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일 : 신대도서관, 좌충우돌 여수여행, 보드게임 나이트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원래라면 우리 룸메친구만 보여야 하는데 어젯밤 3인실에서 잠이 든 바람에 환희언니의 자는 얼굴까지 눈에 보였다. 너무 귀여워서 그만 사진을 찍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찍어두어야 한다. 환희언니 사진첩에 있는 내 엽사들과 거래하기 위해선. 그렇게 사진만 찍고 몰래 나가려다 환희언니에게 딱 걸렸다. 귀신같은 사람이다. 대충 얼버무리고선 철도관사마을을 구경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관사마을은 안 보기엔 좀 그렇고 그렇다고 시간 내서 보자니 그것도 좀 그런 동네였다. 바하마 사장님의 지인분이 볼 게 없다고 말했던 게 이해가 갔다. 하지만 선선히 걸으면서 자세히 보니 예쁜 동네였다. 일본인들이 살았어서 그런지 몰라도 골목골목마다 일본 어느 한적한 소도시의 골목길 분위기도 조금 났다. 곳곳에 이곳을 관광지로 살려보고자 노력했던 흔적들이 보였다. 하지만 잘 안되었던 거겠지. 순천엔 이런 곳들이 왕왕 보였다. 뭔가 해보려다 잘 안된 곳들. 차차루가 그렇고, 장천노랑극장이 그렇고, 청춘창고도 그랬다. 본래 목적에 비해 그 쓰임과 활용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공간들. 철도관사마을도 충분히 예쁘지만 그렇다고 여길 추천할 수 있을 만큼의 메리트는 없었다. 이 부분에 대해선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거 같다. 그래도 순천은 앞으로 더 좋아질 일만 남은 거 같다. 그동안 순천에서 지내면서 관 자체가 더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순천을 응원하고, 잘되길 바라는 마음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러니 순천은 더 좋아질 게 분명하다.
일요일 오전 10시에 나, 룸메친구, 환희언니, 진오빠, 철오빠, 이렇게 다섯 명이서 철오빠의 귀여운 차를 타고 도서관으로 갔다. 벼르고 벼르던 책을 읽는 날이었다. 우린 공유책장도 만들어서 책도 대여해 놓고선 읽을 시간이 없어 못 읽고 있었다. 사실 이건 핑계고 노느라 못 읽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우린 도착하자마자 각자 원하는 자리에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룸메친구는 계단식으로 되어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고, 나와 환희언니는 창 밖이 보이는 소파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진오빠는 의자와 책상이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고, 철오빠는... 모르겠다. 중간에 두리번거리며 서재 사이를 걸어가는 걸 목격한 게 전부다. 나는 경치 좋은 곳에 앉아서 순천에 가져온 내 책을 읽었다. 이신주 작가님의 SF단편집인 '확률론적 외톨이 모형'이라는 책이었다. 파릇파릇한 분위기와는 맞지 않지만 나름 재밌게 읽었다. 이 작가님은 사회비판적이고 철학적인 주제를 sf와 교묘히 잘 섞어서 스토리화시킨다. 그렇게 친절한 편은 아니어서 꼭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쉽게 스토리를 따라갈 수 없다. 그렇게 남은 장들을 모두 넘기고 나니 거의 2시간이 지나있었다. 오랜만에 집중해서 책을 읽으니 기분이 좋았다.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나니 진오빠가 숙소에 가자면서 짐을 챙기라고 했다. 그래서 짐을 챙겨 화장실로 갔다. 난 말을 잘 듣는다.
민 언니 합류하면 같이 여수에 가기로 했기에 그때까지 우린 점심을 간단히 먹기로 했다. 그러다 근처 카페에 갔는데 생각보다 먹을 종류가 많지 않아서 숙소 근처 샌드위치집에서 먹기로 하고 다시 차에 탔다. 그렇게 오는 길에, 철오빠가 고수의 맛집처럼 생긴 자장면집을 발견했다. 그 길로 바로 그 짜장면집으로 직행했다. 방금까지 간단히 먹자고 말한 건 안중에도 없었다. 결론만 말하자면, 짜장과 탕수육과 짬뽕은 맛있었으나 간짜장은 의아할 정도로 맛이 없었다. 그리고 세트메뉴를 시키면 양이 적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정말 양이 적었다. 진실된 가게였다. 그렇게 공깃밥 하나까지 시켜서 야무지게 짜장에 비벼먹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아니다. 바로 숙소로 안 왔다. 짜장을 먹고선 아아를 먹어야 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홀려 숙소 앞에 있는 벌크커피로 가서 아아를 주문했다. 운전한 건 철오빠인데 아무도 철오빠의 커피를 시키지 않았고, 뒤늦게 카페에 온 철오빠가 커피를 찾는 상황이 연출되는 바람에 그냥 내 커피를 철오빠 주고 내 커피를 새로 주문했다. 이번에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느낀 건데 확실히 대중교통은 아무리 편해졌다고 해도 불편한 이동수단이었다. 차를 타고 가니 정말 자유로웠다. 정류장과 배차시간에 맞춰 내 동선을 짤 필요도 없고, 불필요하게 기다릴 필요도 없었다. 심지어 중간에 내 맘대로 행선지를 바꿀 수도 있었다. 그렇게 편하게 도서관을 갔다가 밥도 먹고 왔으니 2000원의 커피값이 아까울 리 없었다.
