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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Sep 05. 2022

내 아이에게서 전 남편의 향기가 난다.

아빠를 닮은 너를 볼 때면...

혹시 이 광고를 아신다면, 최소 저랑 동시대 사람 (이미지 출처 : https://naver.me/xbnOlwyq)

  내 아이의 행동에서 전 남편의 모습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기분이 묘해진다. 아이가 아빠를 닮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그 닮음이 내가 싫어하는 전 남편의 행동인 경우에는 화가 난다. 특히 내가 못 참는 것은 아이가 거짓말을 할 때이다. 이럴 때는 거짓말하는 습관도 유전자에 쓰여 있나 싶다.


  금이는 거짓말을 참 잘한다. 입술에 김가루가 가득 묻어있는데도 양치했다고 우기는 사소한 거짓말부터... 난 분명 시간이 늦어서 집에 들어오라고 했는데, 친구 엄마한테 나의 허락을 받았다고 말하는 심각한 거짓말까지... 집에 학습지 선생님이 기다리고 계신데, 집 앞이라면서 친구랑 '문구야 놀자'까지 다녀올 때의 깊은 빡침이란...!!!!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금이가 친한 이웃 동생 집에 놀러를 갔다 왔다. 며칠 뒤 그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웃 동생 어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금이는 벌써 혼자 잔다면서요?"

  나는 급 당황했다(당황하면 이실직고하는 편).

  "네? 저랑 같이 꼭 껴안고 자는데... 자기는 마흔 살까지 저랑 같이 잔다던데요. ㅎㅎ"

  이렇게 말하는 순간, 아차 싶어 금이를 쳐다보았다. 금이 눈빛이 찌릿했다. 엄마한테 눈으로 욕하는 중.. ㅎㅎ 난 서둘러 말을 바꿨다.

  "아, 혼자 잔 적도 있긴 한데, 아직은 저랑 같이 자는 경우가 더 많아요."


  나중에 집에 와서 금이에게 왜 거짓말을 했는지 물어보았다. 금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줌마가 나한테 혼자 자냐고 물어보셨는데, 동생 앞이라서 그렇게 보이고 싶었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네'라고 대답이 나왔어. 근데 엄마는 왜 이렇게 센스가 없어?"

  "아, 미안. 근데 금아, 솔직하게 말해도 돼.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또, 며칠 전에는 금이 방학 숙제를 점검하며 다소 충격적인 것을 보고야 말았다.  

K-초딩의 흔한 거짓말


  사실 금이는 8월 마지막 주 내내 "엄마, 도대체 학교는 왜 가야 하는 거야?", "겨울 방학은 몇 밤만 자면 오는 거야?" 하며, 학교 가기 싫다고 노래를 불렀다(엄마 닮아서 그런 것 아닙니다ㅎㅎ).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일기장엔 학교가 너무 좋아서, 개학 꿈을 꿔야겠다니... 마지막에 '루룰 랄라'는 펀치라인인가... 뭔가... 이런 금이가 너무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이해가 안 됐다. 


  금이의 특성을 이입해 금이가 왜 이런 일기를 썼을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일기를 검사하실 선생님 마음을 생각해서였다. 자기가 학교 가기 싫다고 하면, 마음 아파하실 선생님을 생각해서 이렇게 쓴 거였다. 선생님도 학교 가기 싫다는 것은 꿈에도 모르겠지?(네.. 제 얘기 맞아요..ㅎㅎ)


  사실 이렇게 다른 사람 마음을 깊이 생각하는 것도 아빠를 닮은 점이었다. 어려서부터 금이는 남다른 구석이 있었다. (여기서부터 대놓고 딸 자랑이니, 불편하실 수 있습니다. ㅎㅎ) 금이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참 잘 헤아렸다.



  금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있었다. 금이는 유독 그 친구를 잘 보살피고 도와주었다고 한다. 6살 때 그 친구가 화장실 가는 것도 도와주려고 해서, 선생님이 금이를 말리셨단 얘기도 들었다. 아직까지도 응가하고 나서 (꼭... 나 밥 먹을 때...) 나를 부르는 아인데, 이거 실화인가 싶다. ㅎㅎ


  또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추석 맞이 팔씨름 대회에서 금이가 2년 연속 우승을 했는데, 크게 기뻐하지를 않았다고 한다. 다른 친구들은 팔씨름 한 판만 이겨도 소리 지르고 방방 뛰고 난리가 나는데, 우리 금이는 "선생님, 올해 우승 선물은 뭐예요?"라고 담담하게 얘기할 뿐이었다고 한다. 금이의 태도에 조금 당황하신 선생님께서 금이가 평소에 감정 표현을 잘 못하는지를 물어보셨다. 나는 아니라고, 집에서는 엄청 기뻐하고 뿌듯해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금이한테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물어보았다. 금이 왈, "엄마, 내가 그 상황에서 크게 기뻐하면, 나한테 진 친구가 얼마나 속상하겠어?"라고... 아주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요즘도 금이를 아는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금이는 어떻게 그렇게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친구랑 동생들을 잘 챙기냐고... 나는 웃으면서 아빠를 닮아서 그런 것 같다고 얘기한다. 금이의 아빠도 길냥이 데려와서 키우고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장점만 있는 사람도 없고, 단점만 있는 사람도 없다. 금이는 그저 부모의 장점과 단점을 골고루 닮았을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내 반응이다. 아이의 잘못이 10이면 10만큼만 훈육을 해야 하는데, 전 남편에 대한 분노까지 담아 20만큼 혼을 냈던 나 자신을 반성한다. 그리고 그가 금이에게 준 좋은 영향도 있음을 인정한다.


  법륜 스님이 유튜브에서 말씀하신 게 기억난다. 나쁜 짓을 한 전 남편을 용서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그가 나쁜 사람이라는 것은 내 아이의 몸속에서도 나쁜 피가 흐른다는 것이기 때문에, 내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를 불쌍한 사람이라 여기고 그가 잘 되길 빌어라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그 자식을 위해 기도한다. 그 자식을 닮은 내 자식을 생각하면서...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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