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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다 Oct 20. 2022

물건이 아니라 ‘나’를 보고 온다?

초보 도매업자의 이야기


누구나 한 번쯤은 판다. 도매상에서 물건을 떼어다가 팔아 본 경험은 없더라도 중고거래 앱을 통해서라도. 당근 마켓이 그래서 잘 되는 것이리라. 당근 마켓에서 물건을 팔았고 예전에는 중고나라에서였다. 구매자가 된 경험은 없었다. 아이를 낳기 전까진 항상 판매자였다. 물건을 올리고 한 번도 못 팔아 본 적이 없다. 스스로 물건을 잘 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건을 뚝딱 팔아오면 남편이 이런것도 사는 사람이 있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이게 다 노하우가 있는 거야. 사람들은 구매할 때 제품만 보는 것 같지만 제품을 둘러싼 배경을 봐. 바닥에 내려놓고 찍는 사진의 경우에는 바닥재까지 본다니까. 소유했던 사람이 물건을 어떻게 다뤘을까 추측해. 당연히 제품 그 자체뿐 아니라 프레임 안의 작은 티끌까지 신경 써야 해. 눈으로 봤을 때는 분명 없었는데 사진으로 찍으면 얼룩이 보일 때도 있거든. 그럴 때는 다시 닦아서 사진을 찍어 올려. 구매한 방법과 시기, 그리고 당근에 내놓는 사유도 꼭 진정성 있게. 그러니 안 팔릴 리가? 없지. 그럼 그럼.


비싼 제품 올리면서 구매한 시기도 안 쓰면 당근으로 구입한 건가? 이렇게 생각돼. 사용감 있습니다. 이렇게 적고 상세한 사진이나 설명이 없으면 섣불리 구매하겠다고 안 하게 돼. 얼마나 사용감이 있다는 건지 당최 모르겠어서. 내가 까다로운 구매 자니까 그거에 맞춰서 올리는 거야.





잘 파는 자로는 어려운 잘 사는 자의 길


당근 마켓에 호기롭게 물건 팔며 제품 이외의 것들에 신경을 써야 한다던 사람이 정작 내 사업을 시작하니 ‘제품’만 신경쓰기에도 벅찼다.


제품 이외의 것에는 매장 인테리어가 대표적이다. 귀금속 진열장을 바꾸려고 업체와 미팅도 하고 가안으로 그림도 그려봤다. 돈이 얼마나 드는지 알아보다가 구매를 포기했다. 진열장을 샀을 때는 마음을 단단히 먹거나 계획을 완벽하게 세웠던 경우다.


사업 권리금을 줄 때는 어떻게 구매했나. 그건 물건이 아니었고 사업 노하우여서 그랬구나 싶다. 꼭 필요한 경우만 샀다. 쇼케이스 조도가 너무 낮아서 제품이 너무 안 예뻐 보였다. 그럴 때야 비로소 구매자가 되었다.






"소매 사장들이 물건을 보고 오는 줄 알아?
아니.
자기를 보고 오는 거야"

그 공장 사장님은 오지랖이 넓은 분이셨다. 막 사업을 시작한 나에게 이것저것 알려주길 좋아하셨다.


그랬다. 소매 사장들은 종로 어느 매장에 가면 어떤 물건이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물건이 비슷하다면 게다가 가격까지 비슷하다면 '사장'을 보고 구매하게 될 것이다. 제품의 배경인 나의 화장부터, 옷, 분위기, 고객을 응대하는 태도와 말투, 그리고 매장의 인테리어와 진열장에 진열된 물건의 깔끔함 같은 것까지 보리라.


나 역시 금을 사러 갈 때 푸근하게 말씀하시는 사장님이 좋아서 가기도 하니까. 이유를 알기 어려운 '아우라'가 느껴지는 사람한테 말이다.



종로 도매에서 경력이 20년쯤 되고 장사를 잘해서 돈도 많이 벌었다는 여사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소매 사장님들이 오면 밥도 잘 사고 시원시원하다고 말이다.


제품 이외의 것들에 신경을 잘 쓰지 못했고. 내가 원하는 인테리어를 하고 싶었지만 돈의 제약에 걸렸다. 소매 사장들한테 밥 사 먹으러 가자고도 못했다.


제품 자체로 승부를 보려고 했다. 판매방식도 그 중에 하나다. 그리고 친절함도 무기라 생각했다.


사업은 이건 할 수 있고 저건 못하는

‘나 자체가 그대로 드러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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