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90호 시작 22화

[오아시스] 노란 시작에 대하여

글 짓는 원숭이

by 상경논총

시월의 말일, 백양로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은행잎들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노란 시작들도 있다고.


이번 겨울은 유난히 참을성이 없는 듯했습니다. 안산에서 청송대를 지나 백양로까지 일찍이도 달려온 서느런 바람에, 은행잎들은 발발 떨며 실낱같은 손가락으로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노랑들은 곧 시작될 어쩔 수 없는 날들을 두려워하는 듯 보였습니다. 곧 하릴없이 떨어질 노랑들의 발발거림이 애처롭게 느껴진 것은 이 가을이 처음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 가을의 나는 은행잎처럼 발발거리고 있다고 말입니다.


내 기억 속 첫 은행잎은 여섯 살 무렵 소풍에서 주웠던 조그마한 그것이었습니다. 쿰쿰한 냄새에 겁먹어 집게손으로 겨우 은행잎을 잡아 올리던 그 시절부터, 나는 시작이 두려운 아이였습니다. 토끼반에서 종업하고 사슴반에 들어가는 일이, 일주일에 한 번 새로운 짝을 만나는 일을 왜 그리도 싫어했는지 당신은 이해하지 못하실 수도 있겠지만, 나는 어른들이 말하는 ‘어쩔 수 없는’ 그 변화들이 싫은 아이였습니다.


그 시절부터 나는 관성 속의 아름다움을 생각해왔습니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르는 계절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나는 달력을 넘길 때면 그 반복을 끊어 내는 숫자들이 미웠던 애어른이었습니다. 스무 살, 진짜 어른이 된 나는 방에 식물을 들여놓기 시작했습니다. 내 방에 들어온 식물들은 빠짐없이 그간의 삶을 박아왔던 흙에서 꺼내어져, 샤워기 물줄기에 뿌리가 하얗게 씻기고, 투명한 물에 담기고 맙니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앞에서 여덟 뿌리의 생명들이 그렇게 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들에게는 자란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물에 잠겨 길게 머물고 있을 뿐입니다.


나는 여전히 피터팬이 사는 네버랜드로 향하는 꿈을 꾸지만, ‘어른’이 되었으므로 이내 괜찮은 척, 담담한 척을 썩 잘 해냅니다. 그러나 활자 속에 숨어 고백해 보자면, 은행잎들에 백양로의 회색 돌바닥이 그러하듯, 나에게 ‘어쩔 수 없는' 학교 너머의 세상은 여전히 염려스럽습니다. 곧 하릴없이 그곳으로 떨어질 나 자신을 떠올리면 눈물 나게 애처롭습니다. 결국 지나가는 것들의 등 뒤에 미련 한가득 퍼부으며 시작 앞에서 머뭇거리는 추잡한 버릇은 아직도 고치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면 여섯 살 버릇은 언제까지 갈지 아득합니다.


넘실대는 오아시스 속에 숨어 한 번 더 고백하자면, 이 글이 인쇄되지 않고 내 글씨로 전해졌더라면 당신께서는 넘실대는 글씨에 놀라셨을 것입니다. 백지 앞에 놓인 내가 또 발발댔기 때문입니다. 백지를 마주하면 아주 ‘적절한’ 단어만을 골라내야 한다는 근심이 먼저 자리를 잡습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은 아무도 나서서 질문하고 싶지 않아 하는 학생들만 모인 강의실 같습니다. 시작보다 앞서는 것은 기대일까 흥분일까 생각일까 무엇일까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근심입니다.


[시여, 침을 뱉어라.]에서 김수영 시인은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월의 어느 밤, 시작의 시작을 되뇌던 나는 시인들의 시작(詩作)하는 마음이야말로 시작(始作)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머리를 하얗게, 백지가 나를 보고 질릴 만치 하얗게 만들고는 몸으로 밀어붙였습니다. 그렇게 이 글은 시작(始作)되었습니다.


시월의 말일, 백지를 밀어내며 생각했습니다. 아, 저 노랑들의 나풀거림을 어쩔 수 없는 ‘추락’이 아닌 온몸으로 하는 ‘하강’으로 여겨야 하겠다고.


keyword
이전 21화[오아시스] 다시 시작해도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