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 집에 놀러 온 내 친구에게 우리 딸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숨바꼭질 중, 옷장 속에 같이 숨어서 마치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말이다. 나중에 이 얘기를 전해 듣고 마음이 많이 아팠는데, 한편으로는 놀라기도 했다. 우리 딸이 '이혼'이라는 단어를 안다고? 어휘력이 우수.. 한... 걸...? ㅎㅎ
사실 나는 한 번도 아이에게 '이혼'이라는 말을 쓴 적이 없다. 아이 아빠가 얘기한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성향(다른 사람의 시선을 매우 의식하는 성향으로,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아이가 이혼 얘기를 할까 봐 두려워하는 분)으로 볼 때, 그도 굳이 '이혼'이라는 단어를 쓰진 않았을 것 같다. 추측컨대, 우리 엄마가 즐겨 보시던 아침 드라마 대사에서 배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목이 '엄마가 바람났다'였나? ㅎㅎ 어휴, 엄마 제발 ㅠㅠ)
아직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8년 결혼 생활 중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우리는 호텔에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이혼을 얘기했다. 남편의 외도에 대해 알게 된 후, 일주일 고민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처음에 모든 것을 부정하던 그도, 내가 증거를 내밀자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했다. 성격이 급한 사람답게 바로 짐을 챙겨서 나가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에게 설명할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그는 당장 나가고 싶다고 했다.
아이를 맡겨 둔 친정으로 갔다. 더 놀고 싶다고 떼를 쓰는 아이에게 "엄마랑 아빠가 중요한 할 말이 있어서 집에 가야 해"하고 말하니, 아이는 두말하지 않고 나를 따라나섰다. 아이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껴서였을까? 그런 아이와 나를 부모님이 배웅해주셨다. 두 분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나는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아이 눈높이에 맞춰 이 상황을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금아, 엄마랑 아빠는 이제 같이 살지 않기로 했어. 아빠가 그동안 엄마한테 거짓말해서 엄마랑 아빠랑 자주 싸운 거 알지? 아빠가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지 않기로 한 약속 어기고, 담배 피우지 않기로 해놓고 욕실 천장에 담배 숨겼다가 들킨 일도 있었잖아. 그런 일 때문에 엄마랑 아빠가 너무 많이 싸워서 이제는 서로 헤어지려고 해. 엄마랑 아빠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지만,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금이를 계속해서 사랑할 거고 지켜줄 거야. 금이는 엄마가 키울 거고 우리가 살던 집에서 그대로 살면 돼. 아빠랑 같이 살지는 않지만, 금이가 아빠 보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어."
그렇다. 그는 곱슬이 심했다. 디테일 무엇..
그즈음 우리 부부는 남편의 음주와 늦은 귀가 문제로 싸움이 잦았다. 심지어는 우리 딸 생일도 까먹고 그날 술 약속을 잡았으니, 한때 '딸바보' 소리 듣던 그도 제정신은 아니었던 것 같다.아이와 아이 아빠의 트러블도 심했다. 내가 운동 갔다 집에 돌아오면, 남편은 안마의자에 누워있고 아이는 TV 앞에 방치되어 있거나, 남편과 아이 둘이서 싸우고 있었다. 아이도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으니, 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알아듣는 것 같았다.
짐을 싼 남편이 아이와 나에게 "그동안 미안했다"라고 말하며, 우리 둘을 꼭 안아주었다. 나는 "그동안 나랑 사느라 당신도 수고했다.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해줘서 고맙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집을 나갔다. 아이는 울먹였지만,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물놀이를 하자고 하니 금세 기분이 풀린 표정이었다. '우리 딸, 아직 아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 거품 목욕을 했다. 내 생애 가장 슬프지만,즐거워 보이기 위해 노력했던순간이었다.
그로부터 5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 딸은 꽤 잘 지내고 있다. 아빠와의 사이도 더 좋아졌다. 예전에 같이 살 때는 아빠랑 둘이서 외출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는데, 이제는 아빠와 1박 2일 여행 가는 것도 좋아한다. 아, 한 번 웃픈 일이 있었는데... 우리 딸이 아빠한테 "아빠 여전히 사랑해"라고 문자를 보낸다는 것이 그만, "아빠 여자를 사랑해"라고 보냈다(자동 글자 완성 기능의 폐해 ㅎㅎ). 바로 '여전히'라고 고쳐서 보내긴 했는데, 그때 아이 아빠가 많이 놀랐다고 한다(인간아,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딸을 위해서 그 얘기 애한테 안 할 거거든?).
어제는 내 친구와 금이가 이런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모, 남자 친구 없지?"
"응. 이모는 잘생긴 남자 좋아하는데, 주변에 잘생긴 남자가 없네?"
"그럼 우리 아빠는 어때? 이모처럼 술도 좋아하는데, 둘이 잘 맞을 것 같아."
"음... 금이 아빠는 얼굴이 보통이라서 안돼."
"이모도 안 예쁘면서, 왜 잘생긴 사람 찾아?"
"야, 이모가 얼마나 예쁘단 소리 많이 듣...#$#!@#&^*%" (이모 의문의 1패ㅎㅎ)
미드에나 나올 것 같은... 이 대화는 무엇인가... ㅎㅎ 나는 잠시 머리가 멍해졌다. 그리고는 크게 웃었다. ㅎㅎ
이 글을 읽고 계신 구독자님들도 함께 웃어주시길 바랍니다. ^^저에겐 '재밌다'는 말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칭찬이에요(예쁘다는 말은 두 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