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일 목 : 리추얼 결과 공유회와 눈물의 바베큐파티
다들 오후에 있을 결과 공유회를 위해 마무리 ppt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말 오래간만에, 아니 거의 처음으로 정말 조용한 오전이었다. 나는 시간이 없어서 킵해놓은 조식과 어제 먹다 남은 빵을 먹으면서 ppt작업을 했고, 우리 룸메 친구는 다혜언니와 데이트를 나가서 솥밥을 얻어먹고 왔다. 부러운 자식. 나는 아직 다혜언니와 둘이 오붓하게 이야기해 본 적이 없는데. 룸메 친구는 언니들과 종종 진지한 대화를 하곤 한다. 나는 아직 그런 게 잘 안된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사람과 친해지는 데에도 오래 걸리고, 그 상대를 편하게 대하는 데 까지도 오래 걸리는 편이라 더 그런 거 같다. 그리고 저번에 리추얼 코치님과 전화를 하면서 깨달은 건데, 나는 내 생각보다 더 방어적인 사람이라서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더 오래 걸리는 거 같다. 전에 지원언니도 나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언니가 예시로 본인의 이야기 세네 개를 꺼내야 내가 겨우 하나 꺼낸다고. 아무래도, 내가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도 내게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는 데에 망설여지는 것 같다. 그래도 ppt를 하면서 먹은 밤 치즈 치아바타는 정말 맛있었다. 적당히 달콤하고 짭짜름한 맛이었다. 계속 생각난다. 눈앞에 아른거린다.
오전 내리 준비했던 리추얼 공유회가 드디어 시작되었다. 도시재생팀이 우리의 발표를 전부 듣고 싶어 했으나 갑자기 급한 회의 일정이 잡힌 탓에 오래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인당 3-4분 이내로 발표를 해야 했으나 아무도 그 시간을 지키지 않았다. 마치 연륜 있는 교수님이 만든 ppt 같은 ppt를 만든 귀여운 다혜언니도, 엘레강스한 옷을 입고 온 혜진언니도, 그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그러니 말이 길기로 유명한 진오빠가 그 시간을 맞출리는 없었다. 하지만 갑자기 역사 이야기를 하면서 10분가량의 시간을 써버릴 줄은 몰랐다. 후에 진오빠가 말하길, 열심히 만든 ppt의 글자가 다 깨져서 기분이 상했서 그랬다고 했다. 과연? 아니었어도 길게 말했을 진오빠다.
나는 계속 도시재생과에게 어필할 말들을 고르고 있었는데 내 순서가 오기도 전에 그들은 먼저 떠나버렸다. 과장님은 떠나기 전에 우리에게 여건이 된다면 순천에서 살고 싶은 분은 조용히 손을 들라고 말씀하셨다. 거의 전부 손을 들었다. 과장님은 놀라는 눈치셨지만 우린 놀라지 않았다. 종종 그런 얘기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순천에서 살 거야? 살고 싶어?'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나, 서로에게나 한 번씩은 다 해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순천이 9명의 사람들을 단단히 홀린 거 같았다. 그렇게 도시재생팀분들이 떠났다. 남은 건 다과로 준비된 참붕어빵뿐이었다. 하긴, 인 당 3분 정도의 스피치 시간은 너무 짧긴 했다. 우리는 '리추얼 소개, 리추얼 하며 느낀 점, 장천동 도시재생구역에서의 생활과 순천살이에 대한 내용, 프로그램 참여 소감, 리추얼 다이어리 뒤편의 문답 2가지 소개'를 모두 말해야 했으니까. 하루를 오분할로 나누어서 알차게 살아온 각자의 25일을 3분으로 압축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물론, 나는 충분히 가능했다. 나는 요약과 압축의 귀재니까.
