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부원 이수희
거대한 파도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간 NVIDIA
서핑보드로 파도를 타기 위해선 정확한 타이밍에 정확한 위치에 있어야한다. 그리고 파도에 자연스럽게 올라탔을 때 힘차게 패들링을 시작한 뒤, 또 한번 정확한 타이밍에 서핑 보드 위로 올라서 목표지점만을 응시하며 균형을 잡아야 한다. 지난 2023년, 거대한 기술 패러다임 변화의 파도를 타고 전 세계 경제에서 누구보다 높이 우뚝 올라선 기업이 있다. 이번 글의 주인공, NVIDIA이다.
지난해 1분기 NVIDIA의 실적이 전 세계 경제를 놀라게 한 뒤 실적 성장세에 가속도가 붙으며 NVIDIA의 어닝 서프라이즈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NVIDIA의 주가는 잠자고 일어나면 최고가를 갱신하는 양상을 반복했다. 2023년 NVIDIA의 주가는 235% 증가했다. 이에 대해 시장이 과도하게 가열되며 일시적으로 주식이 폭등한 것일 뿐 이러한 증가세가 계속될 것이라 기대하지 말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전 세계 주식 투자자들의 고민은 ‘고나 스톱이냐’의 문제였다.
누군가는 쾌재를 부르고 누군가는 씁쓸하게 만든 NVIDIA의 2024년도 1분기 실적이 미국 현지 시각으로 5월 22일 장 마감 직후 발표됐다. 이날 NVIDIA는 해당 분기 매출이 260억 4,000만 달러(약 35조 6,000억 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월가의 예상치인 245억 7,000만 달러를 크게 웃돈 수준이다. 주당 순이익(EPS)은 1년 전 0.82달러 대비 411% 급등한 5.57달러로 추산됐으나, 실제 주당 순이익은 6.12달러로 예상치를 상회했다. 전년 동기와 비교했을 때 매출은 262% 급등했고, 주당 순이익 역시 4.5배 늘어났다. 젠슨 황 NVIDIA 최고경영자는 이날 차세대 제품을 언급하며 “우리는 다음 성장의 물결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했다. NVIDIA는 오는 2분기 매출 전망을 280억 달러로 예상했다. 이는 월가 전망치인 266억 1,000억 달러를 웃도는 수치다.
2023년 11월 30일(현지 시각) NVIDIA는 반도체 업체 최초로 장중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돌파했다. 1조 달러는 ‘꿈의 시가총액'으로 불리는데, 이 수치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기업으로 꼽히는 기준점이자 시대를 주도하는 혁신의 상징이다. 현재 시가총액 1조를 넘어선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엔비디아, 구글, 사우디아람코, 아마존, 메타이다. 석유기업 사우디아람코를 제외하면 모두 기술의 변곡점에서 등장한 기업들이다. 테크 기업으로 가장 먼저 시총 1조 달러를 기록한 기업은 애플로 ‘아이폰 모멘트'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스마트폰이라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시장의 혁신을 가져온 기업이다. 한 달 뒤 아마존도 1조 클럽에 가입하였는데 이때는 전자상거래가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 잡으며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시기다. 그다음은 클라우드의 시대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9년 미국 기업 중 세 번째로 시총 1조 달러를 달성하며 당시 외신들은 “ “MS가 구름을 타고 올랐다”고 평가했다.”
2024년 5월 23일 기준 NVIDIA의 시총은 2조 3,356억 달러로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에 이어 전 세계 기업 시총 3위에 올라섰다. 일각에선 NVIDIA가 ‘제2의 아이폰 모멘트’의 수혜를 누리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NVIDIA는 어떤 파도를 올라타고 전 세계 3위의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었을까?
