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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Nov 30. 2022

이혼 PTSD 극복하기

어둡고 긴 터널을 통과하고 있는 당신에게

  하늘이 잔뜩 찌푸린 날이었다. 툭, 손대면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버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걷고 있었다. 어깨가 축 처진 채 땅을 보며 걷는 사람은 우울해 보인다. 그런데 이 말은 인과관계가 바뀐 것임을 이때 처음 깨달았. 땅을 봐서 우울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우울한 사람은 자동적으로 움츠러들고 땅을 보며 걷게 되는 것이었다.


  그즈음 나는 어금니 통증도 자주 느꼈다. 나도 모르게 자꾸 '이 악물고' 살고 있는 탓이었다. '나 정말 잘 살 거야' 하며 세포 하나하나에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괜찮냐는 지인들의 물음에도 아무렇지 않은 척, 단단한 척했다. 그때의 나는 마치 견고해 보이지만 한 번의 파도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모래성 같았다.



  이혼 후에 찾아온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였다. 좀 더 세심하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알아차린 첫 번째 감정은 '억울함'이었다. 난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그 결과가 결혼 실패인 것이 억울했다. 두 번째로 알아차린 감정은 '불안감'.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 싱글맘이라는 미지의 세계를 헤쳐나가야 하는 막막함이었다. 이 어둡고 긴 터널을 어떻게 통과해나가야 할까?


  우선 나는 걷기로 했다. 배우 하정우는 <걷는 사람>이란 책에서 '내가 처한 상황이 어떻든, 내 손에 쥔 것이 무엇이든 걷기는 내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할 수 있다'라고 했다. 내가 몸을 움직이면서 깨달은 것 한 가지는 '생각이 행동을 바꾸기도 하지만, 행동이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팔을 흔들며 다리를 움직이고 발이 땅에 닿는 감촉을 느끼면서, 내 생각에도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나는 또래에 비해 경제 개념도 부족했고, 그나마 조금 모아놓은 돈도 예상치 못한 이혼으로 까먹고 있는 무급 휴직 싱글맘이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의 일상내가 이루고 싶은 최종 정착지가까운 형태였다. <나는 4시간만 일한다>를 쓴 리스가 말한 '미니 은퇴'를 체험하는 중이었다. 물론 팀 페리스처럼 경제적 자유를 이룬 것은 아니었지만, 경제적 자유를 통해 내가 궁극적으로 얻고자 하는 시간의 자유를 누리고 있었다. 내가 평소에 배우고 싶었던 글쓰기 특강을 무료로 듣고 있었으며,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잔뜩 빌려 읽고, 글 쓸 시간도 충분히 확보되어 있었다. 생각을 바꾸자 모든 것이 달리 보였다. 내 인생에서 언제 또 올지 모를 이 자유로운 시간을 온전히 누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미래의 수연이가 벌 거야 ㅎㅎ)


  언제나 그랬듯이, 독서 또한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성공 관련 자기 계발서는 그때의 내겐 오히려 독이었다. 남들보다 10배 더 큰 목표를 세우고, 10배 더 노력하고, 악착같이 돈을 모아서 굴리고, 자기를 브랜딩 하고, N 잡을 가지는 일.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나 또한 그들처럼 될 수 있을 것 같고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 문제는 PTSD 상태의 나에겐 그럴만한 에너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 나에게 필요한 것은 동기부여나 잘 사는 법이 아닌 '위로'였다. 실패해도 괜찮다고,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고,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다 얘기가 듣고 싶었다. 이혼 관련 책을 찾았으나 자기의 이혼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쓴 책이 많진 않아서, 브런치에 있는 이혼 관련 글을 많이 읽었다.


  그러다가 내 이야기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히 말해서 브런치 작가님들의 이혼 이야기를 읽고, 나도 내 아픔에 대해 쓸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생겼다. (특히 전은도 작가님 글에서 용기를 많이 얻었다. 사랑해요, 작가님♡) 내가 처음 잡은 컨셉은 무려 '감성 이혼 에세이'였다. 아름다운 이별까진 아니더라도, 우리의 차분한 이별과 나의 독립, 성장 과정을 쓰고 싶었다. 처음 의도와 달리 자꾸만 막장 현실 이혼 썰을 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은 들지만.. 어쨌든 이혼 경험을 글로 표현하면서 나는 많이 치유되었다. 쓰기는 내 감정의 배수구 역할을 충분히 해주었다.



jtbc 유랑마켓 영상 캡처


  김새롬은 이혼을 하고 결혼반지를 녹여 만든 목걸이에 'I'm not going to make any more mistakes.'라는 문장을 새겼다고 한다. 나에겐 브런치에 쓰는 내 이혼 글이 '결혼반지를 녹여 목걸이를 만드는 작업'이다. 실패로 끝난 나의 결혼 생활을 복기하고, 나만의 오답노트를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흑인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은 이혼 후 싱글맘으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조앤 롤링도 이혼 후 아이 기저귀를 살 돈이 없을 정도의 생활고에 시달리며 해리포터 시리즈를 썼다. 그리고 도 이혼 후, 안빈낙도하며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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