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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다 Oct 30. 2022

도매하며 만난 사람들

We Sell LOVE

우린 무슨 사이일까?


첫 출근했던 날이 떠오른다. 도매점 안쪽에 노트북 하나를 앞에 두고 앉았다. 매장 앞을 바라본다. 앞집은 순금 제품 사장님과 직원 두 분이 앉아 있다. 오른쪽을 본다. 다이아몬드 매장 사장님과 그의 아버지가 보인다. 왼쪽을 바라본다. 금 매입 사업 사장님과 그의 딸이 있다.


매일 만나고 하루 9시간을 같이 있는데,

같은 회사 사람이 아닌 8명의 모임.

그게 주변 사장님들 간의 관계다.


회사에서는 팀 단위로 앉고, 회의가 있으면 회의실이나 대형 테이블에 모인다. 그러나 여기는 나를 둘러싼 좌우 앞 모두 다른 회사 사람인 셈이다. 함께 모여 우리 매장 이야기를 의논할 수 없다.


‘어색하다.’ 하곤, ‘적응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내향인이지만 오랜 직장 경험은 외향인의 장점도 끌어다 쓸 수 있게 해 줬다.


앞 집 사장님이 손님과 승강이 후 속상해 밥도 못 드시던 날, 샌드위치를 사다 드려 마음을 얻기도 했다. 그 후로는 나를 살뜰히 챙겨주셨다.


돈도 떼이고 마음 상하는 날은 지나가듯이 툭,

‘00이 돈 아직도 안 갚아요’ 하며 코로나로 여의치 않은 분위기에 나도 그렇다며 손을 보탰다.




밀집 상가 안쪽으로 매장을 이전했다.


주변 사장님들이 모두 여자였다. 나잇대가 비슷한 사람도 있었고 대부분 나보다 나이가 열 살 정도는 더 많았다. 동성이라 새로 온 나에게 질문도 많이 해주셔서  나의 이야기를 하자 더 빨리 친해졌다.


나를 포함한 여자 사장 4명이, 아이들을 데리고 1박 2일 동안 여행을 갔다. 항상 부드러우셨던 맏언니가 “우리 마음이 잘 맞아서 좋다” 하신다. 언젠가 꼭 바라오 던 이상적인 관계였다.


우아하거나 고상하지 않다. 밖에서 본 종로는 막말을 하며 다투는 사람들이 종종 보인다. 거리는 복잡하고 지저분하다.


그럼에도 안에서 만난 종로는 따뜻하고 성실했다. 사업에 대해서는 깊은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지만 사업 얘기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됐다.




큰 손 도매 사업가의 이야기


사업을 하려고 간 거니, 잘한 사람 이야기가 궁금했다.

업무상의 이유로 매일 종로를 두 바퀴씩은 돌며, 여러 매장을 들리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됐다.


‘미스링’은 얇고 가벼운 반지를 의미한다. 금값이 비싸지면서 얇은 제품을 선호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돈을 크게 벌어서 하얀색의 멋진 4층 건물을 올린 도매 업체가 있다. ‘주얼리 명장’을 채용해가며 품질 개발과 디자인에 신경 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주얼리를 파는 곳도 있다. 공장에서 직영으로 도매 매장을 운영하는데, 잘 모르는 소매점에서 종로를 돌다 보면, 다른 매장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5개 매장이 다 한 공장에서 운영된다. 디자인에 투자를 많이 하고, 신문 광고도 자주 하고, 일 잘하는 직원이 있으면 직원을 사장으로 만들어주기도 하는 곳이었다.


큰 사업체를 보니 ‘운’ ,‘투자’, ‘방향성’이라는 키워드가 남았다.





종로3가역을 둘러싼 귀금속 밀집 상가에는 귀금속 도매점만 있는 게 아니다. 전국 10,000여 개의 주얼리 소매점에서 오면 필요한 모든 것이 있다. 시계나 주얼리 수리점, 다이아몬드 판매점, 금을 사고 판매하는 곳, 케이스 가게, 진열장 제작하는 곳, 집기 파는 집, 간판 제작 상점, 저울 매장 등 귀금속을 둘러싼 생태계가 촘촘하게 들어앉아 있다. 심지어 주얼리 매장 전문 부동산까지 있다.


여러 업종이 모여 ‘종로 도매’라는 이미지를 만들고 하나의 회사로 기능한다. 소매상은 ‘종로 회사’에서 주얼리를 제작하고 유통해서 소비자에게로 판다.



친구가 남편이 해주는 결혼기념일 선물로 목걸이를 하나 하려고 한다며 제작해줄 것을 요청했다. 나이 드니 가방보다 낫다며. 받아보더니 ‘문신템’으로 할 것 같다며 너무 마음에 들어 했다. 기분이 좋아 보여 나도 덩달아 뿌듯했다.


나는 사랑을 파는 사람이구나.

몸에 착용하는 동안 선물 해준 사람과의 인연, 선물 받던 시점에의 추억과 항상 함께하게 되니까. 그것도 변하지 않은 채로.


사랑을 온전히 전달해주는 매개체가 바로 주얼리구나.

종로는 오늘도 여러분에게 사랑을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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