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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수를 읽히다.

- 가족과 떠난 유럽 배낭여행 -

by 슈크림빵 Feb 14. 2025

저녁빛으로 흠뻑 젖은 떼르미니역 안은 쉼 없는 안내 방송과 분주한 사람들로 시끌벅적했다. 쉬이 아니 평생 잊지 못할 네 음절의 떼르미니.. 첫 번째 여행의 IN 도시는 프랑크푸르트였다. 홍콩을 경유하는 데다 밤비행이었다. 뒤바뀐 시차 그리고 키미테 부작용까지 겹쳐 그야말로 내 정신이 아니었고, Frankfurt (Main) Hbf에 도착하자마자 현지인의 도움으로 민박집에 전화를 걸었다.

 "눈에 띄는 상점 간판이나 입간판 혹은 건물을 말해 보세요."

 "어, 저기 간판에 테르미니라고 적혀 있는데 민박집까지 어떻게 이동하나요?"

 "떼르미니라고요? 아니 로마에서 전화를 걸면 어쩌라는 겁니까?"

 "로마 아닌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입니다. 규모가 커서 당최 모르겠고 눈에 띄는 간판은 테르미니라고 적힌 것뿐이에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를 이역만리에서 체험할 줄이야. 민휀행 기차 시간과 유레일패스 개시를 위해 들른 중앙역에는 전날 보았던 테르미니라 적힌 간판은 없었다. 정녕 보이지 않는 힘의 장난인가 싶어 발길을 돌리려는 찰나에 보고야 말았다. 'Terminal'이란 익숙한 철자는 깊숙이 각인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알았다. 약의 부작용이 얼마나 무서운지 말이다. 횡설수설하는 나를 몰라라 하지 않고, 친히 마중 나온 민박집 사장님이 아니었다면 시작부터 삐끗했으리라. 하여, 가족여행은 없었겠지. 여튼, 추억으로 자리 잡은 그 떼르미니역에 우리 가족이 서 있다. 예전 민박집이라면 역과 머지않은 곳에 있어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으나, 장소를 옮긴 탓에 픽업 나오신다는 사장님을 기다린다. 미팅 포인트는 24번 플랫폼이었다. 그리고 인사 대신 덥석 엄마의 손을 잡으신 사장님의 눈가는 이내 젖어들었다.


2005년, 추석을 열흘 앞둔 시점이었다. 건넨 인천-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표에 부모님은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다. 그도 그럴 것이 비행기 경험도 없는 내가 단거리도 아닌 유럽, 것도 35일씩이나? 멀미는 어떻고? 잠은 또 먹는 것은? 여자 혼자서? 등등,, 반대의 이유는 줄줄이 꼬리를 이었다. 자유배낭 아닌 패키지를 절충안으로 내놓으시며, 서로 한 발씩 양보하자고 덧붙이셨다. 즉, 믿고 의지할 보호자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이 두 분의 강경한 입장이었다. 애당초 그런 동행이 있었다면 출국까지 얼추 열흘 남은 시점에 상의 아닌 통보 격으로 티켓을 투척했겠는가. 솔직히 부모님 이상으로 걱정이 앞섰지만, 그녀를 통해 들은 패키지의 단점이 깊이 각인되어 있어 자유배낭을 고집한 것이다. 모험과 객기로 근사하게 포장된 젊음이란 녀석은 당시의 나를 단단히 옭아맸다. 여, 며칠 동안 우리는 팽팽히 대립했다. 그러던 중, 엄마의 오른팔이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고 아빠는 엄마에게 믿고 의지할 보호자를 제안했다. 엄마가 설득당하는 동안 비행기표를 재탐색한 결과 개천절, 활짝 열린 하늘 속으로 우리는 날아올랐다. 성치 않은 몸으로 여행이라니, 엄마는 탐탁지 않아 하셨다. 처음에는 분명 그랬다. 비행기 안에서부터 조짐을 보이던 약 부작용이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하여 절정으로 치닫았을 때, 엄마 역시 꽤나 난감해하셨고 다음 여정지인 민휀에 가서야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으셨다. 프라하에서는 감기로 고생을 하셨고, 비엔나 민박집에서는 주인장의 사정으로 인해 하루를 앞당겨 쫓기다시피 나왔으며, 피렌체 민박집에선 한밤 중 홀로 깁스를 풀고 왜소해진 팔로 인해 펑펑 우셨다고 했다. 그러나 다음 여정지인 로마에서는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인 가리발디 장군만큼이나 씩씩하셨다. 그리고 늘 보던 파릇파릇한 젊은이들 아닌 당신과 비슷한 연배라서 절로 기운 마음의 추 때문일 테지. 머리와 가슴이 정확히 기억하는 반가움이 여과 없이 분출되자 이에 질세라, 이번에는 엄마가 당신의 손으로 사장님의 손등을 감싸 쥐었다. 


