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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Dec 14. 2022

외도 상처 셀프로 치유하기(2)

다시 누군가를 믿고 사랑할 수 있을까?

  내가 쓰고 있는 이 글은 다른 글들과는 다른 계기로 쓰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순수하게 나의 내적 동기에 의해 썼다면, 이 글은 외적 동기, 다시 말해 어느 구독자 분의 요청에 의해 쓰게 되었다. (보고 계신가요? ㅎㅎ) 정확하게는 '외도 피해자의 고통'에 대해 써달라는 요청이었다.


  이 주제로 글을 쓰려고 하면서, 나는 좀 괴로웠다. 아팠던 기억을 꺼내야 해서가 아니라, 내가 겪었던 '고통'이 잘 안 떠올라서 글을 쓰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분명 남편의 외도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죽고 싶었을 만큼 힘들었다. 그렇지만 그로부터 9개월 정도가 지난 지금, 나는 스스로 놀라울 만큼 괜..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고통스러웠던 외도 상처를 치유했는지에 대해 쓰기로 했다. 그리고 글 제목에 '셀프'라는 단어를 붙였다. 왜냐하면 나는 이혼 후, 정신과나 심리 상담을 전혀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셀프 치유'라는 제목을 붙인 글을 쓰면서, 치유 과정은 사실상 완전한 셀프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사랑은 깨졌지만 우정이 있었다. 나의 인생 친구 두 명. 내가 품고 있던 '친구'에 대한 통념을 와사삭 부숴버린, 제2의 가족 같은 친구들. 나는 '친구'가 아주 어릴 때부터 오랫동안 사귀어온 누군가를 의미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성인이 되어 맺은 관계는 피상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만나 비지니스 관계로 시작했음에도, 또 서로 알게 된 지 2년밖에 안 되었음에도, 우리 셋은 속 깊은 얘기(= 서로의 대장을 봐주는 내시경 같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들의 워너비 대상을 적극 반영하여 한 명은 김혜수, 다른 한 명은 최지우라고 부르도록 하겠다. 그녀들의 MBTI는 다음과 같다. 혜수는 INF²J, 지우는 ENJ인데, 중간에 있는 F와 T에 각각 제곱을 붙여야 한다. 그 정도로 혜수와 지우는 각각 극단적인 F(감정형)와 T(사고형)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어 고통에 몸부림치며 밤을 새운 날 아침, 난 주저 없이 혜수와 지우에게 이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역시나 아주 다른 둘의 반응. 혜수는 나와 함께 울었고, 지우는 자기가 알고 있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변호사를 소개해줬다. 바로 그날!! 이게 포인트다.(심지어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지우문제해결력과 실행력은 정말 대단하다.


  난 그녀들을 통해서 남편(J)을 이해하게 되기도 했다. 지우는 그의 심리를 이성적으로 분석해줬다.


"난 J가 바람피운 게 이런 심리인 거 같은데... 집에 명품 가방 하나 두고, 짝퉁 여러 개 들고 다니는 거 있잖아. 짝퉁 여러 개 들고 다녀도 안 쪽팔리는 이유는, 내가 마음만 먹으면 명품 들 수 있는 사람이거든. 근데 명품이 없어지잖아? 그러면 이제 짝퉁도 안 들고 다니고 싶지. 짝퉁'만' 들고 다니는 사람이 되는 거니까. 그러니까 J도 지금 힘들 거야. 그리고 이제 더 이상 안 놀고 싶을 걸."


  혜수의 미친 공감 능력은 여기서 한 발 간다.


"수연아, 미안한데, 난 J의 성욕이 백 프로 이해돼. 가정을 깨고 싶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여자를... 음,  언박싱... 그래, 언박싱하고 싶은 그런 느낌.."


"야, 죽을래? 그게 지금 내 앞에서 할 소리냐?"


"그렇지만 J가 잘했다는 것도 아니고 같이 살라는 건 더더욱 아니고. 서로의 행복을 위해서 각자 갈길을 가는 건데, 니 맘 속에 있는 분노는 내려놓고 그만 걔를 용서해. 너를 위해서."


  나는 당시에는 발끈했지만, 혜수의 말이 내 마음속에 들어와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나는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혜수 말대로 전남편을 미워하는 일을 멈춰야 했다.


  시절인연이라는 불교 용어가 있다. '모든 인연에는 때가 있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인연의 시작과 끝은 내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의 섭리대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불화나 배신 때문에 결별했다기보다 헤어질 때가 되어서 그런 사건이 일어났다고 봐야 맞다.' (고미숙, '호모 에로스')


  나에겐 외도의 흉터가 여전히 남아있다. 솔직히 비슷한 일을 또 당하게 될까 봐 겁이 난다.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 아픔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는 일이다. J의 잘못을 내가 다음에 만날 사람에게 전가할까 봐 무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절이 지나 새로운 인연이 찾아오면 나는 다시 사랑할 것이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니체가 말한 대로, 춤추듯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자유롭게.


인생 친구 중 한 명인 지우가 찍은 사진. 영화 <라라랜드> 배경 같은 이 곳에서 춤추고 싶다. 너와 함께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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