이는 지난 2023년을 가장 뜨겁게 달구었던 하나의 기술과 연결된다. 필자는 이에 대한 보고서를 거의 모든 강의에서 써내야 했을 만큼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고 또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익혀야 한다고 평가됐던, Open AI의 Chat GPT이다. Chat GPT의 등장으로 전 세계는 생성형 AI(Generative AI)에 열광했고 AI 산업을 뜨겁게 달구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창작'을 뚝딱 해내는 이 생성형 AI를 보며 기업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포착한 듯 AI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 모든 일의 선두에 선 Open AI였지만 앞서 설명한 ‘돈벼락'의 주인공은 될 수 없었다. 물론 Open AI는 현재 비상장기업이다. 그렇기에 NVIDIA와 같이 주식이 급등하고, 시총이 폭증할 순 없겠지만,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오픈 AI가 직원들이 보유한 주식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책정된 기업 가치는 약 860억 달러이다. 이는 10개월 만에 3배 급등한 놀라운 수치이다. 하지만 2023년 기술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건 Open AI라면, 돈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건 NVIDIA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재주는 Open AI가 부리는데 돈을 쓸어 담는 건 NVIDIA일까?
협상력 깡패, 반도체
기업의 수익과 비용을 이해하기 위해선 산업 전체로 관점을 확대해야 한다. 누가 돈을 얼마나 가져가냐는 산업 속 역학관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Michael Porter의 ‘5 Forces Model’을 활용할 수 있다. ‘5 Forces Model’은 산업 분석에 사용되는 프레임워크로 업계 내에서의 기존 기업 간의 경쟁, 잠재 진입자의 위협, 대체재의 위협, 공급자의 협상력, 구매자의 협상력이라는 5가지 관점에서 업계 구조 및 시장 매력도를 평가하는 도구다. 이 5가지 forces로 이루어진 역학관계를 보며 산업 구조 파악이 가능하다.
첫 번째 관점인 기업 간 경쟁은 경쟁자의 숫자, 독점 또는 과점과 같은 산업 집중도, 기업 간 제품 및 가격 경쟁 양상 등을 살펴보고 이러한 경쟁의 이면에 있는 전략과 전술을 살펴본다. 잠재 진입자의 위협은 업계 진입장벽을 분석하며 신규 진입자가 들어올 수 있는 가능성과 조건을 살펴본다. 진입장벽의 크기를 알아보기 위해선 제품의 차별화 난이도, 제품 유통 채널에 대한 고정성, 기술적 난이도, 법적 규제, 규모의 경제성 등을 알아보아야 한다. 대체재의 위협은 사용자들이 자사의 제품 대신 비슷한 사양과 더 싼 가격의 타사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재화나 서비스로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선 대체재의 존재, 대체재로의 전환 비용, 산업 내 제품에 대한 비용 절감 혁신을 살펴보아야 한다. 마지막 두 가지는 기업이 직접적으로 상대해야 하는 두 주체, 공급자와 구매자에 대한 협상력이다. 우선 이 모델에서의 공급자는 자사가 판매하는 상품 또는 서비스에 들어가는 부품이나 소재를 공급해 주는 거래처 또는 파트너를 뜻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신뢰 관계를 구축한 파트너는 기업 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잠재 진입자의 위협을 낮춰주는 강력한 자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공급하는 부품을 소수의 기업이 독점하고 있다면 이는 자사의 수익률을 낮추기 때문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렇듯, 공급자의 협상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공급자의 시장지위와 희소성, 수요와 공급의 균형, 공급자 교체 비용 등의 항목을 분석해야 한다. 마지막은 자사의 제품 및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의 협상력을 의미하는 구매자의 협상력이다. 이때 자사의 비즈니스 모델에 따라 소비자가 일반 고객이 될 수도, 기업이 될 수도 있다. 구매자의 협상력은 구매자의 숫자, 고객의 주문량, 구매처 전환 비용 등에 의해 결정된다. 일례로 애플에 대한 구매자의 협상력은 매우 낮은 편이다. 애플의 경우 고객 충성도가 아주 높기에 기존 경쟁자들 사이에서도 유리한 시장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공급자에 대해서도 강한 협상력을 가진다. 애플의 높은 순이익률은 이러한 역학 관계에서 비롯된다.
