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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Nov 11. 2022

전 시어머니로부터 배운 것

시어머니랑 이혼하는 여자의 넋두리

  나는 매우 유명한 맛집의 며느리였다. 그리고 우리 시어머니는 정말 며느리에게도 레시피를 알려주시지 않으셨다. 전남편을 통해서 그것이 MSG 맛인 걸 알게 되었지만... (어쩐지 자꾸만 나보고 가게 음식을 먹지 말라고 하더라) 


  내가 처음 시어머니를 만난 것은 내 전남편이자 구남친인 그와 연애를 시작한 지 한 달 즈음되었을 때이다. 둘이서 술 한 잔 하고 나서, 갑자기 그가 자기가 잘 아는 맛집이 있다며 나를 데리고 갔다. 그가 가게에 들어서니, 거기서 일하시는 모든 분들이 그를 반겼다.


"여기 완전 단골인가 봐?"

"이 분이 우리 엄마 셔."


  이렇게 뜬금포로 나는 맛집 가게의 사장이자 남친어머니를 뵙게 되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매우 강단 있는 여장부 같았다. 자연스레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며 수강생을 200명 가까이 둔 일, 임신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게 된 것, 남편의 빚보증으로 가정 경제가 어려워져 식당일에 뛰어든 것, 종업원으로 일하던 가게를 인수하고 사이드 음식 하나를 추가해 대박을 터뜨린 것, 손님이 끊이지 않아서 맘 속으로 제발 그만 오라고 할 때도 있었다는 이야기... TV 다큐 '성공시대'에서나 볼 듯한 그런 사람을 실제로 만난 기분이었다.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어머니인 이전에, 참 닮고 싶고 존경스러운 여성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도 시어머니를 쭉 좋아했다. 그녀의 시원시원한 성격과 넉넉한 인심이 여전히 멋져 보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그녀가 늘 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몇 가지 재밌는 에피소드를 풀어보자면...


1. 결혼한 지 1년 후, 어머니를 뵈러 가게에 갔다.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우리 연수~ 왔니?"


난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어머니가 내 이름을 거꾸로 부르신 것이다. 집에 오는 길에 남편에게 물었다.


"자기 혹시 예전 여자 친구 중에 연수라고 있었어?"

"아니, 우리 엄마가 정신이 없어서 그래."



2. 시누가 결혼식을 하던 날이었다. 그때 우리 딸이 5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엄마, 아빠가 시부모님께 인사를 했다. 그때 우리 시어머니 왈,


"사돈 어르신,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뭐냐? 얘도 키워주시고~ 아, 우리 손녀 이름이 왜 갑자기 기억이 안나지?"


그렇다. 우리 시어머니는 우리 금이의 이름을 까먹으셨던 것이다.



3.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현재 우리는 이혼, 양육권 등은 다 정리가 된 상태지만 재산 분할을 하지 못했다. 예전에 구두로 남편에게 약속받아 놓은 게 있었는데, 그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개입하면서 상황이 더 복잡해졌다. 분명 남편 명의로 된 집인데, 나는 재산분할을 시어머니와 상의해야 한다. 나는 이혼을 남편이랑 한 번 시어머니랑 한 번, 두 번 해야 하는 셈이다. 그런데 며칠 전 시어머니가 우리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재산 분할 얘길 하나 보다 싶어서 얼른 전화를 받았다. 시어머니 왈,


"건강은 좀 어떠십니까?"

"무슨 건강이요?"

"아, 내가 전화를 잘못했나?... 뚝..."


나중에 알고 보니, 식당에서 밥을 먹다가 이가 부러진 손님에게 전화를 한다는 것이 우리 엄마, 즉 전 사돈에게 전화를 건 것이다. (상식적으로 이것이 이해되지 않는 제가 이상한 걸까요? 전화를 잘못 걸었다고 하더라도 죄송하다고 하고 끊는 게 기본 예의 아닐까요?)



  이렇게 정신없는 나의 전 시어머니이지만, 그녀로부터 배운 것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돈이 많다고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 그녀5정도 되는 작은 가게를 운영해서 50억짜리 주차장을 매수했을 정도로 부자이지만, 100억 가진 사람이 부러워 밤에 잠도 못 자고 일한다. 그녀의 아들과 딸은 엄마가 고생하는 걸 당연히 여기고 그녀의 재산에만 관심을 둔다.


  나는 여전히 그녀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돈은 없지만 마음 편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내 삶이 더 좋다. 브런치를 통해 내 글을 좋아하고 나를 응원해주는 분들도 알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삶인가. 또한, 돈은 많지 않지만 하루하루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며, 나에게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준 우리 부모님이 참 고맙다.


  <전 시어머니의 정신없음 에피소드 3> 후기로 이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우리 엄마가 다시 전화를 걸어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빠른 시일 내에 재산분할을 협의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던 중 오고 간 대화...


"금이 아빠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우리 아들이 뭐라고 했는데요?"


"빠구리가 어쩌고 저쩌고~ 내가 진짜 낯이 뜨거워서, 그 녹음 파일 듣다가 껐습니다."


"아니, 우리 아들이 진짜 그런 말을 했다고요?"


"못 믿겠으면 제가 가게 가서 직접 틀어드릴까요?"


"됐습니다. 제가 그걸 들어서 뭐 하겠습니까?"


  엄마가 이 얘기를 나에게 전해주면서, 너무 웃기다며 웃느라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셨다. 또 스스로 생각해도 본인이 말을 정말 잘한다고 자화자찬을 하셨다. 그런 엄마가 너무 웃겨서 나도 크게 웃어버렸다. 우리 엄마는 역시 사이다! 엄마 짱!! ㅎㅎㅎㅎ




전 시댁을 욕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좀 찝찝하지만, 이렇게라도 털어놓고 나니 속이 시원하네요. 답답한 마음에 쓴 넋두리니,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빼빼로데이를 맞이하여... 고백할게요. 구독자님들,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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