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퇴근 후 홍대에서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모처럼 친구들과 만나는 저녁 모임이어서 출근 전에 옷을 고르느라 나름 신경도 쓰고, 그 옷에 맞는 가방도 골라메고 나왔다.
지금 생각해보면 옷 색깔이나 스타일에 따라 가방을 바꾼다는 게 아주 만만한 일은 아닌데, 당시엔 패션에 대한 열정이 넘쳐서 하루가 다르게 가방을 바꿨더랬다.
여느때처럼 기계적으로 출근하여 바삐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앞으로 택배가 왔다고 알려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왠만해서는 회사로 택배를 시키지 않는 사람이었다.
뭐랄까 회사로 택배를 보내면 개인적인 물품이 타인들에게 노출되어 나에 대한 정보가 오픈되는 느낌이 싫었기 때문이다.
굳이 나를 알아야될 사람이 아니라면 적당한 거리를 두는 편이 여러모로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택배가 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택배 상자에 보내는 사람의 출처를 보고는 더욱 놀랐다.
아무리 뜯어봐도 모르는 이름이었고, 택배 크기도 대단히 큰 데다 종이상자가 아닌 스티로폼 박스여서 또한번 연속적으로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알 수 없는 미궁의 택배상자였다.
누가 택배를 보냈는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며 일을 하는데 통 집중이 되질 않았다.
너무 궁금한 나머지 누가 보냈는지 몇명을 통해 수소문을 해봤지만 결과는 다 아니었다.
그러다가 퇴근 시간 가까이 되서야 드디어 범인을 잡게 되었다.
당시에 나는 비밀(?)연애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의 남자친구이자 지금의 남편이 보낸 선물이었다.
우리 집 주소를 몰랐기에 회사로 택배를 보냈는데, 본인의 이름을 쓰면 혹여나 의심을 받을까봐 다른 이름을 써서 나름의 전략을 부린 선물이었다.
그날 꽤나 신경을 쓰고 온 나는 당연히 그 택배박스를 회사에 두고 홍대로 저녁 약속을 나갈 생각이었다.
세련되게 입은 옷차림에 큰 스티로폼 박스를 들고 스타일을 구겨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에게 택배안에 든 내용물을 듣고는 기겁하고 말았다.
바로 그 스티로폼 안에 든 내용물은 "닭"이었다.
이거 정말 엽기적인 선물 아닌가.
와 하필이면 홍대에서 약속 있는 날에 스티로폼 박스 안에 든 닭을 선물하다니.
도대체 닭을 선물한다는 발상을 할 수 있다니 그 자체도 몹시 충격적이었고, 그렇게 유순하고 착한 심성과 인상을 가진 남자가 이런 기괴한 선물을 하다니 정말로 당황스러웠다.
알고 보니 미리 한 농가에 예약해서 6개월간 자연방목해서 키운 몸에 좋은 유기농 닭을 손질해 냉장포장한 것이었다.
꽤나 지극정성을 기울인 특별한 선물로 나름 예약하는 데만도 경쟁이 꽤 치열하다고 했다.
사람들은 종종 나보고 특이하다고 하는데 정말 특이한 사람은 이 사람 아닌가.
정말 겉 보고는 모르는 법이다.
그리하여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큰 상자를 두손으로 부둥켜안고 홍대를 나섰다.
친구들을 만난 순간 하나같이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야 그거 뭐냐? 이런 날 왜 무거운걸 들고 와 거추장스럽게."
"야 스타일 구기게 그 큰건 뭐냐."
"어.. 이거? 어 몸에 좋은거야 집에 가져가야해서..흐흐"
1차 식당에서 밥을 먹고, 우리는 2차 분위기 좋은 이자까야로 이동했다.
그런데 솔직히 세련된 사람들 무리에 생닭이 같이 끼어다니니 분위기가 묘했다.
그날 나는 이 닭 때문에 결코 취할 수가 없었고, 평소와 다르게 너무도 멀쩡한 상태로 홍대를 빠져나와
지하철을 타고 필사적으로 이 닭을 사수하며 집까지 잘 도착했다.
