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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Sep 27. 2022

결혼의 아이러니 #4

8년간의 결혼 생활을 정리하며 느낀 것

<경고> 이 글은 제가 8년간의 결혼 생활을 뒤돌아보면서 느낀 것을 솔직하게 쓴 것입니다. 순전히 저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임을 밝힙니다. 재미로만 봐주세요.




  내가 이혼하기 전, 미혼인 누군가가 나에게 "결혼해서 좋아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둘 중에 하나로 답하곤 했다. 


(1) "좋죠. 안정감도 들고... 더 이상 누구 만날지 고민 안 해도 되고..."

(2) "음... 내가 결혼식 하기 직전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나 말리는 사람들이 있었거든? 지금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이 진짜 날 생각해주는 사람들이었더라."


  (1)은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2)는 친한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사실 두 가지 다 진심이다. 실제로 결혼을 해보니, 결혼의 좋은 점도 많았다. 하지만 안 좋은 점도 많았다. 무엇보다 그 두 가지가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A를 택함으로써 A의 기회비용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는 결혼을 후회하지 않는다. 경험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내 특성상 분명히 언젠가는 결혼을 해보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이성주의보다는 경험주의에 가까운 사람이라서, 내가 몸소 느껴봐야지만 깨닫는다. 결혼 전에 아무리 결혼 말리는 말을 들었어도 "난 다를 거야"라며 콧방귀만 뀌었을 거란 얘기다.


  이 글은 평행우주(?)에 살고 있는 28살의 나, 즉 결혼을 앞둔 나에게 전하는 일종의 신호 같은 것이다(맞아요. 저 영화 '인터스텔라' 신봉자입니다). 부디 그곳에 있는 내가 지금의 나보다 조금 더 현명하게 결혼생활을 하길 바라면서 쓰는 글이다.




1. 이별하고 싶지 않아서 결혼했는데, 결혼 때문에 이별이 너무 힘들다.


  8년 전으로 거슬러 가본다. 우리가 결혼을 결심했던 그 시기로. 당시 연애 3년 차이던 우린 이런 얘기를 자주 했다. "이제 우리 할 게 결혼밖에 안 남은 것 같아. 이렇게 매일 데이트하면서 길바닥에 돈 뿌리고 다니느니, 결혼하고 집에 함께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그와 나는 약간의 권태기였던 것 같다. 서로에 대한 호기심 결여, 평온한 지루함. 어쩌면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가 헤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에겐 새로운 자극 점이 필요했고, 결혼 준비는 분명 우리의 아드레날린 증폭제 역할을 충분히 했다(태어나서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시기였다는 점에서 특히). 신혼여행을 다녀온 우린 예쁜 부부 도장을 만들고, 각자의 가장 오래된 친구 한 명을 증인으로 삼아 혼인 신고를 했다. 5분도 안 걸리는 절차였다.


  그땐 몰랐다. 법률혼이 이렇게 끈질긴 것일 줄은. '혼인'이라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실체를 내 인생에서 지우기 위한 절차가 얼마나 까다로운지도. 가정법원에 각종 서류를 제출하고, 부부 상담에 참여해야 했으며, 3개월이라는 숙려기간을 기다려야 했다. 숙려기간 동안 마음이 바뀐 배우자 때문에 소송으로 가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실제로 내가 협의이혼의사 확인 기일에 법원에 갔을 때, 전화기를 붙잡고 "그놈이 안 나와서 이제 소송 가야 해"라며 울부짖는 분도 계셨다.


  그러나 법률혼을 취소하는 일은 그와 나의 삶을 분리하는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이별'이 칼로 무 자르듯이 깔끔하게 끝낼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이혼'은 마치 섞여있는 두 가지 색깔의 모래를 다시 색깔별로 나누는 일과 같았다. 내 것과 네 것의 경계가 무너진 일상에서 다시 경계를 세우는 일은 그만큼 혼란스럽고 어려웠다.


  콩을 쏟는 것보다 주워 담는 것이 더 어렵듯이,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원래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결혼은 특히나 더 그런 것 같다. 결혼은 정말 신중하게 고민해서 결정해야 한다.