이 프레임워크를 AI 산업에 적용해 보자면 중심에 Open AI가, 공급자에 NVIDIA, 구매자에 기술 라이선스를 구매하는 기업들과 Chat GPT 등의 서비스를 구독하는 개인이 위치한다. 개인에게 가장 크고 분명하게 보이는 건 Open AI이겠지만, 우리에게 도달하는 AI의 경로를 되돌아가 보면 그 시작점에 NVIDIA가 있다. NVIDIA가 Open AI에 공급하는 것은 반도체 칩이다. 3나노,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3 크기의 회로가 새겨지는 이 자그마한 반도체 칩이 거대한 AI 산업, 더 넓게는 전 세계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하드웨어의 중요성과 힘은 엄청나다. 하지만 세계 경제의 기여도와 중요성에 반해 이 영역을 주도하는 기업의 수는 매우 적다. 앞선 5 Forces Model 설명에서 구매자 협상력의 중요한 분석 항목 중 하나로 ‘공급자의 시장지위와 희소성’을 언급했다.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 세계적으로 매우 희소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이 반도체 영역의 기업들은 자연스레 아주 강력한 공급자 협상력을 가지게 된다. 즉, Open AI가 아무리 재주를 부린다고 해도 결국 강력한 중력에 이끌려 돈은 반도체 기업으로 흘러 들어간다.
AI의 성장을 견인한 반도체
적은 수의 기업이 희소성을 가진다는 것에 반해, 왜 반도체가 그토록 중요한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반도체가 AI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고 기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Chat GPT’와 더불어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있는 AI 계의 또 다른 빅 이벤트는 ‘알파고'이다. 2016년 이세돌 9단은 구글의 딥마인드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국을 펼쳤다. 바둑계의 예상과는 다르게 이 대결은 4:1 알파고의 승리로 끝났다. 기계와 인간의 대결, 그리고 기계의 승리는 사람들에게 충격과 호기심으로 다가왔고 이 ‘알파고 충격’은 사회 각 분야에 퍼져나갔다. Open AI의 성공을 거슬러 올라가면 NVIDIA가 있듯이 알파고의 뒤에는 2012년 ImageNet 사물 인식 대회에서 우승한 인공지능 기반 알고리즘, 알렉스 넷 AlexNet이 있다. 인간의 뇌는 숫자 계산을 컴퓨터보다 빠르게 할 순 없지만,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영역에서만큼은 컴퓨터를 압도한다. 우리가 고양이와 개를 쉽고 빠르게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매우 오랜 기간에 거쳐 학습하며 사물의 특징을 파악하고 두뇌 신경망에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스 넷은 학습을 통한 인간의 두뇌 활동 방식을 본떠 작동하도록 한 인공지능이다. 즉, ‘인공신경망(Artificial Neural Network)’을 구성하여 인간과 유사한 방식으로 학습하고 이에 기반하여 사물을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능적인 행동을 모방하는 시스템’이다. 이는 자연스레 인간 뇌의 신경망을 모방하는 방법론으로 이어지지만, 이 아이디어가 완성되기까지는 6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AI 연구의 발을 묶은 한계점은 세 가지였다. 인공신경망 이론의 발전이 더디었고 엄청난 양과 범위의 데이터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 데이터를 모두 처리할 수 있는, 엄청난 연산 능력을 갖춘 하드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 2012년 알렉스 넷의 등장은 첫 번째 문제, 이론의 한계가 풀렸음을 시사했다. 1990년대 이후 인터넷과 검색엔진의 발전으로 시작된 빅데이터 시대는 두 번째 문제, 데이터의 한계를 해결했다. 마지막 한계점은 연산력이었다. 더 이상 데이터는 부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실시간으로 생성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얼마나 빠르게, 효율적으로 처리할 것인가가 핵심적인 문제였다.