이사한 곳은 떼르미니역과 마주하고 있어 위치상으로는 더할 나위 없었지만, 낡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도착한 민박집에선 예전의 명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로마에는 십수 개의 민박집이 있어 어디를 간다 한들 주린 자는 배를 채우고 휴식이 필요한 자는 쉼을 얻을 수 있기에, 어디여도 괜찮다고 이미 입소문이 나 있었지만, 경찰의 불심 검문에 적발되어 문을 닫는 곳이 증가하는 게 현 상황이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허가 없이 영업을 하다 보니 경쟁 업체 혹은 이웃주민들의 신고와 고발이 빈번하기에 다수의 투숙객으로 인해 그들의 먹잇감이 되는 대신 적은 수로 현상유지나 하는 것이 속은 쓰리나 되레 마음은 편하다 하소연하시는 사장님의 얼굴은 어둡기만 했고, 공동 현관을 들어서면서부터 주의사항을 거듭 강조하셨다. 부연 설명을 들어서일까. 민박집의 협소한 규모와 썰렁한 분위기가 이해가 갔다. 비록 조선족이라 하나, 타지에서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동포를 만나니 마음 한구석이 짠해 온다. 

피렌체 민박집에서 만난 학생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주의 사항만 강조하신 것이 걸렸던 걸까? 것보다는 재방문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겠지. 인당 20유로에 가족룸으로 입성을 한다. 저녁 식사 시간, 나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입이 마르게 칭찬하시는 사장님으로 인해 으쓱했다가도 또 머쓱했다. 도랑치고 가재 잡는다고, 원하는 바를 다 얻은 나에 반해 결국 자식 칭찬인지라 불평은커녕, 당신 목에 걸린 방울의 무게에 아빠는 허덕이고 게셨다. 감기로 고생하던 내게 콩나물 김칫국을 끓여준 중국인 언니는 본국으로 갔다 했다. 어디 학원이라도 다니신 건지, 밑반찬 하며 돼지고기를 잔뜩 넣은 김치찌개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시원한 맥주와 포도까지 건네셨다.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건만, 이는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민박집 아닌 친척접에 놀러 온 듯 편했는지 드르렁- 오빠의 코 코는 소리가 시원했고,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TV 소리까지 더해지니 묘했다. 로마에 온 것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다시 만난 준 로마가,, 반갑고 그저 고마웠다. 


 "식사하세요."

