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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연 Aug 17. 2022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방법

모네 <절벽 위의 산책>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 제일 먼저 보이는 공간이, 모네의 <절벽 위의 산책> 그림이 걸려있는 벽이다. 원래는 이 벽에 결혼사진이 걸려있었다. 그런데 올해 초, 이혼을 결심한 나를 위해 친구가 이 그림을 선물해줬다. 저기 서 있는 모녀가 나와 내 딸 같다나..? 저 모녀는 아주 평온하게 산책을 하는 중이라고, 절대 자살 이런 거 아니라고 농담조로 말하면서 말이다. ㅎㅎ


이 벽 오른쪽에는 안 방이 있다.


  이 선물을 받았을 당시, 이 그림이 나에게 주는 위로는 어마어마했다. 평온한 색감과 안락한 분위기. 이혼하고 나서, 딸과 나 둘이서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예지몽을 꾼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 내 생일도 아닌데 뜬금없이 이 무거운 것을 어깨에 싸 짊어지고 온 친구에게서 나에 대한 사랑을 느꼈다. 남편은 나를 배신했지만, 여전히 내 주위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집 청소를 할 때, 안방을 드나들 때마다, 이 그림을 보고 또 보았다. 그러면서 이 그림의 주인공이 저 '모녀'가 아니라, '바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의 움직임, 모녀의 치맛자락, 수풀의 휘날림, 파도의 물결 등이 바람의 존재를 증명해주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눈에 보이는 것들로 묘사한 느낌이랄까?


생켁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랑, 우정, 신뢰, 행복, 희망과 같은 것들 말이다.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끔 진짜 존재하는 것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어린 왕자에 나오는 여우는 "자세히 보기 위해선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라고 했다. 나는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몸의 감각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볼 수는 없지만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바람처럼 말이다.


  결혼 8년, 연애 기간까지 합치면 11년. 나는 우리의 사랑이 점점 소멸되고 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의 체취가 싫어지게 된 것이다. 그가 코 고는 소리, 말 더듬는 습관, 내 이름을 반복적으로 부르는 것 등이 모두 내 귀에 거슬렸다. 키스는 언제가 마지막인지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래되었고, 서로의 몸이 닿으면 어색해하며 멀어졌다. (그나마 둘이서 어디 다닐 때 팔짱이라도 끼고 다녔던 것은 서로의 마지막 노력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인가 상대방의 편안함보다 자신의 편안함이 우선이 되어버린 우리. 거친 세상 속에 안식처가 되어 서로를 지켜주던 우리는, 서로를 무시하고 자신을 치켜세우기 바쁘게 변했다. 함께 하는 시간을 기다리기보다는, 각자의 자유시간을 가지는 것을 갈망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그가 나를 배신한 것이 맞지만, 100% 그의 잘못만이라고는 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나는 그동안 내 몸의 반응을 무시하고 우리의 결혼 생활을 합리화하며 살았다.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거야, 아이가 크면 다시 뜨거워질 거야... 조금만 참고 견디면 돼...' 내가 끝내 가보지 못한 길이기에 정말 시간이 지나서 그렇게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확실하다. 이러한 모든 생각들이 내 몸과 마음을 억누르는 이성의 작용이었다는 것. 그래서 그와 헤어진 지금, 나는 자유롭다. 내 몸의 반응을 따라갔기에, 사랑이 끝났다는 것을 인정했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기 위해선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오늘도 나는 중요한 것을 보기 위해 자세히 관찰한다. 모네의 작품에서 '바람'을 보게 된 것처럼. 또, 내 몸의 감각을 일깨운다. 내 몸의 반응에 하나하나 귀 기울여 본다. 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내 몸은 '행복하다'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전 몸과 마음은 하나라고 생각해요. 마음에 안 내키는 것이 있으면 꼭 몸에서 반응이 오더라고요.

제가 혼란스러울 때는, 제 몸의 반응과 제가 머릿속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충돌할 때예요.

구독자님들은 몸이 말하는 것과 머리가 말하는 것이 달랐던 적이 있으신가요?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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