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1일, 가정법원에서 협의이혼의사확인서를 받았다. 그의 외도 사실이 발각되고 그가 집에서 나간 것이 4월 1일이었으니, 딸과 둘이서 살게 된 것은 4개월이 좀 지났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이긴 하지만, 나는 서서히 생활의 중심을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이혼을 하려면, 경제적인 독립과 정서적인 독립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 두 가지가 이미 이혼 전에 다 되어있었기 때문에 쉽게 적응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혼하고 얼굴 좋아졌다는 소리 듣는 1인... 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현타가 오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싶어졌다. 혹시나 나와 비슷한 생활을 하고 있을 누군가가 공감할 수 있길 바라면서... 참고로, 순서는 가벼운 것에서부터 무거운 것 순으로 열거했다.
#1. 배달 음식을 시킬 때
그와 함께 살 때, 가끔 매운 음식이 당기면 떡볶이를 시켜 먹었다. 떡볶이 1인분, 순대 1인분, 튀김은 골고루... 이렇게 시키면 양이 딱 맞았다. 지금은 떡볶이 1인분만 시키자니 뭔가 아쉽고, 더 시키자니 남길 것 같고 그래서 잘 안 시켜 먹게 된다. 와플도 마찬가지. 밥 먹고 나서 뭔가 아쉬울 때, 두꺼운 도우의 와플을 시켜 먹었다. 하나를 다 먹으면 너무 배가 부르기도 하고 몸에 죄책감이 들어서, 반을 나눠 먹는 게 딱 좋았다. (가끔씩 한 명은 와플이 먹고 싶은데 다른 한 명이 안 먹고 싶다고 하면, 이걸로도 서운해하고 그랬음 ㅎㅎ 참... 지금 생각하면 별 쓸데없는 걸로 투닥거렸구나 싶다.) 그런데 지금은 반을 먹어줄 사람이 없으니 아예 안 시키게 된다.
원래도 배달 음식을 자주 먹진 않았지만, 이혼하고 나서는 더 안 먹게 된 것 같다. 간단하게라도 집밥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원래부터 난 집밥을 더 좋아했고 그는 외식을 좋아했다.) 그러니 건강과 환경엔 오히려 이득인 듯?
#2. 물리적인 힘을 써야 할 때
쨈 뚜껑, 유자청 뚜껑, 꿀단지 뚜껑 등등... 절대 내 힘으로 열리지 않는 것들이 있다. 또, 무거운 물건을 옮겨야 하거나 가구 배치를 다시 하고 싶을 때,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그는 크게 귀찮은 것이 없는 사람이었다(그의 큰 장점). 내가 부탁하면 언제든 와서 도와주었다. 조금 생색을 내긴 했지만, 내가 못하는 것을 자기가 하는 것에 대해 매우 뿌듯해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3. 내가 잘 못하는 일을 해야 할 때
우리의 신혼집도 10년이 다 되어가니 여기저기 손 볼 곳이 많아졌다. 옷장 경첩이 빠지기도 하고, 드레스룸 슬라이딩 도어가 고장 나기도 한다. 그럴 때, "남편~"하고 부르면, 웬만한 것은 다 해결이 되었다. 내 역할은 철물점에 가서 필요한 부품을 사 오는 것 정도였다. 자동차 관리도 어찌나 잘해주는지... 나는 잘 알지도 못하는, 연료 첨가제(?) 같은 것도 사서 넣어주고... 유막제거제로 창도 닦아주었다. 그에게 쉬운 일이 난 너무나 어려웠다.
