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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인사

여름방학식, 마지막 출근입니다

by 아침이슬

여름방학의 시작과 함께 나의 근무도 종료된다. 여름방학식이 끝나는 날까지 계약이지만, 실제로 방학 동안 출근하지 않으므로 방학식날이 마지막 출근일이다.


마지막 출근을 일주일 앞두고 할 일을 정리해 본다.


1학기 생기부 과세특을 작성한다. 한 학기를 보내면서 과세특을 꼭 기록해주고 싶은 학생들이 몇 명 있다. 중학교는 모든 학생들의 과세특을 기록할 필요가 없다. 학기 동안 꾸준하게, 일관되게, 성실하게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꼭 내가 작성하고 싶어서 짧게라도 써본다.


인수인계서를 작성한다. 학기 초에 전달받았던 문서와 달라진 내용은 거의 없지만, 한 학기동안 해오던 일중 연속성 있게 진행해야 할 업무를 기록하고 파일을 정리한다. 찾기 쉽게 폴더를 정리하고, 불필요한 버전은 삭제하고, 개인파일은 USB로 옮겨 담는다.


업무실적과 자기 평가서를 작성한다. 한 학기만 근무한 기간제 교사라 평가결과는 큰 의미 없다. 그래도 한 학기 동안 성실히 일했음을 기록으로 남길 문서가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잠시 든다. 이것마저 없으면 나의 한 학기가 사라지는 기분이 들지도 모른다.


서랍, 책꽂이, 사물함도 정리한다. 그동안은 임시로 또는 급하게 비워진 누군가의 자리에서 시작했다. 이제, 처음으로 내 자리를 누군가에게 비워주는 상황이 됐다. 잘 정돈되고, 잘 정리된 상태로 넘겨주고 싶다.


한 학기 동안 많이 도와주고 힘이 되어준 동료 선생님들께 인사도 해야지. 전체 쪽지를 보낼까. 아니야, 지난주 교직원 회의에서 모두에게 인사를 했으니 그건 생략하자. 자리 가까운 곳에 계시는 선생님들, 개인적으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은 분들께 간단히 찾아다니며 인사를 드리자.


가장 고민되고 그래서 아직 어떻게 할지 결정하지 못한 건 학생들과의 인사다. 2학기에는 만나지 못함을 미리 알릴 필요가 있을까. 있다면 처음부터 한 학기만 가르칠 계획이었다고 할까. 기간제 교사임을 바로 눈치채는 건 아닐까. 개인사정으로 그렇게 됐다고 할까. 이렇게 말하면 혹시 무슨 문제가 생겨서 더 이상 근무하지 못한다고 오해하는 건 아닐까.

아무 말 없이 평소처럼 수업을 마무리하고, 개학 후에 새로운 선생님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방학 동안 못 본 뒤라 나의 부재를 크게 아쉬워하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한 학기 동안 쌓은 정이 있는데, 인사는 하는 게 좋은 거 아닐까. 말없이 사라진 선생님을 그리워하거나 서운해하는 학생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지 모르잖아. 반별로 마지막 시간에 인사를 할까. 그럼 어떤 반에서는 너무 빨리 말하게 되는데 괜히 아이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건 아닐까. 방학 전날에 수업 있는 반에서만 이야기할까. 못 들은 반에서 서운해할 학생이 있는 건 아닐까.


아직 결론을 못 내렸다. 그러는 동안 방학은 서서히 가까워지고 있다. 2학기에 기간제교사를 할 때는 큰 고민이 없었다. 모두가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종업식에 나도 같이 인사를 하니 자연스러웠다. 전근가시는 선생님들도 많은 상황이라 새 학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1학기 기간제 교사를 하고 보니 조금 달랐다. 학교 전체를 통틀어 바뀌는 교사가 몇 명 없기 때문에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괜히 더 고민된다.


마흔이 넘어서 기간제 교사로 처음 맞이했던 3월의 중학교. 여름방학을 앞둔 지금도 여전히 처음인 것이 있다. 몇 번 더 반복하면 익숙해지고 자연스러워지겠지. 두 번째 3월의 중학교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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