2. 안정감을 원해서 결혼했는데, 연애할 때의 긴장감이 그리워진다.


  나보다 1년 먼저 결혼한 친구가 "수연아, 나 다시 연애가 하고 싶어."라고 말했을 때, "너 미친 거 아냐?"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역시 사람은 딱 자신이 경험해 본 만큼 안다고, 내가 결혼해보고 나서야 그 감정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연애할 때는 이 사람과 헤어지면 어쩌지라는 불안감과 동시에 이 사람과 헤어질 수도 있으니 최선을 다하자라는 긴장감도 있었다. 그런데 그 긴장감이 사라지니, 서로에 대해 조금씩 소홀해지게 된다. 즉, 익숙함에 속아서 서로의 소중함을 자주 잊었다. 


  결혼 전, 나는 그에게 나의 가장 예쁜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는 나의 민낯이 예쁘다고 했지만, 명백히 밝혀둔다. 그것은 나의 꾸민 모습이었다(원래 꾸안꾸가 젤 어려운 법!). 나 또한 그의 수수한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패션에 크게 관심이 없고 털털한 모습이 쿨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나의 민낯이 민낯인 듯 민낯이 아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수수함도 나름 정비된 모습이었던 것이다.


  결혼을 한다는 것은 서로의 민낯의 민낯까지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중요한 것은 외모가 아니라 내면의 민낯까지도 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사회적 페르소나를 직장에 두고 집에 왔다. 영업용 미소와 업무용 친절로 이루어진 우리의 페르소나를 들고 퇴근하지 않았다. 특히 업무가 고된 날이면, 집에 와서 웃을 힘도 없었다. 젓가락과 그릇이 부딪히는 소리만 나는 식탁이었지만, 그래도 평온함에 위로를 얻었다. 하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밥을 먹다가,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밝은 목소리로 응답하는 그를 보며 서운해진 것도 사실이다. 아마 그도 나에게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분명 결혼을 하고, 나를 꾸며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참 좋았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론적으로는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가장 별로인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차라리 조금의 친절과 상냥함을 꾸며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 엄청난 문제가 아니라, 엄청 지질한 것으로 싸운다.


  평화주의자인 나는 스무 살이 넘어서 누구와 싸워본 적이 거의 없다. 너무 안 맞아서 서로 싸우면서까지 억지로 이어나가야 할 인연은 나에겐 없었던 것이다. 전남편과도 연애할 때 싸운 적이 거의 없다. 그가 약속 시간에 늦거나 술 마시고 연락이 두절되어 내가 화를 낸 적은 있지만, 그가 사과하고 넘어가는 식이었다.


  그런데 결혼 초반에는 싸울 일이 어찌나 많은지... 더 아이러니한 것은 정치, 평화, 통일 같은 엄청난 문제가 아니라, 실내 온도 조절, 가스레인지 밸브, 치약 등 엄청 지질한 것으로 싸운다는 것이다. 그는 나에게 가스 밸브를 왜 잠그지 않냐고, 베란다 문은 도대체 왜 열어두냐고, 치약은 왜 끝에서부터 짜지 않냐고 따진다. 나는 그에게 왜 과자를 먹고 쓰레기를 바로 치우지 않냐고, 한 겨울에 왜 반팔을 입고 보일러는 30도까지 올려두냐고 따진다. 생각해보면 진짜 사소한 것인데, 사소한 것이라서 상대방이 더 이해가 안 된다. 아니, 이 사소하고 당연한 것을 왜 모르지? 이런 생각이 든다.


  한 사람은 하나의 우주라는 말이 있다. 결혼은 두 개의 우주가 만나는 일이다. 두 가지 라이프 스타일의 충돌, 이것은 우주와 우주가 충돌하는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누군가는 "서로 조금만 양보하지"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우리도 점점 서로 양보하며 맞춰갔다. (그가 머물다간 흔적은 내가 말없이 치워주고, 그는 말없이 치약을 끝에서부터 짜 놓는 식으로) 하지만 30년 정도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는 것은, 호주 사람들이 맨발로 거리를 다니는 장면만큼이나 큰 문화충격이었다.


