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봤던 장면 중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 "아빠는 출장 가시고, 엄마는 신혼여행 가셨어."라는 칠봉이의 말에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이어리둥절해한다. 칠봉이는 "우리 부모님 이혼하셨거든. 엄마는 재혼하셨고."라고 덧붙여 말한다. 그리고 잠깐의 정적이 흐른 뒤, 해태의 박수 소리가 들린다.
https://youtu.be/Sa9bOR7rlTg
해태: 짝! 짝! 짝! 서울 인정, 인정! 와~ 역시 다르다잉? 삶의 사이즈가 달라버리구마잉.
나정: 내는 텔레비전에서만 봤지 실제 이혼한 집은 처음 봤다.
삼천포: 우리 동네에서는 상상도 못 한다. 누구 한 명 저세상 가기 전까지는 평생 붙어살아야 한다. 서울? 와~ 멋있다. 있어 뵌다.
칠봉이 부모님의 이혼 고백에 분위기가 숙연해질 것이라는 내 예상과 달리, 서울의 세련됨(?)에 놀라워하던 지방러들의 반응에 깔깔깔 넘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땐 내가 결혼도 안 했을 때였는데, 저걸 보면서 '맞아, 이혼이 뭔 대수라고. 결혼이든 이혼이든 개인이 더 잘 살기 위한 선택일 뿐이지.'하고 생각했었다.
작년엔 '생활 속 이혼 커밍아웃'의 실사판을 목격한 적도 있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아이를 위해 육아휴직을 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선배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했는데, 선생님 한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쌤, 휴직할 수 있는 여건이 되면 해~ 지나고 나면 그때가 제일 좋은 시기야. 나는 내 전남편이 돈 좀 벌어왔으면 3년 다 채워서 했을 거야. 전남편이... (... 이하 생략...)"
선생님께서는 '전남편'의 '전'을 특히 강조해서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 옆에 계시던 다른 선생님께서 전남편 얘기는 1절까지만 하라며 대화의 초점을 다시 '휴직'으로 가지고 왔다. 난 마음속으로 조금 흠칫하긴 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그 선생님이 자유롭고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셨기 때문이다. (분명 이렇게 편하게 전남편 얘기를 하시기까지 시간이 좀걸리셨겠지만...)
어쩌면, <응답하라 1994>에서 칠봉이 부모님의 이혼에 대해 감탄하던 친구들의 반응 역시 칠봉이 자신의 쿨하고 자연스러운 태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말 온도에 맞춰 반응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즉, 내가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하면, 상대방도 대부분 그 바이브에 맞춰 반응을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내 친구들은 어떤가? 나에게는 '절친'이라는 말보다 '베프'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 버디버디와 싸이월드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온 친구 무리가 있다. 우리의 모임 이름은 동물농장. 추석 연휴를 맞아 동물농장 친구들을 만났다.
고질라 양이 나에게 '혼이 파티'를 해주겠단다. '허니 파티'로 잘못 알아들은 내가 그게 뭐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요즘 자기가 재미 붙인 말장난이 두 글자 단어를 거꾸로 말하는 것이란다.
"아, '혼이' 파티... 그 말이구나! ㅎㅎ 그럼 꼭 해줘! 크게 해 줘!!"
이 말을 들은 거북도사 양이 '혼이 파티'를 '혼인 파티'로 잘못 알아듣는다. 나는 말조심하라고... 이제혼인은 생각도 하기 싫다고 한다. 거북도사 양은 나이를 먹으니 귀가 어두워진다며 애꿎은 나이 탓을 한다.
나는 최근에 이혼을 했지만, 내 일상은 대부분 그대로다. 나에겐 <응답하라 1994>에 나올법한 오래된 친구들이 있고, 함께 웃고, 함께 나이를 먹어간다. 그리고 추석에 뜬 큰 보름달을 보면서 우리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다.이제 예쁜 거도 다 필요 없고 그저 건강이 최고라며 말이다!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추석에 뜬 큰 보름달을 보면서...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도 건강하시길 빌었어요!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