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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Aug 22. 2022

이혼 후, 현타 오는 순간 #7

위기는 생각보다 사소하다.

  지난 7월 11일, 가정법원에서 협의이혼의사확인서를 받았다. 그의 외도 사실이 발각되고 그가 집에서 나간 것이 4월 1일이었으니, 딸과 둘이서 살게 된 것은 4개월이 좀 지났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긴 하지만, 나는 서서히 생활의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혼을 하려면, 경제적인 독립과 정서적인 독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두 가지가 이미 이혼 전에 다 되어있었기 때문에 쉽게 적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혼하고 얼굴 좋아졌다는 소리 듣는 1인... 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현타가 오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다. 혹시나 나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을 누군가가 공감할 수 있길 바라면서... 참고로, 순서는 가벼운 것에서부터 무거운 것 순으로 열거했다.


#1. 배달 음식을 시킬 때

  그와 함께 살 때, 가끔 매운 음식이 당기면 떡볶이를 시켜 먹었다. 떡볶이 1인분, 순대 1인분, 튀김은 골고루... 이렇게 시키면 양이 딱 맞았다. 지금은 떡볶이 1인분만 시키자니 뭔가 아쉽고, 더 시키자니 남길 것 같고 그래서 잘 안 시켜 먹게 된다. 와플도 마찬가지. 밥 먹고 나서 뭔가 아쉬울 때, 두꺼운 도우의 와플을 시켜 먹었다. 하나를 다 먹으면 너무 배가 부르기도 하고 몸에 죄책감이 들어서, 반을 나눠 먹는 게 딱 좋았다. (가끔씩 한 명은 와플이 먹고 싶은데 다른 한 명이 안 먹고 싶다고 하면, 이걸로도 서운해하고 그랬음 ㅎㅎ 참... 지금 생각하면 별 쓸데없는 걸로 투닥거렸구나 싶다.) 그런데 지금은 반을 먹어줄 사람이 없으니 아예 안 시키게 된다.

  원래도 배달 음식을 자주 먹진 않았지만, 이혼하고 나서는 더 안 먹게 된 것 같다. 간단하게라도 집밥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원래부터 난 집밥을 더 좋아했고 그는 외식을 좋아했다.) 그러니 건강과 환경엔 오히려 이득인 듯?


#2. 물리적인 힘을 써야 할 때

  쨈 뚜껑, 유자청 뚜껑, 꿀단지 뚜껑 등등... 절대 내 힘으로 열리지 않는 것들이 있다. 또, 무거운 물건을 옮겨야 하거나 가구 배치를 다시 하고 싶을 때,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크게 귀찮은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그의 큰 장점). 내가 부탁하면 언제든 와서 도와주었다. 조금 생색을 내긴 했지만, 내가 못하는 것을 자기가 하는 것에 대해 매우 뿌듯해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3. 내가 잘 못하는 일을 해야 할 때

  우리의 신혼집도 10년이 다 되어가니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아졌다. 옷장 경첩이 빠지기도 하고, 드레스룸 슬라이딩 도어가 고장 나기도 한다. 그럴 때, "남편~"하고 부르면, 웬만한 것은 다 해결이 되었다. 내 역할은 철물점에 가서 필요한 부품을 사 오는 것 정도였다. 자동차 관리도 어찌나 잘해주는지...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연료 첨가제(?) 같은 것도 사서 넣어주고... 유막제거제로 창도 닦아주었다. 그에게 쉬운 일이 난 너무나 어려웠다.

  그런데 한 번 해보니 생각보다 할만했다. 귀찮음만 없음 대부분 해결될 일이었다. 아직 드릴을 쓰는 것은 무서워서 드라이버를 활용하지만... 옷장 경첩을 풀고, 새로 산 경첩을 조립했을 때의 뿌듯함이란... ㅎㅎ (역시 싱크대 집 딸답게 잘 해내는 내가 기특함!!) 또, 정 안 되는 것은 아빠를 부르거나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한다. 아직 자동차 관련한 일은 손대지 못했는데... 유튜브에 각종 정보가 잘 나와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혼자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4. 집 안에 낯선 사람이 들어와야 할 때

  얼마 전에 누가 벨을 눌렀는데 얼굴은 안 보이고 목소리만 들려 너무너무 무서웠다. 알고 보니 아파트 하수구에 소독약을 뿌려주시는 분께서 앞집, 옆집 벨을 누르고 있으셔서 그랬던 것이었다. "소독하겠냐?"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혹시나 몰라서 우리 집 현관에 그의 신발 한 켤레를 올려두었다.


#5. 지인이 남편에 대해서 물을 때

  지금 내가 이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의 가까운 가족과 정말 친한 친구들밖에 없다. 이혼이 부끄러워서 알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부담스럽고 그들의 가십거리가 되는 것이 싫어서이다. 특히, 아이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은 더 조심스럽다. 이혼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혹시나 그중 한 명이라도 내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그래서 아직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아이가 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도 너무 싫다. 이건 내가 조금 더 고민해보고 지혜롭게 상황을 해결해나가야 할 것 같다.


#6.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볼 때

  나는 지금 무급 휴직 중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둘이 벌 때가 혼자 벌 때보다 심적으로도 여유롭다. (근데 생각해보면, 둘이 벌면 그만큼 또 많이 썼기에 남는 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가 매달 보내주는 양육비와 작년까지 모아 놓은 돈을 까먹으면서 생활하고 있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만큼 덩달아 초조해지는 내 마음...

  그렇지만 오히려 좋다! 방탕했던 지난날의 내 경제관념을 되짚어보고 재테크 공부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ㅎㅎ 이제부터 경제적인 자유를 위해 홀로 설 스스로가 기대된다.   


#7. 아이가 아빠를 그리워할 때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아빠가 TV에 나왔으면 좋겠어. 그럼 아빠를 매일 볼 수 있잖아."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

  "우리 이 아빠가 많이 보고 싶구나. 아빠도 그러실 거야. 그런데 이가 보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아빠가 이 보러 와주시기로 했잖아. 지금 아빠한테 전화해볼래?"

  또, 어느 날은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빠가 불쌍해. 아빠는 내가 보고 싶어서 밥도 못 먹고 고통받고 있대"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저런 걱정을 시키는 아빠가 오히려 더 애 같았다. 그런 그를 욕하고 싶었지만, 아이를 생각해서 참고 또 참았다.

  "아, 아빠랑 이랑 보고 싶다고 하면 엄마는 언제든 환영이야. 단지, 엄마랑 아빠가 사이가 안 좋아졌을 뿐이야. 엄마랑 이, 아빠랑 이는 여전히 가족이야. 아빠 보고 싶을 땐, 언제든 얘기해"

  사실 이 문제는 내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이다. 우리 이가 커서 결혼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나중에 나를 원망하면 어떻게 할지... 아직 답은커녕, 솔직히 문제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만약에 내가 오로지 이 아이를 위해서 결혼 생활 유지를 선택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쁜 엄마가 되어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엄마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행복할 수 없기에...


결론 : 이별 후 힘듦이 찾아오는 순간은, 연인이 잘못했던 것 때문이 아니라, 잘해주었던 기억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잘해주자. 이별 후에 그 사람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고 싶다면..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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