6시에 예정되어 있던 바베큐 시간이 30분 정도 지체되어 시작했다. 이날의 메뉴는 두루 사장님이 직접 만들어주신 서대회무침과 김치, 우리가 2일 차 때 만든 수제맥주인 홉스와 밍기스, 그리고 목살과 삼겹살이었다. 나는 순천에서 먹은 목살의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저 아름다운 두께가 그립다. 중간중간 우리가 사랑하는 쌈야채도 있었고, 철오빠 픽이라는 쌈무도 있었다. 먹다 남은 치킨무도 있었고, 버섯과 양파도 있었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상다리가 부러졌어도 납득이 될 정도였다. 이 날의 에이스는 두루 사장님의 서대회 무침이었다. 처음 먹어보는 서대회무침이라 비교대상이 없었음에도 이건 정말 진또배기구나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의 맛이었다. 두루 사장님 음식은 기깔난다. 정말, 딱 맞는 간과 감칠맛이 예술이다. 모든 것엔 정석이란 게 있는데 두루 사장님의 음식이 바로 그 정석 중 정석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빼어난 맛이다. 또 먹고 싶다. 난 이제 이 음식을 먹기 전의 인생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하튼, 이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 날은 지원언니와 혜진언니의 마지막 날이었다는 게 중요하다. 지원언니는 일 때문에, 그리고 혜진언니는 웰니스 전문가 과정에 선정돼서 교육을 받으러 내일 밤이 되기 전에 순천을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각자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게 느껴졌다.
사장님 식구분들과 우리 한 달 살기 팀 전부가 모여 함께 있던 그 밤은 정말 즐거웠다. 이렇게 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였다. 이 날 사장님은 남편분이 해병대임을 공연히 밝혔고, 해병대를 나온 철오빠는 충성을 외치며 사장님 남편분께 술을 따라주는 그런 훈훈한 모습을 보였다. 정말 놀라웠다. 철오빠의 사회생활을 걱정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한껏 웃고 떠들다 보니 어느덧 간신히 산 등성에 걸쳐있던 해가 완전히 떨어져 있었다. 모두가 모일 수 있는 정말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마지막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눈물이 나는 건 왜였을까. 어쩔 수 없는 일 같다. 우린 서로 너무 많은 정이 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만나더라도 지금 이 순간 이 모습과 똑같을 거란 보장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린 모두 일주차 때부터 하루가 지나고 마지막이 다가오는 걸 아쉬워했으면서도, 이주차 때부터 이별의 슬픔을 예상했으면서도, 삼주차 때부터 이별 이후의 만남을 약속했으면서도, 사주차 때부터 밤이면 밤마다 항상 모였으면서도, 그런 건 하등 상관이 없던 일인 것처럼 아쉬워했다. 밥을 다 먹고서, 두루 사장님이 준비해 주신 꼬막까지 야무지게 구워 먹고선, 그다음 식순인 소감을 말하는 부분에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렀다. 눈물이 원체 많은 다혜언니도, 마음이 따듯한 지원언니도, 누군가 울면 따라 우는 룸메친구도, 그리고 의외로 눈물이 많은 환희언니도. 무엇보다 우리에게 숙소가 아닌 정다운 집을 선물해 주신 스테이 두루 사장님도 눈물을 보이셨다. 힘든 일이 있을 때 진짜 집처럼 언제든 다시 오라는 그 말 한마디가 조식만큼이나 든든했다. 세상에 지칠 때마다 순천을, 그리고 스테이 두루를 떠올리면 힘을 다시 얻을 거 같다. 그러다 정말 버티기 힘들어질 때엔 한 번씩 이곳에 내려와 숨통을 트이고 갈 거 같다. 그런 곳이 생긴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이렇게나 안정감이 생기고 마음이 따듯해지는 기분이구나. 정말 든든하다. 국밥 같다.
요리는 스테이 두루 사장님의 어머니 담당이셨다. 나는 우리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우리 할머니는 눈 닿는 곳에 마음까지 주는 그런 정 어린 분이셨다. 두루 사장님의 어머님이 꼭 우리 할머니의 그런 점을 떠올리게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처음 나를 본 그 순간부터 손님이 아니라 정말 제 자식을 보는 듯 봐주셨기 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신께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손님들이 꼭 제 새끼 같다고. 말을 하지 않아도 눈빛과 따듯한 손길로도 느껴질 정도라면 그 마음은 정말 강하다는 뜻이다. 그렇게 온 마음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말없이도 전달되는 거다. 나는 그렇게 처음부터 마음을 주는 사람에게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나도 할머니를 닮아 정이 많기 때문에 여기 오기 전에 모든 이별을 각오하고 왔었다. 순천이라는 동네와 헤어질 각오, 그리고 정들어 버릴 이름 모를 사람들과 헤어질 각오. 그러나 그 각오 속에 숙소 사장님과의 이별은 없었다. 나는 각오하지 않은 이별을 해야만 했다. 그래서 더욱 슬펐던 거 같다.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이별이라서.