닭이란 그에게 그렇게도 애정하는 동물이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는 결혼을 했고, 그보다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 땅을 사서 농막까지 설치하게 되었다.
그리고 닭을 좋아하는 그의 본능은 농막이 생긴 이후 자연스럽게 발현되어 닭을 키우겠다며 고집을 부렸고, 끝내 닭장을 설치했다.
나는 치킨은 좋아하지만 닭의 그 징그러운 모양새 때문에 키울 수 없다고 내내 반대를 했는데, 그는 닭에 대해 좋은 인식을 가진 주변사람들을 불러모아 결국 나를 설득시켰다.
사실 설득이라기 보다 그 전보다 반대를 심하게 안했던 것 뿐.
그뒤 손수 나무를 사서 뚝딱뚝딱 닭장을 만드는 그를 지켜보며 행복해하는 소년의 미소를 보게 되었다.
"그렇게도 닭이 좋을까?"
한참동안 닭장 공사를 하고 어느정도 완성이 되어가는 무렵에 그는 세상에서 처음보는 형태의 닭을 사왔다.
놀랍게도 그의 말대로 예쁘게 생긴 닭이었고, 징그럽지도 않았다.
몇일 지나지 않아 옆집 농가의 김선생님 내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유 뭔 닭이 이리 이뻐유. 아주 미스코리아 닭이어유."
가끔 우리가 없는 날에도 동네 어르신들이 이 미스코리아 닭을 구경하러 오시곤 했다.
닭이 예상외로 예쁘게 생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없던 애정이 갑자기 솟아오르진 않았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던 어느 날 닭이 낳은 첫 달걀을 보는 순간, 그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자연의 섭리를 새삼 끼우치며 새로운 세상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마트에서나 보는 달걀이 전부였기에 나는 닭에게서 알이 나온다는 당연한 이치도 망각하고 있었다.
입으로는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란 말을 쓰면서도 머리속에는 닭(치킨) 따로, 계란 따로 이렇게 각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 닭이 알을 낳는 동물이었지."
알을 품고 있는 어미닭의 모습을 보자니 정말이지 신기하고 경이로울 수가 없었다.
자 그렇다면 오늘의 메뉴는 뭐지?
당연히 계란 후라이다. 그것도 각종 채소를 곁들인 비빔밥에 얹은 계란 후라이!
사료도 우리가 직접 사와서 먹이고 있고 그외 먹이도 자연식으로 주고 있었기에, 시판되는 계란과는 좀 다르리라 생각했다.
적당히 달궈진 후라이팬에 기름을 붓는다.
계란을 톡 까니 역시나 시판되는 계란과 다르게 껍질을 깨는 그 느낌부터 부드럽고 가볍다.
세상에나 노른자가 이렇게 동그랗고 볼록하다니.
계란 흰자의 비율보다 노른자의 비율이 훨씬 컸다.
우리 닭이 낳은 알은 일반 계란보다 크기 자체가 훨씬 작은데, 노른자는 시판 계란보다 더 큰 듯 했다.
계란후라이가 거의 익어갈 때 쯤, 분주하게 양푼그릇에 상추와 텃밭 채소를 털어넣고 밥과 참기름 통깨, 고추장을 넣고 버무린다.
그리고 그 위에 볼록하게 잘 익은 계란후라이를 예쁘게 얹는다.
"오 계란 후라이! 상당히 고소하고 담백한데?"
솔직히 천국을 보는 맛이라곤 못하겠지만, 깔끔하면서도 고소한 풍미가 확실히 느껴지는 맛이었다.
담백하고도 고소한 이 달걀을 씹으며 나는 오늘도 작은 행복감에 젖어든다.
"미스코리아 닭아. 몰라봐서 미안하다."
"이제 너를 우리의 가족으로 받아들이며, 깨끗하고 맛있는 달걀을 선사해주는 그 수고로움에 깊이 감사해!"
★사진 및 일러스트 : 직접 찍고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