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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다 Oct 22. 2022

여자가 전국을 돌며 영업하면 일어나는 일

얼마 전 개봉한 영화 <탑건 매버릭>에서 톰 크루즈가 연기한 매버릭이 제자 루스터에게 말한다.

“생각하지 마. 그냥 해. 너는 생각을 하는 게 문제야”


그 제자는 적진에서 스승을 살리러 비행기를 돌린다. 왜 그랬냐고. 죽을 뻔하지 않았냐고 따지는 매버릭에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하라면서요!!’라고 반문한다.


사업을 하는 동안 그랬다. 생각할 겨를이 많지 않았다. 강남에서 접한 소매는 한 고객과 2시간씩 상담을 하기도 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계약을 하면 보상이 주어지는 문화였다. 도매는 달랐다. 한 고객과 10분이 넘어가면 다급해진다. 다른 고객이 전화를 계속하고 있을 수도 있어서다.


종로 주얼리 도매상의 하루는 이렇다


10시 오픈

10시 30분 전국에서 올라온 통상 확인

12시 식사 ; 매장에서 먹으며, 손님 응대함

12시-3시 주문받기, 밴드 마케팅, 출고  챙기기

4시 공장 주문 마감

5시 전국으로 내려가는 통상 마감

6시 30분 영업 마감

7시 택배 마감



10시부터 시작되어 6시 반 마감을 한다. 8시간 반 정도라 업무시간이 과하다 생각 들지는 않는다. 오히려 칼퇴한다는 느낌이 더 든다. 업무시간 내내 주문, 출고, 수리 챙기기에 바쁘다가 영업 마감 시간이 도래하면 탁! 하고 영업이 끝난다. 심사숙고해서 의사결정을 한다기보다는 순간순간 맞닥뜨리는 일을 쳐낸다는 느낌으로 임한다. 매버릭이 말한 것처럼 말이다.





사업을 시작하고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계획대로 첫 아이를 임신했다. 임신 사실을 알고 안정기로 들어서는 16주까지의 기간을 제외하고는 전국으로 책자를 돌리러 다녔다. 출산 전에는 남편과 주말을 이용해서 함께 다녔다.


첫 번째 지역은 부천의 귀금속 밀집 상가였다. 지방에 밀집 상가가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근데 북적북적했다. 왜 여기에 주얼리 사러 오는 사람이 많냐고 물었다. 부천은 올드 시티라 아이들을 웬만큼 키우고 이제 돈 쓸 여력이 있는 부부들이 많이 거주한다고 했다.


두 번째 지역은 대전이었다. 친구가 결혼식을 거기서 한다고 해서 A4용지 크기의 매장 책자를 40권 정도 챙겼다. 결혼식을 마치고 대전 시내를 돌며 책자를 돌렸다. 휴대폰 지도에서 검색을 해 가며 시내에서 약간 떨어진 지역의 소매점에도 들렀다.


세 번째 지역은 대구였다. 대구는 귀금속 거리가 있을 정도로 금을 좋아하는 분위기였다. 귀금속 밀집 상가가 한 블록 좌우를 다 차지하고 있었다. 건물 규모도 컸다. 나중에 대구 이남 지역 사람들은 14k를 금으로 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18k이상은 돼야 귀금속으로 쳐준다. 중국 사람들이 22k의 번쩍이는 금을 좋아하는 것이 생각났다. 부를 과시하고 싶어 하는 거였다.


네 번째 지역은 부산이었다. 부산도 귀금속 거리가 있었다. 대구가 좀 더 신식 건물이 많았다면 부산은 역사가 더 오래돼 보였다. 일자로 상권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고 상대적으로 띄엄띄엄 있었다. 기존 거래처들도 있어서 얼굴을 뵙고 인사도 드렸다. 반기는 분들도 계셨고 바빠서 인사를 못 드리고 나온 곳도 있었다.


다섯 번째 지역은 매장 책자가 그동안 뿌려지지 않은 송도였다. 마트에 있는 주얼리 소매점에도 들리고 대로변에 있는 곳에도 들렸다. 소매점이 많지도 않은 데다 띄엄 띄어 있어서 차를 타고 한 곳에 내려 책자를 드리고 또 차로 이동해야 했다. 칼바람이 부는 날씨 탓인지 소매점도 한산했다. 알고 보니 송도는 아이들이 어린 젊은 부부가 많이 사는 곳이라 교육 수요는 많아도 주얼리 수요는 적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다.


다음은 서울을 훑었다. 마포구, 성북구, 노원구, 강남의 아파트 상가 등 주거인구가 많은 곳. 도매 상가와 가까운 곳 종로 일대도 포함했다.


다음은 경기도 동탄, 화성. 띄엄띄엄 가게가 있어서 시간 대비 효율은 떨어졌다.


다음은 강원도. 횡성과 원주. 종로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 곳이었다. 그래서 갔다.


다음은 제주도. 전주 등등


.


“주말에 영업 다닌다며? 진짜?
가방 메고? 에이, 아니지?”

직접 책자를 들고 ‘영업’을 다닌다는 것을 안 공장 사장님들은 ‘여자가?’라며 놀랐다.


한 거래처라도 뚫으려는 절박함과 전국에 소매점이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영업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물건을 판다는 생각으로 간 거였다. 그 생각은 짧았고, 매주 가방을 챙겨 나갔다. 그냥. 했다.


영업을 지속하며 알게 된 것은, 인생의 비밀이었다면 과장일까. 바로 누가 ‘큰 고객’이 되느냐는 책자를 돌리는 ‘순간의 통함’ 과는 상관이 없다는 거다.



영업을 다니다 만난 소매 사장님들을 이렇게 분류해보겠다


1. ‘왜 왔지? 또 영업사원이야’ 하는 느낌으로 응대하는 사장님. 거기 놓고 가세요. 하신다. 여기 놓고 가겠습니다 하고 대략의 소개만 하고 나온다. 말을 못 붙인 경우도 있다.


2. 반갑다며 인사도 하고 책자를 넘겨보며 관심도 보인다. 질문도 한다. 가격은 어떠냐며. 살듯 말 듯 고민도 하신다. 그렇지만 주문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3. 추운데 고생이 많다며 커피도 내어주고 다정하게 말을 붙여주시는 사장님. 대화도 길게 이어진다. 수다고 하고 종로는 요즘 어떠냐 물어보신다. 물건에 대한 높은 관심도 보이고. 주문도 하신다.


아이러니하게도 1번으로 분류된 거래처가 ‘찐 고객’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3번 사장님은 주문한 것을 잊어버리거나 주문해 놓고 나중에 연락하면 그때 마음은 그랬어요 하는 식이었다. 찾아가지 않겠다는 거다.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자영업자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무한 책임’을 지고 일을 해보는 경험 말이다


생각을 많이 했다면 주저했으리라. 왜 내가 무거운 책자를 들고 지방을 돌아야 하며. 싸늘한 눈빛을 맞아야 하느냐며. 하지만 그냥 했고, 그냥 했던 많은 날들이

쌓여 이전에 없던 내가 탄생한다. 경험은 값지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도 매버릭이 말한다.

Don’t think, just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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