현대 컴퓨터의 기본 구조인 ‘폰노이만 구조(Von Neumann Architecture)'는 중앙처리장치(CPU), 메모리,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CPU는 연산과 제어를 담당하는 컴퓨터의 두뇌라고 볼 수 있고, 메모리는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저장한다. 이 두 장치는 서로 분리되어 있는데, CPU 구동에 필요한 데이터와 프로그램은 이 둘을 연결하는 통로인 버스(BUS)를 통해 전달된다.
컴퓨터의 데이터와 프로그램은 수백만 개의 1과 0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1과 0은 그 숫자 자체를 뜻하는 게 아닌 실리콘 위를 타고 흐르는 미세한 전류 흐름의 상태를 뜻한다. 이 두 숫자를 처리하고, 기억하고, 켜고 끄는 아주 작은 전자 스위치가 트랜지스터이다. 러프하게 비유해 보자면, 수도꼭지를 통해 빠져나오는 수돗물의 양을 조절할 수 있는 밸브와 같다. 이 트랜지스터가 다시 수백만 개 혹은 수억 개가 모여서 반도체 칩, 혹은 집적회로를 만든다. 고성능의 칩을 만들기 위해선 트랜지스터를 최대한 작게 만들어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이 집어넣어야 한다. 고든 무어는 매년 칩 하나에 올라가는 부품의 숫자가 매년 두 배로 늘어날 것이라 언급했다. 앞서 반도체 칩 속 CPU가 계산 능력을 제공한다고 언급한 것을 기억한다면, 이 ‘두 배’의 숫자가 곧 컴퓨터 연산력이 매년 두 배가 될 것이라는 예측으로 이어진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예측은 “무어의 법칙 Moore’s Law”라 불린다. 1965년 무어는 향후 10년간 이 법칙으로 지수함수적 성장을 이루어낼 것으로 예측했지만, 이 엄청난 진보는 반세기가 넘도록 지속되었다. 60년이 지난 지금 최첨단 칩의 트랜지스터 숫자는 118억 개다. 지난 반세기 동안 1과 0을 처리하고, 기억하고, 켜고 끄는 비용은 10억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엔지니어들은 실리콘 위에 질주하는 이 작은 전자 흐름을 통제하는 법을 배웠고, 이에 기반하여 모든 디지털 세계가 세워졌다. 실리콘밸리가 실리콘(Si)과 (샌타클래라) 계곡으로 이루어진 이유다.
엄청난 성장을 이루어낸 반도체이지만 소자 미세화가 무한정 진행될 수는 없었다. 소자의 크기가 분자 크기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가 처리하고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수는 유한하다. GPT-4와 같은 모델을 학습하기 위해서는 10 billion petaFLOP이 필요하다. 이는 1010 x 1015 = 1025번의 부동 소수점 연산을 의미한다. 단순하게 가정하여 CPU 한 개, 즉 컴퓨터 한 대로 GPT-4를 학습하려면 대략 9백만 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시간을 짧게 바꾸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CPU 성능을 9백만 배로 빠르게 만든다 혹은 CPU 9백만 개를 한 번에 사용한다. 말이 되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슈퍼컴퓨터가 바로 이러한 방식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해 왔다. CPU 10~20개 정도가 들어간 서버 수백 대를 연결해서 사용하는 방식이 슈퍼컴퓨터, 정확하게는 HPC, High Performance Computer라고 한다. 어디까지나 AI 시대의 금이라 불리는 GPU를 사용하기 이전의 이야기다.
게임 등 컴퓨터 용도가 고급 그래픽 분야로 확장되며 처리 작업 수가 급증하자 CPU로는 더 이상 모든 작업을 처리하기 위해 어려워졌다. 그래픽 연산은 CPU 연산에 비해 단순하고 유사한 작업을 반복해야 했기에 사용자들은 이러한 작업 조건에 적합한 전용 칩을 원하게 되었고 이러한 시장 니즈에 발맞추어 NVIDIA가 GPU(GeForce)를 출시한다. GPU는 CPU에 필요한 많은 회로를 덜어내고, 대신 더 많은 연산 코어를 집적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연산을 담당하는 장치인 ALU가 CPU에는 1개 들어가는 것에 반해 GPU는 2,500개의 ALU를 사용하고 이는 유사하고 반복적인 연산을 병렬로 처리함으로써 처리 속도가 월등히 빠를 수 있는 구조적 배경이다. 표현을 빌려 비유해 보자면 CPU는 똑똑한 교수 1명(적은 양의 고성능 ALU), GPU는 여러 명의 초등학생(많은 양의 단순 연산 처리 ALU)들이 모인 장치다.
