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수연 Dec 07. 2022

외도 상처 셀프로 치유하기(1)

내 아픔 꺼내보기

  난 잠이 많다. 그래서 고3 때도, 임용고시를 준비할 때도 밤을 새운 없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밤을 새웠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고 싶어도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그날은 남편이 속한 민간 청년 단체에서 '어린이 환경 보호 그림 그리기 대회'를 주최한 날이었다. 원래 금이(딸)와 함께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는데, 금이가 가기 싫다고 하여 남편만 다. 행사가 끝나고 남편이 친정으로 우리를 데리러 오기로 했는데, 밤 9시가 지나도록 소식이 없었다. 남편에게 전화해보니 만취한 상태였다.


  금이와 나는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집에 도착해서 본 그의 모습은 정말 이상했다. 눈이 풀려서 동공은 반 정도밖에 보이지 않았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씻기는커녕 옷을 갈아입을 수 조차 없었다. 남편은 입은 옷 그대로 금이 침대에 누워 곯아떨어졌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평소에 꼭 끼고 자폰도 거실에 내팽개쳐 두었다.


  그 순간 남편의 폰이 클로즈업되어 내 눈에 들어왔다. 이혼의 신이 온 걸까. 평소와 달리 남편의 폰을 열어보고 싶어졌다. (브런치의 신께 맹세컨대, 결혼 생활 중 내가 남편의 폰을 본 것은 딱 두 번이다.) 나는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간절히 바라며 카톡을 열었다. 평소 남편이 미주알고주알 모든 얘기를 다 하는, 남편과 가장 친한 친구와의 카톡방이 보였다. 남편이 보낸 마지막 메시지, "여자들 데리고 갈까?"


  나는 진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이 2년 전 가입한 민간 청년 단체가 화근이었다. 그들은 서로를 총각이라 속이고 술자리에서 여자들을 만나고 다녔다. 회의를 가장한 모임에서 성매매도 상습적으로 이루어졌다. 남편의 외도도 충격적이었지만, 좋은  많이 하는 단체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믿기 힘들었다. 내가 알고 싶지 않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본 것 같아 참 암담했다.


   사실을 알고 당장 남편을 깨워 따지지 않은 것은 이혼의 신이 나를 도왔기 때문일까. 아니면, 신혼 초 내가 처음으로 남편 폰을 봤을 때, 그가 외도 미수(?)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지워버린 일이 떠올라서였을까. 어느 쪽이든 나는 직감적으로 우리의 인연이 끝났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날 남편 폰에 있는 증거자료를 내 폰으로 옮기면서 참 많이 울었다. 혹시나 내 옆에 자고 있는 우리 딸이 깰까 봐 혼자 숨죽여서. '심장이 상한다', '애간장이 녹는다'는 말을 몸소 체험했다. 잔인하고 위험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혼자 타협도 해보았다. 남편을 ATM기로 여기고 금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 살까,라고.


  난 감정을 배제하고 최대한 냉정해지기로 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책,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와 신념, 내가 꿈꾸는 삶을 떠올리며 밤새 고민했다.


  우선 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8년 전, 나는 외도 미수에 그친 그의 잘못을 덮어 준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행동의 결과가 이렇게 돌아왔다. 이번 일을 넘어가 주면, 다음엔 그가 어떻게 내 은혜에 보답(?)할지 무서웠다. 그가 변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가 같은 잘못을 반복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나는 그를 믿고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하며 살 수 있을까?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 중에서

  드라마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고두심은 바람피운 사위에게 "불륜은 상대방 영혼을 죽이는 거야!"라고 말한다. 직접 겪어보니, 배우자의 불륜은 정말 내 영혼을 갉아먹는다. 그런데 영혼을 갉아먹는 주체는 배우자가 아니라, 내 안에 똬리를 튼 '의심'이다. 그가 진실을 말하는지 아닌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의 어떤 말과 행동에도 내 안의 의심이 스멀스멀 기어 와서 나를 옥죄었다.


  나는 내가 의부증 환자가 되도록 내버려 둘 수 없었다. 그렇게 살기엔  인생이 너무 소중했다. 달리 말해, 내가 망가질 만큼 그를 사랑하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자신을 더 사랑했다. 남의 시선이 어떠하든 남편이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오든, 그것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정으로 느끼는 행복이 중요했다.


  금이를 위해서도 남편과 헤어지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만약 내가 금이를 위해 참고 산다면, 은연중에 내 희생에 대한 보상을 아이에게 요구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 아빠와 함께 살지만 불안정하고 우울한 엄마보다, 혼자 살더라도 평온하고 행복한 엄마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나는 이혼을 결심하였다. 이혼은 분명 아프고 힘든 과정이지만, 배우자로부터 배신당한 상처를 치유하는 첫걸음이기도 했다.




글이 길어져서 2편으로 나눠서 쓸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전 11화 이혼 PTSD 극복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