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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다 Oct 27. 2022

새끼도 못 보고, 돈도 못 벌고

화장을 한다. 못 입던 옷과 구두를 꺼낸다.


밤이 다 되어서야 세수도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하곤 했었는데. 신체의 자유 없이, 화장실마저 아이를 안고 들어가야 했었는데.


복직을 하게 되니 얼떨떨하다. 매장 매출을 일으켜야 한다는 부담과 일정 시간 혼자인 자유가 동시에 주어졌다. 친정엄마는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안전을 첫째로 하셨고 규칙성을 두 번째로 하셔서 그 부분만큼은 믿고 맡겼다


첫째 아이의 육아 난이도는 ‘상’이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아이여서 다칠까 염려되어 항상 따라다녀야 했다. 집안의 모든 것을 다 꺼냈다. 그리고 들고 다녔다. 무거운 프라이팬, 냄비, 끝이 날까로운 옷걸이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친정엄마는 활동적인 외손녀를 위해서 매일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 안의 키즈카페에 일정한 시각에 데려가셨다. 아이는 9개월부터 키카안의 높은 미끄럼틀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무서움을 모르는 사람’만큼 ‘무서운 사람’이 또 있으랴. 이런 첫째에 맞춰 매일 외출해주셔서 존경해 마지않았다. 감사했다. 난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용실도 갔다. 머리는 꼭 그 브랜드 미용실에서만 한다는 이상한 고집이 있었다. 이사를 다녀도 찾아다녔다. 하지만 육아 중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남편도 어린아이가 어렵기는 마찬가지기에. 시간이 덜 드는 곳을 찾았다. 집 바로 아래 미용실도 가봤다. 단지 내에 규모가 있는 프랜차이즈 미용실에서도 커트를 했다. 갈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 여기서 했을까 후회했다. 원하는 미용실에 갈 자유가 없다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와, 머리 스타일 바꾸지 말아요. 다른 사람이 되어서 왔네. 계속 이대로 해요”

50대 남자 사장님이 극찬을 하셨다. 그 정도예요?라고 되묻자 네 그 정도예요라고 하셔서 또 웃었다.




점점 혼자 하는 매장 일에도 숙달이 되어갔다. 사장님들과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비장한 표정이 되곤 했다. 비수기였다.


주얼리 사업의 비수기는 6월, 12월이다. 재밌는 건 비수기가 매장 마다도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다. 진주 주얼리 매장은 사람이 들끓는데 우리 집은 한가할 수 있다. 우리 매장은 14k, 18k 제품을 취급했고 타겟층은 30대 이상의 여성이었다.




직원 있을 당시 개설해 둔 ‘밴드’에 제품 사진을 찍어서 올렸다. 소매 사장님 몇 백 명에게 일일이 친구 신청 메시지를 보내서 가입을 하시게 했었다. 매주 화요일 목요일을 업로드 날짜로 정했다. 꾸준히 하다 보니 밴드를 보고 문의도 오고 주문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만의 판매채널을 만든 셈이었다.  하지만 큰 수익을 일으키기엔 한계가 있었다.





‘외도’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니 미아 방지 목걸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동안 ‘미스 & 마담 주얼리’만 관심을 가졌는데 관심 가는 분야가 하나 더 추가된 거다. 짬짬이 온라인 쇼핑몰에 업로드를 했다. 주문도 들어오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꾸준한 매출로 자리 잡긴 어려웠다.


‘주얼리 찾아주는 밴드’가 있다. 소매점이나 중상인이 ‘이 물건 찾습니다’라고 올리면 동종 업계 사람들이 보고 00 도매점에서 봤어요 거기로 가보세요 하는 식이다. 여기를 종종 들여다보면 수익으로 연결될 때가 심심치 않게 있었다. 잠시라도 쉬는 시간이 생기면 여기도 들여다봤다. 당장 오늘이나 이번 주 매출을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친정엄마께 그동안 월급을 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를 봐주실 때에도  ‘월급’ 명목으로 먼저 챙겼다. 그리고 월세는 밀리지 말자는 주의였다. 공장에 빚지는 것도 싫었다. 남는 돈이 없었다. 나 자신에게 주는 월급이 밀리기 시작했다. 또, 주얼리업은 계속 공장에서 주얼리를 구입해서 매장에 진열하는 게 성장이다. 버는 대로 재투자를 해야 하는데 그게 막히니 정체 상태여서 더 답답했다.


30년 지기 베프와 육퇴 후 시간이 맞았다. 불 꺼진 캄캄한 거실에 불 켜진 노트북 하나를 두고 앉아 카톡을 열었다.


“내 새끼도 못 보고 돈도 못 벌어서 너무 속상해.”라고 말했다. 친구는 열심히 하고 있으니 잘 될 거라고 얘기해주었다.


영업 사원을 써볼까, 사업을 어느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러다 적자내고 망할까 봐 겁도 났다. 중장기 매출을 일으키기 위해서 꾸준히 하는 일도 있었는데 그건 언제 완성이 될지 아직 기약이 없었다.


우울감이 몰려왔다. 아이가 자라는 모습도 못 봐서 속상한데 그 기회비용을 내고 매장에 나가서 하는 건 겨우 오늘을 버티고 이번 주를 견디게 하는 일뿐이었다.


회사 근무시간이 나보다 긴 남편에게 ‘난 좀 더 일을 해야 해’라고 말하며 야근을 선포하지도 못했다.


손과 발이 꽁꽁 묶인 것처럼 느껴졌다. 내 시간이나 에너지는 사업이나 아이 어느 쪽으로도 더 이동할 여지가 없는 것 같았다.


왈칵 눈물이 났다.

자영업자 워킹맘, 괜히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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