소리로도 냄새로도 반가웠는지 이역만리에서도 기상 루틴은 한 치의 오차도 없었고, 몸속 장기들은 대동단결하여 아우성이었다. 맛난 식탁은 게으름뱅이를 기다려 주지 않기에 고로 지금 필요한 것은 스피드뿐,, 장정 일곱에 아이 하나가 작정하고 덤빈 식탁 위는 빠르게 초토화되어 이내 빈 접시들로 가득했다. 과일이 놓이는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사장님은 다시금 나를 도마 위에 올려놓으셨다. 초등학생 자녀와 5박 6일 일정으로 여행 중이라는 아버지는 기대한다는 말로 어린 딸에게 은근 압력을 가했고, 사표를 던지고 여행을 왔다는 앞자리 여성은 저 역시 다음은 가족여행이라며 그저 부럽다는 말뿐이었다. 그나저나 당신이나 나는 이제 청년 실업자 신세,, 그러나 사표 잘 던졌죠? 취조실을 방불케 했던 영국 민박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라 그런지 쏟아지는 질문에 답하는 내 말투는 상냥했으며 또 유쾌했다. 방학도 아닌데 초등학생이 여행을? 체험학습의 명목으로 결석이 묵인됨은 물론, 리포트로 출석이 인정된다 했다. 개근상에 목을 매던 나의 어린 시절은 침몰하는 배의 형국이었다. 이뿐이면 괜찮겠지만, 그 빛나던 개근상이 현재는 부모의 무능력을 대변하는 지표라 하니 개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과거 강남에 만족했던 반면, 체험학습과 현장학습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가까운 동남아를 시작으로 미국은 물론 유럽으로까지 그 범위가 확대된 것이 현 상황이며 과열된 사회풍토라고 했다. 그간 우리는 나아감에 있어 주저함이 없었고, 빠른 성장으로 거듭남에 따라 국내외적으로 많은 성과를 이뤄냈다. 하여, 삶의 질 역시도 높아졌다. 물론 제 깜냥껏이라면 말해 무엇하랴. 그 반대의 경우가 문제인 거지. 냄비 안에서 끓고 있는 물처럼 과열된 사회 풍토 속에서 감히 꿈꿀 수 없는 그 누군가의 심경은 어떠하리. 학원만으로는 더는 안 된다며 '방학'이란 단어에 오소소 몸을 떠는 것도 모자라 마이너스통장 개설을 진지하게 생각하던 전 직장 동료의 하소연이 떠올라 마냥 씁쓸했다. 뚜렷한 목표의식이 수반된 여정이라면 두 손들어 환영이지만, 대부분이 분위기에 휩쓸려 휘적거리는 것이 그저 탐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는 너는?' 저 깊은 곳에서 조그맣게 물어 왔다. 물론,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 맞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게지.. 


수많은 볼거리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정작 몸과 마음은 쉬어가는 코스인 로마, 그래서인지 딛는 발걸음에도 여유로움이 묻어났다. 크게 달라진 것 없는 익숙한 거리를 돌아 콜로세움에 다다랐다. 줄지어선 관광버스, 핀마이크를 착용한 채 열심히 설명 중인 가이드와 그 뒤를 따르는 무리들까지,, 지구인들이 죄다 콜로세움 관광에 나선 듯 북적였다. 콜로세움 입장료만으로도 로마 곳곳의 유적지 보수가 가능하다던 풍문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유명세를 탄 스페인 계단이었다. 현지인들의 만남의 장소 격인 이곳에 관광객들까지 합세하니 수십 개의 계단도 턱 없이 비좁아 보였다. 사람들 숲을 헤치고 자리를 잡고 앉아 준비해 온 삶은 감자를 꺼내 한 입 베어무는 찰나, 어깨에 닿는 낯선 이의 손길.. 

 "No Food!!"

크지 않았지만 단호한 음성이었다. 이 많은 사람들 중 하필 나일까? 혹 동양인이라 무시하는 걸까? 한껏 치뜬 눈을 하고 경찰을 그리고 계단 위의 사람들을 쳐다보는데, 취식하는 이는 나뿐이었다. 이내 다른 표적을 발견했는지 어딘가로 재게 발을 움직였다. 다시 찾은 스페인 계단은 취식이 금지된 상태였다. 그러나 달라진 건 이뿐만이 아니었다. 불법 노점상과 소매치기, 실뜨기 상인과 더러운 거리 등 오점으로 거론되던 문제들이 개선되고 있었다. 머무는 내내 로마의 변화에 적잖이 놀랐다. 그래서 감자는? 발 벗고 나서지는 못할망정 초는 치지 말아야지. 계단을 내려와 한적한 길가에 자리를 잡았다. 창피함보다는 배고픔이 먼저였고, 혼자 아닌 가족과 함께인데 무서울 것이 무어란 말인가.


