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연 Nov 02. 2022

바람피운 남편을 꼬시고 싶다는 친구 이야기

잃어버린 그녀의 제정신을 찾아서...

  나의 오랜 친구 J에게서 뜬금없는 연락이 왔다.


  "수연아, 너 남자 꼬실 줄 알아?"

  "음.. 마음먹으면?ㅎㅎ 근데 갑자기 왜?"

  "나 우리 남편 다시 꼬시고 싶어."

  "엥? 남편을 왜 꼬셔?"

  "우리 남편 바람 폈더라. 근데 문제는 남편이 미치도록 미운데, 한편으론 그 여자가 부럽고 나도 그 여자처럼 사랑받고 싶어."

  "왓?!!!!"



  J와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다. 그녀는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갔고, 무연고지인 그곳에서 지금 남편을 만나 정착했다. 현재 J는 애가 셋 딸린 전업주부이다. 그리고 주말부부로 지낸 지 2년 정도가 된 최근,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J의 남편이 외도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4~5년 전, J의 집으로 성매매 특별법 위반 고지서가 온 적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남편을 꼬시고 싶다니... 내가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 친구이지만, 나는 솔직히 J가 이해되지 않았다. J도 자기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는 대화를 하면서 그녀의 무의식을 파헤쳐보기로 했다.

 

  아빠라는 존재에 대한 결핍이 그녀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J는 태어나서 아빠의 얼굴을 딱 한 번 봤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에 갑자기 아빠가 나타나 선물을 사줬던 것이 아빠에 대한 기억의 전부라고 한다. (J 말대로 다 쓰면 책 한 권쯤 될 듯한 J의 복잡한 가정사는 생략한다.) 그래서인지 J는 자신의 아이들만큼은 아빠 없이 키우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이혼을 한다고 해도, J가 남편을 잃는 것이지 아이들이 아빠를 잃는 것은 아니다. J의 남편은 이혼을 해도 면접교섭을 하겠다고 했으니 말이다. 또, J의 남편은 2주에 한 번씩 집에 오기 때문에, 이혼을 해도 아이들이 아빠와 보내는 시간은 별 차이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J는 남편의 경제력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는 것일까? 지금은 전업주부이지만, 결혼 전 J는 월 천만 원의 수익을 올리는 영업직 종사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엄청난 짠순이다. 아직도 고등학생 J를 떠올리면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다른 친구들이 버리는 학원 광고용 연습장을 모아서, 공책 대신 쓰던 J의 모습이다. 베풀기도 잘하는 J이지만, 여전히 천 원짜리 한 장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재테크에도 밝아서, 6년 전에 친정 엄마가 유산으로 물려주신 1억을 굴려 6억 정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경제력으로만 보면, 교사인 나보다도 J의 상황이 훨씬 더 나은 셈이다.


  우리는 결국 'J가 아직 남편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와 술잔을 기울이며 남편 얘기를 하는 J의 눈빛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새벽 한 시쯤 나와 헤어지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거는 그녀의 들뜬 목소리가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아이들이나 경제력은 핑계였고, 남편에 대한 J의 사랑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었다.


  나 역시 전남편과 연애할 때, 그의 치명적인 단점이 보였지만, 마음이 끝나지 않아서 헤어지지 못했다. 결혼하고 나서도 쭉 그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싸웠다. 사랑했기 때문에 싸워서라도 그의 단점을 고쳐보려 노력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 정을 모두 다 소진했다. 모두 불태우고 남은 재 마저 불태울 만큼 노력했기에, 어느 순간부터는 아무런 감정도 남지 않았다. 그래서 어쩌면 나에게 '사랑한다'의 반대말은 '사랑했었다' 인지도 모르겠다.


  결혼의 핵심은 사랑이다.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사랑하여 결혼을 유지하고, 사랑하지 않아 이혼을 한다. 경제력이나 육아 등의 이유로 이혼을 망설이는 사람도 있지만, 핑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경제력이 없는 것은 이혼을 못하는 사유가 아니라, 경제적 자립 능력을 키워야 하는 문제다. 물론  경제적 자립까지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이혼이 늦춰질 수는 있지만 말이다. 또, 자녀 양육에 있어서도 사이 나쁜 부모보다는 행복한 부/모가 더 낫다고 생각한다. 이혼해도 여전히 부모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한 사람만이라도 제대로 아이를 양육해줄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정혜신 박사의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 언급된 것처럼 '절대적으로 공감해주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아이는 충분히 잘 클 수 있다고 믿는다.


  편모 아래에서 자란 내 친구 J도 올바르게 잘 컸다. 한부모 가정인 그녀나 양부모 가정인 나나 남자 보는 눈이 쉣인 것은 매 한 가지이지만... ㅎㅎ (자학개그ㅠㅠ)


  J가 나에게 말했다.

  "수연아, 나중에 나 남편 있다고 부러워하지 마. 아마 내 속은 썩어 들어갈지도 몰라."

  "야! 남편 있는 거 하나도 안 부러워. 그런데 6억은 부러워. 좀 많이. ㅎㅎ"

  "난 100억 모으는 게 목표야."

  "충분히 가능할 듯?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거야."


  우리가 100억의 자산가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조금 더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가 (고등학교 때 그랬던 것처럼) 기꺼이 서로의 웃음거리가 되어줄 것이라는 것이다.


  외도한 배우자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에 헤어지기로 결심한 나도 옳고, 외도한 배우자를 여전히 사랑하기에 결혼을 유지하기로 결심한 J도 옳다. 우리는 각자 다른 선택을 했고, 각자가 가보지 않은 길을 서로를 통해 보게 될 것이다. 그런 우리를 뜨겁게 응원한다. 또,  혹은 J와 비슷한 걷고 계신 모두를 응원한다. 그분들 모두가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진정한 성공에 이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