현재 가장 최선 서버용 GPU인 NVIDIA H100을 사용하면 앞서 9백만 년이 필요했던 계산이 대략 2천 년으로 줄어든다. 실제 서버에 사용되는 GPU 숫자는 8개이기에 이를 감안하여 다시 계산하면 240년이다. 이 말은 즉, 240대의 서버를 사용하면 현재 가장 커다란 모델을 1년 만에, 2,880대의 서버를 사용하면 단 1개월 만에 최대 계산량을 처리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가정으로 계산했지만, ‘엄청난 연산 능력을 감당할 수 있는 하드웨어’가 등장했음은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일 것이다. 이 하드웨어, GPU의 등장으로 AI는 날개를 달고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왜 이에 따른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특정한 반도체 기업, NVIDIA에 쏠렸을까?
모두가 금을 캐러 들어갈 때 그 앞에서 곡괭이를 팔자!
답은 간단하다. 현재 GPU 생태계를 장악하고 있는 기업이 NVIDIA이다. NVIDIA의 GPU는 성능도 성능이지만 경쟁우위의 핵심엔 CUDA 가 있다. 엔비디아는 2007년 CUDA 라는 소프트웨어 개발 플랫폼을 개발하고 이를 엔비디아 GPU를 사용하는 고객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한다. CUDA 는 GPU에서 수행하는 병렬 처리 알고리즘을 산업 표준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하여 작성할 수 있도록 하는 GPU 최적화 소프트웨어이다. Chat 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이 소프트웨어를 바탕으로 개발되며 CUDA를 활용하기 위해선 NVIDIA의 GPU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재 다른 회사 GPU 제품을 사용하기 어렵다. 대체제로 이동할 가능성을 없애며 NVIDIA의 독점 체제가 가능해졌고 그 결과 NVIDIA는 현재 엄청난 공급자 협상력을 지니고 있다. 이 덕분에 NVIDIA는 엄청난 양의 칩을 판매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78.4%(24년 1분기 실적)의 마진율을 기록할 수 있었다. 회사의 주력상품인 GPU가 하필 딱 인공지능 및 IT 발전에 필수적인 운 좋은 상황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NVIDIA의 AI 사업부 출범 시기는 2012년이다. 일찍이 생성형 AI의 잠재력을 인식하고 인재 확보와 연구에 상당한 자원을 투입한 NVIDIA는 이 분야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략적 결정을 통해 NVIDIA는 기술 패러다임의 선두에 서 있을 뿐만 아니라 본 기업에 유리한 업계 표준을 형성하고 생성형 AI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GPU 하드웨어 및 AI 소프트웨어의 선도적인 공급업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곡괭이 판매 부스에서는 NVIDIA의 동료들도 확인해 볼 수 있다. 5 Forces Model을 다시 가져와 이번엔 NVIDIA를 중심에 두면 공급자 자리엔 대표적으로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 기업이 위치한다. 이 분야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그리고 TSMC이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중심으로 개발되어 왔다. 인공신경망 자체는 GPU에 들어갈 수 없으며, 앞서 폰노이만 구조에서 보았듯이 반드시 메모리에 담아야 한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CPU로부터 많은 정보가 요청될 시, CPU와 메모리 사이의 통로가 굉장히 붐빌 수 있다. CPU의 속도가 빨라지더라도 다음에 처리해야 할 데이터가 메모리로부터 전달되는 속도가 느리다면 CPU가 대기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를 ‘폰노이만 병목 현상(Bottle Neck)’이라고 한다. 속도의 차이에서 발생하기에, 이 현상은 CPU 처리 속도가 빨라질 수록 악화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메모리의 접근 속도를 높여야 했으며 비용과 성능을 최적화할 수 있는 메모리 계층 구조가 필요했다.