보통은 시계 방향 혹은 그 반대로 동선을 정하나, 귀동냥한 이탈리아의 폭염으로 인해 동선에 무리수를 두었는데, 나름 돌린 짱구를 비웃듯 오월 중순 치고는 지독하게도 기세등등했다. 목덜미에 흥건한 땀을 닦아가며 다소 난해한 표지판을 따라 걸었더니 트레비 분수였다. 동전을 던지는 사람,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 물건을 파는 아랍계 상인과 형형색색 차림을 한 거리의 예술가들, 그 모습을 눈에 담는 나를 포함한 수많은 관람객들까지,, 다시 만난 트레비 분수는 여전히 분주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첫 번째 동전은 로마에 다시 옴을, 두 번째 동전은 사랑이 이뤄짐을, 세 번째 동전은 이혼을 의미한다 했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한 속설이라지만 동전을 세 번 던지는 사람은 없겠지. 혹 모두가 들뜬 틈을 노린 누군가가 있을지도 모른다. 응집한 무리는 꽤 많았고, 해서 후회하고 있는 이도 있을 테니 말이다. 보라색 드레스를 입은 고혹적인 귀족부인과 횃불을 든 자유의 여신상, 파라오, 그리고 장미를 든 깡통 아저씨는 동전 던진 이를 기똥차게 분별하고 있었고, 때아닌 객기에 호구를 자청한 이로 인해 한바탕 웃음소동이 벌어진다. 로마 그리고 트레비 분수는 결코 지루할 틈을 허락지 않는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 숙소를 나와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이마며 목덜미며 땀이 흥건했다. 선크림을 덧발라댄 정성이 수포로 돌아갔다. '이성을 상실한 자외선으로부터 내 피부는 보호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편한 생각을 가득 안고 걷는 사이, 로마 관광의 첫 관문 격인 콜로세움에 다다랐다. 줄지어 선 관광버스는 물론 사람들도 때 이른 오월의 폭염 앞에서 불만을 호소하는 것만 같았다. 폭염을 피하고자 했던 나의 객기를 비웃 듯, 더운 정도를 넘어 숨이 막힐 정도였다. 초점을 잃은 두 눈은 느릿하게 깜박였고, 삼복더위를 만난 개처럼 잦은 숨을 몰아쉬었다. 지척의 베네치아 공국이 천리는 되어 보였다. 거기에 도로 위 지열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불지옥만 같았다. 이에 지친 팔과 다리는 한목소리였다. 휴식!!.. 금강산도 식후경인데, 일단 더위부터 피해보자꾸나. 넉넉한 로마 일정, 구태여 힘 빼지 않아도 되기에 숙소로 방향을 틀었다. 샤워기와 떨어지기 싫은 걸 보니 어지간히 더웠었나 보다. 대충 물기를 닦고 거실 바닥에 벌러덩 누워 부채질을 하니 살 것 같았다. 저녁 준비를 하시던 사장님이 33이란 숫자를 언급하셨다. 사계절이 뚜렷한 대한민국 사람이 33이란 숫자가 뭐가 대수겠냐만은, 이곳의 습도는 익히 경험해 본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아주 지독했다. 유독 더위에 약한 나는 로마인들이 그저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로마 일정이 길던 짧던 한 번만 걸음 할 수 없는 곳은 단연 트레비 분수가 아닐까. 그런 이유에서 다시금 찾은 분수는 여느 때와 같이 북적였다.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내는 분수대는 여전했지만, 한데 모인 사람들은 어제와는 분명 다를 테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로도, 손부채로도 영 신통치가 않은지, 아예 분수대 안으로 들어가려는 자와 이를 말리는 경찰의 실랑이가 이어지는 틈을 타, 마치 특효약이라도 되는 듯 분수대 안의 물을 마시려는 자와 급히 저지하는 다른 경찰의 신경전에 절로 웃음이 났다. 그리고 저만치 떨어진 곳에서도 실랑이가 한창이었는데, 관광객들의 손에 또 손에 젤라토를 건네느라 상점의 점원은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참새가 방앗간 지나칠 수 없듯, 젤라토를 맛보지 않았다면 이탈리아를 보았다 하지 말라던 누군가의 말처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젤라토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별안간 생각 하나가 솟구쳤다. 현지인과 관광객들까지 더해지면 한 해 아이스크림 소비량은 과연 얼마일까? 로마뿐 아니라 이탈리아 전역으로 그 범위를 확대해 본다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규모였다. 의문의 1패를 당한 배스킨라빈스를 떠올리며 사악하게 웃었다. '배가 꽤나 아프겠구나.'


