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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90호 시작 23화

[오아시스] 그리움은 옛 추억을 들추기 시작하고

매미

by 상경논총

내가 너희들을 다시 떠올린 것은 7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기에, 지갑 속 너희들이 있는 사진을 다시 꺼내는 것이 부끄러워졌다. 여느 날과 다를 것 없던 하루에, 안면도 없던 어느 한 소년의 나를 향한 미소는 며칠 동안 내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들어버렸다. 그저, 주위의 매미 소리가 너희들의 모습을 내 머리 속에서 덮어 버리기를 바랬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의 마음은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너희들을 만난 7월의 초원에서 누군가를 찾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야, 도착했어. 얼른 일어나." 이어폰 속 음악 소리가 멈추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설렘 가득한 목소리만 느껴진다. 나도 그들과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싶었지만, 적어도 내일 모래까지는 그럴 수 없는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여기에 온 목적은, 남들에게 드러낼 목적은 여행이 아니었으니까.


그저 못 이기는 척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그 날도 그러면 된다고. 나는 똑같은 생각만 되뇌며 너희가 있는 곳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던 싸구려 음악처럼, 나는 너희들을 만나는 것에 어떠한 의미와 목적도 가지지 못한 채 시간만 빠르게 흘러가기를 기다리며 버스 안에서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의 시야에 들어온 너희들의 환한 웃음이, 어느새 나의 두 손목을 붙잡은 너희들의 작고 고운 손들이 나를 당황하게 했다. 별다를 것 없는 상황이었지만, 어디선가 크나큰 괴리감이 나를 덮쳤다. 그저 작위적인 미소만 띄우면 된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너희들의 진실된 미소와 웃음소리는 당시의 나 스스로에게 거리감을,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만들며 나의 얼굴이 홍조로 가득 차도록 만들었다.


나의 바램은 이루어졌다. 그 날, 너희와의 7시간은 내게 7분, 아니 7초처럼 짧게만 느껴졌다. 그저 그렇게 너희와의 추억은 끝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함께 손을 붙잡고 너희들이 사는 곳을 구경하고, 함께 공놀이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함께 노래를 불렀다는 사실이, 이 모든 순간들이 나를 설레고 행복하게 해주어 더 이상 너희들을 떠올릴 면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아쉬움 따위는 없다고, 미련 따위는 없다고 속으로 혼잣말을 하며 느린 걸음으로 버스를 향했다.


그 때, 너희들이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와 내게 안겼다. 서투른 영어로 보고싶을 거라고, 나중에 다시 보자는 말과 함께 너희는 내게 사진 한 장을 건네 주었다. 사진 속의 너희들은 카메라를 향해 웃고 있다. 그 웃음을 잃기 싫었기에, 나는 아무 말없이 너희들을 꼭 안아주었다. 내가 그 순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눈물을 삼키는 것 말고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너희들을 잊을 수 없게 되었고, 너희에게 받은 사진 한 장은 그리움의 시작이었다.


그저 그런 방식으로 사람들의 인연이 끝나는 것이라고 여겨왔던 나에게, 너희들의 건네 준 사진은, 이별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그리움이라는 형태로 다가왔으며, 너희들이 너무나도 그리웠기에, 나는 너희들을 마주쳤을 때의 부끄러움을 다시는 느끼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너희들을 떠올리며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너희들을 향한 다짐은 어느 노래 가사처럼, 밝고 짧게 타올랐다가 바삭해진 껍데기만 남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껍데기는 오랫동안 잊힌 상태로 존재하다가 그리움이라는 형태로, 사진이라는 형태로 다시 나타난 것이리라.


희미했던 다짐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을까? 매미 울음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한 늦여름, 너희들의 사진을 다시 한번 꺼내어 보았다. 사진은 구겨진 흔적으로 가득하지만, 너희들의 웃음은 7년전 내가 봤던 모습 그대로이다. 아마 나는 너희들의 웃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듯하다. 마음을 다잡아본다, 방황은 여기서 멈추자고. 앞으로도 나는 너희들의 사진을 간직할 것이고, 계속 꺼내어 볼 것이기에.


오늘도 빛바랜 추억을 고이 닦으며 너희들을 웃음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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