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 월 : 3주 차 리추얼 공유회와 동천 버스킹
이 급작스러운 논의를 설명하기 위해선 약 15일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나와 룸메는 원래 순천한달살기 기간 중에 한 번 여수를 가려했었다. 그러다 진오빠가 차 렌트를 할 테니 시간을 맞춰 함께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고, 조금 고민을 해보다가 여러 가지 문제들이 있어서 그냥 우리끼리 따로 여수에 가는 걸로 잠정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논의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이때까지 계속 여수를 갈까, 부산을 갈까, 경주를 갈까, 일본을 갈까, 어떡할까, 이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날 아침 철오빠가 어제의 커피를 갚겠다고 제안했고, 딱히 받을 생각은 없었지만 대충 오토바이는 타보고 싶었기 때문에 거절하지 않았다. 그러면 브루웍스까지 오토바이를 타고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 오토바이 뒷좌석은 재밌었지만 생각보다 무서웠다. 이동거리가 짧아서 다행이었다. 카페에 도착하니 철오빠가 정말 우리 둘이 일본을 갈 거냐고 물었다. 나는 확정이 난 게 아니라 일본을 갈지, 국내 다른 곳을 갈지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철오빠는 어제 여수 여행을 갔던 멤버로 일본을 가도 괜찮을 거 같다고 말했다. 이날, 계속 갈팡질팡하며 결정을 못 내리고 있던 나와 룸메의 일본 여행은 확정이 되었고, 여기에 철오빠와 환희언니, 그리고 진오빠까지도 함께하게 되었다. 나는 추진력에 놀라 천천히 브루웍스로 걸어오고 있는 룸메에게 빨리 오라고 카톡으로 재촉했고, 곧이어 룸메친구도 브루웍스에 도착했다. 그렇게 셋이서 얘기를 하면서 파랑새 창고에 있는 환희언니까지 브루웍스로 불러들였다. 나는 급히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여행을 가게 될지도 모르는 이 상황을 전달했다. 이 날 오전, 그 짧은 순간에 네 사람의 일본여행이 잠정 확정되었다. 나, 룸메친구, 환희언니, 철오빠, 이렇게. 알고 보니 진오빠는 원래 계획했던 일정이 있었기에 좀 더 설득과 회유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추진력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3차 리추얼 공유회에선 그동안 써온 네 줄 일기 중 가장 잘 된 것 세 개를 뽑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네 줄 일기 칸은 대표님이 공들여 만드신 '리추얼 북' 중에서도 가장 공을 들인 부분 같았다. 네 줄일기는 사실, 느낌, 교훈, 선언 각 각 한 두 줄씩만 적으면 되는 간단한 일기였다. 아마 이렇게 말하면 감을 잡기 어려울 테니 6월 6일 날의 내 네 줄 일기를 소개해보려 한다.
사실-오늘 저녁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놀았다. 느낌-처음엔 즐거웠으나 나중엔 다들 힘들어하는 게 느껴졌다. 교훈-과유불급, 선언-나는 멈출 때를 아는 사람이다!
이런 식이다. 여기서 키포인트는 선언 부분이다. '-할 것이다'가 아니라 '-이다!'로 끝내는 거다. 이미 그런 사람인 것처럼 말이다. 대표님은 이 부분을 강조하셨다. 이런 세세한 부분에서 대표님의 마음이 느껴진다. 우리가 모두 더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그 바람이.
서로서로 네 줄 일기를 공유하고 나선 감정카드를 고르는 시간을 가졌다. 세 달 전에 내가 느꼈던 감정과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들을 서로 비교해 보았다. 3개월 전에 나는, '무기력해' '자책' '지루'의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3개월 후인 지금은, '설레' '만족스러워' '행복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3개월 전에 감정을 생각할 때엔 고려조차 하지 않았던 노란 빛깔의 색카드를 눈앞에 보면서 이곳에 온 게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현재의 감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새로운 일을 해보는 게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 맞았다. 3개월 전 나의 모든 감정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책, 지루, 무기력이 마음에 들 사람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모든 걸 바꾸기 위해, 도전을 하기 위해 순천으로 왔다. 그리고 실제로 내 감정은 모든 게 정반대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세상의 감정들이 모두 절대적으로 나쁘고 좋은 것은 없다지만 나는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노란빛의 감정들이 마음에 쏙 든다. 그러니까, 이건 상대적으로 나에게 좋은 감정들이다. 계속 유지하고 싶다. 질릴 때까지. 나는 항상 내 상황보다 내 감정이 문제였던 사람이라서 이 시간이 좋았다. 난 내 감정이 어려운 사람이라 그랬다.
