던, 그 정도로 잘 맞았던 룸메친구였다. 심지어 나는 햇반만 챙겨 오고, 룸메친구는 햇반에 같이 들어있는 소스만 챙겨 와서 웃었던 적도 있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리지만, 순천에서 나이는 숫자일 뿐이었어서 친구 같았던 룸메친구였다. 내 룸메가 룸메친구여서 한 달 동안 더 잘 지낼 수 있었던 거 같다. 참, 다행인 일이다. 아침이면 내가 부산스레 나갈 준비를 해도 잠귀가 어두워 깨지 않아서 좋았고, 외출 후 바로 씻는 걸 선호하지 않아서도 좋았다. 차를 좋아해서, 산책을 좋아해서, 내가 어디 가자 하면 잘 따라와서, 함께인 게 즐거웠다. 상대와 친해져도 편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내가 예외적으로 빠르게 친해지고 편해진 사람이었다. 이보다 더 룸메친구가 편해질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일이었다. 일본여행을 갔다 오니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더 가까워져 버렸다.





룸메친구가 찍어준 나


순천에서의 한 달 동안 내가 원래 이곳으로 왔던 목적을 다 이루었고, 되찾고자 했던 내 원래 모습도 찾았고, 없애고 싶던 여러 안 좋은 강박들과 습관들도 없앴다. 매일 아침이면 다가올 하루의 설렘에 눈을 떴다. 온 하루를 최대한 느끼면서 살고선 만족감과 아쉬움에 잠에 들었다. 무기력과 부정적인 감정들은 모두 그 극점에 있는 것들로 바뀌었고, 내가 좋아했던 예전의 내 모습을 되찾았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현재의 나에 대해 좀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달 동안 좋은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서 함께 지내는 데 있어서 필요한 여러 배려들과 생각들도 배웠다. 불필요한 강박도, 쓸데없이 예민하게 구는 것도, 그러면서 스트레스받는 일도 모두 사라졌다. 모두 연기처럼 사라졌다. 내겐 이 모든 게 정말 마법 같은 일이라서, 마치 이 한 달이 한 여름의 꿈같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님이 내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면 지금 이렇게 바뀐 것들을 계속 유지할 건지. 적어도 이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관성처럼 되돌아가진 않을 거 같다. 나에겐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생겨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쉽게 무기력해질 수 없게 되었다. 다시 만날 그날,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니 말이다. 



한 달 동안 '리추얼'에 대해서도 알 게 되었다. 이 단어를 알기 전과 후는 많이 달라질 거란 예감이 든다. 실제로 내가 나만의 리추얼을 얼마나 꾸준히 지속하는지, 안 하는지와 관계없이. 그냥 이런 게 있다는 걸 안다는 사실만으로 많은 게 달라질 수 있을 거 같다. 리추얼에 대한 설명 중에 이런 게 있었다. '일상의 모든 것이 무너져서 회복 불가능해 보여도 그동안 해왔던 자신만의 리추얼활동이 계속된다면 모든 게 무너진 게 아니고 다시 회복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러니까, 리추얼은 일상의 완전한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 역할을 해줄 수도 있다는 게 요점이었다. 사실 내가 리추얼을 한다 해도 그 리추얼이 그렇게 큰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순천에서의 한 달 동안의 추억이 그 역할을 해줄 거란 예감이 든다. 평생에 힘든 일도, 주저앉고 싶은 일도, 사람에 상처받는 일도, 세상이 미울 일도 많겠지만 그때마다 이 한 달의 추억이 내게 다시 용기를 북돋아 줄 것 같다. 이 한 달이란 시간 안에 정말 좋은 일들과, 좋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 세상에 절대적인 완벽은 없다고 하더라도, 이 한 달은 내게 있어선 완벽한 날들이었다. 문득 궁금해진다. 다른 8명의 사람들은 이 한 달을 각자 어떻게 추억하고 있을까? 그 안에서 난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 나는 욕심이 많으니까, 다들 나만큼이나 좋은 시간이었길 바라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길 바라본다. 



원래 더 빨리 마쳤어야 했는데 빠트린 일들이 계속 생각나서 덧붙이다가 늦어버렸다. 내 욕심 탓이다. 이젠 정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다. 그럼, 안녕이 끝인사가 아니라 첫인사가 될 때까지 잘 지내고 있기로.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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