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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그녀 Jun 26. 2024

밀어붙이기 전 이것부터

"엄마! 학교에서 쫑알쫑알"

"아빠! 같이 캐치볼 하고 싶어요" 

귀찮을 정도로 부모에게 따라붙어 놀고 싶어 하는 시기. 중고등학생으로 훌쩍 키운 인생 선배님들은 이 모습을 보며 한 마디 하신다. "좋을 때다." 뇌가 붕 떠있는 것 마냥 늘 분주하고 정신없어 구멍이 뻥뻥 뚫린 일상이 낙제 점수같이 느껴지는 이 모습이 뭐가 좋단 말인가. 그러다 지난 2년 연달아 5, 6학년 아이들과 교실에서 생활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들은 더 이상 부모에 집착하지 않는다. 오히려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이는 부모와의 관계가 나빠졌다는 것이 아니다. 아이는 부모로부터 본능적으로 독립해 자기만의 세계를 건설해나가고 싶어 한다. 이 시기는 부모가 자녀에게 본격적인 자기주도학습을 요구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이제 좀 컸으니 스스로 자기 할 공부를 챙겨서 했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전까지 자기주도생활을 하도록 가이드하지 않은 부모라면 넘을 수 없는 벽을 만나고 이내 사교육 시장에 더욱 열정적으로 뛰어들게 한다. 




자기주도생활을 통해 자기주도학습까지 할 수 있는 법칙이 있다고, 이 프로세스만 따라오면 문제없다고 선언하고 싶다. 하지만 진정 가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쉬운 길이 아닌 추상적이고 복합적인 길이다. 그러기에 때로는 모호하게 느껴지고 막막하고 '이게 맞나?'라는 의구심이 들지만, 계속 시행착오를 겪으며 걷다 보면 기대 이상의 가치를 맛보게 된다. 자기주도생활도 그렇다. 큰 틀의 프로세스가 있지만 아이들마다 기질과 성향이 다르고, 양육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그 길을 만들어가는 것은 각자의 가정 문화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계획대로 실천하는 것이 쉽지만 조금이라도 부족하거나 틀어지면 불안이 확 높아지는 아이도 있다. 반면 계획 자체가 귀찮고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만사 태평한 아이들이 있다. 어떤 아이들은 하루 100원에 눈빛이 반짝이지만 10만 원짜리 로봇이 아니면 딜(deal)이 되지 않는 아이도 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아이들에게 자기주도생활을 실천한다는 것은 한 가지 법칙으로 불가하다. 그런데 확실히 이건 필요하다. 바로 부모와의 원활한 소통이다. 




자기주도생활은 계획 단계부터 실행하고 반성하여 다시금 개선해 보는 과정 내내 부모와의 소통이 필수다. 도전 과제를 정하기 위해 아이를 면밀히 진단하는 과정에서도 소통과 관찰이 필요하다. 또한 실행 과정에서 시행착오와 새로운 도전으로 심리적 갈등을 느낄 때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 안에서 힘을 얻는다. 더불어 아이들은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아이가 해나가야 할 자기주도생활의 도전 과제는 변한다. 이를 부모가 알 수 있어야 한다. 최근 AI 디지털 교과서의 장점이 '학생 맞춤형'교육이 가능한 점이라고 한다. 아이의 수준에 맞는 교육 자료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자기주도생활 또한 '학생 맞춤형'이 되어야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 핏 좋은 옷을 수제로 제작하려면 직접 마주하고 곳곳의 치수를 재고, 어디가 불편한지, 마음에 드는지 물어야 하는 것처럼 아이의 자기주도생활 또한 부모와의 소통으로 이뤄지는 아이 맞춤형이 되어야 한다. 




