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9개월 만에 회사로 복귀하게 된 이야기
육아만 하면서 행복함도 많이 느꼈다. 출산을 하고 육아휴직이라는 명목 하에 집에 있을 수 있었다. 좋은 직장을 다니는 엄마들처럼 육아휴직을 쓸 수 있음에 안도했다. 다만 전적으로 내 선택에 의한 거라는 게 큰 차이다. 출산휴가만 3개월 쉬고 나올지 1년 쉴지 15개월 쉴지를 내가 결정하는 거다. 일단 1년을 잠정적으로 계획했었다. 사업은 그대로 하면서 내 아이도 키울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며 행복을 만끽했다. 매장은 친정엄마와 직원이 맡아주셨다.
완벽하게 사업과 분리된 육아는 할 수 없었다.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나고야 가능했다. 아이가 낮잠을 자는 시간 틈틈이 회사와 통화했다. 매주 월요일 오전에는 아이 낮잠 자는 시간에 맞춰 주간회의를 했다. 내가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 그 시간에 충실히 집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친정엄마는 매일 마감하고 그 장부를 사진 찍어서 보내주셨다. 매장은 잘 돌아가고 있으니 육아를 편하게 하라는 뜻이셨다.
귀금속 도매 매장은 매일매일 ‘금과 현금을 맞추고’ 퇴근을 한다. 어제 마감 당시 금에서 오늘 들어온 금을 더하고 나간 금을 빼는 것이다. 장부에 적힌 금과 실제로 보유한 금이 맞아야 한다. 경영학 전공 원가관리 수업에서 배우는 것처럼 기초재고에 당기 재고를 더해서 기말재고를 확인하는 거다. 금이 1g이라도 안 맞으면 퇴근을 할 수가 없다. 그 금을 찾아야 퇴근이다. 현금 또한 같은 방식으로 맞춘다.
사장의 빈자리는 티가 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직원이 나처럼 일하길 바랄 수는 없다. 직원은 성실하게 본인 역할을 다하여 주었다. 감사했다. 하지만 영업을 통해 새로운 주문을 만들어 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영업사원이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영업사원을 뽑아도 어떻게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인지 막막하고 잘 모르던 시기였다. 신용보증도 받아야 한다는 것 같았다. 삼촌께서는 일단 써보며 경험을 늘리라 하셨는데 아이를 돌보느라 집에 있는 상황에서 하기 어렵다 생각하고 실행하지 못했다.
매출이 조금씩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친정엄마와 직원 월급을 주고 월세를 내면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매장은 나에게는 수익을 가져다주지 못하고 직원 월급만 채워줬다. 그나마 엄마가 도매 일을 하시면서 본인의 생활비는 가져가실 수 있어서 다행이라 여겼다. 충분하지는 않으시더라도. 또 어찌 되었든 회사를 접지 않고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너무 멀리 이사를 가게 됐어요”
직원이 사는 잠실의 아파트가 재건축을 하게 되면서 매장에서 두 시간 이상 걸리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고 한다. 직원은 내가 출산을 하게 돼서 뽑은 나의 대체 인력이다. 출산하러 들어가기 3개월 전에 미리 뽑아서 매장 업무를 가르쳤다. 지금 그만 두면 11개월 정도 일한 게 된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고 하셨단다.
육아휴직이 끝났다. 출산한 지 9개월 만이었다. 나는 매장으로, 친정엄마는 집으로. 두 여자의 역할을 바꾸었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집안의 두 여자가 모두 일하기는 어렵다는 말이 떠올랐다. 우리도 그랬다. 새로 직원을 뽑으려고 해도 내가 있어야 했다. 가르쳐야 했으니. 그 상황에서 엄마가 혼자 매장을 보는 것보다는 사장인 내가 직접 매장에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다시 첫 출근 하던 날의 느낌이 기억난다. 햇살이 따뜻한 6월의 첫날, 나는 자영업 하는 워킹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