서울에 명동이 있다면, 로마엔 꼰또티 거리가 있다. 패션의 메카라 칭하는 곳답게 명품샵들이 늘어서 있었다. 화보에서나 봄직한 블랙 슈트 차림의 꽃미남들이 마치 건물의 번지수처럼 출입문 앞에 버티고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물 찬 제비들은 손수 출입문을 여는 것은 물론, 눈인사까지 보탰다. 로마가 한층 멋스럽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애당초 쇼핑은 계획에 없었지만 '언제 이런 호사를 누리겠냐'는 솟은 마음에 순응해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다. 내 정체성은 이역만리에서도 정확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저녁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의 화두는 단연 '폭염'이었다. 가장 늦게 참여한 퇴사 후 여행 중인 여성은 앉자마자 얼음이 담긴 물컵을 들어 벌겋게 달아오른 뺨에 문질러댔다. 동선에 상관없이 작렬하는 태양 아래서 뺑뺑이를 돌았으니 너도 나도 할 말이 많았다. 캔맥주의 청량감과 포도의 당분으로 인해 젖은 솜뭉치 같던 몸은 어느새 보송해졌다. 먹고 떠들고 웃다 보니 밤의 한가운데에 이르렀고, 이에 흩어지려는데, 누군가 '파이팅'을 외쳤고 다른 누군가는 '파이팅'이라 답했다. 가만, 이는 무언가를 응원하거나 지지할 때 쓰는 단어가 아닌가? 보통은 '잘 자' 혹은 '좋은 밤'이라 하지 않는가? 도대체 무어가 '파이팅'이란 말인가? 묻고 싶어 고개를 돌렸으나 아무도 없었다. 방 안으로 들어가며 나 역시 '파이팅'을 곱씹고 있었다. 물론 그들과는 다른 의도에서였지만 말이다. 이유야 어찌 됐든 간에 그 밤 우리는 한목소리로 '파이팅'을 외쳤다. 


밖이 어둑한 걸 보니 아직 이른 새벽인가 보다. 다다다다- 일정하게 들리는 도마 위 칼질 소리는 적막 속에서 홀로 도드라졌다. 돌린 시선에 빈 침대뿐이라, 벌떡 일어나 시계를 확인하니 여덟 시를 넘긴 상황, 속은 기분으로 바라다본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여행에서 만나는 비는 반갑지 않지만, 예외도 있다. 지금이 바로 그 예외였다. 적어도 오늘은 태양과 대면하지 않아도 되기에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외쳤는데, 이때까지는 몰랐다. 섣부른 입방정이 불러올 참사를 말이다. 


'천사의 작품'이라 미켈란젤로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필리포 브루넬레스키 역시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의 돔 설계 시,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전면의 삼각형 지붕에서 후면의 원형 돔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이후 성 베드로 대성당, 파리의 팡테옹,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의 외형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이 없었다면, 명실상부한 최고의 돔 형태의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큰,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을 뜻하는 pantheon.. 지름 1.48m,  높이 14.14m의 화강암 단석(單石)으로 만든 열여섯 개의 기둥이 주축이 된, 43m의 돔 건물은 지붕의 하중을 줄이기 위해,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가벼운 돌을 사용하였고, 돌의 두께 또한 지붕 밑부분은 2.5m, 윗부분은 1.2m로 무게를 줄였음은 물론, 파인 격자무늬 역시 이에 한몫을 하고 있다. 건축 재료로 사용된 로만 콘크리트는 나폴리 배수비오 화산의 화산재를 배합하여 만든 것으로 물에 강할 뿐만 아니라 오랜 수명으로 판테온을 보존하는데 큰 역할을 해왔다. 건물 최상부에 뚫린 지름 9m의 둥근 구멍은 '눈'이라는 뜻의 라틴어 오쿨루스(Oculus)라 칭하는데, 이는 태양을 상징하며, 이곳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은 인공조명 없이도 실내를 환하게 밝혀줄 뿐 아니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벽을 따라 돌며 해시계의 역할을 해왔다. 판테온 내부는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된 커다란 원형의 방 구조로, 이 원형 홀에서 돔의 오쿨루스까지 따라가 보면 반구의 지름과 정확히 일치하여 완벽한 반구형을 이루며, 둥근 천장을 통해 자연광이 들어와 특히 정오 무렵이 되면, 마모된 대리석 실내는 외부와 단절된 기하학적 공간으로 반짝이게 된다. 