3차 리추얼 공유회가 생각보다 늦게 끝나서 마음이 다급해졌다. 이후 내 룸메와 동천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기로 했기 때문이다. 룸메는 그렇게 순천만습지에 가서 구경하고, 나는 거기서 30분 정도를 더 달려서 화포해변을 보고 오기로. 그런데 시간이 촉박해서 나와 룸메는 돌아오는 길에 같이 오자고 약속하고선 난 먼저 화포해변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중간중간 길도 많이 헤매고, 날벌레 때의 습격도 많이 받았던 탓에 생각보다 늦게 화포해변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렇게 본 화포해변은 그동안 봐온 해변들과 또 다른 모습이었다. 온통 파란색이었다. 다른 색은 끼어들지 않고, 파란색 계열의 여러 색들의 분포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확실히 일출을 보면 아름다울 공간이었다. 그러나 더 감상하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돌아오는 길엔 시간을 맞추기 위해 숨이 가쁘고, 허벅지가 뻐근하도록 페달을 밟았다. 처음으로 내가 왜 여기서 이 고생하면서 자전거를 타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페달을 밟아 순천만습지 온누리 자전거 반납소에 자전거를 반납하고,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룸메와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순천 택시기사님들은 내비게이션을 잘 다루시지 못하고, 유명 가게나 건물로 위치를 아시는 거 같았다. 소통 오류로 인해서 이상한 곳에 내리게 되었고, 우린 거기서 또다시 다른 택시를 타야만 했다. 기본요금만 두 번을 낸 탓에 택시비가 꽤 많이 나왔다. 그래도 민 언니의 동천 버스킹 시간엔 맞출 수 있어 다행이었다.
대체로 사진을 고를 땐 일부러 얼굴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사진들을 고르곤 하는데 이 사진은 예외로 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현장의 분위기가 가장 잘 담긴 거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뭔가 즐겁지만 수줍은 듯한 민언니의 표정도 마음에 들었다. 원래 하려고 했던 장소에선 아주머니들이 에어로빅을 하고 있어서 급히 다른 장소를 물색하다가 원래 계획한 시간보다 40분가량 늦게 시작했다. 그 덕에 우리도 간신히 첫 곡부터 들을 수 있었다. 도착하니 동천의 다리 밑, 아무도 버스킹을 할 거 같지 않은 공간에서 민언니는 버스킹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리 시작점 쪽에 진철오빠들이 온누리 자전거 안장에 앉아 들을 준비를 하고 있었고, 다리 아래 벤치 세 개엔 우리 한 달 살기 팀과 스테이두루 사장님 가족이 사이좋게 앉아 있었다. 그 벤치 뒤로 흐르는 동천물에 사장님의 꼬맹이 아들 두 명이 즐겁게 놀고 있었다. 다리의 반대편에 놓인 벤치엔 이름 모를 아저씨 한 분이 흐뭇하게 웃으며 노래를 들을 준비를 하고 계셨다. 노래가 시작해도 아이들은 뛰어놀고 사람들은 스쳐 지나갔다. 민 언니의 노랫소리에 지나가던 강아지가 멈춰 서서 주인분이 난감해하던 것도 기억이 난다. 모든 게 우리만의 작은 콘서트 같았다. 그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분위기가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민언니는 그렇게 모두에게 선물을 줬다.
