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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94호 매듭 23화

[오아시스] 봉제인형의 꿈

다다이스

by 상경논총

봉제인형의 꿈

다다이스

저는 당신의 작은 인형이에요

저를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사랑을 주세요

저는 당신의 어린 시절이에요

당신의 무구하고 기쁜 날들에

제가 곁에 있을게요

저는 매듭지어져서 태어났어요

묶인 매듭을 풀 줄도

묶을 줄도 몰라요

저는 당신만을 위해 존재해요

저를 묶은 실이 낡고 해질 때까지

그저 옆에 두고 봐주세요

요즘 당신은 힘들어 보여요

제게 주던 애정과 손길은

사라진 지 오래에요

당신이 아프거나 힘든 날에는

꽉 쥐고 화풀이를 해도 좋아요

저는 괜찮아요

당신은 이제 어른이 되었군요

당신에게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지 않다는 걸 알아요

한번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위치에서

저는 몸부림치며 당신을 바라봐요

움직이지 않는 팔을 뻗을 때마다

저를 묶고 있는 실이

헐거워지는 걸 느껴요

아아, 매듭이 풀리는게 느껴져요

한데 묶여있던 실들이 흩어져요

이제 비로소 당신에게 갈 수 있어요

당신에게 가 닿을 때

난 아무도 못듣는

솜털 비명을 질러요

당신은 이제 힘들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사라졌다고 슬퍼하지는 말아요

나는 당신이 더 이상 아프기를 바라지 않아

눈에 보이는 이상

눈에 보이는 추억

보이는 곳에 있는 매듭은 때로 너무 아파요

저는 그대가 필요할 때

가끔 만져볼 수 있도록

그대의 안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는 매듭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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