 "며칠 밤이면 충분해. 사랑으로 돌봐줘야 한다. 꼭!!"

얼굴도 생각나지 않은 그는 말했다. 혹여 추울까, 아플까 싶어 제 겨드랑이에 작은 병아리를 끼고 보듬었다. 사랑의 정확한 의미를 몰랐던 꼬마가 할 수 있는 보호요, 최선이었다. 그러나 꼬마의 손바닥보다도 작은 병아리는 늠름한 닭의 형체를 갖추기 전에, 죽어버렸다. 축 늘어진 노란 병아리를 손에 쥐고 꼬마는 꺼이꺼이- 목을 놓고 울었다. 


 "산타 할아버지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단다."

동화책도, 아이의 엄마도 한 목소리였다. 산타 할아버지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 있다면 착한 아이로 살겠노라며 고사리 손을 부여잡은 꼬마는 난생처음 간절했다. 꼬마가 기다린 산타는 루돌프와 함께인 할아버지였으나, 침대 맡에 걸어둔 커다란 양말에 선물을 욱여넣고 있는 이는 다름 아닌 꼬마의 엄마였다. 굴뚝이 없는데 어떻게 올 수 있냐는 제 질문을 어물쩍 넘기던 엄마를 믿었던 게 화근이었다.


하굣길에 아픈 병아리를 팔던 장사치나, 꼬마의 엄마 역시 헛된 희망을 품게 했으니 결국, 같았다. 악의였든 선의였든 간에 어른들에 의해 아이의 동심은 파괴되었다. 이미 밟힌 동심인데, 반복된다 한들 뭐가 대수라고.. 그리고 이제 어른의 동심을 파괴할 순간이 왔다. 비가 오는 날이어야 했다. 하여, 거리를 적시고 있는 비가 반가웠다. 


쏟아지는 빗줄기에 깜냥 버거웠나 보다. 건물의 최상부 '태양'을 상징하는 지름 9m의 뚫린 둥근 구멍 오쿨루스는 속수무책이었고, 이에 애먼 직원들만 양동이를 들고 분주히 움직여댔다. 아마도 책의 저자는 이슬비 내리는 이른 아침에 방문했었나 보다. 아니면 이탈리아 관광청과 모종의 딜을 했지 싶다. 


'비가 오면 실외의 온도는 내려가고 실내의 온도는 급격히 상승하기 때문에 굴뚝 효과를 통한 상승기류로 인해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 이때, 건물 외부로부터 완전히 밀폐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반드시 수반되는데, 이 원리는 신전 건축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과거 신전으로 사용되었을 때는 문을 닫고 불을 피워 제사를 지냈기 때문에 그로 인한 상승 기류가 발생하여 비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강한 비나 문이 개방되었을 시에는 내부로 들이치기에, 이에 경사면으로 설계된 바닥은 빗물이 빠져나가는 배수구의 역할을 한다.'


먼저  다녀간 누군가의 부연 설명을 읽어 내려가다 바닥의 그 배수구에서 눈길이 멈췄다. 신의 창조물인 인간, 그리고 과학을 비웃듯 하는 자연의 힘 앞에서 씁쓸하게 웃어 본다. 