놀라운 건 버스킹이 원래 계획했던 일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여느 때와 같은 술자리에서 민언니가 버스킹 이야기를 꺼냈고, 철오빠가 한 번 해보라고 했고, 민 언니가 그럴까 했고, 동천이나 호수공원 같은 데서 하면 되겠다는 말이 나왔고, 대표님이나 사장님께 한 번 물어봐서 해보는 걸로 마무리지어졌고, 그러다 며칠 후 민언니의 버스킹 공연이 확정되었던 것이다. 말 한 번 꺼내고 나서 장소 물색, 허락 구하기, 시간 선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던 거다. 민언니라 가능했던 거 같다. 나라면 모든 단계에서 망설이고 고민하다가 어느 순간 모든 계획을 백지화시켰을 게 분명했으니 말이다. 파랑새창고에서 각자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있을 때, 그 누구보다 집중해서 작업하던 민언니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민언니랑 지낼수록, 언니는 마음먹은 일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집중해서 열심히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처음엔 언니의 당참이 부러웠는데 이젠 언니의 추진력을 닮고 싶다. 아마 나와 룸메의 여행도 철오빠가 중간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유야무야 되었을 게 뻔하다. 나는 언니오빠들의 그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하고 보는 자세를 닮고 싶다. 내 과거에 후회는 있을 수 있어도, 시도하지 않아서 미련이 남는 일은 더 이상 만들고 싶지 않다. 아무래도, 후회는 반성과 개선을 가져올 수 있지만 미련은 과거에 대한 집착만 남기는 거 같다.
버스킹이 끝나고 숙소로 걸어오는 길이 너무 예뻤다. 무엇보다, 스테이 두루 사장님 부부의 모습이 늘 그렇지만, 오늘 역시도 보기 좋았다. 정말 볼 때마다 단란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들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도록 놔두는 사장님도, 아이답게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도, 그런 아이들을 보며 환히 웃음 짓는 어머님의 모습도, 모두 가족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가족 같았다. 정말 그림으로 그린 듯한 가족의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모이면 사랑이라는 주제는 빠질 수 없는 거 같다. 그러다 언니들은 3년째 연애 중인 내 룸메에게 결혼할 생각이 있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나보다 한 살 어린 룸메친구가 그런 질문을 듣는 걸 보니 나도 이제 결혼에 대해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는 게 실감 났다. 여기 와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니 생각마저 다양해지는 것 같다. 원래라면 연애와 결혼은 내게 먼 세상 일이었을 텐데. 여기 오고 나니 그런 것들이 내 옆으로 성큼 다가왔다. 유독 내 주변에 결혼실패 사례들이 많았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기보단 결혼생활을 잘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 가족력을 가진 나인데, 그 유전자가 이어지는 건 아닐까? 그런 의심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난 좋은 가정을 꾸릴 수 있을 거 같다. 고모도 의아해할 정도로, 난 가족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도 하는 일을 내가 '절대' 못 할 일은 없을 거 같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인생에 '절대'는 없애기로 했으니까. 모르겠다. 아마 언니들은 이런 말을 들으면 남자친구부터 사귀라고 말하겠지. 확실히, 나이에 따라 해야 할 고민들과 마주치는 선택들이, 듣게 되는 질문들이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우린 사장님 가족분들과 함께 옥상에서 작은 파티를 열었다. 나와 룸메친구는 진또배기 밥을 먹고 싶었으나 곱창이 메뉴로 선정되었다. 그래서 공깃밥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우리 두 사람은 정말 밥심으로 사는 거 같다. 언니오빠들은 술심으로 사는 거 같고. 다혜언니는 곱창을 좋아하지 않아 피자를 시켰다. 사장님은 우릴 위해 치킨을 사 오셨다. 그렇게 순대야채곱창과 피자, 밥, 스파게티, 그리고 치킨이 우리 저녁 메뉴가 되었다. 음식 조합은 하나도 고려하지 않고 그냥 먹고 싶은 음식을 사 온 결과였다.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다들 정말 심플하게 사는 거 같다. 이러니 내가 좋아할 수밖에. 나는 항상 복잡하게 생각한다. 고민이 너무 많아서 결국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치에 다다르지 못하고 만다. 그런데 여기 있다 보면 나도 덩달아 심플해진다. 그래서 얼레벌레하는 사이 도달하고자 했던 곳에 와 있다. 난 이런 심플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 심플함에서 추진력도 나오는 거 같으니 말이다. 그러면 지지부진하게 넘기지 못하고 있는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넘길 날이 올 거 같다. 언젠간, 분명히, 반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