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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다 Oct 28. 2022

오죽하면 종로 ‘바닥’이라 할까요.


사업 초기, 전 사장이 인수인계를 해주던 때였다. ‘큰 주문’을 받아놨다 한다. 이렇게 큰 주문이 들어오는 매장을 내가 잘 산거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만 해도 어느 정도를 큰 주문으로 치는지에 대한 감도 없었다. 공장에서 제품이 나오는데만 3주 이상이 걸렸다. 제품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보통 1주일이면 나오니 3배 넘게 지연된 거다. 대량주문이 들어가자, 공장에서는 우리 물건만 만들 수가 없으니 묶음으로 쪼개서 순차적으로 생산을 한 모양이었다.


제품이 공장에서 다 출고된 후 알게 됐다. 100쌍이 넘는 커플링이 제주도에 있는 소매점에 내려가기로 했다고 한다. 소매 사장님은 주문 후 별다른 독촉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이럴 때 잘못하다가는 늦게 나왔다는 핑계로 물건 안 받는다고 할 수도 있어요. 일단 제주도로 내리시죠”


잘 모르니 알겠다고 했다. 통화로 출고 소식을 전하더니 그 많은 반지를 한꺼번에 통상으로 내렸다. 통상은 사업자 간의 택배다. 돈을 안 받고 내리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순간이었다. ‘종로’ 도매의 시스템이나 문화 모두를 배우고 습득하려던 시기였다.




커플링 대금은 ‘할부’로 받기로 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일정 금액을 통상으로 올려보네 준단다. 제주 사장과 전 사장은 특별한 사이라도 되는 냥 이상할 것 없다는 투였다. 거래한 지 몇 달 된 사이이고, 우리에게 통장까지 맡겨 종로 일을 보게 했고, 그동안 대금 지급을 잘해왔다는 이유에서였다.


거기까진 좋았다.

몇 주 지나자 약속한 날에 결제 대금이 안 올라오기 시작했다. 전화를 하면 대답이 시원찮다.


“뭐 내가 돈 떼먹기라도 했나요, 갚겠다잖아요”

이런 식이었다.




“사장님 저희도 공장에 대금을 갚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희도 여유가 있으면 기다리죠” 읍소도 해봤다.


“왜 갚겠다고 하고 약속을 안 지키세요?” 소리도 쳐봤다.


‘제주도 000 전화하기’ 휴대전화에 매주 알람으로 설정한다. 전화하면 안 받는 건 당연해졌고 문자를 하면 ‘일본이라 연락을 받을 수 없다’ 한다. 아니, 돈도 없다는 사람이 일본을 제 집 드나들듯이 가실까. 돈 떼먹을 사람의 전형이었다.


제주도 사장의 태도도 황당했고, 오래 종로에서 사업을 해왔다면서 선입금도 없이 대량 주문을 받은 ‘이전 사장’도 참 무책임했다. 나에게 매장을 넘기기로 한 뒤에 받은 주문이다 보니 적당히 대충 처리했구나 싶었다.




그렇게 만 3년이 지났다. 결과는 어땠을까.


다행히 대부분은 회수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한 달 월급은 족히 되고도 남을 만큼은 받지 못했다. 내용증명을 보냈다. 소액사건이라 물품대금 지급 가처분 신청을 했고 받아들여졌다. 결정문 한 장 가지고 압박을 하려니 금액이 적었다. 상대방은 아예 답도 하지 않았다.


‘못 받은 돈 받아드립니다’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저기에..? 아, 그건 아니다.



한솥밥 먹던 사장님이 말씀하셨던 게 스쳐 지나간다

“오죽하면 종로 ‘바닥’이라고 할까요”


종로에서 오래 계신 분이다. 여러 일을 겪고 들으셨으리라 짐작된다.


직장을 다닐 때는 상상도 못 했다. 물건을 받고 돈을 안 주다니. 돈이 있는 곳이 전쟁터라면 전투 현장에 투입되어보니 알겠다. 돈이 오가는 곳이 그렇게 믿을 만한 곳이 못 된다는 것을.



돈 안 받고 귀금속을 지방 소매점에 내리는 관행은 없어져야 할 종로만의 문화다. 그런 인식이 많이 생기면서 ‘미수 사절’  적힌 종이가 붙은 도매점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꾸준한 주문과 결제를 해온 소매점의 경우, 관계와 믿음이 생긴다. 나 못 믿겠어요? 하는 거다. 그 마음을 다루어내는 방식이 바로 미수다. 미수 문화는 변화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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