이탈리아의 우기는 겨울이라 들은 바 있고 또 확인한 바였건만, 겨울이 한참 남은 시점임에도 주구장장 쏟아졌다. 삼일 동안 쏟아붓는 비로 인해 우비와 우산은 물론 체력마저 만신창이가 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나보나 광장으로 향했다. 발 디딜 틈이 없던 넓은 광장은 여느 때와는 달리 휑했다.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광장을 둘러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한껏 펼쳐진 어닝을 바짝 잡아채는 이도 있었고, 불을 끄고 일찌감치 문을 닫는 이도 있었다. 올려다본 하늘도, 휘돌아본 도시도 온통 컴컴했다. 사람의 온기가 없어서인지 스산하기까지 했다. 그칠 비도 아니었고, 모일 사람들도 없었기에 과감히 방향을 틀어 숙소로 향했다. 


나의 걱정이 하늘에 닿은 걸까? 해님이 반짝 얼굴을 내밀었다. 실로 오랜만이라 반갑기 그지없었다. 햇살 좋은 날엔 스페인계단이지. 계단에 앉아 '사람멍'이나 할까 했는데 갑작스레 소나기가 쏟아졌다. 후다닥 달려 근처 맥도널드로 몸을 욱여넣었다. 비 오는 날, 기름 냄새는 못 참지. 매장 안에 가득한 고소한 냄새에 절로 식욕은 반응해 치즈버거, 감자튀김 그리고 따듯한 물 한잔을 주문했다. 치즈버거와 감자튀김은 내 것이 맞는데, 얼음 동동 띄운 찬 물은 내 것이 아니었다. 이에 'hot water'라고 다시금 입을 열었지만, 'hot water'는 없단다. 까마득한 선배님 앞에서 주름잡는 겁대가리 하고는. 이탈리아 회화책을 챙겨 오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든 순간이었다. 갑작스러운 비로 인해 2층은 만석이었고, 때마침 일어난 노부부가 매니저로 추정되는 여자 직원에게 빈 트레이를 건넸다. 노부부가 사라지자마자 직원은 거침없이 욕을 뱉어냈다. 응대를 하는 카운터 직원이나 시프트를 보는 매니저나 죄다 불친절했다. 한국이었으면 딱 본사 교육 각인데.. 결국, 버거킹이 망친 셈이었다.


퇴각 명령을 받은 군인의 심정이 이러할까? 허탈한 마음으로 인해 발걸음은 무거웠고 흠뻑 젖은 운동화와 축축한 양말은 덤이었다. 한마디로 젠장!!이었다. 포로로마노를 지날 무렵, 잿빛 하늘이 사라지더니 보란 듯이 해님이 쨍한 얼굴을 드러냈다. 몇 걸음 디디지도 않았는데 목덜미는 땀으로 흥건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덜컥 짜증이 솟은 부모님과 오빠와는 달리, 홀로 노선을 틀었다. 태양의 강렬함도, 목덜미의 흥건한 땀도 뭐가 대수냐는 듯 두 발은 경쾌하게 땅을 디뎠다. 띠베리나 섬을 목적지로 정하고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통과한다. 몇 개의 신호등과 주택가를, 거기에 떼베레 강을 끼고 한참을 돌아 목적지에 도착했다. 폭이 좁고 짧은 다리를 건너 섬에 들어가니 조그만 교회와 병원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한참을 헤맨 두 다리는 섭섭하다며 아우성이었다. 휙- 돌린 시선에 위치 파악이 끝난 상태였고, 볼거리라고 더는 없었지만 이대로 발길을 돌리기엔 아쉬웠다. 아니 화가 났다. 해서 병원 건물 한쪽으로 난 계단으로 내려가 보았다. 며칠 새 불어난 물은 어디론가 쉼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리고 바라다본 하늘은 낮의 색 대신 어스름한 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돌아갈 시간이었다. 채 오 분은 걸었을까? '진실의 입'으로 더 알려진 코스메틴 산타마리아 성당이 보였다. 이리도 가까운 거리를 돌고 또 돌았단 말인가!! 이에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대전차 경기장을 끼고 숙소로 향하면서 마음먹었다. 이로써 내일의 코스는 결정되었다. '코스'에 꽂혔는지 중식당의 코스요리가 생각났다. 뜬금없이도 말이다. 이에 아는 또 모르는 중국 음식들을 떠올렸다. 하여, 숙소로 향하는 걸음 또 걸음은 기름지고 또 찐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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