안타깝게도 민언니는 일정이 지체되어 여수 여행에 같이 못 가게 되었다. 우린 민언니를 기다리다가 오후 2시가 조금 지나서 여수로 출발했다. 여섯 명이서 가기 위해 차를 렌트한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냥 편하게 이동하는 사람들이 돼버렸다. 렌터카 운전은 진오빠가 했다. 그 모습을 보니 나도 운전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렇게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철오빠가 언덕 위에 나무 세 그루가 있는 곳을 보고 예쁘다며 운을 뗐다. 그러자 그 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가보자고 장단을 맞췄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샛길로 빠져서 나무 세 그루가 있던 언덕으로 향했다. 그 언덕의 이름은 바로 검단산성이라는 곳이었다. MBTI가 얼마나 정확한 건진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렇게 쉽게 샛길로 빠질 수 있었던 건 우리 모두 P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즉흥적인 여행이 모두에게 잘 맞아서 다행이었다.
별생각 없이 간 검단산성은 순천에서 지내면서 봐온 그 어떤 풍경보다 아름다웠다. 초록의 산등선 바로 위에 푸르른 하늘이 보였다. 언덕 아래에서 위를 쳐다볼 때면 정말로 초록색과 푸른색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치 윈도우 기본 화면을 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언덕 위에서 아래를 쳐다보면 순천과 광양, 그리고 둘 사이를 잇는 도로가 한눈에 보였다. 절경이었다. 아마 이때 철오빠가 환희언니에게 릴스를 찍어보라며 제안했던 거 같다. 그래서 이 날 하루동안 계속 릴스에 쓸 영상을 찍었던 걸로 기억한다. 네 명이 나란히 서서 진오빠 구호에 맞춰 걷는 영상이었다. 웃음을 참아가며 열심히 찍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20분 정도 그곳에 있었는데 그 시간 동안 검단산성에 올라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만 있었다. 우리가 전세 낸 것처럼 있을 수 있어서 좋았지만 한 편으론 이 좋은 곳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기도 했다.
날이 더 선선했다면 책을 들고 올라와서 읽어도 좋을 듯했다. 간간히 놓인 벤치에 앉거나 돗자리를 피고선, 바람을 맞으며 있어도 참 좋았을 거 같았다. 예전엔 전략적 요충지로서 역할을 했으니 그때 여기 있던 사람은 치열함이나 긴장감을 느꼈겠지만,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여기 있게 된 사람들은 나른함과 평온함을 느끼고 있다. 전에 진오빠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 숙소 지근거리엔 기찻길이 하나 있는데 그 길은 여순항쟁 때부터 있었다고, 그리고 그 기찻길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그 기찻길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켜오며 묵묵히 모든 풍경들을 보았을 거라고, 모든 걸 지켜보았을 거라고. 진오빠가 말을 맺고 나서도 그 말이 계속 내 안에서 맴돌았다. 사람들의 발길이 소원해진 검단산성을 살피면서 생각했다. 이곳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었을, 그리고 자신의 용도를 알아봐 주고 인정했던 그때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아니면 이렇게 한적해진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고 있을까. 이곳에선 우리가 영원히 알지 못할 일들이 얼마나 많이 펼쳐졌을까, 그리고 이곳은 지금의 우리를 어떻게 기억해 줄까?
때 아닌 사색을 하고 나서 다시 우리의 목적지인 여수를 향해 출발했다. 해변을 오는 데 아무도 수건이나 수영복을 챙겨 오지 않아서 네 사람 다 바지를 위로 걷어붙이고선 바닷물에 발만 담갔다. 원래 여수로 온 목적은 검은 모래해변이었는데 왜 아무도 수영복을 입고 오거나 챙겨 오지 않았을까? 이건 아직도 의문이다. 여하튼 아쉬운 마음을 달래면서 우린 삼각대도 없이(있는데 숙소에서 안 챙겨 왔다) 신발들로 핸드폰을 고정한 채(카메라도 있는데 안 가져왔다) 사진을 찍었다. 찍힌 사진과 동영상을 보니 각도도, 포즈도 엉성했지만 그래서 참 우리다웠다. 바다수영을 하지도 못하고, 사진은 충분히 다 찍었고, 배는 조금 출출한 듯싶으니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전에 진철오빠들의 제안으로 형제묘를 들렀다. 우리의 의견을 들을 필요도 없다. 행선지는 원래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정하는 거기 때문이다. 난 운전도 못하는 나부랭이다.