이 메모리 분야를 선도하는 두 기업이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다.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부문에서는 TSMC에,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는 SK 하이닉스에 밀리고 있었기에 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주가를 크게 끌어내렸다. 하지만 엔비디아의 CEO 젠슨 황이 지난 3월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 HBM도 사용하느냐는 질문에 “현재 테스트하고 있으며 삼성에 거는 기대가 크다"라는 발언을 하며 상황이 급반전된다. 20일 삼성전자는 전장보다 4,100원 오른 주당 7만 6,900원에 장을 마쳤으며 외국인과 기관이 삼성전자의 주식을 쓸어 담은 것으로 분석됐다. 그렇다면 젠슨 황의 발언 속 HBM은 무엇이고 엔비디아는 삼성전자에서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앞선 반도체 종류에서 GPU가 비메모리 반도체라면 HBM은 메모리 반도체이다. HBM, High Bandwidth Memory와 같은 고용량 고대역폭 메모리 반도체이다. 이 기술은 D램을 여러 개 쌓아 올려 데이터가 지나가는 통로의 폭을 넓히는 방법으로 처리 속도를 극대화하여 메모리 집적도를 향상했다. 연산 성능을 크게 향상할 수 있기에 인공지능과 더불어 자율주행 등 대용량 데이터 처리에 사용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이 최근 5세대인 HBM3E 양산에 최초 돌입하며 기술ㅍ주도권을 가져가고자 했지만, 삼성전자가 최근 업계 최대 용량인 36 GM HBM3E 12단 적층 D램 개발에 성공하며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지위를 다시 굳건히 하였다.
또 다른 중요한 반도체 기업, TSMC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이다. 반도체 기업은 자사의 칩을 직접 제조할 수도 있지만 설계는 자사가 하되 생산은 위탁함으로써 자체 생산 시설에 투자하는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이때 위탁 생산을 담당하는 반도체 기업을 파운드리, 반대로 설계를 담당하는 기업을 팹리스(Fabless) 기업이라 부른다. 다시 정리해 보자면,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는 반도체 설계 업체가 설계한 칩을 대신 제조해 주는 서비스로, 고객사의 설계에 따라 반도체를 생산하는 것이 주된 업무이다. TSMC는 Apple, NVIDIA 등 다양한 팹리스 기업들의 반도체 칩을 제조하며, 이 덕분에 이들 기업은 자체 생산 시설 없이도 첨단 반도체를 시장에 공급할 수 있다. 반면에 삼성전자와 같은 일부 기업은 설계와 제조를 모두 수행하는 IDM(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 모델을 채택하고 있다. TSMC는 지난해 4분기 기준으로 61.2%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NVIDIA와 삼성, TSMC가 소속된 이 세 가지 반도체 분야는 서로 긴밀히 상호작용을 하며 전체 반도체 시장과 기술을 끌어나간다. NVIDIA는 안정적인 협력 관계를 성공적으로 구축하고, 이 관계에서도 주도권을 가져가며 성공적인 ‘곡괭이 판매'를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3 나노미터의 힘
이번 5월 13일, 조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산 전기차에 10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은 자유무역을 외치고, 미국은 보호무역을 내세우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세계 경제가 보호무역의 흐름을 타며 명확한 블록으로 나누어지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차 세계대전의 승부를 가른 것이 강철과 알루미늄이고 냉전을 설명하는 한 단어가 핵 Nuclear라면, 현재 세계 경제와 패권을 가르는 하나의 원소는 규소, 즉 실리콘일 것이다. 2020년 8월 18일 발표된 미국 상무부의 ‘수출 통제 명단'은 미국 기술의 해외 유출을 규제하기 위해 군사 시스템의 판매를 방지하는 데 활용되어 왔지만 이제 그 통제가 소비재에도 두루 사용되는 컴퓨터 칩으로 확장되었다. 