하지만 울지 않았다. 눈물이 난다고 항상 울면 재미없지. 모아놨다가 필요할 때 터뜨려야 시원하다. 목 막힐 때 조금 참다가 물을 마시는 것처럼. 나는 그렇다. 그렇게 두 번째 식순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나는 눈물과 콧물이 묻은 휴지를 야무지게 젓가락으로 집어서 접시에 한데 모아 버렸다. 중간중간 치워줘야 나중에 치울 때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있으니 진오빠가 따봉을 날렸다. 정확히 이때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여하튼 이날 나한테 따봉을 날렸던 건 확실하다. 전부터 느낀 건데, 진 오빠는 막내가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걸 참 좋아하는 사람 같다. 아님 말고. 그리고 좋은 말을 많이 해준다. 안타깝게도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순천 한 달 살기에 딱 두 명 있는 남자가 진철오빠들이라 참 다행인 거 같았다. 의외로 섬세해서 의외의 부분까지 챙기기 때문이다. 저번에 봉화산 둘레길을 올라갈 때 짐을 넣기 위한 배낭을 메고 온 사람도 진철오빠들이었던 걸 보면. 가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세밀한 부분까지 챙길 때마다 놀랍다. 이날 이 케이크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진철오빠들이 몰래 사 온 거였다. 가끔 룸메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했다. 진철오빠들은 든든하다고, 국밥 같다고 말이다. 우리가 항상 지각이라고 황급히 집합장소로 달려가면 진철오빠들이 아직 안 와 있었기 때문이다. 항상 제일 늦게 나오는 사람은 진철오빠들이었다. 그래서 든든했다. 우리가 가장 늦는 지각생이 아닐 수 있었던 건 206호 오빠들 덕분이었다. 고맙다. 그러고 보니, 순천에 와서 든든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거 같다. 모두 다 같이 소원을 빌고 촛불을 끄니 정말 마지막인 게 실감이 났다. 원래 딸기 케이크가 유명한 데 철이 지나서 체리밖에 없었다고 한다. 나는 딸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오히려 체리인 게 더 좋았다. 이런 자리에 또 케이크가 빠지면 아쉬웠을 거 같다. 이런 건 사람 자체가 가진 성격일까, 아니면 연륜에서 나오는 센스일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삼 차까지의 식순을 마치고, 잠시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쉬기 위해 숙소로 내려왔다. 숙소로 내려오니 룸메친구가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고 있길래 자리를 피하려고 했으나 너무 피곤한 관계로 대충 내 침대에 널브러져 있었다. 그렇게 조금 있다가 룸메친구와 다시 테라스로 올라가려 하고 있는데 갑자기 옆방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문도 열려있기에 그곳으로 들어갔다. 여자 숙소에 남자 목소리라니? 그곳엔 잘 준비를 다 마친 귀여운 다혜언니와 민 언니, 그리고 철오빠가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은 철오빠였다. 그곳에 있던 언니오빠들은 갑자기 우리가 들어가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철오빠보고 왜 여기 있냐고 물었으나 대답이 돌아오긴커녕 우리 보고 왜 여깄냐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어이없다. 남녀 칠 세 부동석이거늘. 나는 자연스레 다혜언니 침대에 앉았는데 알고 보니 철오빠는 다혜언니 침대 위에 앉는 걸 거절당했나 보다. 언니는 나는 뭔가 깨끗해 보여서 앉아도 괜찮다고 말했다. 역시 다혜언니는 보는 눈이 있다.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하고 있다가 민언니가 동태를 살피고 오겠다며 잠시 나갔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환희언니가 숙소에 내려왔다가 여기서 소리가 들려왔다면서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 얼마 또 지나지 않아 혜진언니도 이방으로 왔다. 나갔던 민언니도 컴백했다. 그러고 나서 갑자기 민언니가 힘자랑을 하면서 철오빠를 들었다. 남자를 공주님 안기로 든 민 언니의 힘이 대단하다. 정말 여러모로 대단한 언니 같다. 그러고 나선 모두의 머리 위에 똥 하나씩 만들어서 얹어주었다. 알 수 없는 언니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만약 무인도에 같이 갈 한 사람을 고른다면 아무래도 민언니가 좋을 거 같다. 아마 난 무인도에 가면 정말 쓸데없을 텐데 그런 나를 끝까지 먹여 살려 줄 거 같다. 환희언니는 날 구워 먹을 거 같고, 혜진언니는 웃으면서 나를 버릴 거 같고, 지원언니는 나를 먹여 살리다 과로사할 거 같다. 진철오빠들은 남녀 칠 세 부동석 조항에 의해 고려대상도 되지 못하고 탈락이다.