여순항쟁 유적지 중 하나인 형제묘는, 학살 후 시신을 찾을 수 없었던 유족들이 죽어서라도 형제처럼 살라며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관리가 잘 되어 있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올라가는 길도 차 하나 겨우 댈 만큼의 공간이었고, 묘 주변엔 잡초들이 무성히 자라 있었으니까. 빛바랜 과거 중에서 더 빛바래져 가고 있고, 잊혀가는 역사 중에서도 더 빠르게 잊히고 있는 듯싶었다. 125명이 죽었으나 그 수많은 사람들 중 이름을 남긴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유해발굴도, 진상규명도 제대로 된 거 하나 없이 형제묘라는 이름 아래 125명의 희생자들은 이렇게 모두의 기억에서 풍화되고 있었다. 우린 이렇게나 발전했으면서도, 왜 아직도, 125구의 시신에 제 이름을 붙여주지 못하고 있을까? 시신도 있고, 유족도 있는데 사망자의 이름은 부재하는 상황이라니. 제대로 된 끝맺음을 짓지 못한 채 소중한 사람들을 가슴속에 묻는 건 대체 어떤 마음일까. 그렇게 눈앞에서 야속한 시간 앞에 점차 흐려져만 가는 기억들을 목도하고 있는 건 어떤 마음일까. 나는 역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내 무력감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려고 하는 마음이 중요한 거 같다. 이런 의지들이 이어지면 쉽게 기억에서 풍화되어 사라지진 못할 거다. 여기 데려온 진철오빠들에게 고마웠다. 그렇게 씁쓸한 마음을 가득 안고선 형제묘를 떠나왔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여수의 유명 관광코스 중 하나인 이순신 광장이었다. 도착하자마자 환희언니가 먹고 싶다고 했던 쑥 아이스크림과 술을 좋아하는 오빠가 궁금해했던 막걸리 아이스크림 하나씩 사서 나누어 먹었다. 막걸리 아이스크림은 그냥 막걸리맛이었고, 쑥 아이스크림은 진짜 쑥 맛이었다. 무튼 쑥 아이스크림이 더 입맛에 맞았다. 이순신 광장에 삼대째로 이어지고 있다는 모찌집도 있었는데, 이 광경을 보면 이순신 장군은 무슨 생각을 할지 의문이 들었다. 후손들이 왜놈들의 음식을 먹고 있다고 노하실까, 아니면 자주국으로서 일본의 음식을 즐기는 모습을 보며 흡족해하실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모찌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라서 먹지 않았다. 배를 조금 채우고 나선 이순신 광장에 있는 거북선을 한 번 구경하고, 릴스를 위한 영상들을 촬영하고, 무슨 거리 같은 곳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여수가 우리나라 대표 관광지 중 하나인 거에 비해 볼 게 없어서 놀랐다. 무엇보다 사람이 없었고, 문을 연 가게도 많이 없었다. 다들 순천이 더 좋다고 입을 모아 얘기했다. 하지만 항구에서 노란색이 많이 보여 좋았다. 나는 항상 쨍한 노란색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머스터드 색이 아니라 개나리 같이 쨍한 노란색.
한참을 구경하다 보니 배가 조금 출출해졌다. 여수까지 왔으니 게장을 먹을까, 회를 먹을까 하다가 철오빠가 게장을 못 먹는다고 해서 그럼 장어를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환희언니와 나, 그리고 룸메친구는 완전 오케이 느낌이었고 세진오빠는 그냥 상관없다는 입장이었으나 철오빠가 어정쩡한 오케이 느낌이었다. 그래서 그냥 햄버거를 먹기로 했다. 그래서 다 같이 앞에 있는 이순신 버거집에서 햄버거를 하나씩 포장했다. 후에 알게 된 이야기론, 철오빠는 아이스크림도 먹었고 6시에 술 마시면서 안주도 먹을 거니 간단히 요기거리만 해도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 이야기는 진오빠가 말해줬다. 이 정도면 진오빠는 철오빠 담당 해설사다.
