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를 지나며 -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
처서 : 가을의 시작 24 절기 중 열세 번째 절기.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
‘처서 매직’이라고 했던가.
한여름 그 무성했던 더위를 지나가려는 듯
얕은 바람이 불고 있다.
나의 할머니는
이맘 때면
늘 낡은 옷장과 서랍 속 물건을 정리하셨는데,
당신이 이 세상과 작별했을 때
남은 자식들이
남루한 물건으로
당신의 마지막을 정리하지 않도록
몇 없는 옷가지와 물건을 치우고 또 치우며
당신의 다음 계절을 준비하시곤 했다.
그리고
오래된 보자기에 꽁꽁 싸둔 크고 작은 금붙이들의 개수를 꼬박 세곤 하셨다.
당신이 함께하지 못하는
손녀들의 인생에
당신의 몫을 남겨놓는 듯,
당신이 없을 까마득한 훗날의 시간을
아득히 그리워하는 듯.
결혼이나 대학입학과 같이
손녀들이 마주할
크고 작은 삶의 절차의 몫으로
금붙이의 개수를 세며 그 이름을 붙였더랬다.
할머니의 기도 만큼,
남은 이들의 그리움도 쌓이는 것일까.
낡은 손으로
뱅글뱅글 염주를 돌리며
당신이 그리도 부른
야속한 부처는
가는 잠에 가게 해달라는
그 간절한 기도는 못 들어주었지만,
뙤약볕에 치르는 장례는 자식들 덥고,
한파에 치르는 장례는 자식들 추우니
부디 선선한 바람 불 때 데려가라는
당신의 오랜 기도 하나는 들어주었더랬다.
당신이 또다른 계절을 찾아 떠난지
십여년이 훌쩍 흘렀어도,
언니의 결혼과
나의 대학 입학과 같은
연이은 삶의 절차와
치솟는 금 값에도,
우리가 감히
그 애틋한 금붙이를 팔지 못하는 이유는
금붙이 보다 큰
그리움 때문일 테다.
그리하여,
당신이 떠난 지 십여 년이 흘렀음에도
우리는 때론 당신으로 울고 당신으로 웃으며
함께 그리움의 개수를 새어 나가는 것일 테다.
가만가만 생각해 보면,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움의 개수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
비단
떠난 사람과 남겨진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살아오며 마주한
시간과 계절, 스쳐간 인연까지
모두
그리운 만큼
애틋하고
그리운 만큼
우리를 아프게 한다.
쉬이 마음잡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 시간도
또 다른 처서에는 그리움이 될련지,
남은 계절에는 또 어떤 그리움을 마주할지.
해답은 모르더라도,
그 모든 마음을
세고 또 세어 나가는 것이
한 계절을 나는 것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