4. 사랑의 결실인 아이 때문에 묘하게 부부 사이가 멀어진다.


  우리는 허니문 베이비(Made in Paris)를 갖게 되었다. 둘 다 아이를 좋아했고, 하루라도 어릴 때 빨리 아기를 낳아서 젊은 엄마 아빠가 되고 싶었다. 임신 기간까지만 하더라도, 난 아이의 탄생과 함께 더 완전하고 행복한 부부가 같이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이가 부부의 끈인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우리 역시 부부의 인연을 끊을지 말지 고민할 때, 가장 큰 염두에 둔 것이 우리 아이였으니까. 하지만 내가 출산 이후 느낀 것을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아이의 존재는 '남녀' 중심의 부부관계를 '부모' 중심의 역할 관계로 바꿔, 남녀로서의 부부는 '잠시만 안녕'을 하게 한다.


  우선 육아와 섹스는 양립하기가 좀 어렵다(육아의 기원이 섹스인 점을 생각하면 참 아이러니함). 일단 부부가 둘 다 육아에 매진한다고 가정하면, 못 자고 못 먹는 일이 일상이기에 에너지도 없고 성욕도 없다. 여자(남자)에서 엄마(아빠)라는 모드로 전환이 된다. 여자의 가슴은 애무의 대상이 아니라, 모유 수유를 하는 신체적 기관이 된다. 가끔 뜨밤의 기운이 오르다가도 아이가 잠에서 깰까 봐 불안하니 성적 흥분감이나 만족감이 크지 않다.


  아이가 제법 크고 나서 좋아질 줄 알았던 이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아이가 6세쯤부터는 우리 둘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손이라도 잡고 있으면, "엄마는 아빠가 좋아? 내가 좋아?" 혹은 "아빠는 왜 엄마 말에만 웃어줘?"라고 하면서 우리 사이를 질투했다. 그럴 때 아이에게 설명을 하기도 했으나(엄마랑 아빠가 서로 사랑해서 너를 낳은 것이고 우린 너를 가장 사랑한다고), 1시간 넘게 떼를 쓰는 아이를 달래기에 지쳤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인데) 우리 딸은 '다음부터는 둘이서만 놀거나 웃지 않겠다'라는 약속을 받아야 떼를 멈췄다.


  또한, 육아는 우리에게 '노동의 분배'라는 새로운 갈등 소재를 던져주었다. 내가 아는 어떤 (수학) 선생님은 분 단위까지 시간을 계산해서 공평하게 육아를 분담했다고 한다. 난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밤늦게까지 술 마시고 들어와 다음 날 육아에도 지장을 주는 남편을 봐줄 만큼 마음이 넓지도 못했다.


  또,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 우리의 가치관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은 '물고기를 모두 잡아서 아이 입에 넣어주는 스타일'이었고, 나는 '물고기를 잡는 법을 알려주자'는 쪽이었다. 누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서, 육아에 있어서는 특히 양보가 어려웠다. 앞서 말한 치약 짜는 문제 따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맞다고 우겼다. 그만큼 각자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이겠지만, 서로 답답하고 안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우리의 표면적 이혼사유는 그의 외도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분명 우리 사이에 어떤 틈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틈은 처음엔 아주 사소한 갈등, 작은 서운함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새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거대한 크레바스가 되어버렸다.


  다 써놓고 보니 <징비록> 같은 반성의 글이 되었지만, 누군가(특히, 평행우주에 살고 있는 28살의 수연)에게 반면교사가 될 것이라 기대해본다. 혹은 약간의 위로나 공감이라도 될 수 있길 바란다.


  사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결혼 여부에 상관없이 내 삶 자체가 아이러니가 아닐까 싶다. 정반대의 특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나'라는 존재 자체도 아이러니하다.


  그래도 감히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조금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크고 작은 실패를 겪으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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