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만 5년 정도 맡으신 베테랑 선배 선생님께 여쭤봤습니다. 자녀 입학은 남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작년, 첫째를 입학시키기 두세 달 전부터 무척 긴장되더군요. 오히려 학교에서 아이들을 매일 마주하다 보니 속속들이 잘 해내야 할 것이 눈에 보여 염려도 컸던 모양입니다. 2학년은 여러 해 해왔지만, 1학년은 왠지 겁이 나서 여러 차례 피했습니다. 베테랑 선배님께 물으며 '한글을 떼냐 마냐, 수 개념은 있느냐' 하시겠구나 예상했는데 뜻밖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아이가 좋은 컨디션으로 학교에 올 수 있도록 도와주면 돼”
머리를 한 대 띵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곧이어 공감의 물결이 마음을 출렁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릴수록 아이들의 신체적 컨디션은 생활 컨디션으로 이어집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서너 살 아이들이 '진상'을 부리는 것은 아이를 키워본 부모라면 누구나 압니다. 그런데 아이가 자라며 단단해지고 입학시기 즈음 되면 아이의 컨디션에 둔감해집니다. 하지만 초등 저학년 아이들도 신체적 컨디션이 나쁘면 어떤 일을 하던지 수월치 않습니다. 친구와 트러블이 더 생기거나, 수업시간에 집중을 못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루 일과의 많은 부분을 스스로 해내는 자기주도생활을 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몸이 튼튼해야 마음도, 자기주도생활도 튼튼해집니다.
자기주도생활은 지속적으로 아이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왔던 것을 스스로 해내는 도전을 하는 과정입니다. 아이와 부모의 에너지가 이전보다 많이 쓰이게 됩니다. 튼튼한 몸으로 의욕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 아홉 살 이전의 아이에게 중요한 것은 먼저 '수면'입니다. 5학년 담임 시절, 팔방미인으로 손꼽고 매 수업시간 초롱초롱한 눈빛이며, 아이들에게도 늘 살가워 회장을 매년 했던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일기에 "엄마는 학원 숙제를 그만하고 시간이 되었으니 자라고 하셨다. 나는 너무 답답했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습니다. 이 아이의 3월 초 자기소개가 '열정'이었던 것은 바로 부모님께서 잡아주는 수면 습관이 비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을 많이 자야 키가 큰다. 잠이 보약이다. 모두 잘 알고 있는 말입니다. 수면은 이런 신체적 측면뿐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더불어 수면은 어릴 적부터 길러야 할 좋은 '습관'입니다. 일관된 취침과 기상 시각, 자기 전 일정 시간 동안에는 디지털 기기를 접촉하지 않는 것, 자기 전 후 잠자리를 정돈하는 것, 잠자리는 놀이공간 등으로 활용하지 않고 오로지 잠을 자는 용도로 하는 것, 좋은 수면 습관을 어른들이 본보기로 보여주는 것. 이런 것들이 질 좋은 수면으로 의욕 넘치는 아침을 맞는 방법입니다. 수면 습관은 성인기에도 이어진다니 쉽게 넘길 일이 아니겠죠?
다음은 '영양 섭취'입니다. 몇 년 전부터 학교에서는 담임교사들의 '골고루 먹기'지도를 자제시켰습니다. 편식 또한 개인의 자유이므로 급식에 나오는 모든 반찬을 먹으라 하는 것은 강압적이라는 민원이 종종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후 교실 상황은 어떨까요? 식욕이 좋은 일부 아이들은 매번 충실히 점심을 먹는 반면 편식이 심한 아이들은 먹는 시늉을 하고 식사를 마무리하곤 합니다. 특히 저학년의 경우 편식이 심한 아이들이 고학년에 비해 많습니다. 먹어보는 것도 경험인지라 어릴수록 편식이 심하죠. 어떤 이들은 편식을 인류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진 본성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원시시대부터 어릴수록 독성이 있는 음식을 먹으면 치명적이므로 음식에 대한 경계가 크다는 의견이죠. 또 어떤 부모님께서는 학교에서 적게 먹고 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매일 하교 후 점심을 다시 차려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학교에서는 거의 먹지 않는데 키도 크고 건강한 아이들에 해당하죠. 그런데 저학년의 편식은 고학년까지 이어지기 쉽습니다. 편식으로 급식을 거의 먹지 않는 친구들이 고학년이 되어 5~6교시를 해내는 것은 무척 힘든 일입니다. 또 편식을 줄이고 골고루 먹을 수 있게 돕는 것은 평생 가져갈 식습관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가정에서 좋은 식습관을 강조하여, 아이들이 자기주도적으로 학교에서도 골고루 먹는 것이 필요합니다. 각각의 식사가 쌓여 아이의 성장과 컨디션을 돕고 있으니까요.
이밖에도 9살 이전 튼튼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검진', 운동이 필요합니다. 검진의 대표주자는 바로 시력과 치아입니다. 1~2학년에 근시로 인해 안경을 쓰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이 발생합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칠판이 잘 보이는지, 흐릿해서 불편하진 않은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치아 관리도 중요합니다. 어금니의 경우 초등 4~5학년까지도 사용하기 때문에 저학년에 하나 둘 이빨이 빠지는 것과 별개로 잘 관리해야 합니다. 치과 검진은 시기를 정해 주기적으로 가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이는 방학 버킷리스트로 치과 방문을 꼽기도 합니다. '곧 방학이네! 치과 예약 해야지'하며 기억하기 좋고 시간 여유도 있기 때문이죠. 또한 아홉 살 이전 시기부터 꾸준히 운동을 생활의 일부로 가져가는 것이 좋습니다. 축구, 수영, 태권도 등 사교육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저는 줄넘기를 강력 추천합니다. 인터넷으로 '줄넘기 급수제'를 검색하면 뒤로 넘기, 한 발로 넘기, 엑스자 뛰기 등 단계별 줄넘기 동작을 제시합니다. 일정 단계를 성공해 내면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도 좋습니다. 줄넘기는 전신을 리듬감 있게 움직여야 하는 운동이며 성취감도 줄 수 있어 저학년에게 효과적입니다.
저희 교실의 A군은 수업에 의욕이 없었습니다. 저는 아침 활동으로 독서와 시간표 보고 교과서를 서랍에 챙겨두기를 스스로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A군은 3월부터 등교하자마자 엎드려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침활동 뒤 수업시간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잦았습니다. 이 아이에게 자기주도생활이라는 도전은 우선순위가 아니겠죠. 아이가 힘들어 보이는 이유는 3월 말, 학부모 상담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생업에 자정이 되어서야 퇴근하시는 부모님을 아이가 매일 기다렸다 1시가 되어서야 잔 거죠. 어머님께서는 아이를 일찍 재워보도록 노력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 날부터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변했습니다. 수업시간에도 의욕적이고,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엎드리지 않고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놀았습니다. 의욕 없어 보이는 것이 아이의 본질도, 심리적 상태도 아니었습니다.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해야 아이는 불안정하지 않고 단단한 땅을 딛고 점프하는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주도생활은 이런 밑바탕 위에서 꽃 피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