유아기와 초등 저학년 시기는 부모가 귀찮을 정도로 아이들이 소통을 원하는 시기다. 어찌 보면 소통의 황금기라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자기주도생활을 위해 부모와 어떤 소통을 하는 것이 필요한 걸까. 먼저 스킨십 듬뿍 담긴 적극적 경청이 필요하다. 부모가 아이에게 스스로 해 보라고 도전을 자극하는 것은 게을러서가 아니다. 아이에게 애정이 적은 것은 더더욱 아니다. 때로는 아이가 부모님이 야박하다 느낄 수도, 또 부모가 아이에게 필요치 않는 죄책감을 가질 수도 있다. 스킨십과 적극적 경청은 이 모든 오해를 해소시켜 준다. 육아에서 '본질'을 찾자는 지나영 교수님의 <본질육아>에서는 육아의 방법으로 '밥짓기 요법'을 제안한다. 밥 짓기에서 쌀은 아이 본연의 가치를 발견해 주도록 노력하는 거라면 여기서 주목할 것은 '물'이다. 밥 짓는 물은 바로 아이에 대한 부모의 사랑과 관심이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책에서는 20초 허그 요법과 맞장구 요법을 제안한다. 하루에 20초는 진하게 안아주고, 아이의 반응을 반사하고 경청하는 맞장구를 쳐주라는 것이다. 맞벌이 부부로 바쁜 일상이라도 짧게나마 아이를 안고 뒹굴어고 아이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자. 




다음은 아이의 관심사에 환호를 보내주는 것이다. 아이는 이중, 삼중으로 겹쳐진 부모의 속 깊은 뜻을 알기 어렵다. 신생아 시절에는 배고플 때 즉각 먹여주고, 졸릴 때 재워주는 것으로 부모의 애정을 느낀다. 아이들은 그만큼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에서 부모의 사랑을 발견한다. 어른들이 볼 때 아이들의 관심사(이름도 못 외울 수많은 티니핑들과 공룡들, 계속 업그레이드되는 변신로봇 시리즈 등)는 굳이 알고 싶지도 않고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 것이다. 옆에서 계속 미주알고주알 이야기 해주는 것에 반응하는 것도 에너지가 보통 드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만 힘내서 눈빛을 빛내주자. 아이들은 저 깊숙한 단전부터 끌어 오르는 흥분과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할 것이다. 부모가 아이의 관심사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주면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깊이 공감받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을 지지해 준다고 생각한다. 자기주도생활을 함께 해나가며 때로는 불편한 대화가 필요할 때도 있다. 아이가 스스로 하지 않을 때도 있고 부모가 제안하는 도전이 버거울 때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아이의 관심사를 응원하는 태도는 소통의 윤활유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소통을 통해 감정표현의 롤모델이 되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홉 살 이전 시기에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 건강한 '감정표현'이다. 자신의 발달 단계에 맞게 점차 스스로 해나가야 할 도전과제를 늘려간다는 것은 때로 심리적 갈등을 일으킨다. 두려움, 실망, 절망, 좌절, 귀찮음, 인내, 절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일련의 과정에서 회복탄력성을 가지고 건강한 감정을 표현해야 아이가 자기주도적인 생활을 해낼 수 있다. 일상의 소통을 통해 아이들은 감정표현을 배워야 한다. 특히 부모가 불편한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보여줘야 한다. 부모는 항상 본인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야 한다. "오늘 이런 일이 있어서 좀 속상했어. 그런데 이런 방법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지"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대화를 통해 노출시킨다. 또한 '짜증, 화, 불안, 질투' 등 상황에 따른 다양한 감정을 알려주어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한 감정표현은 소통이 갈등상황에서도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돕는다. 




자녀와의 건강한 소통은 자기주도생활을 이끌어 나가는 필수 '도구'다. 시기별로 똑 떨어지는 족보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주도생활은 아이를 정확하게 파악해 아이 맞춤형 생활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대치동의 고액의 컨설팅을 찾아가기 전에 내 아이를 먼저 잘 알아야 한다는 교육 유튜버의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교육은 한 가지 정답이 있지 않다. 자기주도생활을 밀어붙이기 전 전제로 해야 할 것은 바로 부모와의 건강한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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