그런데 한 번 해보니 생각보다 할만했다. 귀찮음만 없음 대부분 해결될 일이었다. 아직 드릴을 쓰는 것은 무서워서 드라이버를 활용하지만... 옷장 경첩을 풀고, 새로 산 경첩을 조립했을 때의 뿌듯함이란... ㅎㅎ (역시 싱크대 집 딸답게 잘 해내는 내가 기특함!!) 또, 정 안 되는 것은 아빠를 부르거나 관리사무소에 도움을 요청한다. 아직 자동차 관련한 일은 손대지 못했는데... 유튜브에 각종 정보가 잘 나와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혼자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4. 집 안에 낯선 사람이 들어와야 할 때
얼마 전에 누가 벨을 눌렀는데 얼굴은 안 보이고 목소리만 들려 너무너무 무서웠다. 알고 보니 아파트 하수구에 소독약을 뿌려주시는 분께서 앞집, 옆집 벨을 누르고 있으셔서 그랬던 것이었다. "소독하겠냐?"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드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혹시나 몰라서 우리 집 현관에 그의 신발 한 켤레를 올려두었다.
#5. 지인이 남편에 대해서 물을 때
지금 내가 이혼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나의 가까운 가족과 정말 친한 친구들밖에 없다. 이혼이 부끄러워서 알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부담스럽고 그들의 가십거리가 되는 것이 싫어서이다. 특히, 아이를 통해 알게 된 사람들은 더 조심스럽다. 이혼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혹시나 그중 한 명이라도 내 아이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그래서 아직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아이가 보는 앞에서 거짓말을 해야 하는 상황도 너무 싫다. 이건 내가 조금 더 고민해보고 지혜롭게 상황을 해결해나가야 할 것 같다.
#6. 줄어드는 통장 잔고를 볼 때
나는 지금 무급 휴직 중이다. 그리고 아무래도 둘이 벌 때가 혼자 벌 때보다 심적으로도 여유롭다. (근데 생각해보면, 둘이 벌면 그만큼 또 많이 썼기에 남는 건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가 매달 보내주는 양육비와 작년까지 모아 놓은 돈을 까먹으면서 생활하고 있다. 줄어드는 통장 잔고만큼 덩달아 초조해지는 내 마음...
그렇지만 오히려 좋다! 방탕했던 지난날의 내 경제관념을 되짚어보고 재테크 공부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ㅎㅎ 이제부터 경제적인 자유를 위해 홀로 설스스로가 기대된다.
#7. 아이가 아빠를 그리워할 때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아빠가 TV에 나왔으면 좋겠어. 그럼 아빠를 매일 볼 수 있잖아."
나는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지만,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
"우리 금이 아빠가 많이 보고 싶구나. 아빠도 그러실 거야. 그런데 금이가 보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 아빠가 금이 보러 와주시기로 했잖아. 지금 아빠한테 전화해볼래?"
또, 어느 날은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빠가 불쌍해. 아빠는 내가 보고 싶어서 밥도 못 먹고 고통받고 있대"
속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아이에게 저런 걱정을 시키는 아빠가 오히려 더 애 같았다. 그런 그를 욕하고 싶었지만, 아이를 생각해서 참고 또 참았다.
"금아, 아빠랑 금이랑 보고 싶다고 하면 엄마는 언제든 환영이야. 단지, 엄마랑 아빠가 사이가 안 좋아졌을 뿐이야. 엄마랑 금이, 아빠랑 금이는 여전히 가족이야. 아빠 보고 싶을 땐, 언제든 얘기해"
사실 이 문제는 내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숙제이다. 우리 금이가 커서 결혼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나중에 나를 원망하면 어떻게 할지... 아직 답은커녕, 솔직히 문제가 뭔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만약에 내가 오로지 이 아이를 위해서 결혼 생활 유지를 선택했다면, 나는 지금보다 더 나쁜 엄마가 되어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아이를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한 엄마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그리고 엄마가 행복하지 않으면 아이도 행복할 수 없기에...
결론 : 이별 후 힘듦이 찾아오는 순간은, 연인이 잘못했던 것 때문이 아니라, 잘해주었던 기억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 당신 옆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잘해주자. 이별 후에 그 사람이 땅을 치고 후회하게 만들고 싶다면..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