우린 에너지를 채우고 다시 테라스로 올라갔다. 그때 마침 이번에 우리와 같이 음식을 먹던 스테이 두루 직원분이 내려가려던 차였고, 그분은 가기 전에 우리 모두에게 쓴 편지를 전해주셨다. 원래라면 마음을 꾹꾹 눌러쓴 편지를 이렇게 올리진 않는데 단어 하나하나가 너무 따듯하고 사랑스러워서 이번엔 예외로 한 번 올려보려 한다. 글을 읽으면 사람의 전부는 아니어도 일부는 추측할 수 있다. 이 글을 읽으니 우리도 좋은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이런 분이라면 나와 맞지 않을 리 없으니까. 그래서 더 아쉬웠다. 오며 가며 마주칠 때 조금 더 환히 인사를 할 걸, 이번 바베큐 자리에서라도 말을 조금 더 많이 해볼걸. 작은 인연도 이렇게 소중히 다룰 줄 아는 분이라니. 통성명도 한 적 없고, 제대로 말 한 번 섞은 적 없는 사람에게도 정성을 들일 줄 아는 사람이라니. 정말 다정하면서 멋진 분 같다. 아무래도 순천에 다시 가야 할 이유가 또 하나 생긴 듯싶다.
테라스로 올라가서 편지까지 받은 우린, 한 번 먹은 것을 정리하자면서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설거지할 것들은 아래로 내리고, 테이블이 어느 정도 갈무리되자 다른 사람들은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원언니는 혼자 부엌에 들어가 조용히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나는 수세미가 없어 언니를 도와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언니 혼자 부엌에 놔두고 갈 수도 없어서 흔들리는 동공으로 옆에 서있었다. 나는 이래서 지원언니가 어딘지 모르게 계속 신경 쓰였던 거 같다. 항상 조용히 궂은 일을 해놓고선 내색하지 않는 사람이라서. 나라면 내색이란 내색을 다 낼 텐데 말이다. 아마 내가 말하지 않았으면 다른 사람들은 지원언니가 설거지를 했다는 사실도 몰랐을 거다. 계속 신경 쓰지 않으면 언니가 상대를 위해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알아채기 쉽지 않다.
다시 테라스로 올라가니 철오빠는 사라지고 없었다. 씻으러 내려갔다는데 아마 그대로 자고 있을 거 같았다. 나는 사장님과 진오빠, 그리고 대표님이 이야기하고 있는 테이블에 끼여 앉았다. 이분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순천의 미래와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들어보니 진오빠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순천에 있는 학교에 전화를 돌렸으나 잘 안되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사장님께선 그런 자리가 마련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선 관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그럴 때야 말로 관이 끼어들어서 중간다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지금 순천시장님은 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고도 말씀하셨다. 얼마나 순천을 사랑하면 술을 마시고도 순천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진지하게 할 수 있는 걸까, 싶었다. 순천은 정말 잘 될 거다. 이렇게 순천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순천의 더 나은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순천에 널리고 널렸으니까. 그리고 순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방인이었던 9명의 사람들까지, 이젠 순천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있으니까.
바베큐 파티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날이 우리 9명이 모두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밤이라서 모든 자리가 빨리 갈무리되고 우리끼리 대화할 수 있게 되는 시간이 오기만 기다리느라 그 시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좀 더 사장님과, 직원분과, 대표님과 더 많이 이야기를 해볼걸 그랬다. 그 시간 동안 정말 진심을 다해 대화에 참여해 볼 걸 그랬다. 나는 왜 그렇게 마음이 조급했던 걸까. 아쉬운 건 모두가 마찬가지라서 사장님도, 대표님도 쉬이 자리를 뜨지 못했다. 가장 제일은 진오빠였다. 얼마나 아쉬웠던 건지 잘 익고 있는 꼬막 위에 맥주를 부을 정도로 취했으면서 숙소로 가려하지 않았다. 결국, 언니 세 명이 진오빠를 붙잡아서 숙소로 넣었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뛰쳐나오는 걸 겨우 막았다고 했다. 아쉽게도 그 광경을 직관하지 못하고, 영상으로 확인했다. 아쉬운 마음은 모두가 같았는데 이날은 유독 진오빠가 좀 더 컸나 보다. 엊그제는 내 아쉬움이 유독 컸고. 이런 걸 보면, 슬픔이 찾아오는 타이밍도 사람마다 다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