다섯이서 이순신 버거와 음료수를 들고선 언덕을 올라갔다. 그 언덕을 올라가는 길은 벽화마을이었다. 골목골목이 가파르고 계단도 위험했지만 그 모든 걸 감수할 가치가 있을 정도로 길이 예뼜다. 그냥 모르겠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더 예뻐 보였을 수도 있겠다 싶다. 길을 오르면 오를수록 뒤를 돌아보면 보이는 풍경이 더 예뻐졌다. 분명 가까이서 보면 길바닥에 들러붙은 껌이나 이리저리 버려진 쓰레기가 보였을 텐데. 이렇게 높은 곳에서 떨어져 보니 그저 아름다울 뿐이었다.
벽화마을을 다 올라가니 마침 노을이 지는 시간 때였다. 전망대에 있는 돌 위에 한 명씩 자리를 잡고선 풍경을 바라보며 햄버거를 먹었다. 평이 좋지 않아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도 햄버거는 정말 맛있었다. 물론, 순천에서 계속 건강한 음식만 먹다가 햄버거를 오랜만에 먹은 터라 그런 것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맛있으면 장땡이다. 환희언니는 우리와 다른 메뉴를 시켜 먹었는데 우리께 더 맛있다며 조금 아쉬워했다. 역시 어딜 가든 기본은 실패를 하지 않는 법이다. 만족스러운 식사를 마치고 나니 6시까지 돌아가는 시간이 조금 빠듯했다. 그래서 우린 올라올 때와 달리 서둘러 내려갔다. 서둘러 차를 타고, 서둘러 운전해서, 서둘러 우리 순천으로 돌아왔다. 이때 나는 내가 정말 순천을 제2의 집처럼 여긴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깨달았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정말 딱 여행을 마치고 나서 집으로 돌아올 때의 그 감정이 들었으니까.
보드게임나잇은 6시부터 밤 10시까지 계속되었다. 순천이 좋아서 순천으로 이사 온 분들이 만든 단체에서 진행하는 거였는데 우리가 보드게임하는 영상을 촬영도 해가셨다. 스테이 두루 사장님이 준비해 주신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테이블 위에 놓고 게임을 하니 생각보다 시간이 잘 갔다. 컨디션 문제나 다른 일정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한 언니들이 있어서 아쉬웠다. 첫 번째 게임은 이상한 돈놀이 게임이었는데 얼굴낙서가 벌칙이어서 그런지 다들 열심히 했다. 첫 번째 벌칙자는 민언니가 걸렸다. 환희언니는 민언니에게 멋진 수염을 그려주었다. 너무 잘 어울려서 깜짝 놀랐다. 민언니는 조목조목 뜯어볼수록 너무 귀여운 생김새인 거 같다. 두 번째 벌칙자는 안타깝게도 스테이두루 사장님이 걸리셨다. 사장님 찬스로 수염이 아니라 귀여운 볼 하트를 그려주었다. 마지막 벌칙자는 진오빠였는데 예술작품 같은 얼굴이 되었다. 원래 그렇게 생긴 작품들이 비싸더라. 두 번째 게임은 아발론이라는 보드게임이었다. 그런데 룰을 외우는 것도 어려웠지만 문제는 그 이름들이 너무 헷갈려서 제대로 게임이 진행이 안되었다. 심지어 나쁜 편은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해야 하는데 본인이 나쁜 편인지 모르고 고개를 들지 않아서 다시 룰을 설명해야 하기도 했다.(그게 바로 나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했는데 다들 룰을 몰라서 싱겁게 끝났다. 서로 같은 편이면 지켜줘야 하는 데 본인 마음속으로만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어이없는 사람들이다. 마지막 게임은 무슨 경마게임이었는데 혜진언니가 돈을 싹쓸이해 갔다. 언니는 적성을 찾은 듯했다. 그렇게 길고 긴 하루가 막을 내렸다.
정말 하루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순천에 오기 전에 내 하루는 해가 떠 있을 때, 해가 졌을 때, 이렇게 두 개로만 나누어져 있었었는데 이곳에 와서는 하루를 다섯 개로 나누어서 지내고 있다. 조식 먹기 전, 조식 먹은 후부터 점심 먹기 전, 점심 먹은 후부터 3시까지, 3시부터 저녁 먹을 때까지, 저녁 먹고 난 이후, 이렇게. 이른 아침 바람에 혼자 하는 산책과 도서관에서의 독서 시간, 여수로 가는 길에 샛길로 빠진 검단산성과 그렇게 겨우 도착한 여수에서의 나들이, 돌아와서 모두 다 같이 모여 함께 한 보드게임까지. 어떻게 이렇게 많은 일을 하고도 지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아마 모든 일들이 다 즐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앞으로도 내 남은 날들을 이렇게 가득 채운 하루로만 쌓고 싶다. 그렇다면 평생 세상 사는 일에 지치지 않을 수 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