오늘날 중국은 석유보다 반도체 수입에 많은 돈을 쓴다. 그리고 미국은 이 칩으로 중국의 목을 조르고 있다. 미국의 규제는 직접적으로 중국 IT 대기업 화웨이를 향해 있었다. 화웨이의 높은 가격 경쟁력으로 위험성을 느낀 미국이 화웨이의 미국 기술 활용 컴퓨터 칩 구입을 막자, 화웨이의 글로벌 확장은 발이 묶였다. 제품 라인 전체가 생산이 불가능해지며 이 거대기업은 ‘기술적 질식 상태'에 빠진다. 중국과 미국이 패권을 다투는 최전선에는 대만이 있다. 중국은 수복해야 할 영토로, 미국은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방어하기로 작정한 이 대만에는 전 세계 반도체 생산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TSMC가 있다. TSMC의 최신 반도체 제작 설비를 향해 단 한 발의 미사일 공격만 성공해도 전 세계의 스마트폰, 자동차, 통신망, 데이터 센터 영역에 생산 지연이 생기며 그 피해는 수천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TSMC가 가지고 있는 치명적 리스크는 반대로 반도체 칩이 기술적 도구 뿐만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도구로도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계학습에서 자율 주행 차량까지, 미사일부터 군사용 드론까지, 모든 고급 기술은 반도체 칩에 의지하며 이 반도체는 현대 세계를 만들어 왔다. 월등히 높은 성능의 반도체를, 그것도 엄청난 양으로 요구하는 AI 산업이 흥하는 건 뛰어난 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에 분명 호재이다. 하지만 수출국 1위인 중국과 안보적 파트너 미국의 갈등이 나날이 심해져 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고 있다. 기술이 정치, 경제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순환 관계를 고려할 때, 반도체를 기술뿐만 아니라 경제의, 안보의 핵심 칩으로 바라보며 지혜로운 포지셔닝이 필요한 시점이다.
[참고자료]
문헌
크리스 밀러, [칩워: 누가 반도체 전쟁의 최후 승자가 될 것인가], 부키, 2023
최리노, “[반도체의 이해 5편] 새로운 메모리 탄생을 위한 메모리 소자의 조건들(5/7)”, SK hynix newsroom, 2023-09-07
최리노, “[반도체의 이해 6편] 폰노이만을 넘어서라, 차세대 컴퓨팅과 미래 반도체 연구(6/7)”, SK hynix newsroom, 2023-10-19
옴니어스, “딥러닝 라이즈: 알파고는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았다", 브런치, 2020-02-13
조규남, “AI 전성시대, CPU가 아닌 GPU가 주목받는 이유", 요즘 IT, 2023-10-31
전아현, “엔비디아, 어닝서프라이즈로 ‘AI 열풍’ 입증…“티핑포인트 도달했다””, 이투데이, 2024-02-22
김경민, “‘9만전자’ 가나···젠슨 황 한마디에 주가 뛴 삼성전자”, 경향신문, 2024-03-23
박권, “무어의 법칙이 끝나고 난 뒤 IT산업의 미래는?”, 중앙일보, 2024-03-11
Pradeep Sanyal, “Strategy Lessons from Nvidia's Meteoric Rise”, Linkedin, 2023-06-30
Seohyun-kim, “CPU vs GPU : CPU 동작 과정, GPU와 AI, CPU GPU 차이”, selenium.log, 2022-08-10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컴퓨터의 구조는 어떻게 생겼을까? 폰 노이만 구조", 네이버블로그, 2020-05-28
그림 및 도표
[그림 1] “Porter's Five Forces - The Framework Explained”, Mindtools
[그림 2] 자체제작
[그림 3]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참고 자체제작
[그림 4] Seohyun-kim, CPU vs GPU : CPU 동작 과정, GPU와 AI, CPU GPU 차이, selenium.log, 2022-08-10
[그림 5] 장종원, “AI 반도체 시장의 현황과 전망”, SAMSUNG SDS, 2024-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